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1051 - 챕터 1060

1603 챕터

제1051화 약속

하윤은 싱글벙글 웃으며 도준의 목을 끌어안더니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여보.”마치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도준은 하윤을 제 품안으로 끌어당겼다.“누가 보면 불륜이라도 저지르는 줄 알겠네. 뭐 하러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해?”하윤은 도준의 품에 안긴 채 발을 굴렀다.“그냥 도준 씨라고 부르다가 갑자기 호칭을 바꾸자니 왠지 존중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요.”“쓸데없는 생각은 참 많이 해.”도준은 하윤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녀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하윤은 도준의 다정한 모습이 좋은지 도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애교 부렸다.“혹시 화난 건 아니죠?”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윤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 되물었다.“내가 무서워?”‘어제 했던 대화는 다 지난 거 아니었나?’갑작스러운 언급에 하윤은 도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손으로 대충 표시하며 얼버무렸다.“조금요.”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하윤의 손을 꼭 감싸 쥐며 하윤이 손가락으로 표시한 작은 틈마저 닫아버렸다.“이만큼도 무서워할 거 없어.”하윤은 어안이 벙벙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도준을 바라봤다.“앞으로 싫으면 싫다 직접 말해. 곤란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도준은 매혹적이면서도 진지한 눈으로 하윤을 빤히 바라보며 그동안 꿈에 그리던 약속을 해주었다.그 모습에 하윤은 넋이 나간 듯 몇 초간 가만히 있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정말이에요?”“모든 사람이 다 자기 같을 줄 알아? 내가 약속한 거 언제 안 지키는 거 봤어?”하긴, 지난 일을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한 뒤로 도준은 한 번도 하윤의 지난 잘못을 언급한 적이 없다.심지어 하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모두 주었고.그 때문에 하윤은 이 순간이 더 믿기지 않았다.“그럼 만약 제가 도준 씨 말 안 들으면요? 일부러 성깔 부리면…….”“마음대로 해.”하윤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도준을 바라봤다.‘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이정도 신분 차이라면 도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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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2화 똑같이 돌려주다

호텔에서 나온 하윤은 왠지 마음이 홀가분해져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하지만 공은채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저를 관찰하고 있을 걸 생각하자 이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도준 ‘몰래’ 나온 거니 당연히 한민혁한테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없었기에 하윤은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았다. 그러던 그때 하윤은 갑자기 좋은 수가 번쩍 떠올랐다.‘잠깐, 공은채도 사람 그렇게 잘 모함하는데, 나도 똑같이 돌려줘야지.’하윤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핸드폰을 꺼내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핸드폰 액정을 두드렸다. 것 보기에는 분명 어플로 콜택시를 부르는 듯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석지환에게 문자를 보낸 거였다.[제가 지난 번에 말했던 말 기억해요? 공은채가 오빠 몰래 도준 씨 만나고 다닌다던 말. 만약 흥미 있으면 호텔로 구경하러 와요.]이렇게 남긴 문자 아래 호텔 주소와 룸 번호를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문자를 보낸 뒤 하윤은 자연스럽게 콜택시 어플을 열어 택시를 부르면서 무심코 주위를 둘러봤다.‘공은채, 그러게 누가 남의 남자 꼬시래? 너도 한번 당해 봐.’하윤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택시 한 대가 앞에 멈춰 서자 하윤은 얼른 차 안으로 들어갔다.……한편, 하윤의 문자를 받은 순간부터 석지환의 눈은 복잡했다.믿음은 마치 루퍼트 왕자의 눈물과 같아 단단한 부분은 총알도 꿰뚫을 수 없지만 약한 꼬리 부분은 살짝 누르기만해도 부서지기 마련이다.하윤이 처음 공은채에 대해 말했을 때, 석지환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저를 어둠 속에서 꺼내 준 여자를 그렇게 악독한 여자와 연관 지을 수 없으니까. 그가 알던 공은채는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해원에 돌아오고 나서 공은채가 제 이익을 챙기는 모습이 번번이 눈에 들어왔다.이런 저런 방법으로 저를 구슬려 껍데기만 남은 공씨 집안과 손을 잡게 하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솔직히 석지환도 순탄치 못한 공은채의 운명과 한순간 망해버린 공은채의 집안 때문에 그녀를 더 동정한다. 하지만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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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3화 지나간 일

오후 1시 반.하윤은 공태준이 준 명함대로 공천하가 수감된 감옥을 찾았다.이 곳에 수감된 사람은 모두 경제사범들이기에 환경은 그나마 괜찮았다. 태준이 미리 손쓴 덕분에 하윤은 공천하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공천하는 전에 보던 때보다 많이 변해 있었다. 얼굴은 핼쓱해졌고 옷차림도 더 이상 고급 정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눈빛만큼은 여전히 덤덤하고 도도했다.하윤을 본 순간 공천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뭘 알고 싶어서 찾아왔지?”공천하가 이렇게 말하다면 하윤도 내외할 필요가 없었다.“당신이 우리 아빠 죽였어?”“이성호 친구를 찾아가 돈 좀 찔러주면서 내 계획대로 움직여달라고 꼬드긴 걸 말한다면 맞아. 그런데 투신한 건 멘탈 약한 네 아비를 탁해!”“닥쳐!”하윤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우리 아빠는 반평생 음악밖에 모르던 분이셨어. 그런데 그런 분한테 그렇게 더러운 누명을 씌우다니! 당신이 사라미야?”격양된 하윤의 반응에도 공천하는 여전히 무덤덤하게 대답했다.“딸이 미쳐서 아비보다 더 늙은 남자와 살겠다는데 그럼 어떡해? 은채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선에서 이성호한테 교훈을 주려면 그러는 방법 밖에 없었어.”공천하는 제 딸을 유혹한 남자한테 이정도 벌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모든 게 공은채가 꾸민 짓이라는 건 모르는 듯했다.기운 없이 앉아 있는 공천하를 보자 하윤은 문득 지금 화를 내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에 하윤은 깊은 숨을 들이켜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그럼 공은채는 왜 하필 우리 아빠와 같이 살겠다고 고집했지? 대체 왜?”“은채의 친모 염옥란은 해원 제일의 미녀였어…….”그 때문에 부잣집 귀공자든 아니면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든 모두 염옥란에게 구애했었다.하지만 염옥란의 마음 속에는 오직 공천하 뿐이었다.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염옥란이 공태준을 임신했다. 그때만해도 공천하는 아직 가주가 아니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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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4화 공은채의 출생

그 일이 있은 뒤, 공천하와 염옥란은 겉으로 아무 일도 없었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애초에 임신한 걸 알았을 때 염옥란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이 덕분에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아이가 두 사람을 갈라 놓는 불씨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사랑하는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공천하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염옥란과 함께 산부인과에 갔었다.하지만 의사가 웃으면서 임신한지 2달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공천하의 낯빛은 이내 어두워졌다. 그 당시 기쁨에 취해 있던 염옥란은 그런 공천하의 표정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배를 문지르며 딸애였으면 좋겠다는 염옥란과 달리 공천하는 심란하기만 했다. 심지어 배를 문지르는 아내의 동작이 눈에 거슬리기까지 해 버럭 소리질렀다.“그 애 지워!”염옥란은 공천하의 엄포에 놀라 손을 뿌리쳤다.“당신 지금 미쳤어? 어떻게 당신 애한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어?”“내 아이라고? 그날 곽도원과 뭔 짓을 했는지 알게 뭐야!”터질 게 끝내 터져버렸다.그간 남편이 저한테 냉담하다는 걸 염옥란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제가 곽도원과 한 지붕 아래에 하룻동안 함께 있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이정도로 생각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날 대화만 했다고 했잖아. 그 사람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어! 그리고 나 그 집안으로 밀어 넣은 거 당신이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그래 맞아. 내가 들어가라고 등 떠밀었어. 그런데 거짓말하라고는 한 적 없어. 관계가 벌어졌으면 벌어진 거지 왜 그걸 속여? 설마 오래 전부터 서로 붙어먹던 사이 아니야?”“짝!”염옥란은 공천하의 뺨을 치며 끝내 오열했다.“당신, 당신이 어떻게…….”그날 분명 남편과 아이 때문에 곽씨 저택에 들어간 건데, 이제 와서 이런 수모를 겪는 게 염옥란은 억울하고 분했다.그제야 공천하도 제 말이 심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이내 말투를 누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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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5화 할 수 있는 일

여기까지 말하던 공천하는 회한에 잠긴 듯 눈을 감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런데 그때 내가 그랬거든. 유전자 검사는 아이가 태어난 날 바로 했다고. 아이는 내 아이가 맞더라고. 그런데 여전히 구역질 난다고.”이야기를 듣는 내내 하윤은 염옥란이 얼마나 억울하고 절망스러웠을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공태준이 당연히 오해하고 일부러 두 모녀를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게 너무 충격이라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그럼 염옥란 여사는 그 일 때문에 자살한 거겠네?”공천하는 그 말에 갑자기 흥분했다.“아니. 내 아내는 따뜻해지려고 숯을 피운 것뿐이지 자살한 게 아니야! 따뜻해지려고 했던 것뿐이라고! 그렇게 착한 사람이 나와 아이들만 남겨 놓고 떠났을 리 없어!”‘여전히 죄책감 없는 걸 보니 그동안 같잖은 핑계로 제 신경을 마비시켜 왔을 게 뻔하네.’“눈가리로 아웅하는 것도 아니고. 친자 확인으로 결백을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끝까지 고개 숙이지 않던 사람이 아이 학교 보내겠다고 끝내 고개 숙였는데, 그게 모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았으니 절망에 빠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아니야! 그 입 닥쳐! 내 아내는 이해심 많은 사람이야. 절대 그럴 사람 아니라고!”감옥에 잡혀 올 때까지 별다른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공천하가 갑자기 미쳐 날뛰자 교도관은 곧바로 나타나 공천하를 끌고 갔다.……면회실에서 나온 하윤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공천하가 비록 끝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염옥란의 죽은 건 아마도 공은채가 더 잘 살아가기를 바라서였을 거다.하지만 공은채가 살아있는 한 공천하의 마음 속 응어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텐, 죽지 않는 한 공씨 집안에서는 좋은 대접을 받기는 어려웠을 거다.그렇게 생각하니 뒤에 일은 자연스럽게 퍼즐이 맞혀졌다. 염옥란이 죽은 뒤 공은채는 공씨 집안 둘째 아가씨로 인정을 받긴 했지만 공천하의 이쁨을 받는 건 불가능 했을 거다. 더욱이 얼마 뒤 재혼하게 되었으니 공은채의 생활은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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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6화 처음 잡는 불륜 현장

하윤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석지환의 문자를 받았다.[시윤아, 미안해. 내가 전에 너무 어리석었나 봐. 잠깐 진정이 필요하니 나중에 제대로 사과할게.]이 문자를 보자 하윤은 그제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석지환이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건 공은채가 도준의 방에 들어간 게 확실하다는 걸 설명하기도 한다.‘하!’머릿속에 그려지는 화명에 하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문 앞에 다다른 하윤은 일부러 방 안에 사람들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카드키로 벌컥 문을 열었다.그리고 도준의 몸 위에 바싹 붙어있는 공은채를 본 순간 끝내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누가 너 더러 들어오라고 했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공은채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하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도준의 위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준의 반응을 관찰하며 그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뿐.그 사이 도준의 시선이 잔뜩 화가 난 하윤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었다. 버럭버럭 화내는 하윤의 모습은 심지어 정말 남편 불륜 현장을 덮친 아내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그게 재밌었는지 도준은 자리를 꼰 채 와인을 내려 놓으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봤으면서 뭘 물어?”분명 미리 짜 놓은 각본이었지만 쓰레기 남편처럼 말하는 도준을 보자 하윤은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심지어 도준을 삿대질하던 손마저 부들부들 떨어 오히려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저 여자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고 약속했잖아요!”“앞으로 나 다시는 속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건 누구더라?”도준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하지만 그 말에 하윤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그런 적 없어요.”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공은채가 이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하윤의 변명을 사전에 차단했다.“그럼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야?”“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나랑은 상관없지. 그런데 우리 오빠가 너랑 공천하 만나게 도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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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7화 남편을 남에게 양보하다

결국 하윤은 얼굴을 감싼 채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호텔문은 벽에 부딪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그 모습을 본 공은채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 안의 물건은 거의 다 깨져 있었고 도준은 세면대 옆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옷깃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목덜미에 난 상처는 그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야성미를 더해주었다.심지어 욕실 안에 흩어진 희뿌연 연기는 야릇한 분위기까지 연출했다.공은채는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주어 거치대에 걸어 놓고는 도준을 향해 걸어갔다.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지 않고 오히려 도준과 같은 세면대에 기댄 채 그를 힐끔 쳐다봤다.“화가 나면 더 흥분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도준 씨는 어때요?”공은채는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은 데다 남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남자를 저한테 푹 빠지게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그런 공은채도 딱 한 번 실패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도준이다.물론 그때는 공씨 저택을 빠져나갈 계획을 짜느라 다른 데 집중할 수 없어서 실패했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계획이 이제 막바지에 이른 데다, 공은채에게는 도준이 필요하다.몸과 마음이 도준을 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도준이 꼭 있어야 한다.그리고 그런 날이 멀지 않다고 공은채는 속으로 생각했다.……“띠.”멀리에서 들리는 경적 소리에 하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아까의 ‘분노’가 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방금 아무 생각도 없이 단숨에 1층까지 달려 내려왔지만, 이 순간 다시 맨 위층의 유리창을 보자 하윤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갑갑해 났다.지금껏 도준에게 접근할 기회만 엿보던 공은채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 그럴 만했다.외로운 남녀가 같은 공간에 있는 데다, 하필이면 예전에 사귀던 사람이었으니…….아까 방으로 쳐들어갔을 때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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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8화 되찾은 꿈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하윤의 눈앞에 익숙한 길이 펼쳐졌다.‘여긴?’얼마 뒤 차가 멈춘 곳은 다름 아닌 하윤이 예전에 자주 공연했던 극장 앞이었다.“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공태준은 입장권 한 장을 하윤에게 건넸다.“오늘 여기서 공연이 있대요. 기분 풀고 싶으면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하윤은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표 뒤에 적힌 배우 명단에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이름이 있는 걸 보자 이내 흔들렸다.공연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하윤의 스승님과 같이 춤추던 친구들이었다…….하윤은 손가락 끝으로 입장권에 있는 이름을 살살 문질렀다. 만약 전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 위에 적인 이름은 중 아마 하윤의 이름도 있었을 거다.그 순간 스승님과 친구들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솔직히 그 보다는 기억 속 자기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하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마주쳤을 때 자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으니까.태준은 하윤의 갈등을 눈치채고 나지막하게 말했다.“제가 표 구매한 시간이 너무 늦어서 뒷자리 밖에 차지하지 못했어요. 뒷자리라도 괜찮다면 보러 가고요.”하윤은 놀란 듯 고개를 들어 태준을 빤히 바라봤다. 이 순간에도 태준의 처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분명 제 속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이토록 완곡하게 설득하다니.……공연장 내부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두 사람은 좌석 번호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하윤의 심장박동도 무용수들이 자리에서 뛰어오르고 착지할 때 함께 요동쳤다.이 공연을 보면 분명 감명만 받을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무대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건 본인조차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저들 사이에 끼여 함께 무대를 채워나가고 싶다는 갈망이 들었다.공연은 역시나 매우 훌륭했고, 무대가 끝나자마자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그렇게 공연장을 떠나는가 싶었는데, 때마침 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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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9화 공은채의 도발

“내려.”도준은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조수석에 앉은 사람에게 명령했다.하지만 공은채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왜 그렇게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에요? 와아프가 화낼까 봐 그래요? 걱정 말아요. 당장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도준은 공은채를 힐끗 바라봤다.“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공은채는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더니 도준에게 건네 주었다.공은채가 가리킨 핸드폰 액정에는 사진이 떠 있었는데, 공태준이 하윤을 빤히 바라보며 매너 있게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었다.그리고 다음 사진 역시 같은 주인공 두 사람이 극장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남자는 다정한 눈빛으로 눈물을 훔치는 여자를 향해 티슈를 건네 주고 있었다. 그때 공은채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참, 오빠가 그러는데 본인의 격려 덕에 시윤이 다시 무대에 서기로 결심했대요. 도준 씨도 이제 곧 무대에서 춤 추는 시윤을 볼 수 있을 거예요.”도준은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미간을 팍 좁혔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은채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도준처럼 소유욕 강한 사람은 자기 여자가 무대에서 춤 추는 걸 원치 않을 게 뻔하다. 더욱이 다른 남자의 도움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면 더더욱 용납하지 못할 거다.아까 있었던 일에 이번 일까지 더해지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꿈의 유혹과 애인의 기분 중 대체 뭘 고를까?’공은채는 손을 들어 차 안에 달린 액세사리를 살짝 건드렸다. 귀여운 스타일은 딱 봐도 하윤이 걸어놓은 게 뻔했다.“나한테 손 안 대는 건 뭐라 안 할 테니, 같이 저녁 먹어요. 이건 괜찮죠?”……“이 가게 음식 입에 맞는지 한번 먹어 봐요.”태준은 이미 잘게 썬 스테이크를 하윤의 앞에 건네 주었다. 선분홍 육즙이 흘러나오는 고기를 보면서도 하윤은 입맛이 없는 듯 포크로 푹푹 찌르며 좀처럼 입에 대지 않았다.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태준은 얼른 웨이터를 불러 미리 주문했던 디저트부터 내오라고 부탁했다. 곧바로 올라온 디저트를 거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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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0화 혼란

도준이 자리에 앉자 공은채도 따라서 공태준 곁에 앉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널찍하던 공간은 순식간에 비좁아 졌고, 네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에 하윤은 의자에 기대 앉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하지만 한창 당황하고 있을 때 도준이 갑자기 하윤의 머리를 꽉 잡은 채 제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어디 말해 봐. 방금 공 가주랑 뭐 먹었어?”“앵두 치즈 케익이요.”“맛있었어?”하윤은 곁눈질로 공은채를 흘겨보더니 일부러 토라진 듯 버럭 대답했다.“네, 엄청 맛있었어요.”“그래?”“저기요, 지금 말한 앵두 치즈 케익 10조각 주세요.”곧이어 테이블은 케익으로 가득 찼다.그때, 도준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좋아하면 다 먹어.”이런 비아냥 섞인 말투는 너무 진짜 같아 하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 채 기계적으로 케익을 입에 밀어 넣었다.양식 레스토랑이라 다행히 일 인분 양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 막 하나를 다 먹자마자 도준이 옆에서 두번째 접시를 들이 밀었다.“낭비하지 말고 계속 먹어.”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준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민 사장님, 사람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닙니까?”“뭐 마음 아프다 이건가? 그럼 대신 먹어주든지.”태준은 말없이 눈살을 찌푸린 채 케익 한 조각을 제 앞에 가져와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하지만 도준은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공은채에게 메뉴를 건내 주었다.“먹고 싶은 거 골라.”공은채는 도준의 관심에 놀랐는지 잠깐 넋 놓고 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해산물 샐러드면 돼요.”“그거 갖고 되겠어?”그 말에 공은채는 고개를 숙인 채 케익을 먹고 있는 하윤을 바라보며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었다.“오기 전에 배불리 먹었잖아요.”모두 성인 남녀인 데다, 너무 야릇한 말투에 하윤은 당연히 공은채가 무슨 뜻을 전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심지어 사레까지 걸려 쉴 새 없이 기침하다가 포크를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태준은 고민도 없이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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