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살폈다.밖은 어두컴컴한 데다 폭우까지 쏟아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민승현이 날 따라올 리가 없지.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내가 그 꼴이네.’하지만 권하윤이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 옆에서 손이 불쑥 나타나 핸드폰 종료 버튼을 눌렀다.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짓이냐고 묻기도 전에 민도준이 권하윤의 턱을 잡고 자기 쪽으로 돌리더니 입안에 머금고 있던 담배연기를 그녀의 입에 불어넣었다.“콜록콜록…….”그리고 권하윤의 창백하던 얼굴이 기침 때문에 발갛게 되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제야 볼만하군.’하지만 그때. 민승현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민승현:?][네가 감히 내 전화를 먼저 끊어? 너 어디야?][20분 줄 테니까 당장 내 앞에 나타나. 안 그러면 네 집식구한테 전화해서 너 데려가라고 할 테니까!]‘민승현이 집에 도착했나? 지금껏 나한텐 관심도 없었으면서 화는 왜 낸대?’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권하윤은 아직도 목구멍을 자극하는 매캐한 냄새도 신경 쓸 새 없이 문 손잡이를 잡았다.하지만 문을 열려는 순간 민도준에게 잡히고 말았다.“어디 가려고?”“저 돌아가야 해요.”권하윤은 화가 났지만 마음을 한껏 가라앉히고 말했다. 적어도 지금은 민도준과 사이가 틀어져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하지만 민도준의 시선이 집요하게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그 꼴로 가려고? 나랑 잤다는 거 티 내고 싶은 거야?”남자의 말에 고개를 숙여 봤더니 옷은 이미 쭈글쭈글해졌고 몸에는 온통 키스마크가 나있었다. 그 모습을 민승현한테 들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혹시 저 가까이에 있는 백화점에 내려줄 수 있어요?”“…….”싫은 티를 팍팍 냈지만 민도준은 결국 그녀를 실은 채 백화점으로 향했다.백화점에 도착한 뒤 꿈쩍도 하지 않는 민도준을 힐끗 살핀 권하윤은 눈치껏 차에서 내렸다.하지만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민도준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도와주기는커녕 차 창문을 내리며 여
윤을 보는 순간 민승현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오늘 왜 평소와 달라 보이지?’권하윤은 누가 봐도 예쁜 미인인 것은 맞았으나 언제나 영혼 없는 인형 같았다.눈빛은 늘 흐릿했고 언제나 정신이 반쯤 딴 데로 가 있는 듯한 멍한 얼굴에 생기 있는 표정 한 번 본 적 없었다.때문에 남자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애교 많은 강민정에 비하면 통나무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권하윤은 눈가가 촉촉했고 입술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며 더욱이 눈매에 야릇함이 묻어있었다.분명 목까지 올라오는 긴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를 보고 있자니 욕망이 들끓어 올랐다.민승현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권하윤의 뺨을 내리쳤다.“당장 말해! 이렇게 입고 어떤 놈 만나러 갔어?”새하얀 얼굴에 빨간 손자국이 올라왔지만 권하윤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만지지 않았다.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볼 뿐.“나 같은 여자는 다 벗고 길에서 돌아다녀도 볼 사람이 없다며? 그런데 이렇게 입고 다니는 게 어때서?”“어디서 말대꾸야? 권씨 가문 가훈은 이제 지키지도 않겠다 이거야?”민승현은 다시 손을 뻗었지만 옆에 있던 강민정이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오빠.”그리고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 민승현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이거 방금 내가 침대에서 민정한테 한 말인데 권하윤이 어떻게?’“씨발. 너 나 미행했어?”권하윤은 입꼬리를 올렸다.“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네. 다 아는 일을 굳이 입 밖에 꺼내야겠어?”“너 다시 한 번 지껄여 봐!”권하윤의 눈은 강민정을 한 번 훑었다.“요즘 어머님께서 민정 씨 결혼 상대를 물색하고 있다던데. 괜찮은 집에 며느리로 들어가려면 여자의 몸가짐이 중요하지 않겠어?”강민정은 흠칫 몸을 떨더니 민승현의 팔을 잡아당겼다.“오빠, 나 무서워.”강민정의 반응에 민승현은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권하윤을 노려보는 눈빛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갈기갈기 찢을 것만 같았다.‘지금껏 이 고약한 심보를 숨기고 있었
권하윤은 권씨 가문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아니다. 때문에 권씨 가문의 사상이 늘 이해되지 않았고 약혼남이 다른 여자와 뒹구는 걸 본 지금은 속이 메쓱거렸다. 민승현에게 살갑게 대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졌다.어제 민도준과 충동적으로 관계를 가진 것도 사실 보호막을 하나라도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에서였다.만약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민도준이 그나마 어제의 인연을 봐서 나서주기를 바라면서.그런데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알고 보니 구멍 난 우산이었을 줄이야.외투를 일부러 벗어두고 간 남자를 떠올리니 권하윤은 또다시 속이 뒤틀렸다.지난 반년 동안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로 지내오면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던 그녀였다. 상대에게 들킬까 두려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고 눈빛도 되도록이면 남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만약 어제 민도준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평생 그렇게 가짜 신분으로 생활하려고 했었다.그런데 민도준이 나타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는 권하윤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진짜 그녀를 밖으로 끄집어냈다.권하윤은 호흡을 가다듬고 허리를 곧게 폈다.한평생 가짜로 살더라도 남한테 당하기만 할 수 없었다. 하필 민도준을 건드려서 일이 귀찮게 되긴 했지만.-민씨 저택.권하윤은 메이드들과 함께 가족 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그리고 마침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려고 할 때 손 하나가 쑥 나와 잔 밑은 받들었다.“오늘 와인 안 마실 거라서 보르도 컵 놓으면 혼날걸요.”고개를 들어보니 우아한 여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권하윤을 보고 있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외모와 행동이었다.“저는 원혜정이라고 해요. 형님이라고 불러요.”“아, 형님.”자기소개를 끝낸 원혜정은 메이드더러 위스키 잔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더니 말없이 권하윤을 도왔다.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시선에 고개를 들어보니 강민정이 민승현 어머지, 즉 그녀의 이모 강수연의 팔짱을 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친하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 활짝 웃은 채 귓속말을 하는
민도준은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다. ‘잤던 사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흘러나왔지만 도로 삼켰다.“만난 적 있어요.”들려오는 대답에 권하윤은 겨우 안도했다. 적어도 한고비는 넘긴 셈이니까.하지만 민상철은 의심을 떨쳐내지 않았다. 민도준 성격에 한 번 만난 적 있다고 인사를 건넬 성격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시선을 권하윤 쪽으로 옮겼다.“승현 약혼녀라고 했나?”“네.”“이리 와서 술 한잔 따라 봐.”가문 어르신께 술을 붓는 건 무한한 영광이었다. 때문에 민승현마저 흥분한 눈치였다. 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권하윤을 다그쳤다.“할아버지한테 잘 보여. 실수했다가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권하윤은 그런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할아버지가 뭔가 눈치챘을까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그리고 천천히 민상철의 뒤쪽으로 걸어가 메이드의 손에서 술을 받아 쥐고는 빈 잔에 술을 따랐다.“할아버지, 술 받으세요.”하지만 민상철은 술잔을 받지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훑었다. 마치 심사라도 하듯이.권하윤은 손이 저려왔지만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그리고 그 시각 허리를 숙이고 있는 권하윤의 몸매를 훑던 민도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권하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릴 때쯤 민상철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네가 승현과 약혼할 때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내 서재에 있는 매화도를 선물로 주마. 약혼 선물이다 생각하고 받아 가.”권하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민승현이 먼저 흥분 가득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선물을 받은 것보다 그걸 할아버지한테서 받았다는 게 더 영광스러웠다. 곧이어 할아버지가 자기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자리라도 내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연회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 권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존재감을 최대한으로 낮췄다. 더 이상 눈에 띄지 않겠다는 노력이었다.중도에 셋째 숙부가 백제 그룹 대표직이 비었다고 은연중 자기 생각을 드러냈지만 가족 연회에서 회사 일을 말
“우리 오늘 저택에 머물 거야.”“왜?”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권하윤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오늘 할아버지가 우리한테 큰 선물도 주셨다고 엄마가 남아서 이틀 정도 할아버지 말동무라도 해드리래. 나쁜 것도 아니잖아.”민승현은 오늘 권하윤의 행동에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하지만 어딘가로 문자를 보내는지 눈가에 걸려 있던 미소는 고개를 드는 순간 사라졌다.“그만 좀 물어. 난 따로 볼 일이 있으니까 너 먼저 매원으로 가 있어.”민씨 저택은 민상철이 있는 본채와 남, 북 두 개의 별채 그리고 매원, 난원, 죽원, 국원으로 되어있다.남북 두 개의 별채는 본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데 현재 첫째 민재혁네 가족이 남쪽 별채에 머물러 있고 다섯째인 민승현네 가족은 매원에 머물러 있다.메이드의 안내 하에 매원으로 가던 중 마침 죽원을 드나드는 메이드들이 권하윤의 눈에 들어왔다.“죽원은 비어있지 않나요?”“오늘 도준 도련님께서 죽원에 머무십니다.”도준이라는 이름 두 글자에 권하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민도준에게 몇 번 당하고 나니 이제 그의 이름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했다.“다섯째 작은 사모님?”메이드의 부름에 권하윤은 정신을 차리고 싱긋 웃었다.“아니에요. 가서 일 보세요.”“네.”메이드가 떠나간 후 권하윤은 죽원 쪽을 힐끗 살폈다.’‘저녁이니까 내가 매원 밖을 나서지만 않으면 마주칠 일 없을 거야.’그 시각.“뭐라고요? 경비원이 그만뒀다고요?”강민정은 전화 건너편 상대의 말에 의아했다.“그만두기 전 뭐라고 하던가요?”“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집에 일이 있다며 월급도 받지 않고 가버렸으니까요.”‘갑자기 왜 그만뒀지?’강민정은 가방 안에 든 고급 정장 외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그녀는 어제 외투에 적힌 브랜드를 알아봤었다. 그리고 브랜드 이름을 듣자마자 큰 충격에 빠졌다. 국내에서 구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주문 제작한 한정판이라서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게다가 경비원이 아무 연유도 없이 그만뒀다는 게 몹시
민도준은 조금도 내외하지 않고 온몸을 권하윤에게 기댔다.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당장이라도 연약한 어깨에 금이 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게 방금 모른척하려던 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권하윤은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죽원으로 데려가면 돼요?”“나 죽으라고?”:민도준은 권하윤 어깨에 기대며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걱정 마. 오늘 나 죽으면 그쪽은 꼭 함께 데려갈 테니까.”연인 같은 자세에 그렇지 못한 말투에 권하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민씨 저택인데 저들은 어떻게 이런 짓까지 했대요?”“민씨 저택은 뭐 그렇게 안전한 줄 알아? 여기가 더 위험해.”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권하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심스럽게 민도준을 부축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솔직히 거실에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누가 보기라도 하면 설명하기 귀찮아지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며 그를 방안으로 옮겼다.민도준은 내외하지 않고 권하윤의 침대에 눕더니 손을 들고 옷을 벗기라는 시늉을 했다.외투를 벗기자 그제야 아랫배 쪽을 흥건하게 적신 피가 눈에 들어았다.“대체…….”권하윤이 놀라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민도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손으로 셔츠 단추를 풀더니 배에 난 상처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씨발, 개자식들.”탄탄한 복근과 근육을 덮고 있는 옅은 구릿빛 피부는 그야말로 야성미가 넘쳐흘렀다.권하윤은 깨끗한 수건 하나를 꺼내 상처 주위를 깨끗이 닦았다. 그제야 점점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흉기에 찔린 상처였지만 다행히도 너무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상처 소독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구급상자 찾아올게요.”권하윤은 다시 매원을 나섰다. 아까 본 사람들과 다시 마주칠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이상하게도 방금까지만 해도 사람 하나 없던 저택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밖에서 경비를 서는 보다가드들도 마당을 청소하는 메이드들도 모두 다시 나타났다.
상처에 바르는 약 하나가 권하윤의 손에 놓였다.하지만 설명서에 쓰인 상처 부위를 보는 순간 권하윤의 얼굴은 화르르 달아올랐다. 그 열기는 본채 정원에 도착해서야 겨우 식었다.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치고는 규모가 대단했다.휜 국과 꽃에 둘러싸인 중심에는 흑백으로 된 사진 두 장이 놓여있었다. 사진 속 사람은 다름 아닌 민도준의 부모님이었다.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건 크게 없었다. 그저 해외에서 폭동이 일어날 때 피습당했다는 것밖에는.권하윤이 자리에 서기 바쁘게 강수연이 아니꼬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녀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기도 뭣해 째려보고 홱 돌아섰다.그때 민승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일부러 나 망신 주려고 그래? 친척들 모두 아침 일찍 모였어. 민정이도 아침부터 엄마를 도와 제사 음식에 이것저것 일손을 도왔는데 넌 지금껏 잠이나 자다 난타나? 예의를 쌈 싸 먹었어?”권하윤은 눈을 들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어르신들께 차를 나르는 강민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밤낮으로 참 대단하네. 내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너 뭐라고 했어? 씨발 다시 한 번…….”화를 내던 민승현은 민상철과 민도준이 나타나자 다급히 말을 삼켰다. 멀리서 걸어오는 민도준은 간밤에 칼에 찔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주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냈고 그 사이에 권하윤도 속해 있었다.하지만 민도준이 곁을 지날 때 몸에서 나는 담배연기와 시원한 향이 한데 섞여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권하윤은 심장이 요동쳤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때문에 앞에서 걸어가던 민상철도 뒤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래?”권하윤은 순간 머리가 찌근거렸다. 민도준이 또 이상한 말을 해댈까 봐 불안해났다.그런데 민도준의 눈빛은 권하윤의 몸을 슥 훑고는 민승현에게 멈췄다.“승현아.”민도준의 앞에 서자 민승현의 건방진 태도는 순간 사그라들었다. 목소리마저 미약하게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야 기어 들어와?”권하윤을 대하는 강수연의 태도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런 그녀 대신 제발 저리는 듯 눈을 피하는 강민정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왜 부르셨어요?”“그걸 내가 꼭 말로 해야겠어? 여자애가 행실이 그렇게 천박한 것도 모자라 감히 승현의 얼굴에 먹칠을 헤? 권씨 가문에서 그렇게 배워먹었어?”“어머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언제 천박하게 굴었다고 그러세요?”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천진한 표정에 강수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승현에게 매달려 몸에 그런 자국까지 남겨놓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밖에서 몸 파는 년들하고 뭐가 달라!”하지만 강수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 권하윤이 아닌 강민정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듯한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숨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수연을 위로했다.“이모, 심장도 안 좋으신데 화내지 마세요.”“언니도 얼른 이모한테 사과하세요.”뻔뻔한 태도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제가 잘못했다면 사과하겠는데 어제 승현 씨와 같이 있은 사람 저 아니에요.”“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아니면 누군데?”“민정 씨 어머님이 묻잖아요. 어제 민승현이 누구랑 있었는지.”강민정은 훅 들어오는 공격에 당황하더니 이내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제 저는 제 방에만 있었는데.”“민정 씨는 당연히 방에 있었겠죠. 민승현과 같이.”“닥쳐!”강수연은 화가 잔뜩 나서 권하윤의 말을 잘랐다.“민정과 승현은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야.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그런 누명을 씌워!”아주 적재적소에 눈물이 강민정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언니. 아무리 인정하기 싫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요? 전 승현 오빠를 친오빠처럼 생각해요.”그녀는 강수연이 권하윤의 말을 믿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어릴 적부터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