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갑작스러운 협박에 강유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얼른 가봐. 너랑 나 중에 누가 먼저 망하게 될지 두고 보면 알겠지.”현재 육경서는 유강 엔터의 간판이자 유일하게 내놓을만한 연예인.성신영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육경서를 끌어내리려 한다?그녀가 가만히 있는다 해도 회사 이사들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이때,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메시지가 연속 몇 개 도착했다.‘임천강?’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가 성신영을 힐끗 바라보았다. 임천강이 먼저 연락을 해온 건 눈치도 채지 못한 채 그저 육경서가 그녀와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아빠가 유강그룹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이제 알겠지? 그러니까 그 사진들 어서 지워! 안 그럼 아빠한테 당장 얘기할 거야! 언니가 유강그룹 돈은 단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게 할 거라고.”“마음대로 해.”시큰둥하게 대답한 강유리가 메시지를 클릭했다.[육경서랑 전속 계약 맺었다면서?][육경서는 로열 엔터 소속 아니었어? 계약 기간도 남았는데 갑자기 왜 소속사를 옮긴 건데?][강유리, 너 도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야.][지금 시간 있어? 실크썬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 얘기 좀 하자]연속으로 몇 개나 보낸 메시지에서 임천강의 다급함이 그대로 느껴졌다.[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어떡해...]귓가에는 여전히 떽떽거리는 성신영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강유리는 신경 쓰지 않고 메시지를 전송했다.[실크썬 문앞에 둔 장미꽃 예쁘더라.]“강유리,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한참을 혼자 떠들던 성신영이 강유리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지만 강유리는 민첩하게 휴대폰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아니. 다시 한번 얘기해 줄래?”“뭐?”성신영의 커다란 눈이 강유리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다.‘강유리...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변한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반응도 안 해주니까 나만 바보 된 거 같잖아.’주먹을 꽉 쥔 성신
품에 안기 조차 힘든 장미 꽃다발을 바라보던 강유리의 입가에 살짝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역시 실망시키지 않네.’이 모든 걸 예견하고 있었던 듯 담담한 강유리와 달리 성신영의 눈은 어느새 더 커다래지고 말았다.살짝 어두운 룸의 조명과 가슴이 터질 듯한 음악소리에 강유리는 정말 이게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천강 오빠... 회사 갔다면서... 어떻게 여기에...’한편 임천강의 눈에는 오직 강유리 한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임천강 본인도 눈은 달려있으니 강유리가 예쁘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빛나는 여자였던가?이 공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녀에게 쏠린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가 똑똑하기까지 하다니...“시간도 늦었는데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까? 마침 너한테 할 말도 있고.”며칠 전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강유리를 모욕하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 사귈 때도 이렇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봐준 적이 있었던가?잔뜩 일그러진 성신영을 힐끗 바라보던 강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러든가. 그런데 네 여자친구 두고 가도 괜찮겠어?”강유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임천강이 그제야 성신영을 발견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네가 어떻게 여기에...?”“어떻게... 어떻게 자기 여동생 남자친구한테 꼬리를 칠 수 있어!”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치던 성신영이 앞에 놓인 술을 강유리를 향해 퍼부었다.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이 상황을 육시준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있던 육경서가 벌떡 일어섰다.“조심해!”하지만 먼저 움직인 건 바로 임천강, 빨간 와인이 강유리 앞에 막아선 임천강의 셔츠를 물들이며 핏빛 꽃무늬를 만들기 시작했다.“성신영! 너 미쳤어? 어쨌든 유리는 네 언니야. 언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지금 나한테 소리친 거야? 저딴 여자 때문에 나한테 화낸 거냐고. 저번엔 분명...”“그만!”눈시울을 붉히는 성신영의 모습에도 임천강은 흔들리지 않았다.“너야말로 네 언
“퍽!”게다가 빈 손도 아니고 술병까지 들고 나타난 육경서는 다짜고짜 임천강의 머리를 내리쳤다.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임천강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그 모습에 성신영은 물론 강유리마저 벙찌고 말았다.저 멍청한 남녀가 서로 물어뜯는 꼴을 보려 했는데 육경서가 갑자기 끼어든 바람에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그때, 손님들 중 한 명이 신고를 한 건지 경찰들이 도착하고...오늘 오후 강유리와 가장 크게 부딪혔던 여한영 이사가 육경서를 보물이라도 되는 듯 꽁꽁 싸맨 뒤 뒤로 잡아당겼다.“다른 사람 연애에 왜 끼어드십니까?”그리곤 신고를 받고 다가온 경찰을 향해 바로 고자질을 시작했다.“저기 저분들 저희가 아무리 말려도 도저히 듣질 않으시네요. 바 영업에도 방해될 것 같고 일단 서로 연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하, 저 자식이 정말... 소속 연예인을 챙기겠다고 대표를 버려?’한편, 뒤로 물러선 채 멍하니 서 있던 육경서가 다시 다가가려 했지만...“저기...”“경서 씨 마음은 이해해요. 좋은 마음에서,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남녀사이 갈등은 당사자들이 해결하는 게 맞아요. 제3자인 우리는 빠집시다.”하지만 그의 말을 잘라버린 여한영이 끊임없이 육경서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한편, 생각지도 못하게 얻어맞아 여전히 혼이 반쯤 나간 얼굴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임천강, 성신영 커플과 달리 강유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화장을 고치고 있는 모습이다.“네, 제가 때린 거 맞습니다. 경찰서로 가시죠.”세 사람이 경찰에 연행된 뒤에야 여한영 이사는 육경서를 풀어주었다.아직도 상황파악 중인 듯 멍한 표정을 짓던 육경서가 짜증스런 얼굴로 술병을 차버렸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럼 두 사람이서 저희 대표님 괴롭히는 걸 보고만 있어요?”“경서 씨. 경서 씨는 공인이에요. 경찰과 엮인 걸 기자들이 눈치라도 채봐요. 연예인들은 이미지가 생명인 거 몰라요?”하지만 여한영의 해명에도 육경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톡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육경서에게서 메시지가 잔뜩 도착해 있었다.[와, 파티에 형수님 전 남자친구랑 그 전 남자친구의 현 여자친구까지 왔어. 대박, 나 너무 재밌어, 어떡하지?][하, 저 자식 우리 형수님한테 아직 미련 남은 것 같은데? 그런데 자기 여친이 여기 온 건 몰랐나 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미지]전 남자친구와 전 남자친구의 현 여자친구? 육시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이미지를 클릭한다.소파에 요염하게 기대어 있는 강유리, 하얀 손으로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사진으로 봐도 너무나 매력적이었다.그리고 장미꽃다발을 든 채 멍하니 강유리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여자...대충 상황 파악을 끝낸 육시준이 말했다.“어느 경찰서인데?”통화를 마치고 주소를 확인한 육시준은 바로 그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여전히 조용하지만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무거워진 분위기에 기사는 물론 임강준 역시 숨소리를 내는 것마저 조심스러워졌다.조수석에 앉은 임강준이 몰래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역시나...[얼마전 귀국한 재벌 2세, 이복동생과 삼각관계로 엮여?]자극적인 타이틀의 기사가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아이쿠, 대표님이 아시면 큰일나겠네.’임강준은 바로 화면을 캡처하여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당장 기사 내려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한편, 경찰서.강유리에게 다가온 건 경찰이 아니라 임천강이었다.어느새 옷매무새를 다시 깔끔하게 정리한 임천강이 강유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신영이는 검사 받으러 병원에 갔어. 난 뭐 대충 합의하기로 했고...”‘그래서 뭐 어쩌라고?’그를 흘겨보던 강유리가 고개를 돌렸다.“아버님, 어머님 두 분 모두 신영이한테로 가셨어. 보호자가 한 명이라도 와야 풀려날 텐데.”“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한참을 침묵하던 임천강이 의자를 끌어와 그녀의 맞은 편에 털썩 주저앉았다.“너랑 육경서 무슨 사이야? 그 남
성홍주를 견제하느라 대외적으로는 스타인 엔터와 아무런 관련 없는 듯 보이게 했지만 임천강은 어디까지나 바지사장에 불과했고 회사 실무에 대한 결정은 지금까지 강유리가 내려왔다.바지사장을 임천강으로 내세웠던 이유도 단 한 가지, 남자친구라서, 임천강이라면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였다.하지만 그 신뢰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다는 걸 이 뻔뻔한 자식은 알고 있을까?이를 빠득빠득 갈던 강유리는 생각했다.‘경찰서에서 때리는 건 좀 심했나?’‘아니지. 어차피 오늘 안에 나갈 수도 없겠다. 그냥 성격대로 엎어버리고 며칠 구치소로 들어가?’강유리가 벌떡 일어서자 잔뜩 겁 먹은 임천강 역시 뒤로 물러섰다.“뭐... 뭐 하는 짓이야! 지금 밖에 경찰들 쫙 깔렸어. 내 몸에 손끝 하나 대봐. 끝까지 고소해서 너 파산하게 만들 거니까.”하지만 임천강의 협박 따위에 겁 먹을 강유리가 아니었다.이미 분노에 사로잡힌 그 눈동자를 바라보던 임천강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뭐야? 강유리...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이었나?’이 상황을 어떻게 무마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성홍주의 개인 변호사가 들어왔다.“강유리 씨, 성신영 씨와 임천강 씨는 합의를 원하십니다. 이건 합의 조건이니 확인해 보세요.”그를 쳐다도 보지 않는 강유리를 힐끗 바라보던 변호사가 파일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사인펜을 건넸다.“대표님께서 설득에 힘써주셨고 임천강 씨와 성신영 씨 역시 너그럽게 용서해 주셔서 이 정도로 끝나는 겁니다. 그러게 왜 사람을 때리셨어요?”하지만 강유리가 캐치한 포인트는 다른 곳에 있었다.“아빠가 중재를 했다고요?”“네.”그제야 합의서를 확인한 강유리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었다.방금 전 임천강이 말한 것처럼 육경서 전속 계약을 양보하고 피해보상으로는 자경원 아파트를 넘기는 것이 바로 합의 조건이었다.‘정말 욕심을 숨길 생각이 없으시구만.’“유리야, 사람 마음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란 거 너도 알
딱 봐도 고급스러운 원단의 정장을 입은 우아한 분위기의 육시준이 차가운 눈으로 임천강과 변호사를 훑어보았다.“언제부터 유강그룹 입김이 그렇게 셌지? 경찰까지 뒤흔들 정도로 말이야.”들리는 목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을 문쪽으로 돌린 강유리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어? 호스트. 아니지... 내 남편이잖아!’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선 강유리가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어떻게 왔어?”일단 다친 데는 없는지 강유리의 얼굴, 몸 구석구석을 훑어본 육시준이 대답했다.“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삼각관계인지 궁금해서.”그의 말에 뒤를 지키던 임강준이 고개를 숙였다.‘대표님이 보시기 전에 기사 내리려고 했는데... 그건 또 언제 보셨대. 평소 가십 뉴스는 보지도 않으셨으면서...’“삼각관계는 무슨. 내가 2대 1로 싸웠고 이겼어. 그게 끝이야.”강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런 것 같네.”임천강의 얼굴에 생긴 멍을 힐끗 바라보던 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갑자기 나타난 낯선 남자의 기분 나쁜 눈빛에 임천강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강한 포스에 기가 눌려 찍 소리도 하지 못하던 그때 변호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실례지만 누구신지...”“강유리 씨 남편되는 사람입니다.”쿠궁!육시준의 대답에 임천강은 강유리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지분 때문에 그냥 대충 혼인신고만 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경찰서까지 찾아온 걸 보면 완전 비즈니스는 아닌 거잖아. 게다가 저 눈빛하며 입은 옷까지... 딱 봐도 평범한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 강유리 너 진짜...’“강유리, 너 도대체 나 몰래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하, 몰래 추잡한 짓 하고 다닌 게 누군데.’강유리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고 육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합의 보는 걸로 하죠. 나머지는 저희 측 변호사가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럼 이제 가봐도 되겠습니까?”하지만 육시준의 대화 상대는 임천강과 그 변호사가 아닌 공손한 태도로 뒤에 서
“강유리 씨, 말 조심하십시오!”“어머, 어머. 이것 보세요. 아까는 이것보다 훨씬 더 무섭게 굴었다니까요. 못 믿으시겠으면 당장 CCTV 영상 확인해 보시던가요!”강유리가 잔뜩 겁 먹은 얼굴로 변호사를 가리켰다.방금 전까지 당당한 커리어우먼 같은 이미지였는데 갑자기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듯한 눈빛이라니.오스카 여우주연상 뺨치는 메소드 연기에 경찰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한편, 서장은 육시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LK그룹 육시준 대표가 경찰서에 등장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2차 출근을 한 것도 언짢은데 육시준 대표의 와이프까지 엮여있다니...“금액이 지나치게 큰 건 사실입니다. CCTV 영상 확인해 보고 정말 협박에 가까운 언행이 있었다면 공갈 혐의는 충분합니다.”합의서 내용을 확인한 서장이 다시 조심스럽게 육시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어떻게 생각하십니까?”“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구속 영장도 발부될 건가요? 협박범이 밖에서 돌아다닌다면 제 와이프가 많이 무서워할 것 같아서요.”“아, 물론입니다.”육시준과 경찰 서장의 몇 마디 말로 구치소에 갇히는 사람이 강유리에서 임천강으로 바뀌어버리자 참다 못한 임천강이 벌떡 일어섰다.“무슨 근거로 날 구속해요. 난 피해자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유강그룹 예비 사위예요. 날 구속하면 유강그룹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하지만 경찰서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반박했다.“저희 경찰의 수사는 재벌의 입김 따위로 방해받지 않습니다. 법 앞에서는 그게 누구든 평등한 법이에요. 어서 취조실로 연행해.”“알겠습니다.”두 형사의 손에 끌려 취조실로 향하는 변호사는 도대체 왜 갑자기 경찰서장이 나타나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겨우 이 정도 사건에 경찰서장이 나서? 말이 안 되잖아...’하지만 다음 순간, 취조실 밖에 서 있는 임강준을 발견한 변호사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더니 임천강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강유리 씨 남편...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아십니까?”한편, 마른 하
그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강유리는 하고 싶었던 질문을 다시 삼켜야 했다.깊은 밤, 차 안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강유리는 두리번거리며 차의 내부 구조를 관찰했다. 그녀의 차와 아주 흡사했는데 차창으로 고개를 돌리자 준수한 남자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육시준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강유리는 상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왜 날 그렇게 보지?”육시준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잠시 머물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누가 먼저 시작했어?”강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되물었다.“알면서 왜 물어?”그녀가 사람 머리를 책상에 박아 놓고 때렸다는 걸 알면서 이런 질문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CCTV는 완전하지 않아. 누군가 일부러 편집한 것 같아.”강유리는 눈을 깜빡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유강그룹 그 늙은이들이 육경서를 위한답시고 참 많은 걸 신경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남자의 깊고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를 마주보자 강유리는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났다.“넌 나 육시준의 아내야… 그러니까 다른 남자랑 자꾸 엮이지 마….”어젯밤 술 취한 그가 그녀를 안고 했던 말이었다.여자는 예쁜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작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먼저 때렸어.”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내가 일부러 사고 친 거 아니고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왔어.”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계속 말했다.“그 과정에서 이간질을 좀 하긴 했지만… 난 원래 예쁘고 똑똑하고 매력적이잖아? 그 쓰레기가 쉽게 넘어오더라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너랑 결혼하기로 했으니 다른 남자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게!”“바람둥이라면 더더욱 피해야지. 나 사람 보는 안목 있어. 이제 다시는 속지 않을 거야.”그녀는 주먹을 꼭 쥐고 의지를 불태웠다.육시준은 그제야 그녀가 뭘 말하려는지 알아차렸다.‘그러니까 정실 자리는 영원히 변하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