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래, 나 부자 맞아: Chapter 1 - Chapter 10

1275 Chapters

제1화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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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화풀이를 끝낸 강유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둘 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뻔뻔해? 무릎 꿇고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가는 거야?”“너...!”“임천강, 나 늙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애랑 결혼 안 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그럼 적어도 나랑 끝내고 만났어야지. 추잡하게 이게 뭐 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이 치욕...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 어떻게든 복수할 거니까 두고 봐.”말을 마친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분노에 찬 임천강의 절규가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강유리, 너야말로 두고 봐! 내가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한편, 오피스텔을 나서며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던 강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아니지. 여긴 내 집이잖아. 왜 내가 나가야 해?’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502호 주인인데요. 3년 동안 집을 비웠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무단침입해서 살고 있네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뭘 하든 어서 처리해 주세요.”늦은 밤, 강유리의 전화에 벌떡 일어난 관리인은 바로 경비원들과 함께 502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마지막 미션까지 마친 강유리는 트렁크를 끌며 새벽의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연인의 배신, 슬프다기 보다 짜증이 밀려왔다.그녀와 임천강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수많은 남자들 중 임천강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한때 열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가 목격했던 추잡한 장면은 지난 3년이란 시간을 그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애초에 날 좋아한 적도 없었잖아. 그냥 내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나쁜 자식들!”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짜증이 밀려들어 발에 닿는 조약돌을 퍽 차는 강유리다.하지만 다음 순간,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조약돌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히며 캉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헉!”가까이 가보니 롤스로이스 한정판.방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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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한편, 육시준 역시 갑자기 나타나 계약 결혼이네 한달에 천만 원이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강유리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가 손을 내민 곳은 뒤쪽이었다.“자료 좀 주실래요?”어젯밤 차에 남긴 정보에 따라 비서가 이미 강유리의 뒷조사를 완벽히 끝낸 상태.무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넘기던 육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1000만원은 너무 적지 않나? 적어도 0 하나는 더 붙여야지. 그래야 육씨 집안 사모님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테니까.”목소리에서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강유리는 0 하나는 더 붙여야 한다는 말에 꽂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하이고? 요즘 호스트는 가격 흥정을 이렇게 하나? 하긴, 저 얼굴에 저 분위기에... 부잣집 사모님 한 명 제대로 잡으면 월에 억은 쉽게 받겠어. 하지만...’“5000만원, 이 정도에서 끝내지. 적당히 해.”해외에서 매달 임천강에게 용돈 명목을 부쳐준 돈이 겨우 2000만원 남짓, 강유리가 부자인 건 사실이지만 이런 일로 호구 잡힐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이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육시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런데... 5000만이든 1억이든 누가 누구한테 주는 거지?”“내가 그쪽을 고용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주는 거지.”이에 육시준은 다시 강유리의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얼핏 얼핏 보이는 요염함이 매력적인 정교한 얼굴, 지금까지 그의 돈에 빠져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던 여자들과는 달리 자신만만함을 넘어 어딘가 고고하기까지 한 눈빛...‘연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좋아.”잠시 후 얘기를 마친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선다.하지만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강유리는 우뚝 멈춰서더니 익숙한 롤스로이스에 시선이 꽂힌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강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내가 저 차 주인한테 빚을 좀 진 게 있거든.”강유리를 보는 육시준의 눈이 또 묘하게 변하고...비서 역시 상황이 묘하게 변하고 있다 싶지만 육시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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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충격으로 일렁이는 육경서의 눈동자는 제발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말해 달라고 호소하는 듯했지만 육시준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비서에게 분부했다.“강유리, 그리고 그 집안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줘요.”3년 동안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가 귀국하자마자 결혼이라니.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강행하는 걸 보면... 뭐에 쫓기는 듯한데.육시준은 그 답이 그녀의 집안에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알겠습니다. 해외 유학생활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어제 비서가 급하게 구한 자료에선 그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3년 간 도피 유학을 떠났다는 정보가 전부, 그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아니요.”‘그건 그 여자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어...’하지만 육경서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다.여기 오면서 비서에게 대충 들은 바로는 어제 일부러 육시준 차에 스크래치를 내놓고 오늘 못 알아보는 척 결혼 제안을 한 여자라던데...‘아무리 생각해도 꽃뱀 같단 말이야. 뭔가 냄새가 나... 구린 냄새가...’“형, 그 여자 진짜 형 얼굴 모르는 거 맞아?”서울시에서 한정판 롤스로이스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육시준 한 사람뿐.그의 차가 곧 그의 얼굴이자 이름 같은 존재인데 아무리 갓 귀국했다지만 그걸 못 알아봤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동생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육시준 역시 고개를 저었다.“글쎄..”“그런데 왜...”“내가 알아서 해.”동생의 말을 잘라버린 육시준이 말을 이어갔다.“아, 아주머니한테 내 짐 좀 정리해 달라고 부탁해 줘. 오늘부터 와이프랑 같이 살아야 하니까.”한편, 강유리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들른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마침 저녁 시간, 문 앞에 차를 댄 강유리는 검은색 철문 옆에 적힌 글씨를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성홍주”강민영이 세상을 뜬 뒤로 성홍주는 강유리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재산을 전부 빼앗은 것도 모자라 첫사랑과 낳은 사생아까지 집안에 들였다.빨리 어른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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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강유리의 말에 저택은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성신영과 왕소영 모녀는 잔뜩 경계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성홍주는 커다래진 눈으로 물었다.“너 어제 남자친구랑 헤어진 거 아니었니? 그런데 오늘 바로 결혼이라니. 이게 무슨...”성홍주의 말에 강유리의 마음이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생물학적 아버지로서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던 연민마저 산산조각나는 순간이었다.“하, 아빠도 제가 어제 헤어진 걸 알고 계셨네요. 제가 연애를 하고 있는 것도 그렇게 예뻐하는 작은 딸이 자기 언니 남자친구를 빼앗은 것도 까맣게 모르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강유리의 팩폭에 성홍주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지만 곧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그녀를 꾸짖기 시작했다.“가족끼리 그런 일로 꼭 얼굴을 붉혀야 속이 시원하겠니!”성홍주가 자기 편을 들어주자 의기양양해진 성신영이었지만 또다시 불쌍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나랑 천강 오빠가 언니한테 잘못한 게 맞는걸. 언니가 저렇게 화내는 것도 이해가 가. 우린 그냥 언니가 상처를 받을까 봐 제대로 날 잡고 사과하고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오해가 커질 줄은 몰랐어. 내가 맞아도 싸지 뭐.”눈시울을 붉히는 성신영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성홍주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성홍주의 눈에 성신영은 한없이 착하기만 한 예쁜 딸이었고 강유리는 자기 엄마를 꼭 닮아 강압적이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딸이었기에 마음이 성신영에게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네가 이렇게 뻣뻣하게 구니까 남자가 도망가는 거 아니야. 네 동생 반만 닮아봐. 천강이가 바람을 피웠겠어?”“아빠, 죄송해요. 저한테 많이 실망하셨죠. 비록 신영이랑 제 남자친구가 저 몰래 바람을 피우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족이니 축북해줬어야 했는데 맞죠? 그 집도 엄마가 저한테 남겨주신 주식까지 다 신영이한테 줄 걸 그랬어요.”강유리가 성신영의 말투와 표정을 따라하고 이건 또 무슨 수작인가 싶어 세 사람이 어벙한 표정을 짓는다.‘뭐? 집에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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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하지만 임천강의 비아냥거림이 들리고 순간 스쳤던 빛이 후광이 와장창 깨져버린다.‘임천강, 너도 저 집에서 들어앉은 사람들이랑 다를 게 없어. 가식적이고 탐욕적이지. 역겹게...’임천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유리는 뭔가 결심한 듯 엑셀을 거세게 밟았다.순간 차량이 화살처럼 앞으로 발사되고... 방금 전까지 건방진 표정을 짓고 있던 임천강의 눈이 휘둥그레진다.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던 임천강은 다급한 나머지 자기 발에 걸려 대자로 넘어지지만 핸들을 잡은 강유리는 도무지 속도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오빠!”“강유리, 너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임천강을 마중나온 성신영 모녀는 비명소리만 꺅꺅 내지르다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끼익...”그리고 그 순간 타이어가 무서운 마찰음을 내며 임천강과 단 한뼘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드디어 멈춰 섰다.지잉...차 창문이 내려가고 운전석에 앉은 강유리가 고개를 쏙 내밀더니 여유로운 얼굴로 픽 웃었다.잔뜩 긴장한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너나 잘하세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강유리의 스포츠카는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사라지고 매연에 세게 콜록거리던 임천강은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저 미친... 두고 봐.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아?’여느때와 다름없이 화려한 서울의 밤거리.강유리는 아무런 목적지 없이 그저 도로를 한없이 달리기만 했다. 도로에 줄지어 선 가로등 불빛에 강유리의 얼굴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클럽 죽순이에 걸레라... 그래도 한때 사귀었던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야? 됐다, 술이나 마시러 가자.’결국 치미는 짜증에 강유리가 자주 가는 바로 핸들을 꺾으려던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어디야?”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매력적이지만 낯선 목소리.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분명 모르는 번호인데... 누구지?’“누구세요?”“...”잠깐의 침묵 끝에 육시준은 한 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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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마치 다른 사람 결혼을 축하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따뜻한 조명과 은은한 디퓨저 향 때문일까 강유리는 기분이 왠지 좋아졌다.“그쪽도 결혼 축하해.”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오늘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강유리는 와인을 포도주스처럼 들이키기 시작했다.식사 도중 육시준이 잠깐 전화 통화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강유리는 와인 한 병을 전부 비워버렸으니까.취기가 오르는 느낌에 강유리는 의자에 살짝 기대어 보았다.하늘하늘한 치맛자락이 감싸는 여리여리한 몸매 허리까지 내려오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정교한 얼굴,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만한 외모였다.이때, 다가오는 육시준을 발견한 강유리가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가까이 와봐.”테이블 가까이 다가간 육시준이 텅 빈 와인병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취했네.”“나 강유리야, 클럽 죽순이 강유리. 내가 그렇게 쉽게 취할 것 같아?”하지만 개미 소리만큼한 목소리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한 육시준이 허리를 숙였다.“뭐라고?”육시준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든 강유리의 눈에 옷깃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복근이 들어오고...취기 때문일까 그녀의 하얀 손이 육시준의 옷 안으로 향한다.이에 육시준이 벌떡 일어서며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강유리!”“왜? 우리 결혼한 사이잖아. 부부끼리 이 정도도 못 만져?”불만 섞인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던 강유리가 막무가내로 육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그 사이에 원피스 나시 끈이 스르륵 내려오며 강유리의 아찔한 쇄골 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로맨틱한 조명 아래에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육시준을 향해 손을 뻗는 강유리, 이 세상에 정말 요정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육시준이었다.하지만 이토록 매력적인 모습에도 육시준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렸다.“우리 오늘 처음 안 사이야. 스킨십은... 강요하지 않을게.”이때 강유리가 벌떡 일어서고 당황한 채 뒤로 물러서던 육시준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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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정신이 든 강유리는 침대 위라는 것도 잊고 후다닥 뒤로 물러나고 그만 우스운 꼴로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악!”낮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고통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강유리는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려보았다.그리고 미의 신마저도 질투할 것만 같은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하지만 더 이상 잘생긴 얼굴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엔 온통 소안영이 소개해 주려던 사람은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만 가득할 뿐이었다.“너... 도대체 누구야?”이불이 걷히고 육시준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뭐야. 어제 있었던 일 다 까먹은 거야? 이렇게 무책임해도 돼? 여보?”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여보라는 호칭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강유리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려 보지만 휴대폰에서 들리는 소안영의 호들갑 섞인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뭐야! 강유리, 아까 그거 남자 목소리 맞지! 너 귀국한 지 이제 3일째야. 그런데 남자는 어디서 만난 거래? 그리고! 집에까지 들여? 너 정말 미쳤어?”“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강유리는 숙취로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전화를 끊었다.사실 대외적으로 강유리는 클럽 죽순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주량은 그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필름이 끊기기 전, 강유리의 마지막 기억은 서로 결혼 축하한다며 와인잔을 부딪히는 것이었으니...‘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차마 침대 위에 누운 남자의 나체는 쳐다보지 못하고 이불에 감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들여다 보던 강유리의 얼굴이 다시 화끈 달아올랐다.하지만... 잠시 후, 겨우 이성을 되찾은 강유리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뭐지? 느낌이 이상한데?’이어 그녀의 시선이 베이지색 침대 시트로 향하고...아무런 흔적도 없는 시트를 확인한 강유리는 어느새 쑥스러움을 씻어버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육시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공격을 날리기도 전, 육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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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고개를 젓던 강유리가 다시 한번 자세히 육시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직업이 뭐야?”“비즈니스, 사업가야.”“사업가? 하, 아무리 요즘 경제가 어렵다지만... 부업으로 이런 짓까지 하나?”강유리의 눈이 커다래졌다.이에 육시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 몰라?”‘하, 무슨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말도 안 되는 변명에 강유리가 추궁을 이어가려던 그때, 강유리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는 확 어두워진 얼굴로 안방을 나섰다.어제 계약서를 체결하고 나서 강유리는 바로 전부터 함께 일하던 비서에게 엔터회사 운영 상황을 알아보라고 분부했다.컴퓨터 메일에 도착한 데이터를 확인하던 그때, 문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유강그룹은 현재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다 썩어문드러진 거대한 나무나 다름없습니다. 대외적으론 흑자를 내고 주가도 오르고 있지만... 그룹 내부에 부패, 횡령 문제가 심각합니다. 흑자 역시 장부 조작이 의심되는 상황이고요.”문자를 확인한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그녀는 올해 안에 엔터회사 매출을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성홍주의 조건을 떠올렸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2배는커녕 1년 안에 구멍난 곳을 메꾸는 것도 벅찰 것만 같았다.“지금 엔터업계는 레드오션인 거 몰라. 게다가 한국 엔터시장은 로열 엔터가 꽉 잡고 있어. 유강엔터가 설 자리가 있을까? 애물단지만 떠안은 것 같은데.”이때 그녀의 정수리 위에서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강유리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녀의 컴퓨터 모니터 불빛에 더 오묘하게 반짝이는 육시준의 얼굴을 휙 훑은 강유리가 물었다.“그럼 스타인은?”“뭐 나름 그럴 듯한 모양은 내고 있달까?”육시준이 눈썹을 씰룩였다.“유강 엔터를 맡으면 스타인을 앞설 수 있을 것 같아?”비록 사람들은 신생 엔터회사인 스타인 엔터가 곧 로열 엔터와 견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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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유강엔터 본사 건물.직원들 모두 오늘 새로운 대표가 온다는 것도 그 대표가 회장 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평소 조금 붐비게 느껴지던 사무실이 오늘은 유난히 텅 빈 상태였다.직원들 중 3분의 1이 월차를 낸데다 남은 사람들도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꼴이 아무리 봐도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는 아닌 모습이다.오후 세 시쯤, 화려한 스포츠카가 회사 주차장에 들어서고 깔끔한 정장 차림의 강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단아하면서도 몸매 라인을 잘 살려주는 깔끔한 의상에 각선미를 부각시켜주는 아찔한 하이힐까지.전형적인 커리어우먼 그 자체였다.강유리가 무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 뒤를 따르는 비서가 회사 상황을 다급하게 브리핑하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던 그때, 초조한 표정의 누군가가 부랴부랴 달려오더니 바로 허리를 굽실거렸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직접 마중 나왔어야 하는 건데 제가 오늘 좀 바빠서요...”‘하, 텃세를 부리시겠다? 일개 비서 주제에 일 때문에 회사 대표 마중을 깜박했다는 게 말이 돼?’“아니요, 괜찮습니다.”한편, 착한 얼굴로 싱긋 웃는 강유리를 바라보던 장규진 비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역시, 원 대표 말대로 사업의 사자도 모르면서 대표 소리 한번 듣고 싶어서 계열사 하나 달라고 한 거구만. 안 봐도 비디오지 뭐. 그럼 오늘 제대로 기를 눌러줘야겠어.’“원 대표님은 오늘 몸이 불편하셔서 회사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인수인계는 다음 주에나 가능할 것 같으니... 이번 주는 그저 회사 직원들 얼굴이나 기억해 두시죠.”장 비서의 말에 로비에 모인 직원들 모두 숨을 죽였다.부탁이 아니라 명백한 명령, 새로 온 대표에 대한 텃세 그 자체였으니까.‘아이고, 불쌍한 아가씨. 앞으로 이 회사에서 제대로 날개나 펴실 수 있을까...’하지만 장 비서의 말에 강유리는 언짢은 표정도, 겁 먹은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계속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걷던 강유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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