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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왕비의 모든 챕터: 챕터 591 - 챕터 600

3039 챕터

제 591화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 그녀는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살고 싶었다. 사람은 모두 때가 있는 법. 만아도 분명 말 못 할 속 사정이 있을 것이다.됐고, 그녀는 더 이상 고만아 일로 우문호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희상궁 사건 이후, 그녀는 목숨보다 중요한 대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호명의 추측이 맞았다. 만아는 부두에서 짐을 나르고 있었다. 남강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짐을 더 나르더라도 받는 삯이 절반 밖에 안 됐다.그것이 이 부둣가에 암암리에 정해진 규칙이었다.사식이가 왕부를 나와 밖에서 일을 볼 때마다 부두에 들러 고만아를 지켜보았다.그녀는 쌀 두 포대를 날라다 소달구지에 던졌다. 다른 사람의 두 배를 날라야만 같은 삯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쉬지 않고 달렸다.사식이는 갈 때마다 점점 만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떨 때는 누군가가 ‘남강 계집!’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부두에서 일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녀의 몸집은 전에 비해 반쪽이 되었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만아를 알아볼 수 없었다.어느 날 고만아가 일을 하다가 사식이를 알아보고 들고 있던 쌀 포대를 내팽개치고 달아나버렸다.그녀가 달아나자 사식이가 그녀의 뒤를 바짝 쫓았다.얼마나 뛰었을까 힘에 부친 만아는 사식이에게 붙잡혔다.“왜 도망가느냐?”만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을 저었다.“나는… 정말… 왕비를… 헥… 해치지 않았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사식이는 인상을 쓰고 “누가 너 잡으러 왔대?”라고 물었다.만아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에 두 손을 짚은 채 사식이를 올려다보았다.“지금 나 잡으로 온 거 아닙니까? 그럼 왜 쫓아왔어요?”“도망가니까 그냥 쫓아온 건데?”만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꽤 먼 거리를 뛰었는데 사식이는 숨 하나 차지 않는 듯 평온해 보였다. 만아는 사식이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그나저나 왕비께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그때 내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못 했소.”사식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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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2화

사식이는 왕부로 돌아가 부두에서 만아를 목격한 사실을 원경릉에게 알렸다. 작은 체구로 사내들과 짐을 나른다는 소리에 원경릉은 마음이 아팠다. 원경릉은 조용히 사식이를 불러 은화 열 냥을 만아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고만아가 받지 않겠다고 해도 꼭 주고 와야 한다.”“왕비께서는 사람이 참 좋으십니다.” 사식이는 원경릉이 건네주는 은화를 받았다.다음날 사식이는 만아를 찾아가 은화를 억지로 쥐여주고는 도망 왔다.원경릉은 만아에게 은화를 줌으로써 마음속의 가책을 없애고 싶었다. 원경릉도 왜 자신이 만아를 가엽게 여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만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였다.저녁이 되자 우문호가 제왕과 함께 왕부로 왔다. 그는 온몸에 노기가 가득해 왕부로 돌아온 뒤 즉시 소월각으로 갔다.원경릉은 그런 우문호를 보고 의아했다.“왜 왕부에 오자마자 소월각으로 온 거야? 누가 널 화나게 했어?”우문호는 소월각에 앉아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원경릉 옆에 앉아 그녀의 배를 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잘 기억해라. 나중에 네가 네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나는 너를 때려죽일 것이야.”원경릉은 웃으며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딸이면 어쩌려고 아들이래! 그리고 제왕이 왜?”“이놈이 이틀 내내 관아로 와서 귀찮아 죽겠거든? 근데 이놈이 또 집까지 쫓아온 거야. 지금 짐까지 싹 싸들고 와서 밖에 서있는데…… 몰라 오늘은 초왕부에서 자겠대.”“왜?”“왜겠어? 부황께 주명취랑 이혼하겠다고 하고는, 제왕부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나는 거지. 주명취를 보기가 껄끄럽대. 참나, 제왕부는 본래 지가 주인인데, 거길 못 들어가겠다고 저러는 거야.”“주명취가 울고 있을까 봐? 아니면 싸울 게 뻔하니까? 하긴, 볼장 다 봤는데 같이 있어 뭐 하겠어.”“볼장 다 봤다고 해도 아직은 부부 아니야? 그리고 주명취가 울든 말든 뭐가 무서워서 못 들어가?” “알겠어. 마침 여기에 원용의도 있으니 제왕보고 들어오라고 해서 하룻밤 묵게 해주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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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3화

제왕의 말을 듣고 원용의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정색 하고는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 ‘자존심도 없이…… 제왕비가 무서워 자기 왕부를 두고 초왕부로 피신 오다니. 한심하다 한심해.’원용의는 제왕에게 실망했고, 그런 사람의 후궁으로 들어간 자신이 창피했다.제왕은 원용의를 쫓아가서는 그녀를 잡아 세웠다.“해명하라고.”둘을 지켜보던 서일이 손을 저으며 해명하려고 하자 원용의는 그를 막았다.“동쪽에서 뺨 맞고 왜 서쪽 와서 화풀이십니까? 화를 낼 기운이 남아있으면 그 힘으로 주명취에게 가보세요.”“너……” 제왕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네가 무술을 잘 한다고 해서 본왕을 무시하나 본데, 함부로 굴지 마. 내가 너 봐주는 거거든?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말했다.서일은 제왕이 원용의에게 곤장 일도 내려칠까 무서워 황급히 제왕을 막아섰다.“제왕, 오해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왕비께서 넘어질 것 같아서 부축을 하려던 것뿐입니다. 왕야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불미스러운 관계는 절대! 전혀 아닙니다! 더군다나 원비 마마 같은 분은 제 취향도 아닙니다!”서일의 말을 듣고 원용의가 화가 났다.“서일! 취향? 입 다물어!”사식이는 서일을 끌며 “빨리 가자고요.”라며 자리를 피했다.서일은 난처한 표정으로 사식이를 보았다. “설마 치고받고 싸우는 건 아니겠지?”사식이는 웃으며 “걱정 마요. 적수가 못 됩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제왕이 크게 노했다.“사식아, 누가 누구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이냐?”“당신 생각은 어때? 당신이 내 적수나 되려나?” 원용의가 말을 가로챘다.“경고하는데 함부로 입 놀리지 마. 알겠어?”그 말을 들은 원용의는 눈살을 찌푸렸다.“제왕, 여기는 초왕부니까 우리 둘다 자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참, 이혼하기로 한 건 어떻게 됐죠?”“내가 이혼하는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야?”원용의는 노발대발하며 “그게 왜 나랑 상관없어요? 말 안 할 겁니까?”라고 말했다.그녀가 버럭 하자 제왕은 깜짝 놀라 입을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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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4화

원용의의 말에 제왕은 화가 났다.“어린애 달래는 말투 집어치워라! 네가 감히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해 줘? 내 혼사는 모후께서 알아서 하실 거야!”원용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조모께서 남자는 아이와 같아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모후께서……”“당신 모후? 예의를 차려라!” 제왕이 버럭 했다.원용의는 머쓱한 표정으로 코를 만졌다.“나는 정비가 아니니 모후라고 부를 수 없죠.”제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네가 계속 내 심기를 건드리는구나.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정비라고 되고 싶은 것이야?”라고 말했다.“정비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 원용의가 물었다.“좋은 거 많지.” 제왕이 잠시 생각하더니 “적어도 어디 가서 왕비라고 불릴 것 아니야. 정비가 되면 나와 합법적 부부가 되는 것이고!”라고 말했다.“합법적 부부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 원용의가 물었다.제왕이 그녀를 보며 “정비가 되면 하인들을 네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백성들도 너를 칭송하겠지”라고 말했다. “하인들은 지금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백성들도 내 말 잘 듣는데요?”“또! 정비가 되면 황실 행사에 본왕과 함께 참석할 수 있다.”원용의가 웃었다.“지금도 갈 수 있는데요?”제왕이 그녀를 노려보았다.“지금 말장난하는 거지? 정비는 내 본처야! 후궁은 첩이니 신분이 다르지!”“본처든 후궁이든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의 정비가 될 생각 없으니 빨리 주명취가 나간 후 대체할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겁니다. 주명취가 폐비되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 이유는 그 여자가 내 상전으로 있으니 피곤해서 그런 겁니다. 당신이 정비를 새로 들이든 말든 나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말은 마친 그녀가 벌떡 일어서자 제왕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지 마.”“밥 먹으러 갈 겁니다.”원용의는 제왕과 말다툼을 하느라 허기가 졌다.“그럼 이 얘기만 듣고 가. 본왕이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야.”원용의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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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5화

제왕은 원용의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평소에는 거칠고 우악스러운 원용의가 저런 말을 하다니……’제왕은 원용의가 생각보다 철이 들었다고 느꼈다. 그는 그녀의 말에서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그는 문득 깨달은 눈빛으로 원용의를 보았다.“사실 오늘 모후께서 본왕을 꾸짖었다. 모후는 주명취가 본왕의 앞날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시더라, 모후께서는 주명취가 한 모든 행동이 본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게끔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그러니 본왕이 그녀를 받아줘야 한다고 설득했다.”그가 조용히 원용의를 바라보았다.“모후와 얘기를 나누고 나 자신이 너무 쓸모없는 놈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궁 밖으로 나와서도 자꾸 의심이 들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인가? 주명취가 진짜 나를 위해서…? 아니면 그녀는 본왕을 통해 자신이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가? 근데 오늘 너와 얘기를 나누고 난 뒤에 해답을 얻었다. 고마워.”그의 말을 들으며 원용의의 입가에는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제왕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났다.우문호와 원경릉이 나오자 탕양이 그들에게 제왕이 이미 왕부를 떠나서 식사는 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왜? 갑자기 어딜?”우문호가 물었다.“왕부로 가신다고 했습니다.”원용의가 들어오다가 우문호를 보고 멈칫하며 한 걸을 물러서며“제왕은 제왕비랑 얘기를 나누러 갔습니다.”라고 말했다.“그래? 내기하자! 빨리 돈 걸어! 걔 둘이 이혼할지 안 할지!”우문호가 말했다.“이번엔 잘 모르겠다.” 원경릉이 무심하게 답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부축해 앉혔다.“넌 왜 이렇게 평온해?” 우문호가 그녀에게 물었다.“주명취 너도 잘 알잖아? 그게 쉽게 해결이 되겠어?”“당연하지. 걔는 어휴…” 우문호가 고개를 저었다.“용의야, 너도 제왕부로 가봐. 가면서 조어의도 데리고 가고.” 원경릉이 말했다.“예? 어의는 왜요? 설마… 또 맞을까 봐요?”“내가 시키는 대로 해. 혹시 모르니까 가서 지켜봐.” 원용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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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6화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놀라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사식이도 들어와 놀란 눈으로 “뭐가 움직였다고요?”라고 물었다.“본왕의 아들!” 우문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사식이가 놀라서 탕양을 바라보았고, 탕양은 처음 보는 우문호의 환한 미소에 그가 미친 게 아닌가 생각했다.원경릉은 웃으며 “됐어! 빨리 밥이나 먹자고!” 라고 말했다.“우리 큰 언니는요?” 사식이가 물었다.“왕부로 돌아갔어.”“제왕이 아까 우리 언니랑 서일을 의심했어요. 큰언니 화나면 정말 무서운데, 제왕은 겁도 없지 말입니다.”우문호는 태동을 느끼고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사식이를 보았다.“네가 일곱째를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일곱째도 무술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아.”“에? 정말요? 병든 닭 같던데……”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으로 계란 정도는 깰 수 있어.”라고 말했다.“소인은 맨손으로 돌도 깰 수 있습니다.”사식이의 말에 우문호가 웃었다.“제왕이 무술을 배웠다고?” 원경릉이 물었다.“황제의 아들이라면 무조건 무술을 배우도록 되어있어. 근데 무슨 이유인지 일곱째가 무술을 배우다가 말더라고.”“왜죠?” 사식이가 물었다.“나도 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도 얻어 맞고 다닐 수준은 아니야.”“근데 제왕비한테는 왜 맞고 사는 거죠?” 사식이가 물었다.“걔는 여자는 안 때려.”*그 시각 제왕은 단숨에 왕부로 돌아와 주명취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주명취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지만 제왕이 들어오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성지가 내려왔어? 황제께서 나를 내쫓은 거야?”그녀의 눈빛에서 제왕을 무시하는 게 느껴졌다.‘겁쟁이.’오늘 아침 그녀를 찾아와 하는 말을 보니 제왕은 실로 무능력하고 강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제왕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를 보며 “괜찮아졌어?”라고 물었다.“이제야 관심을 주는구나? 퍽이나 괜찮겠다!” 주명취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제왕이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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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7화

주명취는 화가 나서 심장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절대 이혼은 안돼! 못해!’그녀는 자신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았다. 만약 이렇게 이혼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녀의 인생은 이제 끝이다. 하지만 그녀도 자존심이 있기에 이혼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마음속에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그녀의 마음속 결론은 하나였다.“내일 혼자 가. 난 왕부에서 기다릴게.”“그래 그럼 결과는 와서 말해줄게.” 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서는 밖으로 나갔다.주명취는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망할 수는 없어. 내 인생 이렇게 끝날 수 없어! 감히 나를 버려? 어림없어!’사실 그녀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제왕과 이혼을 하고 우문호를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지금 우문호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받아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았다.제왕은 비록 패기가 없고 무능력하지만 황제의 적자이니…… 언젠가는 황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사죄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그 순간 주명취의 마음속에 사나운 파도가 일었다.만약 과거로 돌아가는 시계가 있다면, 그녀는 제왕말고 우문호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돌아갈 수 없다.그녀는 태자가 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제왕이 싫었다. 그녀가 그를 태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제왕은 그녀의 마음도 몰라주고 늘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우유부단한 태도였다. ‘내가 저런 무능력하고 야망 없는 남자에게 버림을 받다니……’배신감과 굴욕스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그녀는 정신이 혼미했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녀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비녀를 뽑아 비녀 끝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제왕이 막 정원을 나서려는데 주명취가 있던 방에서 시녀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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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8화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몸을 떨었다.제왕은 조어의와 원용의를 보며 나가 있으라고 손짓했다.원용의가 조어의를 끌고 나가려고 하자 조어의는 가루약을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것은 지혈분입니다. 상처에 뿌리고 감싸 놓으면 이틀 후에 상처가 아물 것입니다.”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보고 겁을 잔뜩 먹은 시녀는 덜덜 떨며 지혈분을 받았다.제왕은 방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나가라고 한 후 주명취 옆에 앉았다.“왜 그랬어.”주명취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눈물만 흘렸다.제왕도 그런 그녀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러나 제왕도 이번만큼은 애매모호하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원용의와 대화를 하면서 그도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주명취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명취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걸까?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일은 명취가 강요할 리가 없다.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 내가 왜 원하지도 않는 자리를 놓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가.’그는 피바다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온화하고 한가로운 북당의 왕으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똑똑한 주명취는 달랐다. 그녀는 제왕에게 태자가 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왕은 주수보의 외손자로 현 황후의 적자이다. 만약 맏형이 태자가 되고 그 후에 황제가 된다면 위험인물인 제왕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지만 태자가 되면 모든 게 편해질까?제왕은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 속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우린 그만하는 게 좋겠어. 너와 혼인하는 그 순간부터 본왕을 알고 있었다. 네 마음속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 본왕은 네가 다섯째 형님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우리의 혼인 생활이 평탄하지 않을 거라는 것,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너도 억지로 내 비위 맞추며 제왕부에 있을 필요 없다. 헤어져서 각자 편하게 지내는 것도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주명취가 고개를 돌려 제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손목을 그었음에도 제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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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9화

제왕이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여 주명취의 손을 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혼인하고 3일 후에 그가 그녀에게 선물로 준 비녀가 들려있었다. 비녀의 끝에는 빗살 무늬처럼 촘촘하게 각인이 되어있고, ‘백년해로’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조금의 고통스러운 표정도 없이 배에 꽂힌 비녀를 뽑아냈다.피는 사방으로 튀었고,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소매로 비녀에 묻은 피를 닦고, 비녀를 주명취의 앞에 놓인 탁자에 내려 놓았다.“잘 지내거라.”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갔다. 주명취는 놀란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보며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었다.“우문경…… 너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그녀는 조용히 읊조렸다.“아니, 내 평생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옳은 결정이야.” 제왕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주명취는 처음 보는 제왕의 결의에 찬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원용의와 조어의가 깜짝 놀라 제왕을 부축했다.조어의는 주명취가 다시 자살시도를 할 까 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왕이 이런 몰골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왕을 부축하는 원용의의 옷은 피로 축축해졌고 그의 가슴과 배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와야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조어의! 빨리가서 어의와 시위를 불러오세요!”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제왕은 원용의의 부축을 받으며 힘 없이 “가자.”라고 말했다.원용의가 방 안을 들여다보니 맨발로 그 둘을 바라보고 있는 주명취가 보였다. 그녀의 안색은 음침하고 차가웠으며 눈은 공허해 보였다.원용의가 화가 나서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제왕이 원용의를 붙잡았다.“내가 다친 건 저 여자랑 관련 없다. 가자.”제왕이 다쳤다는 소식에 황실의 어의와 황제를 지키는 시위들도 달려왔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주명취를 내버려 두고 제왕을 부축해 자리를 떴다.제왕의 상처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주명취는 온 힘을 다해서 찔렀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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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0화

황후는 주명취와 명원제를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명원제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황후가 증조 마님에게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는 식으로 눈짓을 보냈다.“황상, 황후 마마, 제왕은 황가의 자손으로서 명취가 그의 옥체를 손상시킨 것은 명백히 처벌을 받아야 하나, 억울함에 충동적으로 행동한 며느리를 용서하시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 원후궁을 엄벌하시어 황실과 주씨 집안의 체면을 바로 세우길 간곡히 청합니다.”증조 마님의 말의 결론은 주명취의 실수를 용서하고 원후궁을 벌하라는 것이다.황후는 증조 마님이 황실과 주씨 가문을 결부시켜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명원제의 눈치를 살폈다.노인의 말을 듣고 명원제도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입술을 오므렸다.“노부인, 조바심 내지 마세요. 이 일은 짐이 철저하게 조사해 책임을 묻겠습니다. 참, 노부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주수보에게 들었습니다. 늦었으니 빨리 돌아가 쉬세요.”명원제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차가운 눈빛으로 주명취를 보았다.증조 마님은 넋 나간 표정으로 명원제를 보았다. 명원제는 나가면서 목여태감에게 초왕과 제왕을 불러오라고 분부했다.“황상, 제왕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만……”“그래도 안 죽는다.” 명원제의 차가운 목소리에 목여태감도 어찌할 수 없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도 알리고, 이리로 오시라고 하거라.” 명원제가 말을 덧붙였다.목여태감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황후는 명원제가 나가는 것을 보고 증조 마님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조모, 황상께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황상께서 지금 노하셨잖아요!”“황후, 이것이 다 당신이 잘 못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들 하나 간수 잘 못하는 어미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습니까? 어찌 후궁이 정비를 몰아내려고 계책을 세우는 것을 모를 수가 있습니까? 명취가 얼마나 억울했겠어요!”“조모, 본궁은 북당의 어미입니다. 말을 삼가세요. 그리고 우리 경이가 우유부단한 성격이지만 아무렴 후궁의 계책에 넘어가 정비를 내쫓겠습니까? 얼마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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