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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한편, 육시준 역시 갑자기 나타나 계약 결혼이네 한달에 천만 원이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강유리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가 손을 내민 곳은 뒤쪽이었다.

“자료 좀 주실래요?”

어젯밤 차에 남긴 정보에 따라 비서가 이미 강유리의 뒷조사를 완벽히 끝낸 상태.

무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넘기던 육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1000만원은 너무 적지 않나? 적어도 0 하나는 더 붙여야지. 그래야 육씨 집안 사모님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테니까.”

목소리에서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강유리는 0 하나는 더 붙여야 한다는 말에 꽂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이고? 요즘 호스트는 가격 흥정을 이렇게 하나? 하긴, 저 얼굴에 저 분위기에... 부잣집 사모님 한 명 제대로 잡으면 월에 억은 쉽게 받겠어. 하지만...’

“5000만원, 이 정도에서 끝내지. 적당히 해.”

해외에서 매달 임천강에게 용돈 명목을 부쳐준 돈이 겨우 2000만원 남짓, 강유리가 부자인 건 사실이지만 이런 일로 호구 잡힐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이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육시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런데... 5000만이든 1억이든 누가 누구한테 주는 거지?”

“내가 그쪽을 고용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주는 거지.”

이에 육시준은 다시 강유리의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얼핏 얼핏 보이는 요염함이 매력적인 정교한 얼굴, 지금까지 그의 돈에 빠져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던 여자들과는 달리 자신만만함을 넘어 어딘가 고고하기까지 한 눈빛...

‘연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

“좋아.”

잠시 후 얘기를 마친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선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강유리는 우뚝 멈춰서더니 익숙한 롤스로이스에 시선이 꽂힌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강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저 차 주인한테 빚을 좀 진 게 있거든.”

강유리를 보는 육시준의 눈이 또 묘하게 변하고...

비서 역시 상황이 묘하게 변하고 있다 싶지만 육시준의 지시가 없으니 그저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강유리가 핸드백에서 또 메모지를 꺼내 연락처와 이름을 적기 시작한다.

“누군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기회 한번만 더 준다. 오늘 안에 연락 안 오면 난 정말 모르는 일이야.”

이렇게 구시렁댄 강유리는 특별히 스크래치가 난 곳에 포스트잇을 붙인 뒤에야 육시준에게 물었다.

“참, 두 사람은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아, 저희는...”

“택시, 택시 타고 왔어.”

육시준이 비서의 말을 가로채고 사회 생활 백단, 눈치 백단인 비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택시 타고 왔습니다.”

이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던 강유리가 비서에게 말했다.

“아, 그럼 그쪽은 그냥 택시타고 가. 이쪽은 오늘 나랑 혼인신고까지 마쳐야 하니까.”

그 뒤로 1시간 뒤,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강유리는 어젯밤 숙취가 싹 가지는 기분이 들었다.

몇 년간 그녀를 곤혹스럽게 만들던 일을 드디어 해치웠으니까.

‘너무 순조로우니까 꼭 꿈 같네.’

그리고 마침 그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하, 이것들이 뻔뻔하게 먼저 전화를...’

일단 거부를 터치한 강유리는 선글라스를 낀 뒤 고개를 돌렸다.

“어디 살아? 내가 데려다줄게.”

강유리의 질문에 육시준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지금까지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끌려다녀 본 건 처음이라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제대로 해명할 틈도 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모습이 짜증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발랄한 얼굴이 귀엽게 느껴졌다.

‘강유리... 소문과는 완전 딴판인데?’

“저기... 우리 이제 법적으로 부부인데 일단 서로 연락처라도 주고 받아야 하지 않겠어?”

육시준의 말에 멈칫하던 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한 뒤 육시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아, 그리고 아무리 계약 결혼이라지만 별거는 안 돼. 계약 결혼까지 하는 거 보면 그쪽도 나름 보여주기식 관계가 필요한 것 같은데 따로 살면 바로 들통나지 않겠어?”

“그건 나도 인정. 주소 보내줄 테니까 3일 안에 알아서 들어와.”

역시나 자기 할 말만 끝낸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곧이어 롤스로이스가 육시준 앞에 멈춰섰다.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차에 타자마자 조수석에서 머리 하나가 쏙 모습을 드러냈다.

“형, 진짜 결혼한 거야? 오늘 다른 여자랑 선 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런데 혼인신고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 여자가 형 차에 스크래치 냈다는 건 또 뭐고.”

호들갑을 떠는 육경서와 달리 육시준은 여유로운 얼굴로 강유리가 건넨 체크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선 보기로 한 여자가 지각을 했거든. 그런데... 우리 와이프 꽤 재밌는 사람인 것 같아.”

“웩, 오늘 처음 봐놓고 우리 와이프래. 그냥 얼굴 때문에 반한 거 아니고?”

육경서가 백미러로 육시준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뒷좌석에 기댄 그의 얼굴로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차가운 분위기의 이목구비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이해가 안 돼. 형 좋다는 여자가 몇 명인데 벼락결혼이 웬말이야..’

그의 마음을 읽은 건지 육시준이 한 마디 덧붙였다.

“이쁘고 돈도 많은 여자지.”

그리고 그제야 육시준의 손에 들린 체크카드를 발견한 육경서의 눈이 커다래졌다.

“형... 설마 그 여자한테... 스폰...”

“스읍, 손.”

육시준이 자연스레 카드를 빼앗으려는 육경서에게 경고했다.

“형, 미쳤어?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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