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든 강유리는 침대 위라는 것도 잊고 후다닥 뒤로 물러나고 그만 우스운 꼴로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악!”낮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고통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강유리는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려보았다.그리고 미의 신마저도 질투할 것만 같은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하지만 더 이상 잘생긴 얼굴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엔 온통 소안영이 소개해 주려던 사람은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만 가득할 뿐이었다.“너... 도대체 누구야?”이불이 걷히고 육시준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뭐야. 어제 있었던 일 다 까먹은 거야? 이렇게 무책임해도 돼? 여보?”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여보라는 호칭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강유리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려 보지만 휴대폰에서 들리는 소안영의 호들갑 섞인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뭐야! 강유리, 아까 그거 남자 목소리 맞지! 너 귀국한 지 이제 3일째야. 그런데 남자는 어디서 만난 거래? 그리고! 집에까지 들여? 너 정말 미쳤어?”“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강유리는 숙취로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전화를 끊었다.사실 대외적으로 강유리는 클럽 죽순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주량은 그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필름이 끊기기 전, 강유리의 마지막 기억은 서로 결혼 축하한다며 와인잔을 부딪히는 것이었으니...‘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차마 침대 위에 누운 남자의 나체는 쳐다보지 못하고 이불에 감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들여다 보던 강유리의 얼굴이 다시 화끈 달아올랐다.하지만... 잠시 후, 겨우 이성을 되찾은 강유리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뭐지? 느낌이 이상한데?’이어 그녀의 시선이 베이지색 침대 시트로 향하고...아무런 흔적도 없는 시트를 확인한 강유리는 어느새 쑥스러움을 씻어버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육시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공격을 날리기도 전, 육시준
고개를 젓던 강유리가 다시 한번 자세히 육시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직업이 뭐야?”“비즈니스, 사업가야.”“사업가? 하, 아무리 요즘 경제가 어렵다지만... 부업으로 이런 짓까지 하나?”강유리의 눈이 커다래졌다.이에 육시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 몰라?”‘하, 무슨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말도 안 되는 변명에 강유리가 추궁을 이어가려던 그때, 강유리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는 확 어두워진 얼굴로 안방을 나섰다.어제 계약서를 체결하고 나서 강유리는 바로 전부터 함께 일하던 비서에게 엔터회사 운영 상황을 알아보라고 분부했다.컴퓨터 메일에 도착한 데이터를 확인하던 그때, 문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유강그룹은 현재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다 썩어문드러진 거대한 나무나 다름없습니다. 대외적으론 흑자를 내고 주가도 오르고 있지만... 그룹 내부에 부패, 횡령 문제가 심각합니다. 흑자 역시 장부 조작이 의심되는 상황이고요.”문자를 확인한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그녀는 올해 안에 엔터회사 매출을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성홍주의 조건을 떠올렸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2배는커녕 1년 안에 구멍난 곳을 메꾸는 것도 벅찰 것만 같았다.“지금 엔터업계는 레드오션인 거 몰라. 게다가 한국 엔터시장은 로열 엔터가 꽉 잡고 있어. 유강엔터가 설 자리가 있을까? 애물단지만 떠안은 것 같은데.”이때 그녀의 정수리 위에서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강유리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녀의 컴퓨터 모니터 불빛에 더 오묘하게 반짝이는 육시준의 얼굴을 휙 훑은 강유리가 물었다.“그럼 스타인은?”“뭐 나름 그럴 듯한 모양은 내고 있달까?”육시준이 눈썹을 씰룩였다.“유강 엔터를 맡으면 스타인을 앞설 수 있을 것 같아?”비록 사람들은 신생 엔터회사인 스타인 엔터가 곧 로열 엔터와 견줄 수
유강엔터 본사 건물.직원들 모두 오늘 새로운 대표가 온다는 것도 그 대표가 회장 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평소 조금 붐비게 느껴지던 사무실이 오늘은 유난히 텅 빈 상태였다.직원들 중 3분의 1이 월차를 낸데다 남은 사람들도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꼴이 아무리 봐도 제대로 돌아가는 회사는 아닌 모습이다.오후 세 시쯤, 화려한 스포츠카가 회사 주차장에 들어서고 깔끔한 정장 차림의 강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단아하면서도 몸매 라인을 잘 살려주는 깔끔한 의상에 각선미를 부각시켜주는 아찔한 하이힐까지.전형적인 커리어우먼 그 자체였다.강유리가 무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 뒤를 따르는 비서가 회사 상황을 다급하게 브리핑하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던 그때, 초조한 표정의 누군가가 부랴부랴 달려오더니 바로 허리를 굽실거렸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직접 마중 나왔어야 하는 건데 제가 오늘 좀 바빠서요...”‘하, 텃세를 부리시겠다? 일개 비서 주제에 일 때문에 회사 대표 마중을 깜박했다는 게 말이 돼?’“아니요, 괜찮습니다.”한편, 착한 얼굴로 싱긋 웃는 강유리를 바라보던 장규진 비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역시, 원 대표 말대로 사업의 사자도 모르면서 대표 소리 한번 듣고 싶어서 계열사 하나 달라고 한 거구만. 안 봐도 비디오지 뭐. 그럼 오늘 제대로 기를 눌러줘야겠어.’“원 대표님은 오늘 몸이 불편하셔서 회사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인수인계는 다음 주에나 가능할 것 같으니... 이번 주는 그저 회사 직원들 얼굴이나 기억해 두시죠.”장 비서의 말에 로비에 모인 직원들 모두 숨을 죽였다.부탁이 아니라 명백한 명령, 새로 온 대표에 대한 텃세 그 자체였으니까.‘아이고, 불쌍한 아가씨. 앞으로 이 회사에서 제대로 날개나 펴실 수 있을까...’하지만 장 비서의 말에 강유리는 언짢은 표정도, 겁 먹은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계속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걷던 강유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방금 전까지 안하무인이던 장 비서의 눈동자가 공포로 급격히 흔들렸다.‘뭐야.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계집애인 줄 알았는데...’방금 전, 하석훈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그가 한 말이 단순히 장 비서 한 명에게 한 말이 아닌 유강엔터 직원 모두에게 날리는 경고장이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 기점을 시작으로 유강엔터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단 몇 시간만에 절반이 넘는 직원이 해고당하고 여유 넘치던 복도는 해고된 직원들의 애원, 슬픔 그리고 분노의 소리로 가득했다.대한민국 대기업인 유강그룹, 그리고 그 계열사인 유강엔터의 중간 관리직으로서 다들 나름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고 자신의 직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이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길거리를 떠도는 양아치처럼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다.잠시 후 회사에 도착한 육경서는 경비원들에게 끌려나가는 직원들을 보며 입을 떡 버릴 수밖에 없었다.아무런 인맥도, 사업 경험도 없는 강유리라면 원로 직원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부장급 직원들이 제발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다 경비원들에게 끌려나가는 꼴이라니.‘재밌다...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휴대폰을 꺼낸 육경서는 빠르게 이 광경을 영상으로 남긴 뒤 육시준에게 전송했다.“우리 형수님 보통 분이 아니시네. 형이 왜 형수님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겠어. 잔인한 면이 아주 많이 닮았어.”한편 LK그룹 대표 사무실.동생이 보낸 영상과 문자를 확인한 육시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회사의 기강만 갉아먹던 충치 같은 이사들, 그리고 유강그룹의 친인척들이 분노로 인해 벌개진 얼굴로 회사로 쳐들어가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을 막는 경비원들...“사모님께서 첫 출근 날부터 부장급 이상 관리직들 그리고 이사들 중 절반을 해고하셨다고 합니다. 유강그룹에서 엔터회사는 아예 정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고 있습니다.”역시 옆에서 영상을 확인한 임강준이 한마디 덧붙였다.워낙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던 강유라인지라 이번 정리해고
한편, 회사로 들어선 육경서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회사 꼴이 이게 뭐야. 그리고 이 코딱지만한 사무실은 또 뭐고...;“육시준.”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 건 바로 강유리의 목소리였다.그리고 평소와 다른 강유리의 모습에 대외적으로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익숙한 육경서마저 어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깔끔한 셔츠에 하이웨스트 스커트, 하얀 다리 라인을 잘 살려주는 하이힐, 만화에서 나올 법한 직장룩의 정석에 꼭 들어맞는 분위기까지.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침착한 표정이었다.‘유강엔터... 어쩌면 형수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겠어.’“아, 강유리 대표님. 육경서라고 합니다.”선글라스를 벗은 육경서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눈앞에서 톱 연예인을 보면 신기해서라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만 한데...한참을 팔짱을 낀 채 그를 훑어보던 강유리는 먼저 내민 육경서의 손이 불쌍하게 느껴질 때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제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시죠.”“네.”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방금 전까지 조용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뭐야! 정말 육경서잖아. 정말 우리가 육경서 전속 계약 따내는 거야?”“강유리 대표라고 했나? 보기보다 대단하잖아.”“와, 육경서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한편, 워낙 건물 방음이 별로인 탓에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고 육경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엔터회사면 연예인들 얼굴 실컷 봤을 텐데 왜 저렇게 호들갑이지? 우리 형수님... 창피하겠다.’하지만 여전히 침착한 표정의 강유리가 싱긋 웃어 보였다.“귀한 분께서 누추한 곳에 오셨네요.”상대를 띄워주는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아, 아닙니다. 강유리 대표님이 새 대표로 부임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목이 타네...’말을 마친 육경서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임강준의 말에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우리 회사에 필요한 건 간판 연예인이잖아요? 저쪽에서 먼저 찾아온 이상 저희 쪽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죠.”한편, 성신영 역시 친구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실크썬에 도착했다. 오늘은 특별히 남자친구인 임천강도 함께였다.강유리 때문에 그 동안 비밀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이제 관계도 밝혔겠다 그 동안 참았던 자랑을 실컷 뽐낼 생각이었다.하지만 예약한 룸 앞에 도착한 성신영이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고 멈춰선다.“왜 그래?”임천강의 질문에 성신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언니를 본 것 같아서.”“하, 잘못 본 거겠지. 지금 유강엔터 그 난장판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이런 데 놀러올 새가 있겠어?”‘하긴...’임천강의 말에 설득당한 성신영이 고개를 끄덕이곤 임천강에게 기대 애교를 부렸다.“오빠, 정말 언니 도와 안 줄 거야? 그날은... 언니가 많이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이만 화 풀어.”그녀의 애교에 사르르 녹은 임천강 역시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으이그, 우리 신영이 이렇게 착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강유리 걔가 너한테 그렇게까지 했는데 아직도 걔 편이야?”“그래도 언니잖아. 언니 힘든 거 어떻게 두고 보고만 있어.”“걱정하지 마. 걔가 우리 사진 찍어간 거 까먹었어? 궁지에 몰리면 그 사진으로 딜 들어올 거야.”임천강의 말에 성신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날 밤 강유리가 찍어간 나체 사진이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린 게 벌써 며칠째. 이제 겨우 데뷔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런 사진이 유출되면 연예계 생활은 물론이고 더 이상 얼굴 들고 거리를 다닐 수나 있을까 싶었다.그래서 오피스텔로 찾아갔었지만... 비밀번호도 바꿔버린 탓에 허탕을 친 것도 모자라 경비원에게 쫓겨나기까지 했었다.아빠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임천강이 먼저 이렇게 말해 주니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오늘따라 더 멋지게 보였다.“오빠, 고마워. 역시 나 생각해 보는 건 오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갑작스러운 협박에 강유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얼른 가봐. 너랑 나 중에 누가 먼저 망하게 될지 두고 보면 알겠지.”현재 육경서는 유강 엔터의 간판이자 유일하게 내놓을만한 연예인.성신영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육경서를 끌어내리려 한다?그녀가 가만히 있는다 해도 회사 이사들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이때,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메시지가 연속 몇 개 도착했다.‘임천강?’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가 성신영을 힐끗 바라보았다. 임천강이 먼저 연락을 해온 건 눈치도 채지 못한 채 그저 육경서가 그녀와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아빠가 유강그룹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이제 알겠지? 그러니까 그 사진들 어서 지워! 안 그럼 아빠한테 당장 얘기할 거야! 언니가 유강그룹 돈은 단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게 할 거라고.”“마음대로 해.”시큰둥하게 대답한 강유리가 메시지를 클릭했다.[육경서랑 전속 계약 맺었다면서?][육경서는 로열 엔터 소속 아니었어? 계약 기간도 남았는데 갑자기 왜 소속사를 옮긴 건데?][강유리, 너 도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야.][지금 시간 있어? 실크썬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 얘기 좀 하자]연속으로 몇 개나 보낸 메시지에서 임천강의 다급함이 그대로 느껴졌다.[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어떡해...]귓가에는 여전히 떽떽거리는 성신영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강유리는 신경 쓰지 않고 메시지를 전송했다.[실크썬 문앞에 둔 장미꽃 예쁘더라.]“강유리,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한참을 혼자 떠들던 성신영이 강유리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지만 강유리는 민첩하게 휴대폰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아니. 다시 한번 얘기해 줄래?”“뭐?”성신영의 커다란 눈이 강유리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다.‘강유리...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변한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반응도 안 해주니까 나만 바보 된 거 같잖아.’주먹을 꽉 쥔 성신
품에 안기 조차 힘든 장미 꽃다발을 바라보던 강유리의 입가에 살짝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역시 실망시키지 않네.’이 모든 걸 예견하고 있었던 듯 담담한 강유리와 달리 성신영의 눈은 어느새 더 커다래지고 말았다.살짝 어두운 룸의 조명과 가슴이 터질 듯한 음악소리에 강유리는 정말 이게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천강 오빠... 회사 갔다면서... 어떻게 여기에...’한편 임천강의 눈에는 오직 강유리 한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임천강 본인도 눈은 달려있으니 강유리가 예쁘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빛나는 여자였던가?이 공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녀에게 쏠린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가 똑똑하기까지 하다니...“시간도 늦었는데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까? 마침 너한테 할 말도 있고.”며칠 전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강유리를 모욕하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 사귈 때도 이렇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봐준 적이 있었던가?잔뜩 일그러진 성신영을 힐끗 바라보던 강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러든가. 그런데 네 여자친구 두고 가도 괜찮겠어?”강유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임천강이 그제야 성신영을 발견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네가 어떻게 여기에...?”“어떻게... 어떻게 자기 여동생 남자친구한테 꼬리를 칠 수 있어!”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치던 성신영이 앞에 놓인 술을 강유리를 향해 퍼부었다.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이 상황을 육시준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있던 육경서가 벌떡 일어섰다.“조심해!”하지만 먼저 움직인 건 바로 임천강, 빨간 와인이 강유리 앞에 막아선 임천강의 셔츠를 물들이며 핏빛 꽃무늬를 만들기 시작했다.“성신영! 너 미쳤어? 어쨌든 유리는 네 언니야. 언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지금 나한테 소리친 거야? 저딴 여자 때문에 나한테 화낸 거냐고. 저번엔 분명...”“그만!”눈시울을 붉히는 성신영의 모습에도 임천강은 흔들리지 않았다.“너야말로 네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