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291 - 챕터 300

1655 챕터

제291화

“김 대표님.”박경수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지금 여주 별장으로 돌아가실 건가요?”“그래요, 가요.”“사모님과 연희 아가씨도 계세요...”김자옥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이내 다시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세월이 오래 지났으니 내려놓을 건 내려놓아야 했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박경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냉큼 차에 올라탔다.여주 별장에 돌아온 후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최연희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김자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시선을 은미연에게 옮겼다. 은미연은 찻잔을 내려놓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자옥 언니, 오랜만이에요.”“오랜만이야.”김자옥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지난번에 만났을 때가 나랑 최문혁이 이혼하던 그때지?”은미연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미소가 굳어지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언니, 그때 일은... 사실 제가 문혁 씨를 만나고 있을 때 문혁 씨가 언니랑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제가 성격이 솔직해서 무슨 얘기든 다 하거든요.”은미연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했다.“만약 그때 이혼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더라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문혁 씨는 저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 바람에 오랜 시간 동안 제가 오해를 받았죠!”“그래.”김자옥이 이를 깨물고 나지막이 말했다.“그러니까 최문혁 그 겁쟁이랑 결혼하면 그냥 재수 털리는 거야.”“언니.”은미연이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점은 저도 공감이에요!”최연희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머니에게 눈짓을 보냈다.“아참...”은미연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오늘은 해야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 그... 연준이가 마음에 둔 여자 말이에요...”“성이 강씨인 그 아가씨를 말하는 거지?”김자옥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미 만났어!”“네?”은미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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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명황세가 맨 꼭대기 층의 룸에 있던 최연준도 그녀의 얘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캐비어를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린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 아직 만나게 한 적 없는데요?”“그럼, 대체 어떻게 된 거야?”최연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수심에 찬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옆에 있던 배경원과 유찬혁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묵묵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유찬혁이 다급하게 말했다.“형, 어머님이 서연 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절대 싫어하진 않을 거예요. 무슨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요.”배경원의 두 눈은 테이블 위의 맛있는 음식에서 떠나질 않았다.“경원아, 네 생각은 어때?”“응?”배경원이 화들짝 놀랐다.“그게... 제 생각엔 어머님이 형수님을 만나지도 않고 일부러 형이랑 형수님을 갈라놓으려고 이러는 것 같아요.”최연준이 고개를 내저었다.“우리 엄마 그런 분이 아니야.”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 앞에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강서연이 천천히 다가오자, 최연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방금 한 얘기를 다 들은 건 아니겠지?’“서연아.”최연준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웃었다.“점심에도 근무해야 한다며?”“네, 원래는 근무해야 하는데 과장님이 조금 늦게 제출해도 된다고 해서 왔죠.”유찬혁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아직 식사 안 했죠? 그... 형이랑 식사하세요. 저랑 경원이는 먼저 일어날게요.”“싫어!”배경원이 항의했다.“나 아직 배고프단 말이야!”유찬혁이 배경원을 힐끗 째려보았다. 강서연은 입술을 깨물고 최연준에게 물었다.“연준 씨 어머님이 오셨다면서요? 왜 나한테는 얘기하지 않았어요?”“적당한 기회를 봐서 두 사람 만나게 하려고 했지.”“그래요, 그래요!”배경원은 배가 이성을 잃은 나머지 말도 헛나왔다.“형수님, 긴장해 하지 말아요. 못난 며느리도 언젠가는 시부모님을 뵈어야 하니까요!”유찬혁은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강서연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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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서화전의 명성과 위세가 아주 드높았다.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 모두 대물급 작가들의 작품이었고 그림 하나당 그 가치가 수억 원에 달했다.김자옥은 여유롭게 전시장을 거닐었다.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교육을 받은 덕에 서화에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게 되었다.남양 작가들의 작품 몇 점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선이 우아하고 색감도 대담한 게 아주 개성이 넘치는 작품이었다.작품이 마음에 든 김자옥이 옆에 있는 비서에게 분부했다.“여기 담당자한테 연락해. 이 작품 내가 사야겠어!”비서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바로 담당자를 찾으러 갔다.그 시각, 강서연이 윤문희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왔다.“엄마, 여기 사람이 많진 않지만 공간이 커서 절대 아무 데나 가시면 안 돼요.”윤문희는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기색을 드러냈다.“전시장에 와서도 다니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구경해.”강서연이 피식 웃었다.“엄마가 집에서 심심해할까 봐 모시고 나온 거잖아요. 게다가 전 일하러 온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협조 좀 부탁해요. 제가 사진 몇 장 찍고 여기 직원한테 구체적인 상황 좀 물어본 다음에 가면 돼요.”윤문희가 화들짝 놀랐다.“그리 빨리 간다고?”윤문희는 서화전을 좋아했다. 예전에 집에 있을 때도 자주 보러 다녔었다. 하지만 집을 나간 이후로 이렇게 예쁜 전시장을 와 본 적이 없었다...“네.”강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일이 끝나면 얼른 돌아가서 원고 써야 해요.”“어휴.”윤문희가 입을 삐죽거렸다.“한 달에 며칠 쉬지도 못하는데 맨날 야근까지 하고. 누가 봤으면 돈 엄청나게 많이 버는 줄 알겠다.”“엄마.”강서연이 웃으며 장난쳤다.“엄마 이젠 입만 열면 돈 얘기네요?”“예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강명원 그놈한테 당했지! 강명원의 돈을 마음껏 썼어야 했는데. 그러면 너랑 찬이도 나랑 같이 고생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됐어요, 그만 해요.”강서연이 엄마의 어깨를 다독였다. 과거 일 때문에 그녀의 병이 다시 재발할까 걱정되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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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문득 정체도 불분명한 여자를 데려온 아들 생각에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선 다시 배 속에 집어넣고 싶은 심정이었다....“서연아, 저 그림 봐봐.”강서연이 윤문희의 시선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사이즈가 커서 벽면을 꽤 많이 차지한 유채화였다. 뭔가 추상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게 숲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커다란 반딧불이 날개를 휘젓는 모습이 아주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강서연이 낙관을 확인해 보니 남양의 아주 유명한 화가였다.“엄마, 저 그림 좋아해요?”윤문희는 대답하지 않고 사색에 잠겼다. 그녀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드러났다.“서연아...”한참 후 윤문희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저기가 어딘지 알아?”강서연은 막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곳은 남양의 개인 원림이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어릴 적에 자란 곳이었다. 그리고 낙관에 적힌 이 화가가 예전에 그녀를 위해 초상화를 그려준 적도 있었다.그 그림을 쳐다보던 윤문희는 마치 아무 걱정 없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강서연에게 말했다.“저 그림 살 수 있을까?”강서연은 잠깐 멈칫하다가 자세히 살펴보았다.‘이 그림을 사려면 엄청 비싸겠지?’하지만 윤문희가 무언가를 이렇게 좋아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하여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담당 직원에게 물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그림 제가 이미 샀어요. 제가 먼저 왔거든요.”화들짝 놀란 강서연이 고개를 돌렸다. 김자옥과 눈이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찔했다.눈앞의 아주머니는 중년 정도 돼 보였지만 관리를 잘하여 기품이 아주 흘러넘쳤다.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웃을 듯 말 듯 하다가 선글라스를 벗으니,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아가씨.”담당 직원이 말했다.“김 대표님께서 저희한테 먼저 연락한 거 맞아요. 그리고 괜찮은 가격을 부르셨고요.”“네...”강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실례가 많았습니다. 죄송해요.”“아가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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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네.”강서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저희 엄마가 평소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데 이건 마음에 들어 하셔서 최대한 소원을 이뤄드리고 싶거든요. 여사님께서 사셨으니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걸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요.”김자옥이 흐뭇하게 웃었다.‘교양 있는 아이네. 지금 젊은 여자애 중에 이토록 점잖고 차분한 애가 거의 없는데.’그녀는 문득 임나연이 떠올랐다.임나연을 예비 며느리로 점 찍은 건 두 집안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형편이 엇비슷하고 최연준이 임나연과 결혼하면 김씨 가문에도 좋은 점을 있을 거로 생각하여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임나연의 얼굴도 괜찮아서 최연준과 함께 서 있으면 나름 어울리기도 했다.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임나연은 재벌 집 규수의 교양과 점잖음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고 그룹을 관리할 만한 능력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일 년에 영국으로 여러 차례 와서는 그녀에게 아부나 하며 미친 듯이 쇼핑하는 게 전부였다. 그 바람에 임나연에 대한 인상이 점점 나빠졌다.김자옥이 얼굴만 예쁘고 머리가 텅 빈 여자를 가장 싫어했다. 게다가 임나연의 얼굴도 연예인 뺨치게 예쁜 정도는 아니었다...“여사님?”강서연은 히죽 웃으며 생각에 잠긴 그녀를 끄집어냈다.“사진 찍어도 되나요?”“그럼요. 마음껏 찍어요.”정신을 차린 김자옥이 가볍게 웃었다.“고맙습니다.”“아참.”김자옥은 자꾸만 강서연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저 그림 속에 그려진 게 뭔지 알아요?”“반딧불이잖아요.”강서연이 술술 대답하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반딧불의 모양이 어딘가 이상하게 생겼다. 날개가 아래위로 두 층이었다.“하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어요.”그녀가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이런 게 바로 예술가의 창의력이겠죠.”“예술가가 아무 근거 없이 상상만으로 그린 게 아니에요.”김자옥이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날개가 두 층인 이 반딧불은 남양 사바 지역의 숲에 살고 있는데 아주 드물어요.”“네?”강서연이 놀라움을 감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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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강서연은 윤문희의 앞에 나서고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김자옥을 쳐다보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여사님, 저희 엄마가 몸이 안 좋으셔서 그러는데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김자옥의 두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어디가 안 좋아요?”“그것까지 얘기하긴 좀 곤란하네요.”강서연은 벌벌 떠는 윤문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엄마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잠깐만...”김자옥은 두 사람을 말리지 못했다. 강서연은 윤문희와 함께 중세 전시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대표님.”비서가 나지막이 물었다.“한번 조사해 볼까요?”“조사할 게 뭐가 있어.”김자옥이 그를 힐끗 째려보았다.“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내가 쟤를 모르겠어?”비서는 더는 아무 말 없이 슬쩍 물러났다.김자옥은 멀어져가는 강서연과 윤문희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 급히 가는 바람에 윤문희가 금방 산 스카프를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스카프를 주운 그녀의 입가가 살짝 실룩거렸다.“저 나이를 먹어도 취향은 여전하네. 어휴, 아직도 자기가 무슨 공주인 줄 아나. 그나저나... 공주는 별로지만 딸 하나만큼은 잘 낳은 것 같네!”...윤문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강서연은 긴장한 얼굴로 약상자를 이리저리 뒤졌다. 그녀가 뭘 찾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윤문희는 손을 흔들며 웃었다.“서연아, 그만 찾아. 나 약 안 먹어도 돼.”강서연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지금 괜찮아졌어. 약 먹지 않아도 돼.”윤문희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냥 조금 피곤할 뿐이야, 잠깐 눈 붙이면 괜찮아져. 가서 네 원고 써, 얼른 일 마쳐야지!”“정말 괜찮아요?”“응.”“그럼... 옆에서 쓸게요.”강서연이 컴퓨터를 갖고 왔다.“저는 제 원고 쓸 테니까 엄마는 쉬고 있어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잖아요.”“그래.”윤문희는 상냥하게 웃으며 강서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요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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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최연준은 여주 별장으로 돌아온 후 김자옥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난 다음 인사드리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엄마, 방은 마음에 들어요?”“응, 마음에 들어.”김자옥이 마침 커피를 내려 방안이 옅은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이 아주 널찍하고 환했고 커다란 통유리 맞은 편에는 높은 산이 보였다. 방 안의 인테리어도 아주 분위기가 있었고 작은 장식품마저 고급스러움이 흘러넘쳤다.김자옥은 푹신푹신한 양가죽 소파에 앉았다. 이곳이 좋긴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소외감이 들었다.그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문희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다정하고 효심이 가득한 딸이 있으니 걔 방은 이것보다 훨씬 더 따스하겠지...’“엄마.”이상함을 감지한 최연준이 물었다.“왜 그래요?”김자옥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를 쳐다보는 눈빛에도 실망감이 어려있었다. 그녀가 살짝 떨고 있는 걸 발견한 최연준이 물었다.“추워요?”“응.”김자옥이 숄을 걸쳤다.“영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까 여기 날씨가 적응이 잘 안되네.”“그건 괜찮아요. 방 안의 온도를 수시로 조절하라고 할게요.”이 말이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는 말이었지만 하필 오늘 사이가 좋은 모녀를 본 바람에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엄마, 오늘 옷 너무 적게 입었어요. 이거 입어요.”김자옥의 귓가에 그때 그 다정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문득 그녀는 최연준에게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스쳤다. 하여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연준아, 나 옷 너무 적게 입은 것 같아...”“옷을 적게 입었다고요?”최연준은 그녀의 커다란 캐리어 다섯 개를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다.“적게 입었으면 많이 입으면 되죠.”그의 대답은 아주 직설적이었다.“옷은 충분하게 챙겨왔죠? 부족하면 가서 사 오라고 할게요.”이번에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했다. 김자옥의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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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최연준의 표정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김자옥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대체 왜 강서연에게 이렇게나 편견을 가졌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 여자를 지켜야겠다는 마음 하나는 변함이 없었다.“이 일은 그냥 이렇게 하기로 해.”김자옥이 쌀쌀맞게 말했다.“비록 너랑 임나연이 혼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두 집안에서 너희 둘을 결혼시키려 했잖아. 그래서 정리하자면 조금 시끄러울 거야. 그런데 걱정하지 마. 임씨 집안은 내가 나서서 해결할 테니까.”김자옥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였다.“넌 그냥 엄마 말대로 따르면 돼. 내가 얘기한 그 여자애랑 친해지려고 노력해봐.”“싫어요.”최연준이 퉁명스럽게 세 글자를 내뱉었다.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다 못해 주변의 공기마저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김자옥이 엄숙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다.“엄마.”최연준이 또박또박 말했다.“계속 그렇게 몰아붙이신다면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제 지분을 전부 뺄 겁니다!”“뭐라고?”김자옥이 화들짝 놀랐다.“오성의 룰이 맨체스터랑 다르다는 거 아시죠?”그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한 자 한 자 힘 있고 날카로웠다.“만약 이 회사에 제 지분이 없다면 외부자금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엄마가 먼저 투자했던 돈도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할 겁니다. 물론 엄마가 그 돈이 부족한 건 아니죠.”그가 냉정하게 말했다.“하지만 실패하는 그 느낌을 싫어하시잖아요. 만약 이 일이 외할아버지와 이사회, 심지어 삼촌의 귀에 들어간다면 엄마는 김중 재단의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그래도 계속 절 몰아붙이실 건가요?”김자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아무튼 저는 엄마가 얘기한 그 여자랑 만나지 않을 겁니다.”최연준은 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러니까 포기하세요!”...강서연은 원고를 제출한 후 집에서 윤문희를 보살피려고 신문사에 휴가 냈다.윤문희가 한사코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질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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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너 이 녀석...”김자옥은 강서연이 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들었다.강서연은 몸을 옆으로 돌리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김자옥을 본 순간 윤문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엄마, 아주머니가 엄마를 보러 오셨대요.”윤문희는 잠깐 침묵하다가 강서연이 아직 옆에 서 있는 걸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가서 장 봐. 엄마는 아주머니랑 얘기 좀 나누고 있을게.”강서연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걱정할 거 없어.”윤문희가 손을 흔들었다.“이 아주머니는 엄마랑 가장 친한 친구야!”강서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윤문희에게 휴대 전화를 꼭 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고 당부했다.강서연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김자옥의 눈빛이 복잡미묘했다.“부럽지?”윤문희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일어나서 차를 내리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그날 서화전에서도 알아봤어. 내가 딸 낳은 거 엄청 부러워하더라?”김자옥이 두 눈을 부릅떴다.‘예나 지금이나 계속 내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해 아주. 됐어, 나도 딱히 변한 건 없으니까 이번 한 번만 봐줄게.’“그래. 딸이 있어서 얼마나 좋아.”김자옥이 가볍게 웃었다.“하지만 딸 잘 지켜봐. 혹시라도 또 너처럼 쓰레기 같은 남자를 따라가면 어떡해!”“김자옥! 너...”‘역시 넌 한마디도 지지 않아!’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참으로 다양했다.출신이 고귀한 그녀들도 그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을 땐 여전히 서로의 곁을 지키던 그때의 그 어린 소녀였다.두 사람은 동시에 활짝 웃었다. 그동안 아무 연락도 주고받지 않다가 오랜만에 만나도 여전히 할 얘기가 끝도 없었다.고작 20분이면 마트에 다녀올 수 있었지만, 윤문희는 강서연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늦게 들어오라고 했다. 하여 그녀는 카트를 끌며 마트를 하도 돌아다닌 바람에 가격을 전부 다 외울 기세였다.윤문희는 그동안 겪었던 일을 김자옥에게 간단하게 들려주었다.김자옥은 그녀의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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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윤문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잠시 후 김자옥이 먼저 눈치채고 물었다.“설마 그 약의 레시피?”그녀는 윤씨 가문의 조상이 과거 왕실 귀족의 어의였고 대대로 이어져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남양의 독특한 약초와 결합하여 레시피를 만들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었다.윤문희는 만감이 교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자옥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그 레시피는 원래 네 것이야. 윤정재가 너한테 준 건 원래 주인한테 돌려주는 건데 그걸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레시피는 내 것이 아니야.”윤문희가 나지막이 말했다.“윤씨 가문의 과거 레시피는 진작 이리저리 흩어졌어. 나중에 우리 할아버지가 한 의대생을 지원해 줬는데 그분이 바로 정재 씨의 친아버지셨어. 그분이 계속 우리를 도와주었고 레시피도... 정재 씨의 아버지가 개발하신 거야. 그 약이 그때 아주 불티나게 팔렸대. 하지만... 내가 윤씨 가문을 나온 후로 윤제 제약공장에서 생산한 약들이 전부 레시피를 바꾸었대.”김자옥이 화들짝 놀랐다.“레시피가 네 손에 있어서? 그게... 말이 안 되는데. 윤정재가 그 레시피를 진작 외웠을 거 아니야.”분위기가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물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만 들려왔다.“그러니까 윤정재가 너한테 주는 마지막 마음이라는 건가?”김자옥의 목소리가 거의 기어들어 갔다.“그런데 왜 그걸 너한테 줬대?”윤문희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천천히 말했다.“난 정재 씨의 아버지를 뵌 적이 없어. 어릴 때는 정재 오빠라고 부르다가 나중에야 윤씨 가문의 양자인 걸 알았어. 그러다가...”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윤정재는 그녀를 끔찍이도 아꼈다.하지만 그때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들도 반대했고 그녀의 절친이었던 김자옥마저도 격렬하게 반대했었다.결국 윤문희는 홧김에 집을 나왔다. 원래는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윤씨 가문의 주인이 바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정재는 그녀를 포함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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