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서준은 최우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최아현이라는 여자,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봐 줘.”그리고는 방금 자신이 다녀간 그 별장의 주소도 함께 보내주었다.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집어넣은 최서준의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최아현이라고 하는 이 여자, 보통 여자가 아님이 틀림없었다.화경 대가 정도 되는 여자를 수하로 둔 것도 모자라 어둠 속에서 그녀를 지켜주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군인이었다.그뿐만 아니라 최아현의 별장 속에서 통맥경에 유능한 고수가 숨어있다는 것도 발견했다.아무리 잘 숨었다 해도 최서준의 감각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최우빈에게서 빠르게 답변이 돌아왔다.“도련님, 이 최아현이라는 여자 말이에요. 꽤 신비한 여자 같아요. 저희 쪽 수하가 찾은 바로는 구전 골동품 센터 운영자라는 것 빼고는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습니다.”“알았어.”최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딱히 관심 없어. 하지만 내가 조씨 일가한테 복수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한밤중, 몇 대의 방탄 차량이 조용히 조씨 가문의 뒷마당으로 들어왔다.조훈은 조씨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차 문이 열리자 해외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경계하며 차에서 내렸다, 모두가 실탄을 소지하고 있었다.이윽고 남녀 한 쌍이 천천히 그 차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냈다.밀리터리 코트를 입고 입에는 큰 시가를 물고 있는 남자의 눈빛은 독사처럼 날카롭고 표독스러웠다.길고 하얀 코트를 걸친 채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여자는 기품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 둘은 조명휘의 외삼촌과 엄마인 도선호와 도선화였다.“선화, 선호야. 와줬구나.”조훈은 잔뜩 신난 얼굴로 둘을 맞이했다.그 순간, 수십개의 총구가 조훈을 겨누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십개의 총을 장전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여왔다.깜짝 놀란 조훈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려 그 자리에
”선화야, 그 새끼는 우리 조씨 가문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지만 않았어도 내가 진작에….”조훈은 얼얼한 뺨을 감싸 쥔 채 무어라 제대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어찌 됐든 눈앞의 여자도 조훈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니.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대표이사로서 골든 특수부대를 손에 쥐고 있는 마약의 여왕으로 그녀의 사업은 전 세계 곳곳에 뻗어있었다. 그런 그녀를 다른 사람들은 즐랙 위도라는 말로 암암리에 지칭하고 있었다.도선호는 그녀의 친동생으로 골든 특수부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인 부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수하에만 수십만의 군대를 두고 있는 그였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손에 묻혀왔을지 가늠이 안 갈 정도였다.조씨 가문의 주인인 조훈이 두 사람을 함부로 거역할 수 없는 이유였다.몇 년 전, 정부에 의해 지명 수배를 당하기 시작한 도선화 때문에 자신의 가문에게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한 조훈이 먼저 일방적으로 이혼을 해버렸다. 그 때문에 둘은 1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았다.“닥쳐!”도선화는 차갑게 조훈의 변명을 차단했다.“조씨 가문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명휘 죽인 그 새끼 하나 처지 못 한다니, 그 말은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도선호가 비릿하게 웃으며 옆에서 거들었다.“나도 다 찾아보고 왔어. 그 새끼 고작 스무 살 언저리더만. 그런 새끼가 어떻게 무술 종사야? 니들이 너무 X밥이라 그냥 걔를 신격화시켜놓은 거겠지.”“그래, 백번 양보해서 걔가 진짜 무술 종사라고 쳐. 그래서 뭐? 무술 종사면 총 맞아도 안 뒤진대?”“난 죽어도 안 믿어. 수백 개의 총구가 그 새낄 겨눠도 살아남을까?”“됐어!”도선화가 입을 열었다.“선호야, 네 수하들 다 남양시로 불러내서 철저하게 준비시켜.””알았어 누나. 그럴 줄 알고 이미 오기 전에 이미 800명 정도 배치 해 놨어. 다 무기로 무장하고 있을 거야. 몇 명 정도 죽이는 것쯤이야, 뭐. 남양 시를 풍비박산 내고도 남을걸.””비밀 유
방수민은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꺼내며 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서준 씨, 계약서 확인하시고 이의 없으시면 서명 후 지장을 찍으시면 됩니다. 문제없으면 결혼증명서 저에게 주세요.”“더 볼 필요 없습니다.”최서준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이 모든 일을 끝낸 후 그는 바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방수민은 안타까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 창가에 김지유가 앉아있다.“남편분이 확인도 하지 않고 서명하셨어요.”“저도 봤어요.”김지유가 슬픈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대답했다.아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였기에 최서준이 들어올 때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모두 봐버린 그녀였다.김지유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창백해 보인다.그녀는 최서준이 이토록 매정하고 단호한 사람일 줄 몰랐다. 이혼계약서 내용을 보지도 않고 서명해 버리다니.어쩌면 김지유가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예전의 그녀가 최서준에게 모질게 굴었으니 지금 그가 김지유에게 매정히 대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왜인지 모르겠지만 최서준과 이혼한 이후 김지유는 마음이 훨씬 안정되었다.이혼은 그녀가 최서준을 완전히 마음에서 내려놓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지유는 드디어 십수 년 동안 고대하며 기다려온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김지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방수민에게 말했다.“방 변호사님, 저 유언장 만들고 싶은데, 내용은 이미 써두었으니 봐주세요. 이참에 다 해결해 버리게요.”김지유가 가방에서 계약서 한 부를 꺼내 방수민에게 넘겨주었다.방수민이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지유 씨, 아직 이렇게 젊으신데 유언장은 왜 작성 하려고 하는 거예요?”“이유는 묻지 말고 해주세요.”김지유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방수민은 어쩔 수 없이 유언장을 받았다. 첫 페이지를 펼쳐 몇 번 훑어본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지유 씨, 회사 주식을 모두 최서준 씨에게 양도하시려고요? 지유 씨 명의의 부동산과 자동차들
“맞아. 지유야, 우리 집안은 똑똑하고 훌륭한 네가 이끌어야 더 번성할것 아니니.”가문의 셋째 김인걸이 맞장구를 쳤다.“지유야, 인제 그만 돌아와. 가문이 너 없이 어떻게 잘 되겠니. 할아버지 염원도 이루어 드려야지.”가문의 윗사람들이 다정한 얼굴로 그녀를 타일렀다. 거절하면 무릎까지 꿇을 기세다.“큰아버지, 아주버님들...”김지유는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그동안 자신을 원수 보듯 대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듯 구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가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탁하러 왔단다.“지유야. 우리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허락해 줄 거니?”김인웅이 급기야 무릎을 꿇으려 했다.최서준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김지유가 가주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타의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수도 있었다.김지유가 얼른 김인웅을 제지하고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큰아버지, 가주는 할 수 있는데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건지 알려주세요.”김인웅이 갑자기 우물쭈물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옆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냈다.흑운리에 있을 때, 최서준이 그들에게 절대 김지유가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 그들은 최서준의 명령 때문에 김지유에게 가주 자리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김인호가 형님의 의중을 깨닫고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지유야, 우리가 꿈에서 네 할아버지를 만났어. 할아버지께서 가주 자리는 꼭 네가 맡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지 않으면 편히 눈 감을 수 없다고...”“그래, 그래. 지유야, 전에는 우리 집안 어른들이 네 말을 믿어주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께서 직접 꿈에 나타난 뒤로는 그것이 정말 네 할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김지유는 그들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수긍하기로 했다.“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만 요구가 있어요. 제가 처리할 일이 있으니 3일
오늘은 최서준과 조씨 가문이 원한의 끝장을 보는 날이다. 그러나 최서준은 별다른 기색 없이 태연했다.그는 여느 때와 같이 허란희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그녀를 눕혀 혈액순환을 돕도록 전신 마사지를 해주었다.“란희 이모, 지금은 좀 어때요?”최서준이 쭈그리고 앉아 허란희를 바라보았다.“많이 나아졌어. 전에는 다리가 쑤셨는데 이 며칠 네가 안마해 주니 통증이 사라졌네.”허란희가 흐뭇한 얼굴로 최서준을 바라본다.그녀는 자신의 과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서준은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정 있는 아이였다.이 아이는 수백억대가 되는 대저택에 살면서 다른 고용인을 시켜 시중들게 할 수 있음에도 저 같은 늙은 아주머니를 한결같이 대하며 안마해 준다.최서준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그럼 다행이네요. 시간 나면 임 집사님과 함께 산책이라도 하세요. 오랜만에 몸 좀 움직이시고요.”허란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얘야, 넌 언제 나한테 며늘아기 보여줄 거니?”최서준이 저도 모르게 잠시 멈칫했다.“왜? 이모한테 보여주긴 아직 쑥스러워?”그가 수줍어하는 줄 아는 허란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너와 며늘아기에 대한 이야기는 임 집사에게서 들었었다. 애가 그렇게 예쁘다던데...”최서준은 이혼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란희 이모, 저 일이 바빠서 나가봐야 해요. 돌아와서 다시 얘기해요.”“그래, 그래. 일이 바쁘면 가야지.”허란희가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최서준이 떠난 후, 허란희는 몸을 일으켜 집사 임미윤을 찾았다.“윤아, 좀 걷고 싶은데 같이 가주련?”“네. 언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옷만 갈아입고 같이 갈게요!”임미윤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승낙했다.이 며칠간 함께 지낸 두 사람은 사이가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사석에서 서로 자매처럼 대할만큼 말이다....나인원의 출구에 수백 대의 고급 차량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인근 주민들이 저도 모르게 멈춰서서 입을 떡 벌렸다.차량 밖에는 정
“두렵지 않습니다!”맨 앞에 선 애꾸눈 사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도련님, 저희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들입니다. 우리 중에는 지능이 낮은 사람도 있고, 절름발이도 있고, 맹인도 있습니다.”“우리는 이 세상에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처음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에서 버려졌었지요.”“그런 우리를 거두고 치료해 주어, 존엄을 지켜주고 살길을 만들어주신 사람이 바로 스승님입니다.”“우리의 목숨은 사제 두 사람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죽는 것이 대수겠습니까.““그래. 좋아.”최서준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원한이 담긴 흑색 눈동자에 살기가 흘러나왔다.“출발!”위엄 있는 명령이 떨어졌다.그는 최우빈의 안내에 따라 중앙의 승용차를 탔다.“쾅쾅쾅!”수백 명의 정장 차림 사내들이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차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곧이어 자동차 엔진소리가 천둥 치듯 남양 시를 뒤흔들었다.이어서 수백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검은 먹장구름처럼 남원 추모 공원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차에 앉아있는 최서준의 눈에는 복수의 불길이 마구 치솟는듯했다.이제 12년이 지났다.한성 보육원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떴던 아이들, 너희들은 곧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될 것이다....롤스로이스 차 안에서, 주하은이 옆을 지나가는 검은 차량 행렬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할아버지, 서준 씨 출발했어요. 우리 정말 안 따라가는 거예요?”주동필이 할 수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어쩔 수 없지. 신의님은 우리가 방해할까봐 걱정해서 그런 걸 거야. 우리 주씨 가문은 어려서부터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오는 데 익숙했잖니. 어떤 사람은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숨을 헐떡이는데, 가도 혼란만 주고 도움은 되지 못할 거야.”“기다리는 수밖에.”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입을 열었다.“난 신의님이 반드시 승리하고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주하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그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린다.한성 보육원 유적지.검은 무사 도복을 입은 한 여인이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최아현의 뒤에 서 있다.“옛 친구들, 그리고 원장 할아버지, 멀리서 잘 지켜보고 계세요. 오늘 드디어 조씨 가문이 종말을 맞이할 거예요!”최아현이 유적지를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옛날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12년이 흘렀어도 떠올릴 때마다 눈에 선하다.최아현이 갑작스레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홍도 언니, 세관이랑 공항 쪽에는 무슨 소식 없어요?”홍도라 불리는 우산을 든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없어요. 아저씨가 계속 주시하고 있지만 아직 조씨 가문 선조 조무석이 들어왔다는 말은 없어요.”“이 늙은 구렁이 같은 영감탱이, 20년 동안이나 이리저리 숨어다니더니 설마 우리 계획까지 눈치채고 가문을 포기한 건 아니겠죠?”최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글쎄요. 무술 종사이니 위험에 대해 예지력이 있긴 한데...”홍도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세관과 공항도 거치지 않고 몰래 밀입국할지도 모르죠.”최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원 추모 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와라. 얼른!”“널 위해 정성스럽게 핵폭탄 선물을 준비해 두었으니! 가문 구하겠다고 남원 추모 공원에 발을 들인다면 바로 이곳을 초토화로 만들어주지.”“최사부는 안타깝게 됐네요. 같이 이 땅에 묻히게 되었으니...”홍도가 동정을 느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러게요. 제가 빚진 셈 치죠. 무술 종사 한 명 죽이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최아현의 눈에 잠시 슬픈 눈빛이 아른거렸지만, 곧 결연함으로 변했다.이때 홍도의 핸드폰이 울렸다.한참 뒤 전화를 끊은 홍도가 말을 전했다.“조씨 가문의 숨겨둔 카드를 찾았어요. 그쪽에서 골든 특수부대의 블랙 위도우와 당지 군사 집단의 찰스 장군까지 모셔 왔답니다.”“두 사람이 가문의 가주 조훈의 전처와 처남이랍니다. 각자 본명은 도선화, 도선호입니다.”홍도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했다.“찰스
임미윤이 성을 내며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언니, 너무 겁먹지 마세요. 아까 언니 밀쳐서 넘어질 뻔했는데 사과 한마디 없잖아요!”“지금 당장 최사부한테 전화해서 처리해달라고 해야겠어요!”그녀가 핸드폰을 꺼내 들며 최서준에게 일러바치려 하였다.이때 최아현이 홍도와 함께 다가와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아가씨, 그게... 안 된다고 말했는데도 계속 들어오려 하셔서...”한 사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제야 최아현이 임미윤과 허란희를 쳐다보았다다.그리고 허란희를 바라보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란... 란희 이모?”“누구... 세요?”허란희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최아현을 응시했다.최아현이 잠시 심호흡하며 평정을 되찾은 후 조심스레 물었다.“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성은 허, 이름은 란희입니다.”허란희가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최아현의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최아현이 감격에 겨워 저도 모르게 외쳤다.“이모! 란희 이모, 정말 이모네요. 이모 맞네요!”“저 아현이에요! 한성 보육원 울보 아현이! 저 기억 안 나세요?”“쿵.”허란희가 떨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더듬더듬 말했다.“아현이? 네가 정말 아현이라고?”“네!”최아현이 호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지폐로 만들어진 낡은 종이학을 꺼내곤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이 종이학 기억하세요? 그때 저랑 지유가 이것 때문에 싸우기까지 했잖아요. 마지막엔 이모한테 혼나고, 나중에는 이모가 폐지 주워서 바꾼 천 원으로 지유한테도 하나 만들어주셨잖아요.”허란희가 앞으로 한 걸음 나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감격에 젖은 눈물을 흘렸다.“아현이! 맞구나. 우리 아현이!”영문을 모르는 홍도와 임윤미는 곁에서 입을 딱 벌린채 지켜보고 있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두 사람은 그제야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최아현이 허란희를 애정 깊은 눈으로 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