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471 - 챕터 480

1603 챕터

제471화 미안함일까 미련일까?

위층.민도준은 창가에 서서 권하윤이 차에 내려 비틀거리며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높은 건물 옆에 서 있으니 권하윤의 작은 몸집이 더 작게 보여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만 같았다.그때, 등 뒤에서 한민혁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도준 형, 하윤 씨 이미 갔어.”“응.”말을 전한 뒤 한민혁은 바로 떠나지 않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실 형이 병원에 있을 때 권하윤 씨가 여기 지켜내느라 엄청 고생했어. 공 가주를 찾아간 것도 형네 식구들을 누르기 위해서였고. 하윤 씨가 아니라면 여기 이미 아수라장이 됐을 거야.”“그래?”민도준은 몸을 돌려 가르침을 바라는 듯 물었다.“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그 섬뜩한 말투에 숨은 뜻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한민혁은 그간 이바닥에서 굴렀다고 말할 자격도 없을 거다.이윽고 한민혁은 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말을 바꾸었다.“그냥 헛소리 한 거야.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내 말이 뭐라고. 흘려들어 하하하.”민도준은 한민혁을 무시한 채 소파에 앉았다.눈살을 한껏 구긴 민도준의 모습에 한민혁은 걱정되는 듯 입을 열었다.“도준 형, 괜찮겠어? 의사라도 부를까?”“필요 없어. 안 죽어.”민도준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자 한민혁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얼른 뒤로 물러났다.“그러면 휴식하고 있어. 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일 있으면 나 부르고. “문이 다시 닫히자 소파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있던 남자의 입꼬리는 비아냥거리는 곡선을 그리며 휘어졌다.‘그렇게 떠날 수 없다면 내 술잔에 그렇게 고민도 없이 약을 탔을까? 하, 본인도 아마 미안한지 아니면 미련인지 구분을 못 하겠지.’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길들지 않은 것도 모자라 오히려 나를 물려고 했으면서 내가 부처님이라도 되는 줄 아나?’살짝 눈을 붙이고 있을 때 갑자기 문소리와 함께 음식 냄새가 풍겨 들어왔다.조심스러운 발소리를 보니 한민혁이 아닌 건 분명했다.아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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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기력을 보충하다

권하윤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을 보자 그제야 생각났는지 얼른 입을 열었다.“도준 씨가 걱정돼서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을 좀 사 왔어요.”자기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권하윤은 보온 박스를 열더니 그릇을 까내 뜨끈뜨끈한 국을 작은 그릇에 덜어냈다.“도준 씨 한번 드셔…….”하지만 안에 든 내용물을 보는 순간 말이 뚝 끊겼다.민도준은 그릇 안에 담긴 소꼬리를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물었다.“기력을 보충한다는 게 이쪽을 말하는 거였어?”권하윤도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사장님이 뭘 원하냐고 물을 때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때려 박아서 만들어 달라고 했던 게 화근이었을까?‘내가 말한 기력은 몸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이쪽을 가리킨 게 아닌데…….’권하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깊은 심정이었다. ‘뭐, 반찬은 그래도 괜찮겠지?’애써 침착하며 음식을 담은 그릇을 열어보는 순간 눈앞에 거뭇거뭇한 해산물들이 보였다.민도준은 그중에서 가장 큰 굴을 하나 집어 들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음, 확실히 내 몸 걱정하는 걸 느꼈어.”젓가락을 내려놓는 동시에 굴을 다시 그릇에 담으며 민도준은 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걱정하지 마. 내가 다친 곳은 신장 쪽과 머니까.”권하윤의 얼굴은 순간 잿빛이 되었다. 조금 아부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은근히 암시를 한셈이니.더 이상 민도준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권하윤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섰다.“저 먼저 가볼게요.”작은 걸음으로 눈치를 보며 물러나는 권하윤을 보니 며칠 사이에 살이 쭉 빠진 것만 같았다. 호박색 눈동자는 곁눈질하며 눈치를 살필 때마다 반짝거리며 “나 좀 잡아줘요”라는 암시를 노골적으로 해댔다.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는 민도준의 모습에 권하윤은 끝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심지어 작은 머리 위에 먹구름이라도 낀 것처럼 우중충해 보였다.그러다가 권하윤의 손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두 글자가 들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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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과하게 보충하다

분명 민도준이 자신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권하윤은 몸 안에 자꾸만 불덩이가 타오르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이건 약물을 마셨을 때 느꼈던 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르는 욕망과는 달리 왠지 모르게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았다.심지어 그런 갈증은 온몸의 신경을 갉아 먹고 있었다.권하윤이 자기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자 민도준은 재밌다는 듯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하지만 권하윤은 자기를 그냥 내버려 두는 민도준을 비겁하다고 생각할 새가 없었다. 이미 온 신경이 담배를 낀 긴 손가락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핏줄이 튀어나온 손등이 희뿌연 연기에 가려져 야릇하면서도 남성미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걸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따가워지고 따라서 몸 안도 열기가 차올랐다.민도준은 재밌는 듯 권하윤을 바라봤다. 그가 권하윤에게 먹였던 음식을 만약 남자가 먹었다면 지금쯤 아마 욕망에 휘둘려 미쳐버렸을 거다.‘그런 걸 덜컥 사 와서 나한테 먹이려 하는 건 우리 제수씨밖에 더 있을까?’민도준은 담배를 끝까지 피우고 천천히 일어났다.그때 권하윤도 따라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권하윤의 목소리는 어느새 쉬었는지 쇠를 긁는 소리가 났다.“도준 씨, 어디 가요?”“샤워하러.”민도준은 발갛게 상기된 권하윤의 얼굴을 바라봤다.“왜? 같이 씻으려고?”당장이라도 덮쳐버리고 싶은 걸 겨우 의지로 버티고 있는데 같이 샤워하자니?그건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을 거다.권하윤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자기의 뜻을 밝히자 민도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밖에서 기다려.”권하윤은 그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눈에서 멀어지면 복잡하던 마음도 진정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에 권하윤의 머리는 갑자기 상상도를 펼치기 시작했다.그러던 그때, 인중이 뜨거워지더니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휴지를 찾다 못 한 권하윤은 코를 막은 채 욕실 문을 두드렸다.“저, 저 세수만 좀 하고 갈게요.”문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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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고백

민도준의 눈빛에 드리운 잔인함에 권하윤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하지만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커다란 손이 어깨를 더 힘껏 움켜쥐는 바람에 권하윤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이에 권하윤은 민도준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 위에 얹었다.“저 정말 잘못했어요. 진짜예요. 저 용서해 주면 안 돼요?”“그래서?”기분을 알 수 없는 한 마디에 권하윤은 일 순 멍해졌다.“그래서라니요?”“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안 떠나고 계속 나랑 자려고? 아니면 죄책감이 가라앉으면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쌩 도망쳐 버리려고?”“저는…….”민도준의 허를 찌르는 물음에 권하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그저 민도준이 무사하게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차지하면 그때…….권하윤의 막연함이 민도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역시.’씁쓸한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스스로도 생각 안 해봤나 보네.”권하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민도준은 권하윤에게 뜸 들일 기회도 주지 않고 손을 놓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러면 지금 생각해. 갈지 말지. 지금 가면 경성을 떠날 기회를 줄게. 앞으로 다시 돌아오지도 말고.”“하지만 안 간다면 이제 기회는 없어. 도망치려는 게 나한테 걸리면 어떤 결과일지 하윤 씨도 잘 알 테니까.”희뿌연 연기가 민도준을 희미하게 감쌌다.“선택해.”연이은 몇 마디는 권하윤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면서 두 가지 선택에 대한 결과를 생각해야 했다.만약 지금 떠난다면 민도준을 포기한다는 뜻이니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다…….‘하지만 간다고 정말 안전할 수 있을까? 공태준이 내가 사라졌다고 도준 씨한테 모든 사실을 말해버리면 어떡하지?’민도준이 이렇게 쉽게 권하윤을 풀어준다는 건 그만큼 쉽게 다시 찾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복수를 하려면 얼마든지 다시 찾아 권하윤의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하지만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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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내 곁에 있고 싶다고?

“내 곁에 있고 싶다고?”“네!”권하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민도준은 끝내 허리를 숙여 양손으로 침대를 짚으며 권하윤 앞에 바싹 다가갔다. 하지만 친근한 동작과는 달리 입꼬리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잊었어? 민씨 저택에서 내가 기회를 줬을 텐데?”민씨 저택?순간 매원에서 드레스를 고를 때 민도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무슨 뜻이냐면, 하윤 씨가 죽기 살기로 나한테 시집오겠다고 하면 내가 승현이를 대신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야. 제수씨, 잘 생각해.’하지만 그때 권하윤은 성은우의 죽음 때문에 민도준을 미워하고 있어 죽이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었다.더욱이 너무 가능성이 없는 얘기를 한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그런데 민도준의 말투를 들어보니 권하윤은 이제야 뭔가를 알아차린 듯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만약 제가 그날 동의하면, 정말 저랑 결혼 할 생각이었어요?”“응.”민도준의 가벼운 대답에 권하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잇따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심장을 조여왔다.‘도준 씨는 그날 나랑 결혼하려고 했는데, 나는 도준 씨를 죽이려 한 거네.’어쩐지, 그제야 그날 화를 내던 민도준이 이해가 됐다.순간 배짱이 사라진 권하윤은 어깨가 축 처지더니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미안해요. 몰랐어요. 저는 그저 도준 씨가 농담하는 줄로만 알았어요.”아래로 떨군 고개가 억지로 들려 권하윤에게 움츠러들 여지도 주지 않더니 잇따라 민도준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몰랐던 게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았겠지.”더 이상 피할 수도 없게 된 권하윤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민도준의 말이 사실이니까.그때 권하윤은 성은우를 위해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민도준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었기에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권하윤이 미안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민도준이 또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참, 그때뿐만이 아니라 고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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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나랑 같은 마음일까?

권하윤은 불쌍한 눈빛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죄송해요. 제가 도준 씨한테 잘못했다는 거 알아요.”민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권하윤이 또 뭘 하려는지 조용히 지켜봤다.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권하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래서 결심했어요. 도준 씨를 잘 돌보면서 보상해 줄게요.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겠네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권하윤은 쪼르르 달려가서 이불을 침대 시트를 갈고 이불을 펴더니 활기찬 목소리로 민도준을 불렀다.심지어 옷소매를 쓱 걷어 올린 채 작은 손으로 침대를 팡팡 두드렸다.“도준 씨, 이불 폈으니까 이제 눕기만 하면 돼요.”민도준은 혀로 볼을 꾹 밀면서 흥미로운 눈빛을 드러냈다.‘하, 이런 같잖은 핑계까지 생각해 내다니, 참 뻔뻔하네.’하지만 권하윤은 결코 겉으로 보여준 것처럼 침착하지 않았다. 작은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쥔 채 애써 티를 내고 있지 않을 뿐.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기만 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차라리 뻔뻔하게 옆에 딱 붙어 도준 씨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마음이 더 편해.’생각은 쉬웠지만 행동에 옮기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특히 민도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강박적인 눈빛으로 지켜보기만 하니 긴장감은 배가 됐다.민도준이 거절하거나 그대로 자기를 밖으로 던져버릴까 봐.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민도준을 잡아끌면서 권하윤은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도준 씨, 피곤하죠? 얼른 자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몸에 좋아요.”심지어 팔을 흔들면서 은근슬쩍 애교를 부리더니 손가락으로 민도준의 손바닥을 살살 긁어댔다.민도준은 권하윤에게 잡힌 손을 들어 올리며 자기를 칭칭 감고 있는 권하윤의 손까지 함께 잡아당겼다.“나 돌봐주겠다고?”권하윤은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의 진정성을 표현하려고 애썼다.“좋아. 그렇다면 남아.”웬일인지 민도준은 쉽게 동의했다.이에 권하윤은 눈을 반짝이더니 민도준이 말을 다시 무르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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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아직도 많이 아파요?

언제 깨어났는지 모를 민도준을 보자 권하윤은 코끝이 찡해났다. 민도준의 팔은 권하윤보다 빨리 그녀를 품에 감아 안았다.곧이어 흐느낌 소리가 민도준의 팔 사이에서 흘러나왔다.“도준 씨, 아직도 많이 아파요?”하지만 권하윤은 민도준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흐느끼는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피까지 토했는데 당연히 아프겠죠.”이 순간만큼 권하윤은 머리를 굴리며 교활하게 굴던 모습을 던져버리고 진심으로 구슬프게 울었다.그 때문에 잠에서 깬 민도준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 우습기도 해서 손을 뻗어 권하윤을 자기 품속에 끌어들였다.“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울어?”속눈썹은 촉촉하게 젖어 파르르 떨릴 때마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권하윤의 모습은 가엾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흐느끼다 못해 뭉개진 발음으로 애써 한 마디를 토해냈다.“이제 저 미워진 거죠?”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눈물을 닦아내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응.”그 소리에 권하윤은 더 구슬피 울면서 민도준을 끌어안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흑흑, 저도 제가 미워요.”“됐어. 그만 뚝 그쳐.”민도준은 인내심 있게 말하며 권하윤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그때 권하윤이 고개를 들더니 불쌍한 얼굴로 물었다.“그러면 저 여기서 자도 돼요?”눈물범벅이 된 얼굴은 서러움에 잔뜩 부풀어 올라 거절하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하지만 그 몇 초간 멈칫하는 동안 권하윤은 어느새 이불 안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었다.이윽고 가장 안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눕더니 손가락으로 가운데에 선을 그으며 자기 구역을 만들었다.“저 요만큼만 차지할게요. 절대 도준 씨 잠 방해 안 할게요.”민도준은 더 이상 권하윤과 말다툼하기 귀찮았는지 얼른 자리에 누웠다.공기 속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점차 맑아지는 하늘 때문에 커튼 사이로 스며든 빛이 마침 민도준 얼굴에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권하윤은 조용히 민도준의 얼굴 윤곽을 눈에 새겼다.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다 보니 권하윤은 불안한 듯 몸을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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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민승현을 대신하다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할아버지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제수씨가 인사를 드리는데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노망나신 것도 아니고.”“민도준! 너…… 콜록콜록…….”“할아버지, 괜찮으세요?”민시영은 몸을 반쯤 웅크리고 앉아 민상철의 등을 두드렸다.한편, 권하윤이 멀뚱멀뚱 서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민도준이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권하윤이 움직이기도 전에 민상철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왔다.이런 상황에서 민도준의 곁에 다가가는 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권하윤은 민도준의 말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기에 무거운 눈을 딱 감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러자 민도준은 사람들 앞이라는 걸 개의치 않는 듯 권하윤을 품속으로 끌어들였다.“우리 소리에 깬 거야?”권하윤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뻔뻔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어젯밤 늦게 잠들었으면서 더 자지 않고 뭐 하러 벌써 깨났어?”다들 성인이었기에 이 이상야릇한 한마디에 담긴 뜻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런 적이 없는 권하윤은 억울한 나머지 당장이라도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아니나 다를까, 그 말 한마디에 민상철의 눈빛은 한층 어두워졌다. 심지어 옆에 있던 민용재마저 뭔가를 알아내려는 듯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왔다.순간 권하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두려워서라기보다는 민도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였다. 민용재가 민도준을 보러 다급히 찾아온 건 절대 민도준을 관심해서가 아닐 테니까.‘설마, 도준 씨가 며칠 만에 회복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확인하러 온 건가?’그제야 권하윤은 민도준이 사람들 앞에서 이상야릇한 말을 한 게 자기를 놀리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민용재에게 연막탄 작전을 펼치려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생각을 정리하고 난 권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도준 씨도 어젯밤 늦게 잤으면서 오늘 빨리 깨났잖아요.”그 한마디에 겨우 숨을 돌린 민상철은 또다시 기침하기 시작했다.한편 눈썹을 치켜올린 민도준의 눈꼬리에서 미소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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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저한테 무슨 자격이 있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민도준은 여전히 나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안 된다고요? 제가 언제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허락받고 하는 거 봤어요?”민상철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지만 민도준은 여전히 광기를 숨기지 않았다.시선이 마주친 곳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고 일촉즉발 할 것만 같은 암류가 감돌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민상철은 끝내 시선을 거두었다.“너희들은 먼저 나가 있거라.”이건 민도준과 단독으로 얘기하겠다는 뜻이었다.문이 닫히자 권하윤의 마음은 더한층 불안해졌다.현재 민씨 가문 형제들의 권력다툼이 한창인 데다 민용재가 기회를 엿보며 민도준을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는데 이럴 때 민상철과 척지는 건 너무나도 바보 같은 선택이다.권하윤이 한참 동안 마음졸이고 있을 그때, 갑자기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꺼내서 확인해 보니 성은우가 보내온 문자였다.일전에 뭔가 처리할 일이 있다면서 떠났으니 며칠간 소식이 없는 것도 정상이었다.하지만 이번에 성은우는 한번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왔다.성은우는 좀처럼 먼저 찾아오는 적이 드물기에 권하윤은 뭔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오후에 만나자고 바로 답장했다.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호주머니 안에 다시 넣은 그때, 권하윤은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눈빛을 느꼈다.고개를 돌아보니 민용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었다.별다른 표정이 없었지만 살갗을 뚫고 뼛속까지 파고들려는 듯한 눈초리에 권하윤은 불쾌감이 들었다.그때 권하윤의 어두운 표정을 눈치챘는지 민시영이 얼른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한창 말하고 있는 그때, 방안에서 민성철의 연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영아.”민시영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사람의 대화는 이미 끝난 듯했다.두 사람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민상철의 얼굴은 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밖으로 내지르지 못한 담담함 같은 거였다.심지어 권하윤을 보는 순간 민상철은 마치 파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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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애를 쓰다

민도준은 손가락으로 권하윤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어디 끝까지 참아 봐.”하지만 역시나 권하윤은 다음 순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민도준이 일어나 밖으로 향하는 걸 보자 “절대 말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긴 거다.“어디 가요?”민도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권하윤은 그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주인한테 버림받은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권하윤에게 단단히 붙잡힌 민도준은 손을 빼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권하윤의 눈에 민도준은 지금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절대로 혼자 내보낼 리 없었다.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리며 권하윤이 단 하루 만에 저지른 일을 열거했다.“내 잠을 방해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데 갑자기 뛰쳐나오고, 나한테 엉겨 붙어 일도 못하게 하는 게 하윤 씨가 말한 돌봄인가 봐? 응?”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오른 권하윤은 끝내 손을 풀었다.“그건, 처음이라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죠.”민도준은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경험 키워서 다시 와. 안 그랬다가 내 일을 망칠까 봐 두렵네.”“…….”눈앞에서 문이 닫히자 미움을 받은 권하윤은 한참 동안 풀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얼른 교훈을 섭취해 오늘은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그러다가 “간병인”이라는 신분마저 잃게 되면 안 되니까.때문에 권하윤은 이불을 안아 베란다에 펼쳐 놓고 햇볕 쬠을 했다. 물론 그다음은 없었지만 말이다…….솔직히 방은 매일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에 권하윤이 할 일이 별로 없는 건 사실이었다.의식주에서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자 권하윤은 끝내 선물이라도 주기로 결심했다.그렇게 내린 결정이 바로 예쁜 잠옷을 사주는 거였다.쇼핑몰에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자 권하윤은 쇼핑백을 들고 성은우와 약속한 공원으로 향했다.평일 오후라 그런지 공원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 권하윤은 그늘 아래 벤치에서 성은우를 기다렸다.오후의 햇살이 나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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