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한 사모님 아이를 뺏는다!의 모든 챕터: 챕터 951 - 챕터 960

1347 챕터

제951화

“저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엄마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세훈이 얌전하게 말했다.“요즘 일 때문에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그래요. 어제 신혼여행 추천지를 찾아봤는데, 발리가 좋은 것 같아요. 아빠랑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는 게 어때요?”예나의 손이 멈칫했다. 이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희들이 일정을 잡아줄 수 있을까?”“좋아요!”세훈이 깡충 뛰며 말했다.“신혼여행은 일반적으로 한 달은 잡던데, 발리 말고 다른 재밌는 곳도 있는지 찾아볼 게요.”아이는 노트북을 안아 들고 신이 나서 여행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열심히 메모하며 계획을 세웠다.예나는 창밖에서 천진하게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내 몸에 이상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여섯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사모님, 아침 준비되었습니다.”양 집사가 공손하게 아침밥을 차려주었다.현석이 직접 만든 아침밥에는 소고기 장조림, 계란 후라이, 시금치 무침이 있었다. 색과 향을 모두 갖춘 아침상이었다.예나는 밥 한술을 크게 뜨고 반찬과 함께 먹었다. 현석의 음식 솜씨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간단한 아침상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맛있었다.소고기 장조림을 한입에 넣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예나는 입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사모님…….”양 집사가 그녀의 뒤를 따라가 화장실 앞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속이 안 좋으신 가요?”‘어젯밤 그 추운 날씨에 산책했으니, 몸이 추워서 그런 게 아닐까?’예나는 속이 메슥거렸지만, 아무것도 뱉어 내지 못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식욕이 없어졌다.“사모님, 죽을 새로 만들어 올 게요.”“아니에요, 배 불렀어요. 그리고 방금 있은 일은 현석 씨한테 말하지 마세요. 괜히 걱정할 거예요.”아침부터 인터넷 여론을 처리하고, 아침밥도 차려주었는데, 고작 이런 작은 일로 또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예나는 두꺼운 외투로 갈아입고 세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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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2화

예나는 방으로 돌아가 베란다 앞으로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꺼냈다.애써 검색하지 않아도, 메인 화면을 자리 잡고 있는 예나의 기사가 보였다.[장씨 그룹 장서영 전 대표는 현재 취재를 거절하고 있으나, 장씨 그룹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제 이사회가 끝난 후, 장서영 씨와 도예나 씨에게 작지 않은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서영 대표의 부상은 도예나 씨의 소행임을 목격한 직원들도 적지 않습니다.][예성과학기술 회사는 기자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회사 내부 직원들도 취재를 거부하고 있으며, 근처 타회사 직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최근 들어 도예나 씨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사로 출근한 시간이 바로, 회의에서 충돌이 생긴 그날이었습니다.][어느 네티즌이 인터넷에 도예나 씨가 성남시 유명 정신과를 찾아간 사진과 진단서를 올려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신적 이상을 호소하고 있는 게 사실이며, 일반적인 약물로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주씨 그룹 주식이 강씨 그룹에 넘어가고 있으며, 이는 주현무 씨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유라는 의심이 듭니다.]대부분의 기사는 읽자마자 삭제가 되고 있었으나, 새로운 기사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강씨 그룹이 아무리 막강하고, 제훈의 해킹 기술이 아무리 대단해도, 사람들의 관심을 막지는 못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각종 플랫폼을 넘나들며 글을 남겼고,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누군가 고의로 기사를 삭제하는 것조차 네티즌들은 분석해 내고 있었다.예나는 노트북을 덮고 쓴웃음을 터뜨렸다.‘나는 트러블 메이커인가봐.’예나는 베란다에 몸을 기대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지켜보았다. 그런데 또 떠돌이 개들의 짖은 소리가 들렸다.이 추운 겨울에 왜 자꾸 주택 지역으로 찾아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예나는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창문을 열어젖힌 예나는 두 마리 개가 별장 입구에서 뛰놀고 있는 걸 확인했다. 허리를 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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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3화

이튿날, 설 음식이 푸짐하게 준비되었다.점심을 마치고 서씨 가문으로 인사를 갈 계획이었으나, 강씨 그룹이 화제의 중심인만큼, 별장 주변은 기자들로 둘러싸였다. 그들은 도예나가 나타나기 만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었다.이현숙은 일부러 전화를 걸어 며칠 뒤에 인사하러 오라고 당부했다.그래서 한가로운 오후가 찾아오게 되었다.“형, 며칠 뒤 회사를 물려받을 준비 되었어?”제훈이 덤덤하게 세윤에게 물었다. 세윤은 조금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조금은…….”“준비가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된 거지. 조금은 뭐야?”세훈이 입을 열었다.“오늘 오후에 위기 대처 시뮬레이션을 해봐야겠어.”“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세윤이 마지못해 말했다.“설 연휴인데 좀 쉬면 안 돼?”“오빠 혼자 놀아. 나도 피아노 연습해야 해.”수아가 눈을 깜빡였다.“아빠가 설 연휴 끝나고 콩쿠르에 참가하라고 했어. 그래서 연습 바짝 해야 해.”세윤의 표정이 축 처졌다.세훈은 늘 굳은 얼굴로 지내고, 제훈은 무뚝뚝했으니, 세윤의 단짝은 수아였다.그러나 수아마저 피아노 연습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오빠가 되어서 솔선수범을 보여야 지.’“그래!”세윤은 큰 결심을 내린 듯 말했다.“형이랑 제훈이가 함께 테스트해 줘. 테스트를 못 넘기면 오늘 저녁 안 먹을 거야.”현석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못 넘기고 엄마 찾지 말고.”“안 그럴 거예요!”세윤이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이젠 다섯 살이 되었는데 어리광 안 피울 거예요!”예나도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세훈이 몸을 일으켰다.“위층으로 올라가서 테스트해.”제훈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인터넷에서 전형적인 테스트를 찾아봐야겠어.”의지가 넘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세윤은 조금 후회가 되었다.하지만 거실에는 수아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고, 세윤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나랑 같이 나가서 좀 걸어요.”현석이 예나를 끌어안고 귓가에 말했다. 그러나 예나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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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4화

예나의 짙은 색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흩어져, 그녀의 머리는 손바닥만 해 보였다.하얀 피부의 예나의 눈가 아래에는 짙은 다크써클이 있었다.현석은 예나가 며칠 동안 불면에 시달렸다는 걸 알았다. 계속 뒤척이다가 새벽 3~4시가 되어서야 예나는 잠에 들었다.“말 그대로 잠만 자는 거예요. 옆에 가만히 있을 게요.”현석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우아한 첼로 연주 소리 같기도, 봄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따뜻한 온기가 예나의 마음속에 찾아 들고, 예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눈을 치켜 뜨고, 입꼬리를 살짝 올린 그녀는 현석의 목에 손을 감았다.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벌린 예나는 바로 현석의 목덜미에 키스했고, 이어 그의 입술을 막았다.현석은 바로 몸을 돌려 예나의 몸 위로 올라탔다.입술부터 쇄골까지, 예나는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몸이 나른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현석이 몸을 멈추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예나 씨, 날 유혹하지 마요. 예나 씨가 유혹하면 난 참을 수가 없어요.”“나도 원해요…….”예나는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안고 다른 손으로는 앞섬의 단추를 풀었다.불안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고즈넉한 오후 하늘에 서서히 노을이 보이고, 따뜻해진 온도에 베란다 창문에 뽀얀 습기가 꼈다. 베란다에 쌓인 눈과 얼음이 스르르 녹아 아래층 정원으로 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물은 봄이 오면 새로 피어날 꽃과 풀을 촉촉이 적셨다.겨울의 태양은 구름 뒤로 얼굴을 숨겼고, 한가로운 오후 시간은 그렇게 뜨겁게 흘러갔다.다른 한편, 세윤이 풀이 죽은 채로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수아를 폭 안으며 말했다.“수아야, 오빠 너무 힘들어.”수아가 악보를 올려 두며 말했다.“무슨 일 있었어?”“형이 너무 어려운 테스트 문제를 냈는데, 제훈은 불붙은 집에 기름이나 붓고 있었어. 하마터면 서재에서 죽을 뻔했다니까.”“살아서 나왔잖아.”수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오빠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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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5화

현석의 청량한 목소리가 예나의 귓가에 울렸다.예나는 부스스한 얼굴로 나른하게 말했다.“현석 씨, 배고 파요.”현석이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조금만 더 누워있어요. 내가 밥 차려줄 게요. 30분 정도만 기다려요.”예나는 다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30분이면 다시 눈을 붙여도 충분한 시간이었다.눈을 감은 예나는 반수면 상태에 들어섰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어렴풋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꿈속의 그녀는 무력하게 산길을 걸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산이고, 겹겹이 둘러싸인 나무숲에서 예나는 어디로 걸어야 할지 몰랐다.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예나는 무력감으로 바닥에 넘어질 것 같았다.이게 꿈인 걸 알아차린 후로는, 꿈에서 깨기 위해 발버둥 쳤다.꿈속에서 드디어 몸을 일으킨 예나는 천천히 늪을 지나 평탄한 길을 걸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뜨려고 시도했으나 이번에도 실패였다.그때, 갑자기 눈앞을 스쳐 지나는 형체가 있었다. 박쥐 여러 마리가 그녀 머리 위를 스치듯 날았다. 예나는 주변에 놓인 아무 물건이나 손에 쥐고 허공을 휘저었다. 박쥐 떼는 쉴 틈 없이 그녀를 덮치고 예나는 겨우 이리저리 몸을 피하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방안의 풍경은 방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박쥐 떼가 보이지 않았지만, 구불구불한 산길 위에는 서슬 퍼런 눈의 늑대가 보였다.섬뜩한 눈길로 끈질기게 예나를 바라보고 있는 늑대는 바로 그녀를 덮칠 것만 같았다.늑대의 본성상 예나가 조금의 연약함을 보인다면, 바로 먹잇감으로 정할 것이다.예나는 어느새 이게 꿈속이라는 생각도 잊어버렸다.손에 쥔 칼을 들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손을 번쩍 들었다.“아!!”어린아이의 비명이 들렸다.“예나 씨, 지금 뭘 하는 거예요!”허공을 가로 지나는 긴박한 목소리가 들리고 예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그런데 그녀는 안방 침대가 아닌…… 세윤의 방안에 서 있었다.맨발로 세윤의 침대 옆에 선 그녀의 손에는 과일칼이 들려 있었다…….콰당-과일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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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6화

“며칠 뒤에 신혼여행을 가서 머리도 비우고, 환경도 바꿔보면 나아질 거예요.”예나는 그의 품에 안겨 쓴웃음을 삼켰다.아이를 향해 칼을 들었다면 얼마든지 현석을 다치게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나는 예전의 도예나가 아니야. 더 이상 현석 씨와 아이들과 함께해서는 안 돼.’“현석 씨.”예나가 현석을 밀어냈다.그러나 현석은 예상이라도 한 듯 예나를 더 꽉 끌어안았다.“예나 씨, 아무 말도 하지 마요. 내 품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예요.”“오후부터 지금까지 잠을 잤는데 또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요?”예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일단 날 놔줘요.”“그럼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밥이라도 먹을 래요? 내가 만든 음식 좋아하잖아요.”현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예나를 달랬다.“그래요, 밥 먹으러 가요.”현석은 예나의 실내화를 찾아 발에 신기고,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향했다.방을 나서자, 옆 방에서 세윤이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잠결에 깨난 세윤이 마주한 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마터면 엄마 손에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아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었다.“예나 씨, 그냥 꿈을 꾼 거예요. 단지 꿈일 뿐이에요. 괜찮아요…….”현석이 예나를 품에 안고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현석의 목소리는 허스키하지만 다정했다.예나는 현석을 꽉 끌어안았지만, 점점 무너져갔다.장서영의 뺨을 때린 후에 현석은 예나한테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고 했다.주현무를 발로 걷어찬 후에도, 현석은 예나가 한 모든 게 옳은 거라고 달랬다.‘정말 괜찮은 게 맞는 걸까? 앞으로도 괜찮은 걸까?’한두 번의 요행으로 자신이 정상이라고 믿었던 예나였지만, 이번에는 자칫하다가 자기 아들을 죽일 뻔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거지…….’“예나 씨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꿈을 꾼 거예요.”현석이 그녀의 어깨 위로 머리를 괴고 꽉 끌어안았다.‘앞으로 세윤이 얼굴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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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7화

예나는 오늘 온 하루 먹은 게 별로 없었다.무력하게 몸을 일으킨 예나가 말했다.“어제 감기에 걸린 건지 먹기만 하면 속이 불편해지네요.”현석은 예나를 안아 거실 소파에 앉혔다.“여기 조금만 앉아 있어요. 죽 해줄 게요.”“그럴 필요 없어요. 입맛이 하나도 없거든요.”예나가 입가를 매만졌다.“현석 씨, 세윤이한테 가봐요. 난 좀 혼자 있고 싶어요.”“옆에 있게 해줘요. 아무 말도 시키지 않을 테니까 내쫓지만 말아 줘요.”현석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상처받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속상한 예나를 바라보는 현석의 속도 말이 아니었다.현석은 너무 많은 걸 겪었다.두 눈을 내리깐 예나가 말했다.“현석 씨, 잠시 밖에 나갔다 올 게요. 집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요.”“같이 가요.”현석은 몸을 일으켜 외투를 꺼내 입고, 예나의 외투도 챙겨 입혔다.“가요.”“현석 씨, 혼자 있고 싶어요. 제발 요…….”예나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혼자 있고 싶어요. 혼자…….”“그럼 앞에서 걸어요. 난 뒤에서 따라갈 게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을 게요.”현석이 낮은 소리로 애원했다.카리스마 넘치고 살벌하던 강씨 그룹 대표인 현석은,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현석 씨 그러지 마요. 현석 씨가 그럴수록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해요.”예나는 자기 옷깃을 매만지며 말했다.“생각 정리만 마치면 돌아올 게요. 혼자 걸을 수 있도록 해줘요, 네?”예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현석은 상처 가득한 예나의 눈을 마주하며 그 역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한숨을 내쉰 현석이 목소리를 낮췄다.“예나 씨, 생각 정리하고 와요. 여기에서 기다릴 게요.”예나는 발뒤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맞춤하고 말했다.“현석 씨, 이런 나를 감싸줘서 고마워요. 정리가 끝나는 대로 돌아올 게요.”예나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가 문을 열고 나섰다.늦겨울, 초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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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8화

“같이 자자.”세훈이 말했다. 그리고 캐비닛에서 이불 하나를 더 꺼내 침대 위로 올렸다.네 아이는 세윤 방 침대에서 찰싹 붙어 잠을 청했다.창밖의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다가 희붓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어 동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더니,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비쳐 들었다.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세윤이 가장 먼저 잠에서 깨었다.잠에서 깨난 아이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엄마가 돌아왔을까?”아이는 문을 박차고 아래층을 내려다보았지만, 양 집사가 테이블을 닦고 있는 광경만 보였다.“양 집사 할아버지, 엄마 일어났어요?”양 집사가 고개를 들었다.“어젯밤 대표님과 사모님이 집을 나서고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세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안방으로 달려가자 깨끗하게 정리된, 전혀 사용 흔적이 없는 침대가 보였다.‘어젯밤 엄마랑 아빠가 돌아오지 않은 게 사실인가 봐.’“너무 급해하지 마.”세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빠한테 전화 걸어볼 게.”웅웅-현석의 전화가 진동했다.그는 안개가 가득 한 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멀리 보아도 끝이 없는 그런 길이었다.그곳에 얼마나 서 있었던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현석은 굳은 목을 살짝 움직이며 전화를 받았다.“아빠, 엄마랑 어디 있어요?”“집에서 엄마랑 아빠랑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현석은 전화를 끊고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어젯밤 현석은 예나의 핸드폰을 받아 쥐고 그녀를 찾아 골목골목을 돌아다녔으나, 그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아마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었을 거라고 짐작이 되었다.잠시 생각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맞았다.그래서 현석은 집 앞 거리에 서서 예나가 돌아오기 만을 기다렸다.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가 되고, 깜깜한 날이 밝기까지,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예나는 나타나지 않았다.불길한 마음이 점점 커가고, 마음이 텅 비어 겨울 찬바람이 온몸을 덮쳤다.현석은 먼 곳의 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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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9화

예나의 뒷모습은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서서히 CCTV의 촬영 범위에서 벗어났다.현석은 빠르게 다음 카메라로 전환하려고 했으나,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이 길의 끝은 버려진 건물입니다. 한 달 전, 폐건물의 폭파 승인이 떨어져 주변 카메라도 모두 철수한 상태입니다.”현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이 길 제외하고는 카메라가 있나요?”“폐 건물 구역을 넘어서면 작은 어촌이 있습니다. 다만 3년 전 주씨 그룹이 인수하여 주민들은 모두 이주해 철거 중이며, 역시 카메라가 없습니다.”현석의 차가운 눈빛에 정재욱은 진땀을 흘렸다.“하지만 주변 어선에 남은 카메라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한번 찾아보겠습니다.”현석이 카메라 속 가녀린 몸매를 주시하다가, 손가락을 뻗어 화면 위를 어루만졌다.“예나 씨, 우리를 떠나지 마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요.”하루 종일 영상을 샅샅이 뒤졌지만 예나의 모습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정재욱은 덜덜 떨며 말했다.“대표님, 바다 수사를 시작할까요?”현석의 날카로운 눈빛이 정재욱을 향했다.“그게 무슨 말입니까?”날카로운 눈빛은 한 쌍의 칼날이 되어 정재욱을 찔렀다.정재욱은 바로 고개를 숙였으나, 꾸역꾸역 말을 뱉았다.“사모님은 이 거리에서 종적을 감췄고, 찾을 수 있는 모든 곳과 영상을 찾아봤으나 사모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모님이…….”“그럴 리가 없어요!”현석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계속 찾으세요! 성남시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사람을 찾아내세요!”현석을 바라보며 정재욱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석과 오랜 세월 함께 일하면서 이렇게 조급함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이에 정재욱은 숨돌릴 새도 없이 어디 론가 전화를 걸며 재수사를 시작했다.그렇게 한 주일이 흘렀다.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현석은 그 사이에 많이 수척해지고 초췌해졌다.‘생각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왜 곧이곧대로 믿었을까? 예나 씨가 불안정하고,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걸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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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0화

연회장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도, 여지연은 장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였다.여지연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머니, 저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어요.”“그게 무슨 말이니?”백소은이 여지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혼기가 차면 결혼하는 게 이 세상 당연한 이치인 것을. 내 딸인 너에게 좋은 남편을 찾아 짝을 맺어주는 것도 이 어미가 응당 해야 할 일이란다. 권석훈은 정말 괜찮은 아이야……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그래요. 언니. 권씨 가문은 우리 성수시에서 제일 큰 가문이잖아요. 권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큰 행운 인걸요.”백소은 옆에 앉은 여지수가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비록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질투심이 가득했다.여지연은 4년 전 여씨 가문에서 들인 양녀로, 4년 동안 여씨 가문에서 갖은 고생을 했지만, 여전히 고상한 자태를 자랑했다.여지수가 가장 질투 나는 건 여지연의 얼굴이었다. 오똑한 이목구비는 물론, 하얀 얼굴에는 잡티 하나 없었다.타고난 카리스마와 여신의 자태로 사람들은 감히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지도 못했으나, 또 참지 못하고 그녀를 힐긋거렸다.여지연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정말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여지연은 아직 못다 한 숙제가 남은 것처럼, 이번 생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3년 동안 매일같이 고민해봤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4년 전, 눈을 처음 뜬 순간, 여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고 여지연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도예나라고 밝혔다.그 이름은 머릿속에 꼭 박혀 기억을 잃었어도 이름만은 남아있었다.여지연이 눈을 뜬 날, 백소은이 여지연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우리 여씨 가문 사람이 해안가에서 널 구조해서 데리고 왔단다. 큰 부상을 입은 너를 우리가 고액의 치료비를 지불하고 목숨을 구했어. 왠지 너와의 인연이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우리 가문의 양녀로 삼고 싶구나. 앞으로 네 이름은 여지연이란다.”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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