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지금 회사에 나갈게.”김지유가 전화를 끊은 후 대충 씻고 나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집을 나서려 했다.1층을 지날 때 최서준이 아침밥을 들고나왔다.“오늘 토요일 아니야?”“회사에 좀 처리할 일이 있어서.”김지유는 대답하고 바로 문을 나섰다.그녀가 조명휘 얘기를 꺼내지 않은 원인은 주로 최서준이 또 지난번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할까 봐 걱정돼서였다.잠시 후, 김지유는 해성그룹에 도착했다. 그녀가 사무실 입구까지 갔을 때, 양복 차림에 장미 꽃다발을 든 청년이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다름 아닌 조명휘였다. 그는 김지유를 보자마자 꽃을 들고 걸어왔다.“지유야, 왜 이제야 왔어? 나 30분이나 기다렸어.”“이건 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 준비한 꽃이야. 맘에 들어?”“조명휘, 용건이 뭐야?”김지유는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조명휘는 눈에 차가운 기운이 살짝 돌았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다.“지유야, 내가 오늘 여기 온 건 나쁜 의도가 없어. 나를 이렇게 배척할 필요는 없잖아?”조씨 가문도 한성 보육원 방화 사건에 참여했다는 것을 안 뒤로 그녀는 조명휘에 대해 더욱 증오하고 적대시했다.조명휘는 입구로 가더니 문을 닫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유야, 나는 우리가 진지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네가 얼마 전 4,000억 투자를 받아서 잠시 회사의 자금난을 해결했지만 투자 유치는 첫걸음일 뿐이고 비즈니스는 제품에 의존한다는 걸 너도 알잖아. 변화가 없으면 조만간 또 새로운 난제에 직면할 거야.”“조명휘,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김지유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조명휘가 말한 문제를 그녀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다.조명휘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우리 회사에서 최근 신형 화장품을 개발했는데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너도 알고 있지?”“나한테 자랑하러 온 거야?”김지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조명휘 소유 회사인 명휘그룹은 해성그룹과 마
정말 처방을 팔겠다는 한약 명가가 있더라도 명휘그룹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조명휘는 그녀의 반응을 하나하나 눈여겨본 후 득의양양한 나머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지유야, 사실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 혹은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어.”“네가 최씨 그 자식과 이혼하고 나랑 결혼하기만 하면 앞으로 남양의 화장품 분야에서 해성그룹이 최고가 되도록, 명휘그룹은 너희와 경쟁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화장품 처방도 너랑 결혼하는 예물로 줄 수 있어. 어때?”이 말에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속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김지유는 바보가 아니다. 그녀는 조명휘가 자기 몸을 갖고 싶어 할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게다가 조씨 가문이 한성 보육원 방화에 참여했으니 그녀의 원수다.그녀가 어찌 원수와 손잡겠는가.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지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조명휘, 나랑 결혼하는 건 꿈도 꾸지 마. 내가 화내기 전에 꺼지는 게 좋을 거야.”솨! 조명휘의 표정이 순식간에 음침해졌다.“천한 년! 내가 온갖 좋은 말을 다 했는데도 내 호의를 무시하겠다 이거야?”“최씨 그 자식이 도대체 어디가 나보다 나아서 그 자식한테는 퍼주면서 나한테는 조금도 안 주는 거야?”“네가 태어날 때부터 자극적인 걸 좋아해서 쓰레기랑 하는 게 좋아?”찰싹! 김지유가 언제 이렇게 상스러운 말을 들어봤겠는가. 그녀는 화가 치밀어올라 몸을 부르르 떨면서 따귀를 한 대 갈겼다.“너... 파렴치한 놈!”“꺼져. 꺼지라고!”“지금 당장!”그러나 조명휘는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에게 바싹 다가오며 코웃음을 쳤다.“내가 가지 않으면, 넌 어떻게 할 건데?”“너... 너 뭐 하는 거야?”김지유가 깜짝 놀라 소리 지르며 연신 뒤로 물러섰다.조명휘는 바싹 다가서며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뭐하냐고? 당연히 너랑 하려고 그러지!”“내가 그렇게 쫓아다니는데 넌 항상 고상한 척했어. 체면
절망에 빠져 눈을 감고 있던 김지유는 인기척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눈을 뜨더니 희색이 만면했다.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최서준이 아니면 또 누구겠는가?이 시각 김지유는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듯한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최서준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괜찮아?”“나... 나 괜찮아.”김지유는 말하고 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최서준을 덥석 끌어안았다. 그녀는 가냘픈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방금 최서준이 때맞춰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조명휘 뜻대로 될뻔했다.“대표님.”반윤정도 초조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먼저 저쪽에 가 있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최서준은 김지유를 한마디 위로한 후 뒤돌아서서 조명휘를 노려보았다.그의 눈에는 극도로 차가운 기운이 감돌아, 보는 사람의 머리가 쭈뼛 설 정도였다.방금 그가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김지유와 그는 서로 애정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김지유는 최서준의 여자다.자기 여자도 지키지 못한다면 남자라 할 수 있겠는가?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최서준은 한 걸음 한 걸음 조명휘를 향해 걸어갔다.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더해졌다.조명휘는 욕설을 퍼부으려 했지만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안색이 확 변했다.“최서준, 너... 너 뭐 하려는 거야?”“경고하는데, 난 조씨 가문 도련님이야. 감히 나를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반드시 비참하게 죽게 될 거야.”이 말을 할 때 그는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최서준의 솜씨를 본 적이 있는데, 자기는 아예 그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그런 너도 아주 비참하게 죽게 될 거야!”최서준이 찬 기운을 뿜으며 그에게 다가갔다.“그래, 덤벼!”조명휘는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최서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그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최서준이 아예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곧이어 그는 안색이 변했다.그의 주먹이 최서준의 몸에
“조씨 가문은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네가 죽는 건 물론 김지유도 죽어.”그의 말을 들은 김지유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 최서준의 손을 잡아당겼다.“최서준, 흥분하지 마. 절대 흥분하지 마. 이 사람을 죽이면 너도 죽어.”그녀는 급한 나머지 눈물까지 나왔다.여자가 우는 꼴을 못 보는 최서준은 가슴에 넘치던 살기가 순식간에 가셨고, 죽은 개를 버리듯 조명휘를 힘껏 내던졌다.“꺼져. 지유 체면을 봐서 잠시 며칠 더 살게 해줄게.”잠시 후, 조명휘의 경호원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를 들고 갔다.사무실 밖은 직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이들 몇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의견이 분분했다.“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방금 내던져진 사람은 명문가 조씨 집안의 조명휘 도련님일걸.”“맞아, 그 사람 맞아.”“김 대표님 남편이 진짜 잔인하네. 조명휘 도련님을 때려서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조씨 가문에서 이번에 미쳐 팔짝 뛰겠어.”“팔짝 뛰기만 하겠어? 대형 사고를 친 거야. 김 대표님도 저 사람을 지키지 못할걸.”“...”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들의 말소리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몇 사람의 귀에 들어왔다.김지유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반 비서, 다들 입을 다물라고 해. 이 일을 계속 말하는 사람은 모두 해고야.”반윤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가 호통쳤다.“다들 할 일 없어요? 입조심하고 제 자리에 돌아가요.”직원들은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반윤정은 문을 닫은 후 아직도 무서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김지유의 옷자락을 당기며 말했다.“대표님, 저... 경찰에 신고할까요?”“절대 경찰을 부르면 안 돼.”김지유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반대했다.“왜요? 조명휘가 대표님을 성폭행하려 했는데, 저희가 경찰에 신고하면 그를 골탕 먹일 수 있을 텐데요.”반윤정이 이해되지 않아 이렇게 묻자, 김지유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냥, 어쨌든 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그녀는 경찰에 신고하면 조씨 가문의 배경 때문에
최서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김지유는 그의 손목을 잡아끌고 해성 그룹을 벗어났다.“날 어디로 데리고 가려고?”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던 최서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가보면 알 거야.”김지유가 최서준의 물음에 냉랭하게 답하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한편, 조명휘가 남자 구실을 못 하는 불구로 됐다는 소문은 남양시 재벌가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너네 그거 들었어? 조명휘 고자 됐다는 거? 그럼 이제 저 집안 대는 다 끊기는 건가?”“미친, 그게 진짜였어? 조명휘면 그 집안 큰 도련님 아니야? 대체 어느 정신 나간 인간이 조명휘를 건드린 거야?”“진짜야. 나도 어디서 들은 거긴 한데 조명휘 그렇게 만든 사람, 김지유가 키운 꽃제비라던데? 본 사람들도 꽤 된대.”“김지유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김지유가 뭔 짓을 하든 다 눈감아주고 넘어가줬던 도련님인데, 그런 분한테 감히 그딴 짓을 해? 쟤 진짜 아직도 뭘 잘 모르나봐, 김씨 집안도 예전 같지 않은데 말야.”“하하, 다들 잘 지켜봐, 조 씨 집안 도련님을 건드린 이상, 죽은 목숨이니까.”조명휘의 소식을 들은 모든 재벌가 사람들이 놀라 열띤 토론을 펼쳤다. 하지만 대부분은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재밌는 가십거리가 생겼다는 듯 얘기할 뿐이었다.병원에 입원한 조명휘는 온몸을 누드 김밥처럼 붕대로 감은 채 병상에 누워있었다.“아버지, 제가 고자래요, 제가 고자라고요…. 저는 이제 저희 가문의 대를 이을 수가 없어요.”병상에 누워있던 조명휘는 미친 사람처럼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아버지, 저 그 자식 꼭 죽여야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새끼 죽여버리고 말 거라고요.""그리고 김지유 그 망할 년도, 그 년도 제가 꼭 죽일 거예요. 아니지, 그냥 한 번에 보내주는 건 너무 재미없지. 거렁뱅이들한테 한 번씩 따먹히고 난 뒤에야 겨우 죽을 수 있게 만들 거예요.”아들의 악에 받친 포효를 듣고 있던 조훈이 어두운 표정으로 힘껏 조명휘의 뺨을 휘갈겼다.조명휘는 자신이 후계자로
최서준도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이렇게 조명휘를 불구로 만들어버릴 줄이야.하지만 놀란 기색도 잠시, 그녀는 곧이어 배시시 웃어 보였다.어찌 됐든 최서준은 이름도 유명한 천재 의사로서 용의 반지까지 가진 귀한 인물이었다.조명휘가 고자가 되든 말든 조 씨 쪽에서 최서준에게 해코지할 좋은 방도는 딱히 없을 것이다.옆에 있던 최서준의 표정에서도 역시 그의 어이없음이 잘 드러났다.그에게 조씨 집안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김지유에게도 진작에 잘 일러뒀지만 김지유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을 뿐이다.주하은이 보기에도 김지유는 지금 최서준의 정체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다.잠깐 생각하더던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지유야, 너 지금 나한테 부탁하는 거 맞지?”“맞아, 나 지금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눈시울이 붉어진 김지유가 말을 이었다.“네가 최서준만 지켜준다면 나 여기서 너한테 무릎도 꿇을 수 있어. 나…. 나 정말 시키는 건 뭐든 할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꿇어앉았다.주하은은 아무 생각 없이 장난 한번 쳐본 것 뿐이었는데 김지유가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무릎을 꿇은 김지유를 보자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인 주하은이 급히 김지유를 일으켜 세우며 얘기했다.“됐어, 어디 무서워서 장난도 함부로 못 치겠네. 이게 뭐라고, 그냥 도와주면 되는 거잖아? 도와줄게.”“고마워, 하은아.”주하은의 확답을 들은 김지유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서준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김지유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까지 흘리며 얘기했다.“둘 다 얼른 들어와. 이 일은 내가 할아버지께 잘 말씀드려볼 테니까.”주하은은 최서준에게 장난스레 윙크를 날리며 두 사람을 데리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저택 거실에 모인 세 사람은 이 저택의 주인인 주동필을 만났다.주하은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주동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최서준을 바라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주씨 일가 모두가 순간적으로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그들 중 아무도 조씨 가문 쪽에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가문을 없애버리겠다며 나타났는데 그 누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랴.모두의 눈빛이 최서준에게로 향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최서준의 반응을 궁금해했다.하지만 최서준의 반응은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었다.주동필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나 얘기했다.“최 선생은 잠시 여기 있게. 내가 직접 나가서 한번 보고 올 테니.”“아버지, 일이 지금 이렇게까지 됐는데 아직도 이 자식을 감싸고 싶으세요?”주하은의 아버지 주석훈이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주현재는 바로 말을 얹었다.“그래요, 아버지. 보아하니 조 씨 쪽에서 작정하고 온 것 같은데, 굳이 저 자식 하나 지키자고 조씨 가문이랑 척 질 필요까지는 없잖아요.”그들이 얘기하는 순간에도 밖에서는 조훈의 협박이 들려왔다.“주동필, 십 분 준다. 십 분 내로 최서준 넘기지 않으면, 그땐 정말 전쟁 시작인 줄 알아!”주석훈을 포함한 주씨 일가 사람들의 낯빛이 바뀌며 다시금 주동필을 설득하려던 참이었다.가만히 앉아있던 최서준이 입을 열었다.“어르신, 밖에 파리 떼가 너무 시끄럽게 구는데, 나가서 좀 꺼지라고 해주시죠!”감히 조씨 가문을 파리 떼에 비유하다니, 이 자식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자리에 있던 모두가 정말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최서준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주동필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알겠네, 최 선생. 내가 나가서 썩 꺼지라고 일러두겠네.”늙은이는 모두의 경악스러운 눈빛을 무시한 채 임금의 명령이라도 받은 듯 잔뜩 들뜬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상황을 지켜보던 김지유도 서둘러 함께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곧바로 주하은에 의해 제지당했다.“지유야, 남자들끼리의 일이지, 우리가 낄 일이 아니야.”“우
그 순간, 경호원들 등 뒤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르신,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진 인파 사이로 제복을 입은, 기품 있고 위엄 있는 한 중년의 남자가 걸어왔다.귀판관이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그를 발견한 현장의 많은 사람들의 낯빛이 변하기 시작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 인물은 다름 아닌 남양 경찰청장 염승헌이었으니 그런 반응이 오히려 정상이었다.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절대 그의 관직이나 지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 때문이었다.그의 행동거지가 폭력적이고 과격하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 그에게 한번 걸린 이상 구사일생으로 죽음을 면하더라도 그러기 위해선 가죽이라도 벗어 내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승의 귀판관과도 같이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염승헌을 발견한 주동필의 낯빛이 묘하게 바뀌었다.“염 청장, 자네가 조 씨 일가의 부름을 받고 여기까지 행차할 줄은 몰랐구려.”“어르신, 제 성격은 어르신께서 제일 잘 알지 않으십니까. 모든 일은 규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죠.”염승헌이 말을 이었다.“오늘 일은 쉽게 말하면 그저 두 젊은이의 싸움에 불과합니다. 명문 세가끼리의 피 튀기는 전쟁까지 번질 일이 아니라고요.”“어르신께서 최서준만 넘겨주신다면 제가 이것 하나만은 장담하죠. 모든 건 무조건 공정하게,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겁니다. 절대 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최서준이라는 그 젊은이를 어서 저희에게 넘기시죠.”차분하던 그의 말투가 순식간에 변하더니 평온한 말투 속에서 엄청난 위엄이 느껴졌다.“물론, 어르신께는 저희의 요구를 거절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거절 하신다면, 더이상 말로 좋게 해결하려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염승헌을 등에 업은 조훈은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주동필을 바라보았다.저 빌어먹을 늙은이가.주씨 일가가 감히 염승헌을 적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말도 안 되지.심상치 않음을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