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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전연우는 집에 돌아와 복도를 지나가다가 화실 조명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실 문을 빼꼼 여니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몸에 얇은 가디건 하나만 걸치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장소월은 문 소리를 듣는 순간 그가 왔음을 알았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검은색 정장이 장소월의 어깨에 걸쳐졌다. 그녀가 붓을 멈추자, 전연우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간이 늦었는데 왜 아직도 안 쉬고 있어?”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는 낯설기도, 익숙하기도 했다.

장소월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잠에서 깼는데 뭘 할지 몰라서 작업 마무리하려고 왔어.”

전연우는 그녀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비가 그친 뒤 자욱이 안개가 덮인 수림 속, 빗방울이 아직 나뭇잎에 걸려있는 모습이 몽롱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전연우는 그림을 잘 몰랐음에도 장소월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뭘 그린 거야?”

장소월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옥수림이야. 선배님이 만든 새로운 게임인데 배경 작업을 3일 안에 해야 해.”

그림의 이름을 들은 순간, 전연우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공기 중에 풍겨나갔다. 외투엔 알코올 냄새를 제외하고 향수 냄새도 깃들어 있었다.

장소월은 몸에 덮여 있는 정장을 벗어 그에게 돌려주었다.

“씻고 쉬어. 별이는 아기방에 있으니까 깨우지 말고.”

전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돌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장소월은 몸의 중심을 잃고 붓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려는 거야!”

옆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떠올린 그녀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다.

허공에서 잡힌 팔목을 보니 이미 시뻘겋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고통에 눈썹을 찌푸렸다.

전연우가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잔잔해 보였지만, 폭풍전야처럼 옅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말하지 않으면, 장소월은 그가 대체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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