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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1화

성홍주는 난감해했다.“유리가 무서워. 다만...”그는 말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지금까지 그는 강유리를 압박하며 얼굴을 내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야만 그 사람이 유강그룹을 도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룹은 이미 오래전에 망했을 것이다.통제 불능한 지금, 이 상황에서 강유리는 이미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성홍주는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그룹을 맡게 되면 후과는 상상할 수 없다.“그럼 도대체 뭐예요?”성신영이 끈질기게 따져 물었다.하지만 성홍주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생각이 없어보였고 되려 반문했다.“세마의 비서와 유리가 어떤 사이인지 알고 있어?”성신영은 시무룩해하며 대답했다.“친구 사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고작 이런 관계가 세마의 결정을 좌우지할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꼭 그렇지만은 않아.”성홍주의 차가운 눈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 걸었다.“다음 주 내 생일연회에 큰 아가씨더러 남편과 함께 꼭 와야 한다고 전해.”그 후로 일주일 내내 강유리는 유강그룹에 출근하다시피 했다.그녀는 그저 자료를 입력하고 서류를 정리하며 성신영을 도와 디자인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교적 지루한 일이다.하지만 성신영은 그녀를 경계하며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며 숨겼다.심지어 참가자들의 정보와 작품도 옆에 있던 인턴에게서 얻었다.호기심에 디자인 도면을 보던 그녀는 작고 신선한 팔찌 디자인을 발견하고 멈칫했다.그녀의 관심에 인턴이 다가왔다.“이 디자인 괜찮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인데, 수많은 클래식을 만들어 낸 디자이너에요. 국내에서도 유명하고! 하지만 예선에서 탈락했으니 무슨 소용이 있나요?”“예선전 명단이 벌써 나왔어?”강유리는 깜짝 놀랐다.인턴은 신비롭게 말을 꺼냈다.“비밀 하나 알려줄게요. 단,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강유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예선 명단 발표가 늦어진 것은 세마와 손잡지 못한 것 때문이에요. 아마 약속한 혜택을 주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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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강유리는 문손잡이를 잡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압박감은 충분했다. 장비서는 안절부절못하며 입만 뻥긋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성홍주의 말을 전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이토록 저에게 휴가를 주고 싶어 하시니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돌아가서 회장님께 전하세요. 저는 돌아가지만 제 남편은 바쁜 사람이라 참석못한다고요.”“...”장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제 멋대로인 큰 아가씨는 거만해서 매번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법이 없다는 것을 그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막 회사에 합류한 그동안에는 조용했다. 간혹 그의 날카로운 경고에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곤 했다. 그래서 소문만큼 어려운 분이 아니라고 착각했었다.그러나 여지없이 본색을 드러내는 이 모습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아가씨, 연회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모두 각 계의 잘나가는 인사들이십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붇자 강유리가 아무렇지 않다는듯 대뜸 물었다.“그래서요?”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라니요? 회장님께서 이번 연회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시는 겁니까?”그녀는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중요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매분 매초 쌓이는 재부에 바쁠 수밖에 없죠. 혹시 내 남편이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장비서. ”....“그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본 강유리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를 올렸다.이 자식은 요즘 그녀가 만만해 보였는지 멋대로 그녀를 휘두르고 있었다. 인생은 새옹지마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 언젠가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릴 날이 올 것이다.”아, 혹시 번호를 바꾸셨나요? 회장님 께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시니 아가씨가 먼저 전화 드려보세요.“대화가 통하지 않자, 그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이렇게 해서라도 연락이 되기만 하면 회장님이 직접 그녀에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면 둘 사이에 껴서 기분이 불쾌해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그녀는 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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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아, 휴가예요?”“왜 그래요?”강유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녀가 강유리를 불러 멈추게 한 것은 다른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인턴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작은 충고 하나 해드리고 싶어요. 회장님이 이 자리에 당신을 앉혔다는 건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려는 거예요. 그러니 땡땡이치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잘해봐요. 그래야지 둘째 아가씨처럼 높은 자리에 앉을 거 아니에요.”강유리, “...”“제가 괜히 참견했나요? 만약 제가 잘못 넘겨짚었다면, 그저 흘려 들으셔도 돼요. 제가 좀 입방정이라서 종종 미움을 사거든요.”“...”강유리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훑었다.요 며칠 그녀는 농땡이만 피운 것은 아니었다.그녀는 주변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지켜보고 있었다.이 인턴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으로 나이만 먹었지. 눈치가 없어서 모든 것을 강유리에게 털어놓곤 했다. 거기에 직설적이고 수다스러워서 고참들의 예쁨을 받지 못했다.아마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큰 아가씨지만 냉대당하고 있는 강유리와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그 ‘오지랖’에 대한 강유리의 뜻밖의 반응에 인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입꼬리를 올리며 강유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참 단순하네! 일만 잘한다고 해서 모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성신영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인턴은 머뭇거리다가 주위를 살폈다.“솔직하게 말해요?”강유리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답은 이미 알겠으니 먼저 갈게. 월요일에 맛있는 거 사줄 테니 기대하고.”강유리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던 인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예쁘고 능력 있는 강유리가 좋았다. 하지만 왜 회장님의 예쁨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 마음에 쏙 드는 사람들은 모두 운이 따라주지 않는 듯했다.그 탑 디자이너도 그렇고 강유리도 그랬다.너무 안타까워...일요일 아침, 한창 메이크업하고 있던 강유리는 송미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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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아직 화해한 건 아니라고 지금 말을 바꿔도 될까?잠깐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지만, 금방 사라졌다. 화해하지 않았다고 하면 다시 이혼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또 물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혼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단지...“거 봐. 너도 날 속이려고 하고 있잖아! 지난번에 그렇게 심하게 싸웠으니 쉽게 화해하지 못할거란걸 알았기에 그날 시준이가 화해했다는 말을 난 믿지 않았어. 감정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지만 난 며느리인 네가 마음에 든단 말이야. 그러니 시준이랑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그녀는 점점 울먹이기 시작했다.순간 강유리는 너무 당황스러워 급하게 설명했다.“거짓말 아니에요. 진짜 화해했어요. 시준 씨도 거짓말한 게 아니에요. 이따가 인증샷 보낼게요.”그제야 송미연은 의심을 거두는 듯했다.“그래.”전화를 끊은 강유리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독립적이고 개성 넘치는 송미연 같은 여자가 어떻게 아들의 사적인 감점 때문에 흐느낄 수 있을까?같은 시각.육시준도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첫마디부터 어디에 있냐, 언제 출발할 거냐 등의 질문이었다.잠옷 차림의 육시준은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었다. 눈꺼풀도 겨우 뜨고 있는 그는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집에 있어요. 제가 어딜가야 하나요?”육지원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다.“이렇게 중요한 일을 까먹었어?!”육시준, “...”잡지에 머물러 있던 그의 눈빛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그가 뭘 알아야 하는 거지?“성홍주의 50세 생일 파티에 얼굴을 비치지 않아도 되는 위치이긴 하지만 그 사람은 무려 유리의 아버지잖아!”육지원의 불만스런 목소리가 들렸다.육시준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 일을 말하는듯 했다. 성 씨 가문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던지라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유리도 그를 초대하지 않았으니 그가 적극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결혼할 당시에 이미 그녀가 필요할 때에만 그녀의 가족과 만나기로 약속했었기 때문이다.확실하게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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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육시준은 눈을 감았다.“유리와 함께 갈게요. 우리 사이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리고 김씨 가문에도 관심 없고요.”육지원이 의아하게 물었다.“진짜야?”그제야 육지원이 한 발짝 물러섰다.“그럼 이따 출발할 때 인증샷 찍어서 보여줘.”육시준, “...그럴게요.”육 씨 저택.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육지원을 바라보는 송미연의 눈빛에는 승리를 거머쥔 여유로움이 은은하게 어려있었다.전화를 끊은 육지원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들이 이렇게 나올 거란걸 어떻게 짐작한 거야?”송미연은 손톱을 만지면서 말했다.“내가 직접 배 아파서 낳은 아들이잖아요. 비록 회사 일에는 안하무인이어도 이런 심리적 전술에서는 뒤지지 않죠.”육지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걱정 안 돼?”송미연, “뭘 걱정해야 하죠?”“아들의 성 취향에 대해서...?”그도 와이프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유리가 병원에서 검사받았다는 말을 듣고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는 아들이 너무 섣불렀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강유리가 육시준의 의도를 눈치채고 이것 때문에 싸웠을 것이라고 확신했다.하여 이대로 숨길 수 없어 망설임 끝에 와이프에게 털어놓기로 했다.하지만 송미연은 당황해하지 않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그더러 그 점을 역이용하라고 했고 강유리와 동행하겠다는 확답까지 받아오게 했다.육지원을 뚫어져라 보던 송미연이 입을 열었다.“뭘 걱정하는 거예요! 방금 아들이 김 씨에 관심 없다고 했잖아요.”“하지만...”“그러니 얼른 유리에게 정을 붙이게 해야죠. 그래야지만 삐뚤어진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잖아요.”“...”송미연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육지원이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송미연은 더 이상 이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화제를 돌려 그에게 내기를 걸었다.“우리 중 누가 먼저 사진을 받을까요?”정신을 차린 육지원은 신중하게 생각했다.“물로 나지. 시준이 실행 능력을 당신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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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육시준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강유리의 표정은 기대감에서 상실감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마침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입을 열려는데 상대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가.”말이 떨어지고 그는 계단을 향해 걸음은 옮겼다.미처 반응하지 못했던 강유리는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러다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외출한다고 하지 않았어? 진짜 시간 있어? 혹시 방해 되지 않아? 사실 난... 아!”빠르게 뒤따라가던 그녀는 앞사람의 급브레이크에 미처 멈춰 서지 못하고 그와 충돌하고 말았다.이마를 부여잡은 그녀는 육시준을 쏘아보았다.“갑자기 멈추면 어떡해!”육시준은 손을 들어 그녀를 쓰다듬어 주려 했다. 하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당신이야말로 왜 이렇게 급한 건데?”“당신은 다리가 길어서 빨리 걸으면 내가 따라갈 수 없다고!”비쭉거림에는 약간의 애교가 섞여있었다.“...”그녀를 말없이 보던 육시준은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겼다.이번에는 그의 발걸음이 확실히 느려졌다.쭈뼛쭈뼛 뒤를 따라 강유리도 집을 나섰다. 거기에는 익숙한 롤스로이스가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처럼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강유리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육시준이 막 외출하려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차에 오른 그녀는 여전히 걱정어린 눈빛을 보냈다.“진짜 함께 가려는 거야? 혹시 방해되지 않아?”육시준이 그런 그녀를 힐긋 보고 말했다.“당신이 필요할 때면 무조건 당신의 가족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우리 약속했잖아?”강유리는 그녀가 육시준의 신분을 알기도 전에 결혼에 대해 합의를 보던 둘의 모습을 떠올리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지금은 내가 용돈을 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그때랑 다르잖아.”그녀는 점점 낮은 소리로 말끝을 흐렸다.육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 안의 공기는 한동안 무거웠다.눈치를 살피던 임강준이 적절한 때에 끼어들며 어색한 기류를 바꿔놓았다. 그는 정중하게 물었다.“회장님, 사모님, 지금 출발해도 될까요?”“네.”“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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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임강준이 몸을 뒤로 최대한 빼고 있었지만, 한 앵글에 둘을 잡을 수 없었다.그는 예의를 갖춰 제안했다.“좀 더 가까이 붙으시겠어요? 지금은 마치 합석한 듯한 모습이라 먼 훗날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육시준, “...”강유리, “...”전에는 임강준에게 이런 위트가 있는지 몰랐다.하지만 송미연과의 통화를 떠올린 강유리는 화해했다고 당당하고 말했던 터라 멀리 떨어져 앉은 모습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그녀는 몸을 살짝 옮겨 육시준에게 다가갔다.육시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때마침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그렇게 둘 사이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얇은 드레스와 정장 바지로 강유리는 상대의 체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향기가 서로의 친밀도를 상승시켰다.당황했지만 피하지 않는 자신이 강유리도 놀라웠다. 심지어 내심 이 순간을 바란듯했다.“좋아요! 이 정도가 딱 좋아요. 두 분 이제 카메라를 보세요.”임강준의 목소리에 강유리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슬며시 옆으로 피하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에 불쑥 감기더니 세게 끌어당겼다.방심하고 있었던 강유리는 그의 품속에 안 긴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귓가에 힘차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목젖의 오르내림도 볼 수 있었다.설명할 수 없는 섹시함이다...황급히 시선을 옮긴 그녀가 육시준을 올려다보았다.남자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다.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어도 그녀의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임강준이었다. 그는 담담하게 일깨웠다.“카메라를 봐. 왜 날 보고 있어?”멈칫하던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았다.프로 사진작가, 임강준은 여전히 여러 가지 요구를 하고 있었다.“웃어보세요! 네, 좋아요. 좀 더 자연스럽게 웃어 볼까요? 사모님, 회장님께 더 가까이 붙으세요. 좀 더 가까이요. 차라리 어깨에 기대셔도 돼요. 네. 아주 좋아요...”강유리의 미소는 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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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그녀는 또다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님의 비서는 달랐다.모든 것에 면밀했고 각종 재능도 뛰어났으며 상사의 마음까지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이렇게 많이 찍은 이유는 육시준에 보여주려는 것이겠지?문뜩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육시준은 한창 그녀를 쫓아다녔을 때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함께하려 했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했었다.상사의 마음을 읽고 될수록 많이 남겨두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었다.하지만 지금...그날 아이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 때문이기도 했고 그 무엇도 그녀의 목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그녀가 확고하게 못 박아 두었기에 그는 훨씬 냉랭한 태도였다.더 이상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 제일 처음으로 돌아간 사이가 아니야?그럼, 임강준은 왜...“문제 있어?”불만 어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정신을 차린 강유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강유리는 너무 친밀하지도 너무 소원하지도 않은 적당한 것으로 골라 어머님에게 보냈다.그리고 방금 찍은 모든 사진들을 육시준에게 전송했다.차 안은 조용했다. 메세지 소리가 쉼 없이 정적을 깨고 있었지만 정작 휴대폰주인은 문자를 확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는 그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는듯 했다.강유리는 몰래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턱선과 주장이 강한 이목구비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고도 남는 외모였다.이렇게 훌륭한 남자가 진지하고 절절하게 고백한다면 받아들이지 않고선 못 배길 것이다.그러니 그의 냉정함을 직접 보게 된다면 더없이 서럽기 마련이다.강유리는 육시준도 그녀처럼 오래동안 사진을 바라보며 모두 마음에 들어 하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어 모두 소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의 생각이 틀린 것 같다.그는 그저 자신이 관련되어 있기에 알 권리가 있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롤스로이스는 천천히 성 씨 가문 별장으로 들어갔다.그리고는 천천히 멈췄다.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던 강유리는 말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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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임강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그리고 강유리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그녀가 차에서 내리고서야 뒤쪽에 준비해 두었던 선물꾸러미를 들고 듬직하게 옆에 섰다. 강유리는 제자리에 서서 임강준의 손에 들려있는 선물을 바라보다 멀지 않은 곳에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육시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뜩 깨달았다.오늘 그는 그녀와 여기에 오려고 했던 거였다....함께 모습을 드러낸 둘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다른 이와 한창 담소를 나누고 있던 성홍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재빨리 다가오며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왔어?”“올 시간 없다더니? 어른의 생신날에는 효심만 있다면 반드시 자리해야 하는 거야.”곁에는 왕소영이 있었다. 그녀는 어른의 품격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육시준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한번 훑었다.그녀는 움찔하면서 하려던 말을 삼켰다.눈치가 빨랐던 성홍주는 온화한 미소로 분위기를 바꿨다.“바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서 오지 않는다고 해도 탓하지 않았을 거야.”강유리는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 침묵을 지켰다.육시준이 얼굴을 공개한 후부터 많은 관심이 쏟아져 어디에 가도 주목을 받았다.냄새를 맡은 어떤 이들은 육시준에게 말 한마디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성 회장님을 위해 준비했다던 선물 가져와.”육시준이 임강준에 하는 말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확실하게 들었다.그는 아버님이 아닌 성 회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성홍주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강유리도 고개를 들어 성홍주의 반응을 살폈다.그러나 두 사람의 시선을 발견하지 못한 육시준은 그저 임강준에게서 선물을 건네받고 입을 다시 열었다.“그림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이건2일 전에 경매에서 낙찰받은 그림인데 마음에 드셨음 해요.”호칭 때문에 일그러졌던 성홍주의 얼굴이 다시 환희로 바뀌었다.급히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선물을 받아 든 성홍주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 그림은 희귀해서 그림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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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강유리가 대답했다.“그러죠.”육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는 그녀를 지나치고 자리를 떠났다.자리에 경직된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복잡한 심경을 정리했다.그녀가 원하던 결말이긴 했지만 진짜가 되어버리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무심하게 손을 뻗어 옆에 놓인 와인을 집어 든 강유리는 천천히 파티 장으로 걸어갔다...성홍주와 왕소영은 둘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지켜보다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육시준은 강유리와 함께 온 것이 아니었다. 육경원과 작은 딸의 관계 때문에 육씨 가문의 어른으로 참석한 자리였나?육시준이 강유리에 대한 감정이 상상했던 것보다 뜨겁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럼 그들에게 많이 유리한 상황이다.강유리의 기를 꺾으려고 성홍주는 남겨진 그녀를 내버려 두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성신영과 육경원을 옆에 끼고 여기저기에 딸과 사위라고 소개하기 바빴다.강유리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머릿속은 백지상태여서 그의 이런 행동을 눈치챌 겨를 이 없었다. 그저 홀로 와인을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했다.어느덧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해가 지더니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구석에서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성홍주가 큰 아량을 베푸는 듯 말했다.“날 따라 위층으로 올라와 봐.”강유리는 많이 마셔서 조금 어지러웠다. 그녀가 주위를 살폈다.그때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문기준이 응답했다.“사모님, 절 찾으셨나요?”강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가요.”위층 서재.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성홍주는 강유리만이 아니라 건장한 남자가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뭐 하자는 거야?”“전과가 있어서 배신 당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니깐요. 이제 일 얘기 해봐요.”강유리는 태양혈을 지긋이 눌렀다. 하지만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았다.심기가 불편했던 성홍주는 괜히 문기준을 아니꼽게 바라보다 강유리에게 말했다.“천방지축이였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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