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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한편, 회사로 들어선 육경서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회사 꼴이 이게 뭐야. 그리고 이 코딱지만한 사무실은 또 뭐고...;

“육시준.”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 건 바로 강유리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강유리의 모습에 대외적으로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익숙한 육경서마저 어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깔끔한 셔츠에 하이웨스트 스커트, 하얀 다리 라인을 잘 살려주는 하이힐, 만화에서 나올 법한 직장룩의 정석에 꼭 들어맞는 분위기까지.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침착한 표정이었다.

‘유강엔터... 어쩌면 형수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겠어.’

“아, 강유리 대표님. 육경서라고 합니다.”

선글라스를 벗은 육경서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

눈앞에서 톱 연예인을 보면 신기해서라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만 한데...

한참을 팔짱을 낀 채 그를 훑어보던 강유리는 먼저 내민 육경서의 손이 불쌍하게 느껴질 때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시죠.”

“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방금 전까지 조용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뭐야! 정말 육경서잖아. 정말 우리가 육경서 전속 계약 따내는 거야?”

“강유리 대표라고 했나? 보기보다 대단하잖아.”

“와, 육경서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

한편, 워낙 건물 방음이 별로인 탓에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고 육경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엔터회사면 연예인들 얼굴 실컷 봤을 텐데 왜 저렇게 호들갑이지? 우리 형수님... 창피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침착한 표정의 강유리가 싱긋 웃어 보였다.

“귀한 분께서 누추한 곳에 오셨네요.”

상대를 띄워주는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아, 아닙니다. 강유리 대표님이 새 대표로 부임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목이 타네...’

말을 마친 육경서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글쎄요. 대외적인 제 이미지가 그 정도로 좋진 않을 텐데요.

“풉!”

강유리의 무덤덤한 셀프 디스에 육경서는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전부 내뿜고 만다.

한참을 콜록대다 겨우 진정한 육경서가 대답했다.

“연예인으로 일하면서 배운 게 소문만으로 직접 만나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솔직한 분이실 줄은 몰랐네요.”

주도권을 빼앗은 강유리가 소파에 살짝 기댔다.

“물론이죠. 무릇 사업이란 성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여기까지 찾아오셨다는 건 아마 저희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싶다는 뜻이겠죠? 저희 유강엔터에게 있어 이건 분명 절호의 기회입니다. 계약을 체결하면 앞으로 회사의 모든 업무는 육경서 씨를 위주로 돌아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전에 육경서 씨의 목적이 뭔지는 알아야겠네요.”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데다 국내 최고의 대형 기획사 소속이던 연예인이 곧 파산 직전인 소형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으려 한다라...

육경서가 정말 바보가 아니라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단도직입적인 그녀의 말에 육경서 역시 눈을 반짝였다.

“대표님의 진솔한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러니 저도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이에 강유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가 곧 로열 엔터와 계약이 끝나거든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기획사를 차리려고 했는데...”

육경서는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를 줄줄 읊기 시작했다.

대충 형제처럼 아끼던 매니저에게 배신을 당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는 내용.

꽤 진부하고도 긴 이야기에 강유리는 하품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아, 정말 안타깝네요. 그래서요? 저희 회사와 계약하는 게 육경서 씨 연예계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가장 친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누굴 믿어야 할지 회의감이 든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예 새로운 파트너와 협력해 보려고요. 아, 그전에 제 조건을 말씀드리면 계약금 대신 유강엔터의 지분 20%를 주시죠. 앞으로 제 스케줄은 물론 회사 실무에도 제가 일정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게요.”

유강엔터는 간판만 달아놓은 빈 껍데기에 가까운 회사, 이쪽에서는 육경서의 존재가 간절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대담한 제안을 할 수 있었다.

“10%, 그 이상은 안 됩니다. 10%라도 대주주니 회사 중요 사안에 대해선 충분히 결정권이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육경서 씨의 실적에 따라 지분율은 더 늘어날 겁니다.”

어차피 유강엔터 지분을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겠다 육경서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예감이 좋네요. 앞으로 하는 일마다 잘 풀릴 것만 같아요.”

육경서라는 톱 연예인의 가입을 맞이해 회사는 성대한 환영파티를 열었다.

파티 장소는 실크썬.

솔직히 회식이니 파티니 그런 건 질색이었지만 직접 섭외한 연예인 환영파티엔 무조건 참석해야 하지 않겠냐는 직원들의 말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안 와도 되겠다.]

[뭐야? 차 막혀서 잠깐 늦은 건데 그새 다른 사람 섭외한 거야? 자기야, 이럼 나 너무 불안해. 누구야. 내 자치를 차지한 애가.]

[육경서.]

[하, 그래. 나쁘지 않네. 그런데 육경서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상대의 질문에 강유리는 무시를 선택했다.

육경서, 유일한 접점이라면 얼렁뚱땅 찾은 남편의 성도 육씨라는 것.

회식장소로 향하는 길.

하석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육경서 씨가 하는 말을 믿으십니까?”

“아니. 솔직히 매니저한테 배신 한번 당했다고 우리처럼 구멍가게 같은 회사로 들어온다는 게 말이 돼?”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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