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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노혜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3-08-29 14:22:03
충격으로 일렁이는 육경서의 눈동자는 제발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말해 달라고 호소하는 듯했지만 육시준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비서에게 분부했다.

“강유리, 그리고 그 집안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줘요.”

3년 동안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가 귀국하자마자 결혼이라니.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강행하는 걸 보면... 뭐에 쫓기는 듯한데.

육시준은 그 답이 그녀의 집안에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알겠습니다. 해외 유학생활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어제 비서가 급하게 구한 자료에선 그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3년 간 도피 유학을 떠났다는 정보가 전부, 그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아니요.”

‘그건 그 여자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어...’

하지만 육경서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다.

여기 오면서 비서에게 대충 들은 바로는 어제 일부러 육시준 차에 스크래치를 내놓고 오늘 못 알아보는 척 결혼 제안을 한 여자라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꽃뱀 같단 말이야. 뭔가 냄새가 나... 구린 냄새가...’

“형, 그 여자 진짜 형 얼굴 모르는 거 맞아?”

서울시에서 한정판 롤스로이스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육시준 한 사람뿐.

그의 차가 곧 그의 얼굴이자 이름 같은 존재인데 아무리 갓 귀국했다지만 그걸 못 알아봤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동생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육시준 역시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런데 왜...”

“내가 알아서 해.”

동생의 말을 잘라버린 육시준이 말을 이어갔다.

“아, 아주머니한테 내 짐 좀 정리해 달라고 부탁해 줘. 오늘부터 와이프랑 같이 살아야 하니까.”

한편, 강유리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들른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

마침 저녁 시간, 문 앞에 차를 댄 강유리는 검은색 철문 옆에 적힌 글씨를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

“성홍주”

강민영이 세상을 뜬 뒤로 성홍주는 강유리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재산을 전부 빼앗은 것도 모자라 첫사랑과 낳은 사생아까지 집안에 들였다.

빨리 어른이 되어 그녀만의 가정을 차리고 엄마가 남겨준 재산을 되찾는 것이 지금까지 그녀의 꿈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하필 남자친구, 아니 전 남자친구의 바람 상대가 사생아 성신영이라니.

악연도 이런 악연이 있나 싶었다.

“또각또각.”

깊은 한숨을 내쉰 강유리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문 비밀번호를 입력한 순간, “잘못된 비밀번호입니다”라는 기계음이 흘러나오고 강유리가 누르고 누르던 분노의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쭈, 비밀번호까지 바꾸셨다?’

그리고 강유리는 휴대폰 앱을 꺼내 도어락을 스캔하고

“띠디딕.”

그녀를 문전박대할 생각으로 비밀번호를 바꾼 이의 마음이 무색하게도 문은 1초만에 열리고 말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거실에서 도란도란 들리던 대화 소리가 어색하게 멈춤과 동시에 수많은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언니, 어떻게 들어왔어?”

‘하, 너구나. 그 깜찍한 짓을 벌인게.’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성신영은 자신의 말실수를 눈치채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왕소영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다가온다.

“어머, 유리, 정말 귀국했구나. 그이 전화도 계속 안 받고 그래서 난 신영이가 거짓말 하는 줄 알았잖아.”

친절한 목소리와 달리 가시 돋친 말에 성홍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한편, 왕소영의 가식적인 미소를 마주하고 있자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역겨움이 밀려오는 듯한 기분에 홱 손을 빼낸 강유리는 바로 성신영을 향해 쏘아붙였다.

“내가 내 집 오는데 네 허락까지 맡아야 하니?”

강유리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 왕소영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 동안 성홍주 앞에서만큼은 지고지순한 이미지를 유지해 왔음으로 다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신영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집 비밀번호도 정기적으로 바꿔주는 게 좋다고 해서 우리끼리 상의해서 바꿨어. 사실 네 아빠도 오늘 바뀐 비밀번호 알려주려고 전화한 건데 네가 안 받아서 그만...”

“하, 의논? 누구 맘대로 우리 엄마 집 비밀번호를 당신들끼리 상의해.”

“...”

강유리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성홍주는 강씨 가문의 데릴사위, 평생 알게 모르게 눈칫밥을 먹다 아내인 강민영이 죽고 나서 그제야 허리를 펴고 가장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이를 낳은 첫사랑과의 만남, 강민영과 달리 지고지순한 성격의 왕소영과 함께 살며 겨우 남자로서의 자존감을 되찾는 중이었는데 전 처 딸인 강유리가 다시 돌아오면서 그 알량한 자존심이 박살나버리고 만 것이다.

“강유리! 내가 그 동안 널 너무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지? 3년 동안 밖에서 보고 배운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배운 게 겨우 이거야?”

성홍주의 호통에 성신영, 왕소영 모녀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실렸다.

그리고 이때가 기회라고 판단한 건지 성신영이 바로 잔뜩 불쌍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빠, 언니한테 너무 화내지 마. 언니가 오늘은 기분이 별로인가 봐.”

“참, 그건 그렇고 너 어제는 왜 그랬어? 네 동생이랑 미래의 제부를 한밤중에 쫓아냈어야 했어?”

이른 아침 눈물바람으로 달려와 어제 겪은 일을 털어놓던 딸의 얼굴을 떠올리니 성홍주는 다시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네 동생한테 음식까지 던졌다면서. 너 그게 뜨거운 거였으면 어쩔 뻔했어. 네 여동생은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가 될 아이야.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어쩔 뻔했냐고!”

하지만 길길이 날뛰는 성홍주와 달리 강유리는 여전히 차분한 얼굴이다.

“어차피 다 뜯어고친 얼굴, 수술 한번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너!”

“아빠, 자경원은 엄마가 나한테 남겨준 아파트예요. 저 계집애랑 임천강 그 찌질한 자식이 거기서 무위도식하는 걸 그럼 보고만 있어요?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신고 안 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그의 호통에 강유리가 겁을 먹긴커녕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들자 성홍주는 더 대꾸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의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강유리가 혼인신고서를 테이블에 툭 던졌다.

“저 결혼했어요. 이제 내 거였던 걸 다시 돌려받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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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3-08-29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2화

    한편, 회사로 들어선 육경서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회사 꼴이 이게 뭐야. 그리고 이 코딱지만한 사무실은 또 뭐고...;“육시준.”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 건 바로 강유리의 목소리였다.그리고 평소와 다른 강유리의 모습에 대외적으로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익숙한 육경서마저 어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깔끔한 셔츠에 하이웨스트 스커트, 하얀 다리 라인을 잘 살려주는 하이힐, 만화에서 나올 법한 직장룩의 정석에 꼭 들어맞는 분위기까지.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침착한 표정이었다.‘유강엔터... 어쩌면 형수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겠어.’“아, 강유리 대표님. 육경서라고 합니다.”선글라스를 벗은 육경서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눈앞에서 톱 연예인을 보면 신기해서라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만 한데...한참을 팔짱을 낀 채 그를 훑어보던 강유리는 먼저 내민 육경서의 손이 불쌍하게 느껴질 때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제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시죠.”“네.”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방금 전까지 조용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뭐야! 정말 육경서잖아. 정말 우리가 육경서 전속 계약 따내는 거야?”“강유리 대표라고 했나? 보기보다 대단하잖아.”“와, 육경서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한편, 워낙 건물 방음이 별로인 탓에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고 육경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엔터회사면 연예인들 얼굴 실컷 봤을 텐데 왜 저렇게 호들갑이지? 우리 형수님... 창피하겠다.’하지만 여전히 침착한 표정의 강유리가 싱긋 웃어 보였다.“귀한 분께서 누추한 곳에 오셨네요.”상대를 띄워주는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아, 아닙니다. 강유리 대표님이 새 대표로 부임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목이 타네...’말을 마친 육경서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Last Updated :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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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61화

    신주리는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대체 뭐 하는 거야?” “나오면 알게 될 거야.” 신주리는 전화를 끊고 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신씨 가문 부모님은 일찍 주무시기 때문에 이 시간엔 집 안이 조용하다. 계단 위로는 희미한 불빛이 내려왔고 그 덕분에 방이 너무 어두운 건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가볍게 하며 조심스럽게 나갔다. 별장 문이 살짝 닫히자 그제야 신주리는 자신이 몰래몰래 행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보니 밖에서 소리도 없이 미친 듯이 손을 흔드는 소년의 모습이 더 기이하게 느껴졌다... 마치 불법적인 만남 같았다... 이 생각을 하자 신주리는 갑자기 머리를 흔들며 그런 이상한 생각을 떨쳐냈다. 그리고 작은 발걸음으로 문쪽을 향해 뛰어갔다. 오늘 밤의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았다. 바람은 매서웠고 비가 섞인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를 툭툭 치며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내가 이제 거의 자려고 했거든? 만약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게 아니라면 너 죽을 줄 알아!” 그녀의 목소리는 귀찮은 듯 위협적이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육경서는 그녀의 그 눈빛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가 입고 있는 민소매 원피스를 보았다. 그녀의 어깨는 가냘프고 예쁜 쇄골 아래로는 빠르게 뛰는 숨결에 따라 가슴이 살짝 오르내렸다... 그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지만 그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서 차 뒤쪽을 향해 말했다. “내려오지 마!” 차를 막 세운 뒤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며 인사를 하려던 매니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냥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육경서는 그녀에게 다시 눈길을 주며 재빨리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그 외투를 더욱 단단히 감싸며 그녀를 감쌌다. 신주리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소년에게서 나는 낯선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60화

    사실 신주리도 궁금해했지만 온 저녁 릴리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그만 잊어버렸다. 그녀는 입을 열어 되물었다. “너는 어디로 쓴 거야?” 육경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바닷가지! 내가 메시지로 신호를 보냈잖아. 너 그거 못 알아봤어?” 신주리는 천천히 말했다. “알아봤지. 근데 누가 정했어? 알아봤다고 해서 네가 쓴 대로 해야 한다고?” 육경서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섭섭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차는 신씨 가문 별장 앞에 멈췄다. 신주리는 차에서 내려 기쁘게 손을 흔들며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 나갔다. 몇 발자국 가다가 돌아서더니 마침 차창이 내려지자 몸을 굽혀서 두 팔꿈치를 창에 기대며 말했다. “근데 내가 쓴 주소도 바닷가랑 연관이 좀 있어. 제작진 팀이 중복이라 판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육경서의 섭섭했던 눈빛은 어느새 빛을 내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며칠 후, 육경서는 바쁘게 지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틈틈이 신주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별거 없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일정을 보고하거나 상대방이 밥을 먹었는지 묻는 작은 얘기들이었다. 끝에는 항상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네가 쓴 곳은 대체 어디야?] 신주리는 메시지를 확인하면 짧게 답은 하되 항상 마지막 문장은 무시한 채 넘어갔다... 프로그램 녹화는 한 달 넘게 연기되었다. 제작진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육경서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도대체 어디일까? 녹화 전날 밤까지 그는 여전히 그 질문을 머릿속에서 놓지 않았다. 신주리는 평소처럼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끊으려는 찰나 육경서가 다시 묻기 시작했다. [넌 그 목적지가 어디야?] 신주리는 답했다. [하루만 있으면 내일 다 밝혀지는데 그걸 못 기다리겠어?] [그게 내가 내일 녹화를 어떻게 맞이할지 결정하는 거야.] [...] 신주리는 한숨을 쉬며 입술을 내밀고서도 결국 답을 했다.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59화

    릴리와 신하균의 대화로 강학도는 결국 육경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묻는 걸 잊었다. 육경서는 친동생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저녁 식탁에서 강학도는 완전히 자신의 손녀사위에게 몰입해 있었다. 두 사람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잊은 채 시간을 보냈다. 육경서와 신주리는 그들만의 공간을 주기 위해 월계만을 떠났다. 차는 천천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신주리는 약간 피곤한 표정으로 좌석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피곤해?”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주리는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괜찮아. 그냥 조금 피곤할 뿐이야.” 육경서는 그녀를 슬쩍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다행히 이번 이틀간은 일정이 없으니까 집에서 더 쉴 수 있겠네.” 신주리는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육경서는 전방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답했다. “네 매니저한테 물어봤어. 뭐, 우리 사이니까 그런 거 숨길 이유도 없잖아.” 둘은 잠시 멈칫했다. 신주리는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점에 카메라도 없고 그가 기억을 잃은 걸까 아니면 그녀가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해서 이런 자연스러운 말을 한 걸까? 육경서는 자신의 말이 잘못 나왔다는 걸 느끼고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았다. 신주리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 더 긴장했다. “뭐, 우리 비록 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네 전 남자친구잖아!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더 이상 전 남자친구로만 남고 싶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뒤이어 아무런 반박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도 프로그램 안에서 커플로 나온 거잖아. 그러니까 서로 완전히 관계를 끊을 수는 없지!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가 이 말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기세가 꺾였다. 신주리는 그가 이렇게 어색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너한테 궁금해하지 말라고 했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58화

    강학도의 눈은 살짝 떨렸고 이 작은 녀석들의 애절한 눈빛을 마주하니 거절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네티즌들이 쓰는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한다.’ 대충 이런 말이 그들에게 어울릴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젊은이들 사이로 성공적으로 침투했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가까이에서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그는 딸의 연애 상황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송을 보고 나서 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분명히 그냥 사귀는 연인들인데 왜 그렇게 이상하게 지내고 또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혹시 그들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까?’ 육경서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을 피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한 번도 어른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과거의 일들을 다시 꺼내자니 정말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작은 갈등이 있었어요.” 그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무슨 갈등? 왜? 들어보니 심각한거 같은데! 다 큰 남자가 여자에게 조금 더 양보할 줄 알아야지.” “외할아버지, 저는 정말 너무 속상해요!” 릴리가 갑자기 말을 끊으며 강학도에게 슬픔을 호소했다. 강학도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듣고 반응했다. “왜 그래?” 릴리는 불만을 가득 담아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는 외할아버지의 진짜 외손녀잖아요! 그리고 여기서는 저와 미래 손녀사위가 같이 서 있는데 외할아버지는 저희에게 관심도 안 두고 다른 사람의 사적인 얘기만 궁금해하시다니요?” 갑자기 자신이 언급된 신하균은 몸을 바로 세웠다. 그는 옆에 있는 여동생의 어색한 표정을 살펴보면서도 결국 한발 물러서서 모든 걸 자신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다시 진지하게 인사했다. “외 할아버지.” 강학도는 잠시 멈칫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그는 외 손녀의 눈빛에 맞서면서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말했다. “경서와 주아는 다 우리 가족인데 그게 뭐가 이상한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57화

    물론 그녀가 기분이 좋다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딩동!” 초인종 소리가 집 안의 침묵을 깨뜨렸다. 네 명은 동시에 문을 바라보며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졌다. 아마도 방금 전에 강미영의 눈빛에 기가 눌려서 이제는 그 누구도 문을 열고 싶어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초인종이 다시 한번 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은 동시에 신하균을 바라보았다. “네가 가!” 신하균은 잠시 말없이 그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긴장할 일인가? 몇 분 만에 강미영이 순간 이동이라도 해서 왔을까?’ 그는 일어나 차분하게 문 쪽으로 다가가서 자연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그는 얼어버렸다. 문밖의 사람도 당황한 표정으로 심지어 자기가 잘못 왔나 싶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문패를 다시 확인하고는 물었다. “저, 제가 잘못 온 건가요?” “아니요, 아니에요...” 신하균은 드물게 당황하며 한발 물러섰다. “릴리 집에 있어요. 들어오세요.” 그 사람은 강학도였다. 릴리는 이 소리를 듣고 반짝이는 눈으로 달려갔고 거의 뛰어오르듯 했다. “외할아버지! 딱 맞춰 오셨어요! 우리 네 명의 생명을 구해 주셨어요. 대단해요!” 강학도는 문을 넘기기 직전 잠시 멈칫했다. 그는 이 상황이 분명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들었고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앞을 가로지르는 작은 아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빨리 와요! 들어오세요! 멋진 걸 보여 드릴게요!” 육경서와 신주리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강학도는 의자에 앉으면서 이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바라보았다. 문을 열자마자 그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지만 외손녀와 그 남자가 단둘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보니 이 네 명이 다 함께 있던 거였다. ‘이 작은 녀석들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릴리는 컴퓨터를 끌어안고 할아버지 앞에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56화

    그때 강미영은 네트워크를 끈 후 바로 카메라도 껐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이 녀석들이 오지 않는다 했더니 어둠 속에서 숨어 있었구나. 이런 저질스러운 수법을 쓰다니, 내가 자신들과 똑같이 멍청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이건?” 소지석이 언제부터 그녀 옆에 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카메라를 보며 잠시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미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이들이 장난쳤어요. 우스운 꼴을 보였네요.” 소지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처음 만난 것도 아니잖아요.” 잠시 생각한 후 이 아이들이 조금은 귀찮지만 결국엔 그가 원하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도와주려는 의도였다는 걸 깨닫고 본능적으로 그들을 옹호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들도 당신을 걱정해서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한 거예요.” 강미영은 뒤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이유를 정말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지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이 더 잘 알겠죠. 그들은 단순히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에요. 뭐든지 끼어들고 싶은 마음에 제가 벌써 은퇴한 줄 알고 저 앞에서 이런 속셈을 부리는 거죠.” ‘그래, 이제 구할 수 없겠군. 그들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겠지.’ 강미영은 평소처럼 외부에서 사적인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 이야기를 금방 끊어버리고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녀는 앞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곳은 천 년의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역사적인 도시였다... 소지석은 잠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그램에서 곧 일정이 잡힐 거예요. 시간문제죠. 하지만 지금 당장 가고 싶다면 저도 함께 갈 수 있어요. 요즘 저는 별로 바쁘지 않아요.” 강미영은 부드럽게 거절하며 말했다. “맞아요. 프로그램에 결국 다 짜여 있어요. 지금 가고 나중에 또 가면 신선함이 없겠죠.” 소지석은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 대신 무심코 덧붙였다. “그럼 다음 장소는 어디일까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55화

    릴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에이, 어차피 우리 엄마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입술 모양 읽기를 육경서가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신하균은 입술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그러다 신주리가 갑자기 깨달은 듯 급히 고개를 돌려 신하균을 바라봤다. “맞다, 오빠는 전문가잖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 말이 끝나자 세 개의 눈이 동시에 신하균을 향해 집중되었다. 릴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전에 소지석이 입모양 한 거 다 이해했죠? 뭐라고 말했는지 우리에게 얘기해 줄 수 있어요? 그들이 무슨 얘기 했는지?” 신하균은 그 반짝이는 눈을 보고 도덕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입을 열려다가 화면에 나타난 장면에 눈을 빼앗겼다. 카메라가 조정되며 딱 맞춰 강미영을 정면으로 비쳤다. 바로 그때 강미영이 고개를 들어 차가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향해 날카롭게 스캔했다. 다른 세 사람은 신하균의 변화를 느끼고 그의 시선을 따라 화면을 봤다. 그리고 네 명 모두 얼어붙었다... 그 카메라를 통해 강미영의 차가운 눈빛이 마치 그들에게 직접 쏟아지는 것 같았다. 강력한 압박감을 주며 한순간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그 강한 위압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미영은 손을 들어 카메라를 껐다. 그제야 모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신주리는 급히 손을 뻗어 컴퓨터를 덮었다. “아기야, 너희 엄마 방금 그 눈빛 진짜 무서웠어. 화면을 통해서도 살기를 느꼈어.” 육경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소름 돋았어. 작은 이모의 경계심이 너무 강해.” 신하균도 충격을 받았다. “역시 권력의 중심에 있는 여왕이네.” 릴리는 그들의 감탄과 충격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작은 자신을 감싸 안았고 창백한 얼굴과 멍한 눈으로 말했다. “끝났어요. 이번에는 진짜 끝이에요.” 집 안의 감시 카메라를 이용해 어른들의 프라이버시를 엿보았다니,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큰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순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54화

    소지석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느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지금의 당신이라면 학생으로 다시 학교에 가는 건 힘들겠죠? 아마 교수로 신청하는 게 더 현실적일걸요?” 사람은 모두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했고 강미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농담을 던지자 마음속에서 일었던 불편한 감정도 빠르게 사라졌다. “너무 과찬이네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르칠 수 있는 게 너무 많죠! 믿거나 말거나, 당신이 대학에서 명예 교수로 이름을 올리면 학교 측에서 구걸할걸요? 심지어 일부 명문 학교에서는 자원을 동원해서라도 당신을 끌어들이려고 할 거예요!” 강미영은 결국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지금 그녀는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담 식의 아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온화한 성격과 안정된 감정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가 지금 그녀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지만 그녀는 차갑게 선을 긋기 힘들었다. 만약 그의 호감이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으면 차라리 마음을 조금 열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젠 모두 어른이고 문제 될 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대부분의 인생을 전체를 배려하며 살아왔으니 이제 한 번은 자신을 위해 이기적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왜요?” 소지석은 그녀의 침묵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물었다. 강미영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은 맑고 부드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긴장된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잠시 흔들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당신은 제 후배도 아닌데 왜 아직도 이렇게 저를 무서워해요?” 소지석은 본능적으로 반박했다. “그런가요?” 강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을 주었다. “그래요. 이제 더 이상 후배가 아닌 걸 깨닫지 못한 거죠?” 소지석은 고개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53화

    강미영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그동안 이 가족의 연기력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드라마를 그녀 앞에서 너무 서툴게 펼쳤다. 손님을 보내고 난 뒤 그녀는 꼭 그들에게 제대로 한 번 교육을 시켜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팔꿈치를 밖으로 굽히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정원에 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강미영은 본능적으로 일어나 빠르게 통유리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강학도의 검은색 세단이 정원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눈가가 미세하게 떨린 그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결국 이 아빠가 팔꿈치를 밖으로 굽혔고 릴리 그 자식도 그녀에게 떠넘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 아저씨는 릴리 데리러 갔어요?” 갑자기 소지석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강미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노인네는 늘 릴리를 봐줘요.” 소지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게 맞죠.”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소지석이 묵묵히 눈치채지 못한 척하고 있어 강미영은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다시 소파로 돌아가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일단 먹어요. 릴리 그 녀석은 시간 개념이 없어서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좋아요.”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소지석은 계속해서 얕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일에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던 강미영이 지금은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표정에서, 움직임에서, 그리고 말투에서까지 느껴졌다. 예전에 그는 릴리와 함께 강 할아버지라고 불렀었는데 이제는 강 아저씨라고 부른다. 강미영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을 인정한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소지석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고 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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