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531 - 챕터 540

1603 챕터

제531화 깊은 마음

권하윤은 허둥지둥 옷소매를 내렸지만 성은우의 표정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민 사장이겠네.”“네가 생각한 그런 거 아니야.”권하윤은 사고라도 날까 봐 얼른 소매를 내렸다.“민 사장이 너를 이렇게 대하는 데도 그 사람 편을 들어?”“내가 너무 많이 속여서 그래. 너도 나만 아니었다면 이렇게…….”“윤아.”성은우는 권하윤의 말을 끊었다.“너 누구한테도 잘못한 거 없어.”권하윤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오롯이 자리를 바라보는 성은우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네 삶도 이렇지 않았어야 했어. 너를 괴롭히는 사람도 많은데 너 자신마저 자기를 편히 놔두지 않으면 어떡해?”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권하윤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러 버린 것만 같았다.애써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순간 권하윤을 잠식시키는 바람에 침대에 엎드린 채 서러움을 토해 내버릴 것처럼 서럽게 울어버렸다.끝없이 떨리는 권하윤의 등을 보자 성은우는 손을 들고 잠깐 머뭇거리다 끝내 아무 말도 없이 등을 토닥였다. 평생 여자 한번 달래본 적 없는 것처럼 뻣뻣한 동작이었지만 권하윤에 대한 걱정이 묻어있었다.병실에 있는 남자는 여자의 등을 한번 또 한 번 토닥였다.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힘으로.너무 가볍게 두드리면 위로가 안 될까 봐, 너무 힘을 주면 놀라기라도 할까 봐 힘 조절하는 모습은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다정해 보였다.“얼씨구, 하소연이라도 하는 건가?”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병실 안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권하윤은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눈에는 아직 흘러내리지 못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전날의 기억이 눈앞에 또렷이 스쳐지나 권하윤은 민도준을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렸다.두려움에 질린 얼굴과 표정은 성은우를 마주하고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가끔은 가까워졌다 멀리 도망가 버리는 눈앞의 여자를 두고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민도준은 권하윤의 경계를 무시하고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며 권하윤을 빤히 내려다보았다.“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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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충격을 받다

성은우의 몇 마디 말은 마치 가시처럼 권하윤의 심장을 쿡쿡 찔러댔다.성은우는 스스로 멍에를 쓰더라도 권하윤을 속박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하지만 권하윤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어렵사리 한마디를 꺼냈다.“싫어요.”“음?”민도준의 목소리는 정서를 분별할 수 없었다.“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경성을 떠나게 해요. 그러면 도준 씨가 말했던 것처럼…….”권하윤은 목구멍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떫은맛을 삼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앞으로 은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게요.”민도준은 일전에 권하윤에게 이런 선택지를 준 적이 있다. 성은우가 살았든 죽었든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면 예전의 일은 모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그때는 성은우가 죽었든 살았든 관계하지 않을 수 없어 동의하지 못했지만 성은우가 안전한 지금, 권하윤은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이렇게 얽매여 있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민도준은 권하윤과 성은우를 번갈아 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어버렸다.“없는 사람이다 생각하겠다는 거 진심은 맞아? 혹시 내가 없는 곳에서 밀회라도 하려는 건 아니고? 우리 성은우 킬러님이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누구나 다 하는 사실인데 몰래 어디 숨어들어 만나고 갈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권하윤은 민도준이 믿지 않을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기에 갑자기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마 권하윤의 약속은 민도준에게는 믿을만한 게 아닐 거다.하지만 권하윤이 어떻게 하면 민도준이 이 사실을 믿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총성이 들려왔다.“탕, 탕, 탕.”연속 세 번 울리는 총성에 놀라 고개를 돌린 권하윤은 성은우 무릎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피를 보고야 말았다.순간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입만 뻐금거릴 뿐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성은우는 마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침대를 짚은 채로 민도준을 바라봤다.“아직도 마음 놓이지 않으시다면 다른 한쪽도 부러트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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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모든 사람이 다치다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하자 은찬은 조심스럽게 방으로 돌아갔다.은찬이 같은 하인은 그저 소식을 전해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어떻게 할지는 주인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니까.민도준은 담배를 꺼버린 뒤 곧바로 차를 운전해 민씨 저택으로 향했다.본채에 들어서자 휠체어에 앉아 약을 먹고 있는 민상철이 보였다.민상철은 민도준이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약을 먹을 먹는 데만 집중하더니 모두 먹고 난 뒤에는 장 집사를 불러와 입 주변을 닦았다.“여자 치맛자락에서 인제야 나왔어?”민도준은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더니 긴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툭툭 털며 입꼬리를 올렸다.“왜요? 질투라도 하시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여자를 만난다 해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제 할아버지니까.”만약 예전 같았으면 민상철은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바로 화부터 냈겠지만 지금은 그저 손에 든 염주를 내려놓을 뿐이었다.“도준아, 나는 너를 어릴 때부터 후계자로 생각하고 키웠다. 9년 전 네가 18살일 때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재능을 보였잖니. 1년 만에 그룹 절반을 거의 공제했으니, 만약 둘째네 부부가…….”잠깐 뜸을 들이던 민상철은 이내 말머리를 틀었다.“네가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너무 오만하고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게 제일 흠이야. 만약 그 성격 고치지 않으면 결국 모든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어.”민도준은 무심한 듯 손에 들려 있는 라이터를 빙빙 돌려대다가 민상철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서요? 지금 저더러 도나 닦고 착한 일을 해서 덕이나 쌓으라는 거예요? 이제 와서 너무 늦지 않았나?”민상철의 혼탁한 눈동자에는 잠깐 부끄러움이 스쳤지만 이내 숨겼다.“이번 주에 연회를 열어 네가 정식 후계자라는 걸 발표할 거다.”“오?”민도준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제가 민씨 가문을 물려받으면 식구들 남김없이 죽일까 봐 저랑 큰 숙부, 그리고 시영이까지 셋에게 똑같이 나눠줄 생각 아니셨어요? 아니면 황천길에 외로울까 봐 저더러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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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작별

민도준의 명령에 한민혁은 성은우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은찬이더러 안에서 지켜보라고 말한 뒤 다시 내려갔다.그 사이 민도준은 1층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워댔다.그 모습을 본 한민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민도준 앞으로 걸어갔다.“도준 형, 사람은 위층으로 보냈어. 블랙썬에 진씨 가문 사람들이 도착했는데 어떡할래?”민도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접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민도준한테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읽어낼 수 없었다.그때 한민혁이 위층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민용재 쪽에서 움직임이 끊이질 않는 것 같은데 요즘 박씨 가문과도 가깝게 지내는 것 같더라고. 시영 아가씨도 민용재네랑 왕래하는 것 같고. 이런 때에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돼.”눈빛 한 번에 한민혁은 바로 목소리를 낮춘 채로 작게 웅얼거렸다.“바람 피우는 현장을 덮치겠으면 위층에서 덮쳐야지 여기서 뭐가 보인다고.”“뭐라고?”순간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한민혁은 스스로 입을 찰싹 때리더니 어색하게 웃었다.“아무 말도 안 했어. 아니면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 테니 블랙썬 한번 갔다 오는 건 어때?”하지만 민도준이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 위층에서 갑자기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갓 시작했을 때는 조금 더듬대는 것 같았지만 아주 열심히 불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연주 소리였다. 심지어 듣기에 그닥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지는 매력이 있었다.그 시각, 위층에서는 점점 익숙해진 하모니카 소리가 활짝 열린 방에서 흘러나왔다.성은우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모퉁이에 기대 한번 또 한 번 의자에 앉은 여자를 위해 그녀가 가르쳐줬던 멜로디를 연주했다.바람이 불자 은찬은 담요를 가져다가 권하윤에게 덮어주려고 하다가 권하윤이 눈물을 글썽이며 성은우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순간 눈이 반짝 거렸지만 권하윤을 놀라게라도 할까 봐 은찬은 아무 말도 없이 물러갔다.성은우는 권하윤의 시선을 느꼈는지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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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멀고도 가까운

오후의 햇살은 마룻바닥을 밟으며 슬며시 방안으로 비춰들어 침대 끝자락을 닿을까 싶더니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남자 때문에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심지어는 남자의 포악한 분위기에 놀랐는지 조금씩 뒤로 물러나다 조용히 창문으로 빠져나갔다.그와 동시에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고 권하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컴컴한 밤이었다.정신을 차리고 몸을 살짝 움직이고 나서야 권하윤은 자기 손이 민도준의 팔을 감싸고 있고 몸 전체는 민도준의 품에 기대 있다는 걸 알아챘다.얼마나 잠잤는지 사지가 아파 났다.“이제야 깨났어?”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권하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하지만 다음 순간 방안 불이 켜지는 바람에 권하윤은 눈을 감았다 떴다를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시선이 점차 또렷해졌다.그와 동시에 실루엣만 흐릿하게 보이던 남자의 윤곽이 눈 안에 들어왔다.민도준은 어쩜 이런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잘생긴 데다 공격적이고 위험한 분위기를 띠고 있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심지어 권하윤마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민도준을 빤히 바라봤다.하지만 이상했다.분명 가까운 데 있는데 두 사람의 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으니.호박색 눈동자에 당혹함이 담겨 있었다.민도준은 권하윤의 이런 표정을 거의 본 적 없다.예전에는 그저 비위를 맞추려고 머리를 굴리거나 아니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현재는 마치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민도준의 눈부터 시작해 코 그리고 턱에 닿았다.그런 눈빛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민도준은 끝내 차가운 말투로 말을 꺼냈다.“왜? 설마 기억상실이라도 했다고 할 건가? 이제 나를 모르겠어?”자기가 또 미움을 샀다는 걸 인식한 권하윤은 눈을 내리깔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권하윤이 죽상이 된 모습을 보자 민도준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공기 속에 흐르는 고요함.이런 고요함은 사흘 동안 지속됐다.그리고 마침 나흘인 오늘 밤, 권하윤은 우렛소리에 놀라 깨어나더니 무의식적으로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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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영웅도 미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권하윤은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오직 민도준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고 싶다는 데만 정신이 팔렸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이에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애먼 이불만 손가락으로 뜯었다.그러다 끝내 불이 다시 꺼지는 순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어둠 속에서 권하윤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잠을 자지 않았다. 아니, 잘 수 없었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민도준을 바라보는 순간 머리에 여러가지 생각이 흘러들었다.‘민용재가 그랬나? 아니면 다른 원수?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지?’…….“이건 저도 알아요. 옛말에 영웅도 미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잖아요.”이튿날 은찬의 해석을 들은 권하윤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나 진지해.”“저도 진지하게 설명한 건데요?”은찬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민 사장님도 여인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해 매일 이 별장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패턴을 읽혀 매복하고 있던 놈들에게 당한 거고요.”패턴…….확실히 그건 맞았다. 민도준이 매일 저녁 개인 별장에 와서 휴식하니 만약 민용재가 또 암살을 저지른다면 뒤를 밟을 필요도 없이 별장 주위에 매복하고 있기만 해도 되니까.민용준이 또다시 암살을 저지르려 하는 걸 보니 마음이 많이 급한 모양이다.그 생각을 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음식조차 넘어가지 않았다.은찬도 권하윤이 정신이 딴 데 팔렸다는 걸 알았기에 눈을 깜빡이며 장난기 섞인 말을 꺼냈다.“민 사장님이 걱정되면 전화 해보는 건 어때요? 그러면 저 이번 달 보너스도 생길 것 같은데.”권하윤은 멍해졌다.“그 말 도준 씨가 한 거야?”“민혁 형님이 그랬어요. 제가 누나와 민 사장님을 화해하게 하면 보너스를 챙겨주겠다고. 게다가 저를 중매쟁이로 모시겠대요.”은찬이 일부러 자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챈 권하윤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려 억지웃음을 지어냈다.아침을 먹고 방에 돌아오고 나서 권하윤은 창가에 앉아 멍때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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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미쳤나?

밖을 내다보니 조용하기 그지없었다.보아하니 민상철이 사람을 모두 통제한 모양이었다.그제야 민도준이 요즘 왜 매일 별장에 오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마 민상철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겠지.하지만 권하윤은 두렵지 않았다. 만약 민상철이 지금 당장 권하윤을 죽이려 한다면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소파에 앉은 권하윤은 이내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이렇게 늦게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권하윤의 여유작작한 말투에 민상철은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참 쉽게도 내뱉네.”“저를 양손녀로 들이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예전 같았으면 민상철은 이 시간에 벌써 휴식을 취했을 거다. 때무에 불빛 아래에 있는 민상철의 낯빛은 조금 어두웠다.“내가 왜 왔는지는 알 거다.”나이가 든 눈에는 냉철함과 날카로움이 묻어 있었다.“너를 살려두려고 했지만 네가 이리도 야심이 있을 줄은 몰랐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야심이 있다 해도 민 사장님이 더 만만하지 않을 텐데요.”권하윤은 웃음이 나 그저 생각한 바를 말했지만 민상철이 듣기에는 그저 불에 기름을 붓는 거나 다름없었다.“그만하지 그러니. 결혼 날짜도 잡았으면서 시치미 떼긴!”“결혼 날짜요?”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권하윤은 그저 멍해졌다.‘결혼 날짜? 누구 결혼 날짜를 말하는 거지?’민상철의 진노하는 어조 속에서 권하윤은 뭔가 조금 눈치챘다.아니나 다를까 민도준은 얼마 전 박 대표가 딸 박민주를 위해 혼담을 꺼낸 걸 거절했다고 한다. 23일에 결혼할 거라고 박 대표가 박민주를 데리고 와서 함께 즐기다 가라는 말과 함께. 그동안의 헛된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라면서.신부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23일이라면…….그건 민도준이 전에 권하윤더러 결혼 날짜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권하윤이 선택했던 날짜다.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민상철이 빈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그리고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도준 씨가 미쳤나?’권력다툼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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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여자 때문에 가족을 버리다

권하윤은 뒤에 들려오는 몇 마디는 듣지 못하고 앞에 한마디만 들었다.‘도준 씨가 박민주와 결혼하면 후계자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그런데 그런 기회를 그대로 거절했다는 건가?’가슴에 순간 뜨거운 물이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만약 그걸 동의했더라면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싸울 필요가 없을 텐데.순간 자기에 대한 혐오감이 더해졌다.‘나는 어디를 가나 짐밖에 되지 않네. 은우한테도, 도준 씨한테도.’오랫동안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민상철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살기를 번뜩였다.“고민해 보죠.”권하윤은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민상철은 그것에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끝까지 망치려 한다면 그냥…….’민상철이 잠깐 고민하고 있을 그때.갑자기 “아!”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그러더니 곧이어 민상철 신변을 지키는 경호원이 안으로 날아들었고 덩치 큰 몸뚱아리는 마치 낙엽처럼 바닥에 미끄러 민상철 암에 멈췄다.남자는 피떡이 된 얼굴로 애원했다.“어르신, 저 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하지만 그 소리마저 그를 그렇게 만든 남자가 들어오는 순간 뚝 끊겼다.현관에서 민도준은 고개를 움직이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손에는 자기 것이 아닌 피가 흐르고 있었다.이윽고 그 피를 아무렇지 않은 듯 털어버리고는 웃으며 민상철을 바라봤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 뭐 손주며느리 뻘 되는 여자와 간통이라도 하려고요?”“…….”권하윤은 절망한 듯 눈을 감았다. 민상철의 표정은 보지 않아도 어떨지 짐작이 갔다.역시나 곧이어 버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못된 놈!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민도준은 바닥에 누워 뒹굴고 있는 경호원을 발로 밟고 비명소리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 민상철 앞으로 다가갔다.“제가 틀린 말 했나요? 사람을 시켜 며칠 동안 관찰하게 하다가 제가 없는 날 찾아온 걸 보면 의심이 안 갈 수 없는데요.”“민도준!”민상철은 민도준의 이름만 부르고도 숨을 고르지 못했다.하지만 장 집사는 다른 경호원들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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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너무 많은 걸 포기하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깃들어 캄캄했고 공기 속에는 아직 어제의 폭우 때문에 남은 습기가 서려 있었다.민상철이 떠난 뒤 민도준이 밖으로 나가 별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명령하자 사람들은 모두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민도준은 하려던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권하윤을 발견했다.“오늘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우물대다 어렵사리 내뱉은 말이었지만 여전히 분유처럼 덩어리가 져 제대로 풀어지지 않았다.“그래서? 내일 시신 수습하러 올까?”모든 걸 알게 된 권하윤은 마치 산을 등에 업은 듯 무거워 고개도 들지 못했다.“제가 죽으면 오히려 편해질 거라면서요.”민도준은 권하윤의 말에 피식 웃더니 권하윤의 이마를 콕콕 찔렀다.“땅 파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 살아.”익숙하면서도 장난기 섞인 말투에 권하윤은 눈가가 시큰거리더니 눈앞이 희미해졌다.슬프고, 미안하고, 원망스럽고, 마음 아프고 또 감동스럽고…….여러 가지 대립된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출구를 찾지 못해 좌우충돌하는 것만 같았다.가장 사람을 피 말리는 건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게 아니다.오히려 그 경계선에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는 것이지.“또 왜 울어?”귀찮고도 짜증 나 하는 말투였다.권하윤은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그저 흐느낌밖에 나오지 않았다.손을 들던 민도준은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보고는 권하윤의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었다.“맨날 울기만 하네.”“…….”“얼씨구? 말했다고 더 울어?”권하윤도 울고 싶지 않았지만 이건 유일한 분출구였다.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이, 어느새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민도준은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권하윤을 보더니 무심한 듯 물었다.“다 울었어?”하지만 아직도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 권하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을 목 끝까지 끄집어 올리고는 민도준을 등진 채 슬픔 가득한 뒤통수만 남겼을 뿐.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의 불은 꺼지고 침대 머리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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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어떤 여자 좋아해요?

권하윤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지만 끝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설마 못 들었나? 아니면 대답하기 싫은 건가?’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는 사이, 권하윤은 갑자기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민도준은 그저 23일에 결혼식을 올린다고만 했지 상대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는 거.그런데 그저 날짜만 듣고 자기라고 확신하다니. 아니라면 이런 물음을 묻는 것마저 어색한 상황이 된다.이에 권하윤은 퇴로라도 마련할 생각으로 한마디 더 보충했다.“누구랑 결혼하는지 물어봐도 돼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덜미에 손이 얹히더니 민도준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권하윤을 바라봤다.“사실 나도 아직 선택하지 못했는데. 하윤 씨가 나 대신 선택해 주는 건 어때?”권하윤은 큰 손에 잡혀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민도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흘겼다.“박민주 씨는 어때요?”“박민주?”민도준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굴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뭐, 괜찮기는 하지. 집안 좋지 나밖에 모르지…….”민도준이 박민주의 장점을 하나하나 열거할 때마다 권하윤의 손은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하지만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말머리를 틀었다.“그런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런지 몸도 대뇌처럼 아직 덜 익었어.”“풉-”권하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머리카락으로 애써 가리느라고 애를 썼다.확실히 민도준다운 대답이었다. 박민주는 겉보기에도 예쁘장하게 생긴 데다 아직 천진난만하여 쫓아다니는 남자가 절대 적지 않을 거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렇게 평가하다니.그때 민도준이 뒤로 몸을 기대며 느긋하게 물었다.“뭘 웃어? 계속 선택해.”“그러면 고은지 씨는요?”“고은지는…….”민도준은 끝 음을 길게 늘어트리더니 말을 이었다.“말 잘 듣지, 학습 능력 뛰어나지, 확실히 좋은 선택지긴 해.”나지막하고도 야릇한 목소리를 듣자 권하윤이 이불을 꽉 그러쥐었다.내심 또 민도준이 말머리를 돌릴 거라고 기대했지만 끝내 말이 돌아오지 않아 권하윤은 입을 삐죽거렸다.“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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