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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작가: 노혜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정신이 든 강유리는 침대 위라는 것도 잊고 후다닥 뒤로 물러나고 그만 우스운 꼴로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악!”

낮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고통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강유리는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려보았다.

그리고 미의 신마저도 질투할 것만 같은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잘생긴 얼굴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엔 온통 소안영이 소개해 주려던 사람은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만 가득할 뿐이었다.

“너... 도대체 누구야?”

이불이 걷히고 육시준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야. 어제 있었던 일 다 까먹은 거야? 이렇게 무책임해도 돼? 여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여보라는 호칭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강유리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려 보지만 휴대폰에서 들리는 소안영의 호들갑 섞인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뭐야! 강유리, 아까 그거 남자 목소리 맞지! 너 귀국한 지 이제 3일째야. 그런데 남자는 어디서 만난 거래? 그리고! 집에까지 들여? 너 정말 미쳤어?”

“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강유리는 숙취로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전화를 끊었다.

사실 대외적으로 강유리는 클럽 죽순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주량은 그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필름이 끊기기 전, 강유리의 마지막 기억은 서로 결혼 축하한다며 와인잔을 부딪히는 것이었으니...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차마 침대 위에 누운 남자의 나체는 쳐다보지 못하고 이불에 감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들여다 보던 강유리의 얼굴이 다시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잠시 후, 겨우 이성을 되찾은 강유리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느낌이 이상한데?’

이어 그녀의 시선이 베이지색 침대 시트로 향하고...

아무런 흔적도 없는 시트를 확인한 강유리는 어느새 쑥스러움을 씻어버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육시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공격을 날리기도 전, 육시준이 불쑥 한 마디 던졌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나 보지?”

‘흥, 아무것도 안 해놓고 잘난 척 하기는...’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확신한 강유리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내가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 여자인데.”

도도한 표정으로 대답한 강유리는 이불을 육시준의 머리 위로 휙 던진 뒤 부랴부랴 방을 나섰다.

욕실에서 물 소리가 들리고 이불을 걷어낸 육시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로 정말 확실해졌네. 저 여자 내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는 거야.’

30분 뒤, 샤워를 마친 강유리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어제 조금만 신중했어도 이름이 다르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소안영이 그녀에게 소개해 준 남자의 이름은 유이한, 하지만 어제 나랑 혼인신고를 한 남자 이름은 육시준이었지...

이때, 안방 욕실 물소리가 멈추고 역시 샤워를 끝낸 채 허리춤에 샤워 타올을 묶은 육시준이 거실로 걸어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의 기운을 타고난 듯한 고고한 자태, 평범한 사람은 눈 조차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포스, 그리고 머리카락 끝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의 움직임 뒤로 보이는 섹시한 몸매.

‘내가 결혼에 눈에 멀었었나 봐. 저 남자... 어딜 봐서 호스트야.’

“그렇게 멋있어?”

이때 귓가에 들리는 육시준의 목소리에 강유리가 흠칫했다.

“그냥 뭐, 봐줄만 하네.”

그리고 강유리가 테이블에 놓인 혼인신고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해명 좀 해보지?”

뜬금없는 질문에 머리를 닦아내던 육시준의 손이 살짝 멈칫했다.

“뭘?”

“내가 결혼하려던 사람은 네가 아니었어. 난 착각할 수 있다고 쳐. 그런데 그쪽은 아니잖아? 갑자기 모르는 여자가 나타나서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케이 한 거야?”

하지만 육시준의 관심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샤워 가운에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올린 그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생얼은 생얼 나름대로 청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직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살짝 달아오른 볼까지 풀어지고 귀여운 겉모습과 달리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로 따져묻는 걸 보니 지금 심각한 분이귀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옷부터 입고 와.”

‘하, 말 돌리는 것 좀 봐. 누가 들으면 내가 헐벗고 있는 줄 알겠어.’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던 강유리는 다리를 꼬느라 샤워 가운이 살짝 올라가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난 걸 발견했다.

“큼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강유리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계속하여 육시준을 노려보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 얘 도대체 뭐야...’

나름 걸크러시, 기 센 여자라고 자부하는 강유리였지만 왠지 육시준 앞에만 서면 담임선생님 앞에 선 고등학생이라도 된 듯 기가 눌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강유리는 변신 수트를 입은 히어로처럼 더 의기양양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팔짱을 낀 채 소파에 앉은 육시준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대로 해명하는 게 좋을 거야.”

역시 깔끔한 홈웨어로 갈아입은 육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헐렁한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쇄골을 본 순간, 강유리의 머릿속에 어젯밤의 단편이 스쳐지났다.

‘허, 어제... 내가 먼저 덮친 것 같은데... 이거 실화냐?’

“그쪽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끌려서 말이야.”

강유리의 질문에 육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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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젓던 강유리가 다시 한번 자세히 육시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직업이 뭐야?”“비즈니스, 사업가야.”“사업가? 하, 아무리 요즘 경제가 어렵다지만... 부업으로 이런 짓까지 하나?”강유리의 눈이 커다래졌다.이에 육시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 몰라?”‘하, 무슨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말도 안 되는 변명에 강유리가 추궁을 이어가려던 그때, 강유리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는 확 어두워진 얼굴로 안방을 나섰다.어제 계약서를 체결하고 나서 강유리는 바로 전부터 함께 일하던 비서에게 엔터회사 운영 상황을 알아보라고 분부했다.컴퓨터 메일에 도착한 데이터를 확인하던 그때, 문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유강그룹은 현재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다 썩어문드러진 거대한 나무나 다름없습니다. 대외적으론 흑자를 내고 주가도 오르고 있지만... 그룹 내부에 부패, 횡령 문제가 심각합니다. 흑자 역시 장부 조작이 의심되는 상황이고요.”문자를 확인한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그녀는 올해 안에 엔터회사 매출을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성홍주의 조건을 떠올렸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2배는커녕 1년 안에 구멍난 곳을 메꾸는 것도 벅찰 것만 같았다.“지금 엔터업계는 레드오션인 거 몰라. 게다가 한국 엔터시장은 로열 엔터가 꽉 잡고 있어. 유강엔터가 설 자리가 있을까? 애물단지만 떠안은 것 같은데.”이때 그녀의 정수리 위에서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강유리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녀의 컴퓨터 모니터 불빛에 더 오묘하게 반짝이는 육시준의 얼굴을 휙 훑은 강유리가 물었다.“그럼 스타인은?”“뭐 나름 그럴 듯한 모양은 내고 있달까?”육시준이 눈썹을 씰룩였다.“유강 엔터를 맡으면 스타인을 앞설 수 있을 것 같아?”비록 사람들은 신생 엔터회사인 스타인 엔터가 곧 로열 엔터와 견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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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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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회사로 들어선 육경서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회사 꼴이 이게 뭐야. 그리고 이 코딱지만한 사무실은 또 뭐고...;“육시준.”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 건 바로 강유리의 목소리였다.그리고 평소와 다른 강유리의 모습에 대외적으로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익숙한 육경서마저 어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깔끔한 셔츠에 하이웨스트 스커트, 하얀 다리 라인을 잘 살려주는 하이힐, 만화에서 나올 법한 직장룩의 정석에 꼭 들어맞는 분위기까지.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는 침착한 표정이었다.‘유강엔터... 어쩌면 형수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도 있겠어.’“아, 강유리 대표님. 육경서라고 합니다.”선글라스를 벗은 육경서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눈앞에서 톱 연예인을 보면 신기해서라도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만 한데...한참을 팔짱을 낀 채 그를 훑어보던 강유리는 먼저 내민 육경서의 손이 불쌍하게 느껴질 때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제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시죠.”“네.”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방금 전까지 조용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뭐야! 정말 육경서잖아. 정말 우리가 육경서 전속 계약 따내는 거야?”“강유리 대표라고 했나? 보기보다 대단하잖아.”“와, 육경서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한편, 워낙 건물 방음이 별로인 탓에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고 육경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엔터회사면 연예인들 얼굴 실컷 봤을 텐데 왜 저렇게 호들갑이지? 우리 형수님... 창피하겠다.’하지만 여전히 침착한 표정의 강유리가 싱긋 웃어 보였다.“귀한 분께서 누추한 곳에 오셨네요.”상대를 띄워주는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아, 아닙니다. 강유리 대표님이 새 대표로 부임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목이 타네...’말을 마친 육경서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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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강준의 말에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우리 회사에 필요한 건 간판 연예인이잖아요? 저쪽에서 먼저 찾아온 이상 저희 쪽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죠.”한편, 성신영 역시 친구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실크썬에 도착했다. 오늘은 특별히 남자친구인 임천강도 함께였다.강유리 때문에 그 동안 비밀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이제 관계도 밝혔겠다 그 동안 참았던 자랑을 실컷 뽐낼 생각이었다.하지만 예약한 룸 앞에 도착한 성신영이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고 멈춰선다.“왜 그래?”임천강의 질문에 성신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언니를 본 것 같아서.”“하, 잘못 본 거겠지. 지금 유강엔터 그 난장판을 수습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이런 데 놀러올 새가 있겠어?”‘하긴...’임천강의 말에 설득당한 성신영이 고개를 끄덕이곤 임천강에게 기대 애교를 부렸다.“오빠, 정말 언니 도와 안 줄 거야? 그날은... 언니가 많이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이만 화 풀어.”그녀의 애교에 사르르 녹은 임천강 역시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으이그, 우리 신영이 이렇게 착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강유리 걔가 너한테 그렇게까지 했는데 아직도 걔 편이야?”“그래도 언니잖아. 언니 힘든 거 어떻게 두고 보고만 있어.”“걱정하지 마. 걔가 우리 사진 찍어간 거 까먹었어? 궁지에 몰리면 그 사진으로 딜 들어올 거야.”임천강의 말에 성신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날 밤 강유리가 찍어간 나체 사진이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린 게 벌써 며칠째. 이제 겨우 데뷔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런 사진이 유출되면 연예계 생활은 물론이고 더 이상 얼굴 들고 거리를 다닐 수나 있을까 싶었다.그래서 오피스텔로 찾아갔었지만... 비밀번호도 바꿔버린 탓에 허탕을 친 것도 모자라 경비원에게 쫓겨나기까지 했었다.아빠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임천강이 먼저 이렇게 말해 주니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오늘따라 더 멋지게 보였다.“오빠, 고마워. 역시 나 생각해 보는 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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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갑작스러운 협박에 강유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얼른 가봐. 너랑 나 중에 누가 먼저 망하게 될지 두고 보면 알겠지.”현재 육경서는 유강 엔터의 간판이자 유일하게 내놓을만한 연예인.성신영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육경서를 끌어내리려 한다?그녀가 가만히 있는다 해도 회사 이사들이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이때,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메시지가 연속 몇 개 도착했다.‘임천강?’발신인을 확인한 강유리가 성신영을 힐끗 바라보았다. 임천강이 먼저 연락을 해온 건 눈치도 채지 못한 채 그저 육경서가 그녀와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아빠가 유강그룹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이제 알겠지? 그러니까 그 사진들 어서 지워! 안 그럼 아빠한테 당장 얘기할 거야! 언니가 유강그룹 돈은 단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게 할 거라고.”“마음대로 해.”시큰둥하게 대답한 강유리가 메시지를 클릭했다.[육경서랑 전속 계약 맺었다면서?][육경서는 로열 엔터 소속 아니었어? 계약 기간도 남았는데 갑자기 왜 소속사를 옮긴 건데?][강유리, 너 도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야.][지금 시간 있어? 실크썬에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 얘기 좀 하자]연속으로 몇 개나 보낸 메시지에서 임천강의 다급함이 그대로 느껴졌다.[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어떡해...]귓가에는 여전히 떽떽거리는 성신영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강유리는 신경 쓰지 않고 메시지를 전송했다.[실크썬 문앞에 둔 장미꽃 예쁘더라.]“강유리,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한참을 혼자 떠들던 성신영이 강유리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지만 강유리는 민첩하게 휴대폰을 돌려 공격을 피했다.“아니. 다시 한번 얘기해 줄래?”“뭐?”성신영의 커다란 눈이 강유리를 죽어라 노려보고 있었다.‘강유리...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변한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반응도 안 해주니까 나만 바보 된 거 같잖아.’주먹을 꽉 쥔 성신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5화

    품에 안기 조차 힘든 장미 꽃다발을 바라보던 강유리의 입가에 살짝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역시 실망시키지 않네.’이 모든 걸 예견하고 있었던 듯 담담한 강유리와 달리 성신영의 눈은 어느새 더 커다래지고 말았다.살짝 어두운 룸의 조명과 가슴이 터질 듯한 음악소리에 강유리는 정말 이게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천강 오빠... 회사 갔다면서... 어떻게 여기에...’한편 임천강의 눈에는 오직 강유리 한 사람만 보일 뿐이었다.임천강 본인도 눈은 달려있으니 강유리가 예쁘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빛나는 여자였던가?이 공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녀에게 쏠린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게다가 이렇게 예쁜 여자가 똑똑하기까지 하다니...“시간도 늦었는데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까? 마침 너한테 할 말도 있고.”며칠 전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강유리를 모욕하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 사귈 때도 이렇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봐준 적이 있었던가?잔뜩 일그러진 성신영을 힐끗 바라보던 강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러든가. 그런데 네 여자친구 두고 가도 괜찮겠어?”강유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임천강이 그제야 성신영을 발견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네가 어떻게 여기에...?”“어떻게... 어떻게 자기 여동생 남자친구한테 꼬리를 칠 수 있어!”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치던 성신영이 앞에 놓인 술을 강유리를 향해 퍼부었다.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이 상황을 육시준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있던 육경서가 벌떡 일어섰다.“조심해!”하지만 먼저 움직인 건 바로 임천강, 빨간 와인이 강유리 앞에 막아선 임천강의 셔츠를 물들이며 핏빛 꽃무늬를 만들기 시작했다.“성신영! 너 미쳤어? 어쨌든 유리는 네 언니야. 언니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지금 나한테 소리친 거야? 저딴 여자 때문에 나한테 화낸 거냐고. 저번엔 분명...”“그만!”눈시울을 붉히는 성신영의 모습에도 임천강은 흔들리지 않았다.“너야말로 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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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게다가 빈 손도 아니고 술병까지 들고 나타난 육경서는 다짜고짜 임천강의 머리를 내리쳤다.유리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임천강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그 모습에 성신영은 물론 강유리마저 벙찌고 말았다.저 멍청한 남녀가 서로 물어뜯는 꼴을 보려 했는데 육경서가 갑자기 끼어든 바람에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그때, 손님들 중 한 명이 신고를 한 건지 경찰들이 도착하고...오늘 오후 강유리와 가장 크게 부딪혔던 여한영 이사가 육경서를 보물이라도 되는 듯 꽁꽁 싸맨 뒤 뒤로 잡아당겼다.“다른 사람 연애에 왜 끼어드십니까?”그리곤 신고를 받고 다가온 경찰을 향해 바로 고자질을 시작했다.“저기 저분들 저희가 아무리 말려도 도저히 듣질 않으시네요. 바 영업에도 방해될 것 같고 일단 서로 연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하, 저 자식이 정말... 소속 연예인을 챙기겠다고 대표를 버려?’한편, 뒤로 물러선 채 멍하니 서 있던 육경서가 다시 다가가려 했지만...“저기...”“경서 씨 마음은 이해해요. 좋은 마음에서,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남녀사이 갈등은 당사자들이 해결하는 게 맞아요. 제3자인 우리는 빠집시다.”하지만 그의 말을 잘라버린 여한영이 끊임없이 육경서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한편, 생각지도 못하게 얻어맞아 여전히 혼이 반쯤 나간 얼굴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임천강, 성신영 커플과 달리 강유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화장을 고치고 있는 모습이다.“네, 제가 때린 거 맞습니다. 경찰서로 가시죠.”세 사람이 경찰에 연행된 뒤에야 여한영 이사는 육경서를 풀어주었다.아직도 상황파악 중인 듯 멍한 표정을 짓던 육경서가 짜증스런 얼굴로 술병을 차버렸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럼 두 사람이서 저희 대표님 괴롭히는 걸 보고만 있어요?”“경서 씨. 경서 씨는 공인이에요. 경찰과 엮인 걸 기자들이 눈치라도 채봐요. 연예인들은 이미지가 생명인 거 몰라요?”하지만 여한영의 해명에도 육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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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13화

    댓글 창은 여전히 시끄러웠으나 유달리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아침을 먹고 나니 신주리는 육경서가 전처럼 얄밉지 않았고 이미 시간을 많이 지체했기에 화장도 하지 않은 채 허둥대며 캐리어를 정리했다. 카메라맨들은 허가를 받기 전에 절대 여자 연예인의 드레스룸에 함부로 진입하지 않기에 먼발치에서 그림자만 찍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이거 가져가야 해. 요즘 기온이 내려갔어. 교외나 산속은 여기보다 더 추워!”“이것도 두어 개 더 챙겨서 가지고 가.”“모기 퇴치제와 일용품은 따로 챙기지 않아도 돼. 내가 많이 가져왔어.”“이건 뭐야? 이건 어떻게 입는 거야?”“꺼져.”앞에는 육경서의 잔소리였고 마지막 한마디는 신주리가 참다못해 터져 나온 축객령이었다. 육경서는 울상이 되어 신주리 말대로 드레스룸에서 꺼져버렸고 누구도 그가 무엇 때문에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댓글 창이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고 신주리 팬과 커플 팬들의 활약이 대단했다.육경서 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을 닫아걸고 눈치만 보고 있는 중이었다.그들은 질척대는 오빠의 모습을 더는 눈 뜨고 볼 수 없어 입을 닫는 것이 상책이었고 더욱이 입만 열었다 하면 신주리 팬들의 조롱이 이어졌다...10분 뒤 신주리가 준비를 마쳤는지 커다란 캐리어를 두 개나 끌고 나왔고 첫 번째보다 훨씬 준비를 많이 한 듯싶었다. 2부는 야외촬영이라 예상 밖의 일이 많이 발생할 수 있기에 되도록 만전의 준비를 해야했다. 제작팀은 두 개의 캐리어와 백팩을 보더니 뭐라고 말하려 하다가 끝내는 입을 다물더니 별장에 집합한 뒤 다시 의논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집합했던 JL빌리지의 별장에 도착해보니 두 사람이 이미 지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순서로 도착했고 그들보다 더 늦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강미영과 소지석 둘뿐이었다.“이모, 지석이 형, 일찍 오셨네요.”육경서가 바보같이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던 강미영이 그들이 들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12화

    소문을 듣고 달려온 육경서 팬들이 자기 아이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자 사처에서 빈정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어머머, 육 도련님같이 대단한 분이 하찮은 우리 주리를 좋아해 주신다고 하니 더없는 영광이죠. 신씨 가문에서 알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딸내미가 드디어 육씨 가문의 덕을 볼 수 있게 된 거잖아요.”신주리의 신씨 가문 아가씨 신분이 폭로되고 나서부터 팬들의 태도도 전과 다르게 강경해졌다. 신주리 팬들은 육경서 팬들이 나타나자마자 귀족이니 왕자이니 하면서 빈정댔고 육경서 팬들은 찍소리 못하고 바로 꼬리를 내려버렸다.‘전에 한두 마디 욕한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역시 재벌 2세는 무서운 존재였고 신주리는 일부러 신분을 감추고 일반인인척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에 비해 육경서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이고 재벌 2세 중에서 제일 맑은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댓글 창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일 때 문이 벌컥 열렸고 신주리는 촬영팀이 도착한 걸 알았지만 방금 잠에서 깼기에 옷을 갈아입느라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육경서의 예쁜 반달눈을 마주하자 신주리는 댓글 창의 댓글과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내가 잘못 본 거 아닌가?’그러더니 이내 쾅 하고 문을 차갑게 닫아버렸다. 육경서와 카메라 감독은 멍하니 서로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댓글: 하하하하, 역시 우리 주리야.카메라가 한창 문 앞을 찍고 있었고 한참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참다못한 육경서가 다시 노크하려 할 때 문이 재차 열렸다. 육경서는 신주리가 다시 문을 닫아버릴까 봐 그녀를 헤집고 쏜살같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아침부터 대체 뭘 숨겨놨기에 못 들어오게 하는 거야?”신주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육경서를 힘껏 노려보았다.그러자 댓글 창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오더니 역시 육경서답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댄다고 놀려댔다. 육경서 팬들은 그 모습이 너무 창피해 잠적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경서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11화

    “뭐가 문제야? 유리 신분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니까 내가 지시만 하면 서류는 아무 문제가 없어.”바론 공작이 대수롭지 않게 손을 저으며 말하자 육경서가 물었다.“그럼 저는요?”“육 서방 서류가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자네가 협조하기만 한다면...”“협조 못 해요.”육시준이 바로 대답하자 바론 공작은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면서 나한테 왜 물었어? 이럴 거면 귀국할 거라고 얘기하면 되 것을 남을 것처럼 쓸데없는 말을 한바탕 물었어?’“하지만 전 유리 의견을 존중해요. 유리가 남고 싶다면 저도 함께 남을 것이고 비행기는 이미 준비됐으니 싫다고 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어요.”바론 공작은 말문이 막혀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그래서 자네가 지금 내가 유리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거야?”육시준은 그걸 이제야 알겠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은 그렇지 않았다.“그런 뜻은 없어요.”바론 공작은 육시준을 힘껏 노려보더니 귀찮은지 가버렸다.‘이 자식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들어. 유리 앞에서 갖은 자상한 척을 다 하더니 나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어. 기다려 봐. 내가 유리를 설득해서 이곳에 남게 하면 널 데릴사위로 맞아들일 거야.’시간이 훌쩍 지나 제2부가 시작되었다.이 동안에 육경서는 그날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잊어버린 듯이 여전히 신주리의 주위를 맴돌며 갖은 비위를 맞춰갔다.육경서는 녹화 날 댓바람부터 캐리어를 준비해 신주리의 아파트에 도착했고 카메라 감독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좋은 아침이에요.”한 무리 사람이 돌처럼 굳어버리더니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육경서는 그런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앞장서서 문을 노크하자 그걸 본 카메라 감독은 신속하게 카메라 초점을 그에게로 맞추며 입을 열었다.“경서 씨 여긴 무슨 일이에요? 오늘 녹화하는 날인 걸 잊지 않았죠?”“알아요.”육경서가 대충 대답하자 카메라 감독이 물었다.“그럼 경서 씨 카메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10화

    문이 쾅 하고 닫히면서 하마터면 바론 공작의 코에 부딪힐뻔하자 그는 화가 나 펄쩍 뛰었다.‘역시 딸내미는 시집가면 남이야. 자기 남편밖에 몰라. 열받아.’강유리 심부름을 다녀왔던 도우미는 무슨 일인지 살짝 예상했지만 굳게 닫힌 문을 보고 다시 험상궂은 바론 공작을 보더니 비밀을 배속으로 삼켜버리면서 말했다.“부부 사이 일이겠죠. 공작 어르신은 잠깐 기다렸다가...”“대디 걸이라고 누가 그랬어? 저 아이가 부부 사이의 일을 나한테 말해줄 것 같아? 이럴 때면 아비를 문밖에 버려두고 말이야. 사기꾼 같은 계집애.”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바론 공작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강유리는 너무 흥분돼 정신이 나갔는지 육시준을 방안으로 끌어들인 뒤 화장실에 숨어 뒤에 감춘 물건을 보여줬다. 빨간 두 줄이 눈앞에 나타나자 육시준은 멍하니 서 있었고 표정은 변함없지만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육시준은 가까스로 흥분을 억제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이게 뭐야? 그래서 결과가 뭐야?”“이게 뭔지 몰라? 두 줄이잖아. 나 임신했어. 이번에는 진짜야.”강유리가 활짝 웃으며 감격해 말했다. 육시준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테스트 시제를 받아 쥔 손이 살짝 떨리는 것으로 봐서 담담한 척했을 뿐이다. 그는 선명하게 찍힌 빨간 두 줄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사용 설명서를 읽어보더니 한참 뒤에야 하늘이 무너져도 끄덕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표정이 무너지면서 웃음꽃이 만발했다.“그렇다면...”“당신 아빠가 되었어.”강유리는 이런 육시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참지 못하고 재차 설명해 줬다. 다음 순간 강유리의 발이 허공에 뜨더니 육시준이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고 천정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귓가에는 흥분으로 가득한 남자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아빠가 됐어. 드디어 아빠가 됐어. 내가 이럴 줄 알았어.”강유리는 머릿속이 죽통이 되는 것 같아 작은 손으로 그의 팔뚝을 마구 흔들며 말했다.“진정. 진정. 정숙.”이 순간에 무슨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09화

    강유리가 잠깐 멍하더니 살짝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왜?”그러자 육시준은 강유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남은 일정은 별로 끌리지 않아.”강유리의 눈까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솔직히 요 며칠은 주로 집에서 바론 공작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남은 일정에 대해 강유리도 별로 흥미가 없었다.그리고 예측하는 것이 있기에 그 일정을 소화하기에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유리는 육시준이 눈치챘는지를 모르기에 머리로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비비더니 온화하게 물었다.“여보, 내가 요 며칠 라이브에 정신이 팔려서 당신한테 신경 못 썼어.”“맞아. 그래서 어떻게 보상할 거야?”육시준이 대수롭지 않게 묻자 강유리는 고개를 들고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보통 때라면 착한 육시준이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이해한다고 했을 텐데 보상을 요구했다.“부부 사이에 보상을 얘기하면 서운하지.”강유리는 작은 손을 내저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육시준은 그런 강유리한테 속지 않고 강경하게 말했다. “저번에 내가 긴급회의를 했다고 나한테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어? 그때는 왜 내가 서운해할 거란 생각을 안 했어?”‘이득 앞에서 못 본 체하는 건 바보가 아닌가?’하지만 강유리는 절대 육시준이 쉽게 이득을 보게 하지 않을 것이다.“좋아. 보상해 줄게. 내가 그렇게 억지 부리는 사람이 아니야. 방금 전의 제의 들어줄게.”그 말에 육시준은 미묘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바라봤다.‘방금 제기한 요구라면 혹시 앞당겨서 귀국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육시준은 이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고 항상 다른 사람을 계략에 빠뜨리던 그지만 강유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앞당겨 귀국하자고 한 건 사실 진짜로 귀국하자는 것이 아니고 강유리가 요즘 회사 일과 다른 일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자기한테 소홀한 것 같아 귀띔해 주려 했던 것인데 그녀가 바보인 척하며 그의 제의에 찬성했다. 강유리는 육시준의 놀란 표정을 보고 신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08화

    육경서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욕이라도 할까 봐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 형수를 욕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강유리의 뒤끝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더욱 두려운 건 육시준이었다. 화를 못 이겨 육경서는 핸드폰을 소파에 집어 던지고 미친 듯이 머리카락을 헤집더니 바닥에 있는 쿠션과 인형을 발로 차버리고는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발길에 채워 저 먼 곳에 불쌍하게 누워있는 인형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주워서는 원래 자리에 예쁘게 놓아줬다. 이건 주리가 선물한 것이기에 절대 이 아이한테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된다. 육경서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형수가 한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기에 강유리가 주리를 설득해 화해하지 못하게 한 것이고 두 사람이 절친이기에 그녀를 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이렇게 좋은 절친이 있으니 주리는 절대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육경서가 남도 아니고, 아아아아악!강유리가 빨리 도망치라고 했기에 주리가 육경서를 냉랭하게 대한 것이고 전혀 기회를 줄 뜻이 없었으며 오해를 풀고 나서도 화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인단 말인가?육경서는 털썩 주저앉아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철없고 진지하지 못한 게 생리적 결함도 아닌데 고치면 되잖아.’육경서는 반드시 주리에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녀가 다시 자기를 신임할 수 있게끔 하리라고 결심했다.다른 한편 강유리는 전화를 끊고 나서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육경서가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모든 심리 변화와 최종 결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강유리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의식 간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깜짝 놀라 흠칫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육시준이 팔짱을 끼고 베란다 옆 수납장에 기대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언제 왔어? 부르지 그랬어. 깜짝 놀랐잖아.”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07화

    강유리는 육경서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고 아마 여론 뒤에 또 모순이 생긴 모양이다. 솔직히 강유리는 두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긴 하지만 육경서가 아직 철들지 못했고 반평생을 도련님으로 살아왔기에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자기 앞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조금만 모순이 생기거나 좌절을 겪으면 의심하고 심지어 포기해 버리기에 이대로 지속된다면 두 사람 모두 힘들어질 것이고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할 것이다.강유리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도련님한테 비밀을 알려드릴게요.”육경서는 전혀 감흥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비밀이요?”육경서는 주리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에 흥미가 없었지만 형수 말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주리가 처음 육씨 가문에 왔을 때 어머님이 사실 두 사람을 좋게 보지 않았어요.”강유리가 진지하게 말하자 육경서는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터져버렸다.“이게 다 형수님 탓이잖아요. 엄마. 아빠 앞에서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이상한 소리를 해서 남의 집 귀한 딸을 제가 해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그러자 강유리는 담담하게 말했다.“이게 왜 이상한 소리예요? 도련님이 저한테 직접 말했잖아요.”“형수님, 미안해요.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해줘요.”“도련님이 얘기를 먼저 꺼냈어요.”강유리가 느릿느릿 말하더니 이내 덧붙여 말했다.“제가 이 말을 하려는 건 어머님 태도 때문에 주리가 그날 기분이 상당히 잡쳐있었어요.”육경서는 이해가 안 가는지 되물었다.“왜요?”강유리는 어이가 없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도련님 생각에는요?”“주리가 승벽심이 강하고 어디를 가든 항상 주목받던 사람인데 어르신들의 사랑을 못 받으니 서운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육경서 말에 강유리는 조용히 눈을 흘겼다.‘여태까지 솔로인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미련 곰탱이 같으니라고.’오랜 침묵 끝에 육경서가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니면 자신감이 붙은 건지 담대하게 예측했다.“혹시 저를 위해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06화

    바론 공작이 하도 재촉하는 바람에 의료진은 불같이 달려왔고 한바탕 검사를 마친 뒤 아무 문제도 없다는 아주 난처한 결론을 내렸다.“당신들 뭐 하는 사람이야?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아빠가 너무 흥분하셨어요. 단순하게 위장이 불편했을 뿐이에요. 음식 습관이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강유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바론 공작을 위안했고 지금은 또 괜찮아진 것 같기도 했다.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유리의 말에 찬성했다.“맞아요. 그럴 수도...”바론 공작은 그때 비수처럼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며 뒷말을 제지했다.‘네 자식이 감히 음식 습관이 안 맞다고 말을 하기만 해 봐. 내 딸이 어떻게 자기 집에서 음식 습관이 안 맞을 수 있어?’얼토당토않은 이유이고 이건 강제로 귀국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의사는 그제야 바론 공작의 말뜻을 이해하고 이내 덧붙여 말했다.“아가씨가 이곳에 오신 지 한참 되셨는데 음식 습관 때문에 위장이 불편할 건 같지 않고요. 제가 보기에는 내일 병원에 가셔서 전면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겠어요.”자택에서 검사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경 제한이 있었다. 의사가 다행히 마지막 말을 하지 않은 덕분에 바론 공작이 비록 불만이 잔뜩 했지만 이내 손을 저으며 가보라고 했다. 강유리는 헛구역질 한번 한 것으로 아빠가 난리법석하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그래도 마음속은 따뜻했다. 사실 강유리는 생리가 일주일이나 미뤄졌기에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전에 한번 해프닝을 겪었던 기억이 있기에 확정된 다음에 말하려고 아무 내색을 내지 않았다.저녁을 먹고 나서 강유리는 도우미를 불러 심부름을 다녀오라고 하자 그녀는 흠칫하더니 이내 두 눈을 반짝이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강유리는 식지로 입을 막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비밀이야. 바론 공작과 육시준이 알게 하면 안 돼.”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둠이 내리자 강유리는 베란다 소파에 앉아 절반 넘게 진행

  • 그래, 나 부자 맞아   제1305화

    어떤 커플이 툭하면 사귀고 툭하면 헤어지고 그런단 말인가? 만일 이번에 톡톡히 혼내주지 않으면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반드시 이번 기회에 나쁜 버릇을 고치고 진심을 보여주게 해야 한다.그리고 아직 예능 프로그램이 남았으니 함께 출연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육경서에게 기회를 준 것으로 생각했다.솔직히 절친이 있으면 이런 점이 너무 좋았다. 무슨 일이든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고 자기 뜻대로 따라주며 쓸데없는 생각으로 스스로 괴롭히는 것을 자제하게 해준다.전에 신주리도 마찬가지로 릴리와 신하균이 사귄다고 했을 때 가족애를 버리고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여기까지 생각한 신주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물었다.“그날 밤 네가 그랬잖아. 신하균과 사귀는 것이 단지 그의 목소리와 얼굴에 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직업 도덕에 반했고 고독한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라고.”이건 릴리가 신하균과 연애한 뒤 신주리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한 말이다.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신주리는 두 사람의 연애를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릴리는 말문이 턱 하니 막히더니 부자연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내가 그런 말을 했어?”그러자 신주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분명히 했어.”릴리는 생각하는 척하더니 반박하지 않고 말했다.“맞는 말이잖아. 내가 그때 마음이 약해지는 바람에 지금 운수가 안 좋아.”신주리는 릴리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융통성이 전혀 없고 일밖에 모르는 신하균은 예쁜 말로 여자를 달랠 줄도 모르고 낭만도 모르며 외모 빼면 자랑할 것이라곤 전혀 없으니 운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다른 한편, 강유리는 단체방에서 수다를 떨다 결과를 마저 듣지도 못하고 릴리가 오프해버리는 바람에 심심한 나머지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 검색어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그러는 동시에 머리 한쪽 구석으로 이젠 귀국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다.도우미들이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요리하는 냄새가 어렴풋이 전해오자 강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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