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강준이 몸을 뒤로 최대한 빼고 있었지만, 한 앵글에 둘을 잡을 수 없었다.그는 예의를 갖춰 제안했다.“좀 더 가까이 붙으시겠어요? 지금은 마치 합석한 듯한 모습이라 먼 훗날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육시준, “...”강유리, “...”전에는 임강준에게 이런 위트가 있는지 몰랐다.하지만 송미연과의 통화를 떠올린 강유리는 화해했다고 당당하고 말했던 터라 멀리 떨어져 앉은 모습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그녀는 몸을 살짝 옮겨 육시준에게 다가갔다.육시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때마침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그렇게 둘 사이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얇은 드레스와 정장 바지로 강유리는 상대의 체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향기가 서로의 친밀도를 상승시켰다.당황했지만 피하지 않는 자신이 강유리도 놀라웠다. 심지어 내심 이 순간을 바란듯했다.“좋아요! 이 정도가 딱 좋아요. 두 분 이제 카메라를 보세요.”임강준의 목소리에 강유리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슬며시 옆으로 피하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에 불쑥 감기더니 세게 끌어당겼다.방심하고 있었던 강유리는 그의 품속에 안 긴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귓가에 힘차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목젖의 오르내림도 볼 수 있었다.설명할 수 없는 섹시함이다...황급히 시선을 옮긴 그녀가 육시준을 올려다보았다.남자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다.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어도 그녀의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임강준이었다. 그는 담담하게 일깨웠다.“카메라를 봐. 왜 날 보고 있어?”멈칫하던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았다.프로 사진작가, 임강준은 여전히 여러 가지 요구를 하고 있었다.“웃어보세요! 네, 좋아요. 좀 더 자연스럽게 웃어 볼까요? 사모님, 회장님께 더 가까이 붙으세요. 좀 더 가까이요. 차라리 어깨에 기대셔도 돼요. 네. 아주 좋아요...”강유리의 미소는 얼어 있었다
그녀는 또다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님의 비서는 달랐다.모든 것에 면밀했고 각종 재능도 뛰어났으며 상사의 마음까지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이렇게 많이 찍은 이유는 육시준에 보여주려는 것이겠지?문뜩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육시준은 한창 그녀를 쫓아다녔을 때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함께하려 했고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했었다.상사의 마음을 읽고 될수록 많이 남겨두는 것도 정상적인 일이었다.하지만 지금...그날 아이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 때문이기도 했고 그 무엇도 그녀의 목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그녀가 확고하게 못 박아 두었기에 그는 훨씬 냉랭한 태도였다.더 이상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 제일 처음으로 돌아간 사이가 아니야?그럼, 임강준은 왜...“문제 있어?”불만 어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정신을 차린 강유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강유리는 너무 친밀하지도 너무 소원하지도 않은 적당한 것으로 골라 어머님에게 보냈다.그리고 방금 찍은 모든 사진들을 육시준에게 전송했다.차 안은 조용했다. 메세지 소리가 쉼 없이 정적을 깨고 있었지만 정작 휴대폰주인은 문자를 확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는 그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는듯 했다.강유리는 몰래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턱선과 주장이 강한 이목구비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고도 남는 외모였다.이렇게 훌륭한 남자가 진지하고 절절하게 고백한다면 받아들이지 않고선 못 배길 것이다.그러니 그의 냉정함을 직접 보게 된다면 더없이 서럽기 마련이다.강유리는 육시준도 그녀처럼 오래동안 사진을 바라보며 모두 마음에 들어 하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어 모두 소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의 생각이 틀린 것 같다.그는 그저 자신이 관련되어 있기에 알 권리가 있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롤스로이스는 천천히 성 씨 가문 별장으로 들어갔다.그리고는 천천히 멈췄다.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던 강유리는 말하려다
임강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그리고 강유리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그녀가 차에서 내리고서야 뒤쪽에 준비해 두었던 선물꾸러미를 들고 듬직하게 옆에 섰다. 강유리는 제자리에 서서 임강준의 손에 들려있는 선물을 바라보다 멀지 않은 곳에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육시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뜩 깨달았다.오늘 그는 그녀와 여기에 오려고 했던 거였다....함께 모습을 드러낸 둘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다른 이와 한창 담소를 나누고 있던 성홍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재빨리 다가오며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왔어?”“올 시간 없다더니? 어른의 생신날에는 효심만 있다면 반드시 자리해야 하는 거야.”곁에는 왕소영이 있었다. 그녀는 어른의 품격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육시준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한번 훑었다.그녀는 움찔하면서 하려던 말을 삼켰다.눈치가 빨랐던 성홍주는 온화한 미소로 분위기를 바꿨다.“바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서 오지 않는다고 해도 탓하지 않았을 거야.”강유리는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 침묵을 지켰다.육시준이 얼굴을 공개한 후부터 많은 관심이 쏟아져 어디에 가도 주목을 받았다.냄새를 맡은 어떤 이들은 육시준에게 말 한마디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성 회장님을 위해 준비했다던 선물 가져와.”육시준이 임강준에 하는 말이었다. 주위 사람들도 확실하게 들었다.그는 아버님이 아닌 성 회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성홍주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강유리도 고개를 들어 성홍주의 반응을 살폈다.그러나 두 사람의 시선을 발견하지 못한 육시준은 그저 임강준에게서 선물을 건네받고 입을 다시 열었다.“그림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이건2일 전에 경매에서 낙찰받은 그림인데 마음에 드셨음 해요.”호칭 때문에 일그러졌던 성홍주의 얼굴이 다시 환희로 바뀌었다.급히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선물을 받아 든 성홍주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 그림은 희귀해서 그림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강유리가 대답했다.“그러죠.”육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는 그녀를 지나치고 자리를 떠났다.자리에 경직된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복잡한 심경을 정리했다.그녀가 원하던 결말이긴 했지만 진짜가 되어버리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무심하게 손을 뻗어 옆에 놓인 와인을 집어 든 강유리는 천천히 파티 장으로 걸어갔다...성홍주와 왕소영은 둘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지켜보다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육시준은 강유리와 함께 온 것이 아니었다. 육경원과 작은 딸의 관계 때문에 육씨 가문의 어른으로 참석한 자리였나?육시준이 강유리에 대한 감정이 상상했던 것보다 뜨겁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럼 그들에게 많이 유리한 상황이다.강유리의 기를 꺾으려고 성홍주는 남겨진 그녀를 내버려 두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성신영과 육경원을 옆에 끼고 여기저기에 딸과 사위라고 소개하기 바빴다.강유리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머릿속은 백지상태여서 그의 이런 행동을 눈치챌 겨를 이 없었다. 그저 홀로 와인을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했다.어느덧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해가 지더니 어느새 어둠이 깔렸다.구석에서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성홍주가 큰 아량을 베푸는 듯 말했다.“날 따라 위층으로 올라와 봐.”강유리는 많이 마셔서 조금 어지러웠다. 그녀가 주위를 살폈다.그때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문기준이 응답했다.“사모님, 절 찾으셨나요?”강유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가요.”위층 서재.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성홍주는 강유리만이 아니라 건장한 남자가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뭐 하자는 거야?”“전과가 있어서 배신 당하지 않게 조심해야 하니깐요. 이제 일 얘기 해봐요.”강유리는 태양혈을 지긋이 눌렀다. 하지만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았다.심기가 불편했던 성홍주는 괜히 문기준을 아니꼽게 바라보다 강유리에게 말했다.“천방지축이였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녀가 신분을 밝히지 않겠다면 ‘강제’적으로 그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었다...잠깐 생각에 잠기던 강유리가 입을 열었다.“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죠?”성홍주는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세마와 가까운 사이라니 아버지를 대신해 전에 계약서를 무력화할 수 없는지 논의해봐.”강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성홍주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 취한 것 아니지? 슬에서 깨고나면 기억할 수 있어?”“당신을 돕는 것이 나 자신을 돕는 거라면서요? 유강그룹은 언젠가 내것이 될 거잖아요. 그리고 전에 유강엔터가 안전한 궤도에 들어서면 지분을 넘겨주겠다고 했었고요.”“그래, 그래. 내가 잘 생각해 볼 테니 이걸 먼저...”“성 회장님 , 저 안 취했어요.”강유리는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엄마가 남겨놓은 지분을 내놓으세요. 그러면 세마와 거래할게요. 하지만 계약을 파기 해서 생긴 대가까지 제가 보장할 수 없어요. 그러니 위약금은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그건...”“여기까지, 동의한다면 월요일에 계약서를 넘겨주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오늘 밤 내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주무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휘청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한참 머뭇거리던 성홍주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급히 조건을 내밀었다.“너와 한일이의 모순은 가정사일 뿐이니 육시준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전해.”그는 육시준이 왜 그녀를 돕고 있는지 몰랐다.일단 육시준이 손을 떼면 그가 쉽게 성한일을 풀려나게 할 수 있었다.“오케이.”그녀는 멈추지도 않았다. 목소리도 통쾌하기 그지없었다.그대로 자리에 한참을 앉아있던 성홍주는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강유리를 쫓아갔다. 그리고 거실을 통과하고 있던 강유리에게 외쳤다.“너 취했어, 안 취했어? 내일이면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을 거지?”“내가 차용증 써줘?”현관에 서 있는 강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평소의
어렵게 만든 자리인데 이대로 쉽게 보낼 수가 없었다.성홍주는 급히 달려갔다.희미한 불빛 아래 롤스로이스 한대가 서 있었다.발걸음을 멈춘 그는 당황한 눈빛이었다.그뿐만이 아니라 강유리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멈칫하던 강유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재빨리 다가갔다. 임강준이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텅 비어 있는 자리.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임강준이 차에 올라타며 당황한 그녀를 힐끔 보았다. 그리고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했다.“회장님이 사모님을 모셔 오라고 했어요.”천천히 자세를 고쳐 앉은 강유리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임강준에 묻는 것 같기도, 혼잣말인 것 같기도 했다.“더 이상 날 좋아하지 않는 걸까?”임강준, “흠...”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가 육시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그는 시동을 걸었다. 그들이 성씨 가문의 별장을 유유히 빠져나가자 한참 고민하던 임강준이 조심스럽게 조언했다.“그러지 마시고 직접 물어보시는 건 어때요?”“싫어요. 혹시 진짜라면 너무 굴욕적이에요.”창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는 공허했다.눈치 백단인 임강준은 강유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에 다시 물었다.“뭔가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나요?”고개를 돌린 강유리는 코웃음을 쳤다.“그들이 어떻게 감히 내 기분을 좌우지할 수 있겠어요. 내 기분은 오직 육시준때문이에요.”임강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취한 것 같았다!술에 취한 강유리를 딱 한 번 본 적 있었다. 흠뻑 취한 그녀는 임강준에 무리한 부탁을 했었다. 심지어 육시준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말이다.심장이 멎는 느낌에 임강준은 당장 사라지고 싶었다.혹시라도 강유리가 엉뚱한 말을 할까 봐 임강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속도를 올려 JL빌라로 향했다.불만이 폭발한 강유리는 비난의 목소리가
술에 취한 사람의 말은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차에 올라탄 임강준은 급히 자리를 떠났다.남자는 잠옷 차림으로 쏘파에 앉아 있었고, 손에는 태플릿을 들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썹이 곡선을 그렸다.“취했어?”“아니!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쉽게 질려? 좋아하게 되면 오랫동안 그 사람만 본다고 주영 씨가 말했단 말이야.”마음속에 꽁꽁 눌러왔던 것들이 지금, 이 순간 폭발해 버렸다.둘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 시선만 주고받았다. 그러다 육시준이 입을 열었다.“이건 아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데?”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강유리는 손에 들려 있던 백도 문 앞에 던졌다. 그녀는 긴 얘기를 나눌 것 같은 비장함으로 빠르게 다가갔다.“아이 때문에 생긴 문제잖아. 그렇게 아이가 좋아? 실체가 없는 그 아이 때문에 정말로 마음이 변한 거야?”“...”시선을 내리깐 육시준이 그녀의 맨발을 바라보았다.어두운 톤의 카펫이 하얀 그녀의 피부를 더 돋보이게 했다. 핑크빛 발가락들이 가여웠다.그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어딘가에서 슬리퍼를 들고 나타나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몸조리하고 있다면서? 날씨도 추워지는데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그의 커다란 손이 강유리의 발목을 잡았다. 손끝의 온도가 그녀의 피부에 전해졌다.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휘청거렸다.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고서야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그가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어깨에 올려졌던 그녀의 손이 육시준의 가슴에 떨어졌다...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내일 다시 말하는걸로 하고 얼른 자.”그녀의 손은 아직 그에게 잡혀 있었다. “나 아직 씻지도 못했는데?”육시준의 눈이 깊어졌다.“...”“당신이 없으면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눈 밑에 이 다크서클이 보여? 피부도 엉망이야. 이것 봐.”그녀는 얼굴을 가까
강유리는 결국 침실로 돌려보내졌고 육시준은 손님방으로 돌아왔다.벽 램프만 켜져 있었기에 방은 어두웠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머리 위의 크리스탈 샹들리에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손님방은 닫혀 있었고 그녀가 노크해도 응답은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문을 열었다.그때 안쪽에서도 문을 열었다...안으로 쏠리는 몸을 멈출 여력이 없었던 강유리는 그대로 상대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육시준은 허리를 감싸며 넘어지려는 그녀를 똑바로 잡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마치 탄력이 넘치는 바위에 부딪힌 것 같았고 뒤로 튕겨진 강유리는 휘청거렸다.간신히 몸을 가눈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방금 샤워를 마친 육시준은 가운을 걸치고 있었고 옷깃은 느슨해져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 짧은 머리에서는 여전히 물방울이 떨어져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도 함께 아래로 향했다.허리에 머물러 있던 커다란 손이 가운을 정리하며 방어적으로 가운 끈을 조여 매고 있었다.강유리는 시선을 돌리며 여기에 온 의도를 떠올렸다.“진지하게 의논할 일이 있어.”육시준을 깊은 눈이 그녀를 훑었다. 그녀의 상태로는 진지한 얘기를 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말해 봐.”“나에겐 보물들이 많으니, 나의 재산을 모두 당신에게 줄게.”그녀의 설계 작품들은 모두 몸값이 어마어마한 아이들이었다.“내 사람들까지도. 어때?”남자는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그러고 나선?”강유리는 육시준의 이런 반응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라니? 이 정도론 부족해? 꼭 유강 그룹을 걸고넘어져야겠어?”그러자 육시준이 손을 뻗어 그녀의 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강유리, 난 너의 여기에 있고 싶어.”고개를 떨구고 그의 행동을 바라보던 강유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지금은 머리 회전이 빠르지 못해서 이런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요구를 제기한다면 잠시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