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의 말에 임소미는 침묵했다.따지고 봐도 어쩔 수 없다는 이유영의 한탄이 담긴 말투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훌륭한 어머니와 아버지, 이유영은... 그나마 행운아였다.“하지만 강이한 그놈에 대해선, 넌 여전히 조심해야 해!”며칠 동안 강이한의 흉을 안 봤더니 임소미는 속이 조금 불편했다.아무튼, 그 일에 있어서 임소미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다!상대하는 건 되는데, 반드시 관계를 끝내는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임소미가 예전에 이유영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처럼, 예전에 한지음은 이유영의 인생을 엉망으로 휘저어놓았고, 지금 한지음이 죽으니 또 그녀의 딸이 계속하게 할 수는 없었다.“걱정 마세요!”이유영이 말했다.그녀는 지금 외숙모가 한창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아무리 혈연 간의 엮임이 있더라도, 이유영은 강이한 더 이상 관계를 계속해 나갈 생각은 없었다.그러니까 지금 강이한은 강이한대로, 이유영은 이유영대로! 서로 엮이지 않길 원했다.“어, 엄마!”“응.”품속의 작은 아이가 자신의 머리를 잡으면서 말랑말랑한 엄마 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니, 이유영의 눈빛은 꿀이 떨어질 것처럼 부드러웠다.임소미는 아이를 이렇게 아끼는 이유영을 보며 조금 마음 아픈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이 꼬맹이는 말을 늦게 튼 편이야.”지금 이미 18개월 되었지만, 여전히 웅얼웅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하지만 급할 건 없었다!비록 아이들은 길을 걷고 말하는데 다 빠르고 늦음이 있기 마련이었다.“괜찮아요. 천천히 하겠죠.”이유영은 아이를 안고 한쪽에 있는 소파로 와서 아이를 소파에 놔두었다.그러고는 아이의 장난감을 찾았다.이번에 유아용품 가게에서 이유영은 아이의 나이 때에 딱 맞는 장난감들을 여러 개 샀다. 그리고 귀여운 물컵 한 개도 샀다.하지만 캐리어에 있는 물건들을 다 뒤집어 봤지만 결국 아이의 옷과 신발밖에 찾아내지 못했다.장난감이 몇 개 있었지만, 그 물
이유영은 지금 죽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결국 그녀는 안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반대편에서 안민은 오늘 오전 강이한이 확실히 사무실에 다녀갔다고 말했다.예전에 쓰던 방법대로 안민은 이유영이 체코로 출장을 갔다고 말하자 강이한은 돌아갔다.안만의 말을 들은 이유영은 안색이 더욱 안 좋아졌다.강이한은 출장을 갔다는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슨 화를 참으며 이유영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안민과 통화를 끝낸 뒤 이유영은 최익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강이한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당장 가서 알아보세요. ““네.”최익준은 알아보러 갔다.이유영은 온몸에서 긴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이유영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어?”‘제일 싫어하는 강이한의 행방을 왜 찾는 거지!?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임소미는 도통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유영을 바라보는 임소미의 눈에는 걱정이 더해졌다.이유영은 임소미를 바라보고 또 임소미 품속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더니 덥석 아이를 자기의 품속으로 넘겨받아 안았다.이 순간 이유영의 가슴은 꽉 쪼여있었다!“외숙모.”“응?”“난 그 사람한테 아이의 존재를 알게 해서는 안 돼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말했다.‘그래 절대 강이한이 아이의 존재를 알게 해서는 안 돼. 누가 뭐래도 그에게 알려서는 안 돼!’“당연히 모르게 해야지. 필경 그놈은 지금 한지음 아이의 아버지 행세를 하느라고 바쁘잖아!”‘지금 그놈 한지음 딸의 아버지 행세를 열심히, 그럴듯하게 하고 있잖아.’이 말에 이유영은 침묵했으며 안색은 몇 푼 더 안 좋아졌다!외숙모는 그저 흘러 다니는 소문을 조금 들었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데 이유영은 오죽하겠어? 그녀는 파리에서 두 눈으로 직접 강이한이 어떻게 좋은 아버지를 하고 있는지 보았다.“왜?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거야?”“어젯밤에 제가 아이 물건을 살 때 백화점에서 강이한이랑 그 애를 만났어요. 그리고 다툼이 좀 있었는데
이유영은 지금 당장 체코로 가서 안민이 한 거짓말을 반드시 수습해야 했다!“외숙모, 저 지금 당장 가봐야 할 것 같아요.”아이를 안고 있는 이유영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이런 빌어먹을 강이한 자식,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할 수 있지? 좋게 만났으면 좋게 헤어져 줄 줄도 알아야지!’지금 이유영의 제일 큰 소원은 바로 아이랑 함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정말 화가나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단단히 화가 났다.“그래. 너 얼른 가서 그쪽 일부터 잘 처리해.”임소미는 이유영의 품에서 아이를 넘겨받았다.분명한 건 임소미도 절대로 강이한에게 아이의 존재를 들키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다.예전에 강이한은 한지음과의 관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한지음 아이와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도대체 우리 유영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번 생에 강이한 이놈과 이렇게 사이가 얼기설기 엉켜있는 거야?’“엄... 마, 엄... 마!”꼬맹이는 임소미의 품에서 발버둥 치며 이유영 쪽으로 팔을 내뻗으면서 이유영에게 안기려고 했다.꼬맹이는 다리를 툭 치고는 임소미의 품에서 내려서 쪼르르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와락 이유영의 다리를 안았다.똘망똘망한 두 눈을 데구루루 구르면서 이유영을 보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이유영은 마음이 아파 얼른 아이를 들어서 안았다.“먼저 이모할머니랑 놀고 있어. 엄마가 얼른 다시 돌아올게. 응?”“엄마. 엄마.”꼬맹이는 와락 이유영의 목을 안고는 뭐라고 해도 이유영을 놓아주지 않았다.아이가 이렇게 나올수록 이유영은 정말 강이한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이때 이유영은 정말 강이한을 산채로 땅에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결국, 이유영은 애석하고 슬펐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다.만약 강이한이 아니었다면 이유영은 지금 딸과 오손도손 잘 지낼 수 있었다. 다 이 빌어먹을 남자 때문에 그녀가 딸이랑 떨어져야 했다.생각할수록 이유영은 더욱 억울해졌다.강
이유영은 어색하게 문 옆에 선 채 손에는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던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수만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왜 남편한테 조사를 당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거지? 관건은... 이 사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무슨 자격이 있다고?’“강이한, 너 ㅅㅂ 그만 좀 해!”강이한이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유영은 정말 터져버리고 말았다.그녀는 사납게 강이한을 바라보며 마치 그를 때려죽이고 싶은 눈빛이었다!‘젠장, 이 사람은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무슨 자격이 있다고 왜 여기서 이런 난장판을 벌이고 지랄인데!?’강이한은 마치 그녀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곳곳이 가서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뒤이어 안에서 또 우당탕 소리가 흘러나왔다.이유영은 머리가 아파서 이마를 짚었다.일 분 뒤, 강이한은 안에서 걸어 나왔다.“사람은 어딨어?”차가운 질문의 말투였다.이유영은 지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매우 분노하면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당신은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지?”“...”“나한테 질문할 자격이 있기나 해?”로열 글로벌을 경영한 이 몇 년간, 이유영이 봤던 뻔뻔한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하지만 강이한처럼 이렇게 실제로 뻔뻔한 사람은 정말 이유영도 처음이었다!‘그리고 강이한... 이 사람은 도대체 왜 내 세상에서 이렇게 제멋대로일까?’“이유영, 다시 한번 묻는데 사람을 어디다 숨겼어?”“내가 지금 남자를 10명 두었다고 해도 다 당신이랑 상관없잖아. 왜 여기 와서 뒤지고 난리야?”이유영은 바락바락하며 강이한에게 노호했다.정말 가능하다면 이유영은 지금 눈앞의 이 남자를 때려죽이고 싶었다.말이 끝나자, 강이한의 차갑던 눈매는 더욱 싸늘해졌다. 그리고 이유영을 바라보는 눈 밑은 마치 그녀를 태워죽일 것 같았다.이유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와 눈길이 마주쳤다.순간... 서로 대치하던 두 사람의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것 같았다.이유영은 강이한을 쳐다보면서
‘진짜 가능한 거냐고?’이유영의 말 속에 담긴 비꼬는 말투와 거리감 때문에 강이한의 안색은 점점 더 하얘졌다. 그리고 매번 그 돌이킬 수 없는 기억을 되새길 때, 그의 가슴은 마치 바늘에 콕콕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안 좋은 기억들이 쏟아져나오자, 강이한은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그때 당시 이유영이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강이한의 아이일 경우... 그 아이는 태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이유영이 아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그, 그럼 누구 아인데?”한참 동안 마음을 다잡은 후 강이한은 쉰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강이한의 마음속에 도대체 어떤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특히 이유영의 입가에 걸린 풍자를 보고 있으면, 그 풍자함은 마치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그 아이는 강이한의 아이일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그제야 강이한은 자기가 생각해 봐도... 이유영이 자신의 아이를 낳았을 리 없다고 생각되었다.예전의 이유영은 비록 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면서 무슨 일이든 다 강이한에게 의지했지만... 사실 그녀에게도 자신만의 자부심이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제일 고되고 힘들 때, 제일 깊고 절망적인 심연에 빠졌을 때, 강이한에게 이혼을 제기할 리가 없었다.이유영은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진 강이한 때문에 멈칫했다.‘누구 아이냐고?’이유영이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강이한은 성큼 다가와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이유영이 발버둥을 치려는 순간, 강이한의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의 아랫배 흉터에 떨어졌다.“아이, 누구 아이냐고...”강이한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숨겨져 있었다.그는 도대체 누구의 아이가 이런 상처를 내면서 이유영의 배에서 나왔는지 알아야 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강이한이 그쪽으로 질문할 줄 생각하지 못한 눈치였다.하지만 지금, 이유영이 아이를 낳았었다는 일은 더는 숨길 수 없었다.그렇게 된 이상 이유영은 강이한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방안에서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비록 이유영도 지금 담배를 피우지만, 이런 간접흡연 냄새를 싫어했다.강이한이 연속 담배를 몇 대 피웠기에 지금 온 방 안에는 다 담배 냄새였다. 이유영은 정말 짜증이 났다...하지만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강이한의 모습은 정말 고문을 받는 것 보다 사람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박연준의 아이일 수가 없어!”이유영이 어떤 말로 입을 열지 생각한 순간, 강이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이유영은 눈썹을 치켜들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이 줄곧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것이 바로 이유영이 왜 처음부터 강이한에게 아이의 존재를 모르게 하려는 이유였다. 일단 강이한이 알게 되면 그 뒤에는 번거로운 일들이 생길 게 뻔했다.하지만 오는 길 내내, 이유영은 그나마 생각을 거의 다 정리했다.그녀는 지금... 이 일을 설명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렇게 된 이상, 이유영은 모른 체 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이 없어!”“만약 아이가 진짜 박연준의 아이였다면, 서주에 있을 때, 당신 외삼촌은 그 사람의 편을 들었어야 맞아. 근데 그러지 않았어!”강이한도 보아 낼 수 있었지만, 그때 정국진과 박연준 사이에는 갈등이 아주 커 보였다,이유영은 찬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서주에서뿐만 아니라 사실 파리에 있을 때부터 그 두 사람의 사이는 이미 그랬다.“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강이한은 갑자기 되물었다.“당신이랑 무관하다고!”“나 아이랑 친자 검사를 해 봐야겠어!”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그녀는 매섭게 강이한을 쳐다보았다!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상황에 아이의 정체는... 더욱 숨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 강이한에게 아이의 행방을 숨기면 그가 의심을 더 할 게 분명했다.이렇게 된 이상...“퀘벡에 있어.”이유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이한은 슉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에 있어서 더 이상 이유영과
“아니, 몰라!”“모른다고?”“사고였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과 박연준의 사이가 있는데 내가 알려줄 수 있었겠어?”“그럼, 박연준은? 아이의 존재를 알아?”“알아!”‘박연준은 알고 있다니! 박연준은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강이한이 더 묻어보기 전에 이유영은 계속해서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박연준은 당신의 아이인 줄 알아!”“...”이 말에 강이한의 안색은 확 변했다.비록 조금 혼란스럽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것도 타당하다고 해도 되었다.아이가 서재욱의 아이이니 당연히 박연준에게 알리면 안 되었다. 안 그러면 두 사람은 친구 사이고 뭐가 계속할 수가 없었다.그리고 강이한의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친자 검사를 하지 말아 줘. 세상에는 안 새는 비밀이 없어. 아이가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이 일단 들통나면 그때는...”뒤의 말은 이유영이 계속해 나갈 필요가 없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의 말귀를 알아들었다.일단 사람들에게 이유영이 낳은 아이가 강의한의 것이 아닌 것을 알게 하면 안 되었다!지금 이유영의 신분대로라면 달게 아이의 아버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하, 그 사람이 당신에게 그 정도로 중요한가 보네!”여기서 말한 그 사람은 박연준이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박연준을 위해 아이의 일까지 비밀로 한다고 생각했다.이유영은 침묵했다.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침묵하는 건 강이한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말에 묵인하는 것이었다.강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문 앞까지 걸어간 순간, 뒤에서 이유영의 말소리가 들렸다.“제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줘. 어?”‘비밀을 지켜달라고!?’이 말은 아이의 신분이 불명예스럽다는 것을 설명했다.쿵 소리와 함께 이유영의 말에 대답하는 건 강이한이 문을 박차고 나고는 소리였다.이유영은 싸늘하게 떠나는 강이한의 뒷모습을 보며 그나마 한시름을 놓았다.‘정말이지, 남자는 믿어야 할 때는 시종 안 믿다가 안 믿어도 될 때는 도리어 빠르게 받아들이네. 오히려 잘 됐어!’믿
용준은 이유영은 데리고 한 방문 앞에 왔다. 문은... 비스듬히 열려있었는데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여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을 뿐만 아니라 남자의 목소리도 있었다...이유영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용준을 바라보았다. 용준도 안색이 안 좋아져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박연준 씨는 제게 이것을 들으라고 부른 거예요?”이유영은 비꼬는 말투고 말하고는 비웃었다.“형수님, 이건...”“흥!”용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유영은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용준은 이유영의 뒷모습을 한번 보고는 또다시 문을 한번 본 후, 뒤돌아서서 안절부절못하며 이유영의 뒤를 쫓아갔다.이유영은 저녁에 운전할 수 없었다!그래서 떠나기 전에 박연준은 용준에게 꼭 조심해서 데려오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말투에는 이유영에 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가득했었다.박연준의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비록 이번에 이렇게 큰 변고가 있었지만, 사실 박연준은 이유영에게... 전에 이유영을 이용한 건 확실히 박연준의 잘못이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가기 전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왜 돌아오니 이런 상황이지?’용준은 자초지종을 알아볼 새도 없이 그저 이유영을 따라가서 그녀에게 사고가 생기지 않게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차 안에서 올 때도 빠르게 왔듯이 갈 때도 빨랐다.“형수님, 이 일은 뭔가...”“용준 씨!”“네.”“서주의 변고 때도 봤잖아요. 저랑 그 사람 사이는...”여기까지 말한 이유영은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밖에 이미 어두워진 불빛을 보면서 말했다.“그 사람에게 한마디만 전해주세요. 저랑 그 사람은 시작한 적도 없으니 이렇게 나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끊어낼 필요는 없다고 전해주세요!”용준의 가슴은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이게 도대체 무슨 아수라장이야.’비록 말하진 않았지만, 용준은 이미 이 말을 들었을 때 박연준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예상이 갔다.‘근데 아까 그 방의 상황,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용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