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은 민승현의 소리를 듣자마자 입술을 깨문 채 목소리를 참았다. 소리가 새어나가 상대에게 들킬까 계속 마음을 졸인 상태였다.‘그런데 힘들게 참고 있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라니? 아예 마이크에 대고 생방송 하라는 소리는 왜 안 한 대?’권하윤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속이 뒤틀렸지만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민도준은 애초부터 상대의 사정을 봐주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상대에게 들어오라고 말하려던 그때, 권하윤의 입술이 그의 입을 막았다.가는 팔은 넝쿨처럼 그의 목을 휘감았고 손톱으로 어깨를 간지럽히며 그의 환심을 얻으려 애썼다.민도준은 눈썹을 치켜뜨면서 귀엽다는 듯 권하윤의 동작을 받아들였다.하지만 권하윤이 이를 악물며 속으로 이대로만 넘어가라고 기도하고 있을 때 민도준은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귓게에 대고 나지막하게 웃더니 고개를 들었다.“문 열렸어.”순간 권하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게다가 민승현은 민도준의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노크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 들어가요?”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에 권하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습.”그런데 그때 민도준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힘 빼.”“도준 씨.”권하윤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애원하는 듯 민도준을 바라봤다.순간 민도준은 몸이 찌릿했다. 낮게 자기 이름을 중얼거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마치 독약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퍼졌다.더 어두워진 낯빛과 흥분한 눈빛에 권하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민승현이 들어오는 게 싫어?”권하윤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그러면 소리 내 봐.”그와 동시 민승현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형, 안에 있어요?”“…….”문을 비스듬히 여는 순간 안에서 밭은 숨소리와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민승현은 2초간 자리에 굳어있다가 곧바로 민도준이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는 헐레벌떡 밖으로 도망쳤다.“미안해요, 저 바로 나갈게
연회의 주인공인 공씨 집안 셋째 아가씨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하지만 그녀는 자기한테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번 보이지 않은 채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다행히 그녀 곁에 있는 문태훈이 분위기를 푼 덕에 어색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손님이 떠나간 뒤 문태훈은 끝내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공아름 씨, 아무리 그래도 저 사람들 모두 경성에서 잘 나가는 가문인데 체면 좀 봐주지 그래요.”“경성 가문이 뭐라고 내가 잘 보여야 하지?”문태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름은 그의 말을 먼저 잘랐다.“그만해. 그런데 민도준은 어디 있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안 보여?”공아름이 연회에 참석한 이유가 민도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문태훈은 일찍부터 대신 살펴봤다.“민도준 씨도 아까 왔던데 다시 돌아갔는지 한참 동안 보이지 않네요.”“돌아갔다고?”공아름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나한테 한 마디도 없이 먼저 갔단 말이야! 설마 불여우한테 붙잡힌 거 아니야?”“아.”“뭐야? 당장 말해! 어떤 년이야?”문태훈은 결국 공아름의 등쌀에 못 이겨 사실을 털어놓았다.“아까 모델 하나가 민도준 씨한테 접근했고 얼마 뒤 권씨 집안 둘째 권희연 씨와 얘기하더니 사라졌어요.”“감히 민도준 씨한테 꼬리를 쳐? 그년들 제대로 족쳐야겠어! 권희연이라는 그년도 가만두지 못해…….”“공아름 씨. 권희연 씨는 아무리 그래도 부짓집 규수인데다 여기는 해원이 아니라 경성이에요. 아무래도 몸을 사리는 게 좋아요.”문태훈의 경고에도 공아름은 들은체 만 체 하더니 이윽고 예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해원에 있었더라면 당장 죽여저릴 거야! 먼저 그 모델 년부터 혼내줘야겠어. 권희연인지 뭔지는 천천히 두고 보자고.”“알았어요.”문태훈은 마지못해 몸을 돌려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한 이름을 듣게 되었다.…….“혹시 권하윤 봤어요?”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민승현은 의심을 떨쳐내지 못했다.하지만 다시 휴게
하지만 다행히도 민승현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자기가 권하윤을 한참 찾아다녔다는 거에 불만인 듯했다.“옷을 갈아입으러 가면 말해야 할 거 아니야? 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는데!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시간 낭비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그의 말투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아, 그때 강민정 씨와 둘이 아주 꽁냥거리고 있는 것 같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권하윤의 한 마디에 민승현은 마지막 의심까지 씻어버리고 풉 웃었다.“네가 민정이랑 같아? 어딜 비교해?”“그렇게 나 애타게 찾으니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누가 애타게 찾았다는 거야! 난 그저…….”버럭 하며 부정하던 민승현은 결국 말문이 막혔다. 이 상황에 권하윤과 그의 둘째 형이 붙어먹은 줄로 착각해 급하게 찾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몰라. 이제 너 죽든 말든 상관 안 해!”마지막 한 마디를 던진 채 민승현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제야 전화 거너 편에 있던 권하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방금은 일부러 민승현의 신경을 자극한 거다. 그렇게 되면 그가 자기를 냉대하며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그녀의 예상이 들어맞았다.권하윤은 긴장을 풀며 모든 일의 원흉을 분한 듯 째려봤다.아직까지 민도준이 일부러 민승현을 불러낸 것에 화가 났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런데 입에 담배를 물고 옷을 입던 민도준이 마침 그녀의 눈빛을 발견하고 뿌연 연기 뒤에서 눈썹을 치켜떴다.“아직도 모자라?”권하윤은 상대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눈을 피했다. 하지만 침대 위에 널브러진 옷을 보니 더욱 심란했다.“민 사장님이 제 옷 다 망가트렸는데 어떻게 배상할 거예요?”화가 너무 쌓여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그녀의 반응에 민도준은 입에 물었던 담배를 빼내고 손에 쥐었다. 이윽고 침대 곁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숙이며 여자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었다.“어떻게 배상할까?”그 눈빛을 보니 권하윤은 방금 전의 모습이 온데간데
권하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그런데 보아하니 민도준이 그녀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물론 비웃긴 했지만 말이다.이미 골치 아픈 일이 넘쳐나는 그녀로써는 한 가지라도 덜고 싶은 마음에 억지 미소를 지었다.“더 할 말 없으면 저 먼저 가볼게요.”“잠깐만.”긴 다리를 들며 막아서는 민도준의 동작에 권하윤은 할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무슨 일이시죠?”말투도 한껏 인내심이 묻어났다. 민도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감상하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내일 내 전화 기다려.”그 말에 권하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민도준의 태도는 아주 명확했다. 그걸 그녀도 눈치챘고. 게다가 오늘 있은 일은 정말 해프닝에 불과한데 앞으로 또 더 만나자니 놀랄 수밖에.‘설마 계속 만나자는 건가?’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민도준은 “선심” 쓰듯 되물었다.“내가 데리러 가길 원하나?”“아니요!”권하윤은 곧바로 억지 미소를 짜냈다. 여기서 더 버티면 당장이라도 표정이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어떻게 그래요. 제가 찾아가죠.”“그래, 가 봐.”-휴게실을 떠난 권하윤의 얼굴은 아니나 다를까 바로 와르르하고 무너졌다.곧이어 욕지거리가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상대는 당연히 휴게실 안에 있는 민도준이었다.그렇다고 한들 크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도 큰 신분 차이 때문에 한껏 조심한데다가 집에 큰 변고가 찾아온 그날부터 그녀는 자기 인생이 평화와 자유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한민혁 덕분에 같은 색 같은 기장의 비슷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덕에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피할 수 있었다. 존재감을 한껏 숨긴 채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연회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비로소 연회장을 떠났다.하지만 전화상으로 그녀에게 불같이 화내던 민승현은 그녀를 집에 데려다줄 마음도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강민정이 그의 팔짱을 낀 채 승리자의 자태를 뽐내며 그녀를 힐끗힐끗 뒤돌아 볼 뿐.강민정은 권하윤
“그게……”권희연은 머뭇거렸다.“말하기 불편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이건 두 사람의 사적인 문제이기에 그녀에게 따져 물을 이유도 권한도 없었다.“그건 아니야.”하지만 권하윤에게 미안한 감정뿐인 권희연은 있었던 일을 모두 사실대로 털오놓았다.“내가 민도준 씨한테 무례를 범했어.”“그런데 언니 치마가 왜?”“민도준 씨가 나 발로 찼거든.”권희연의 머쓱한듯한 말에 권하윤은 할 말을 잃었다.‘민도준이 권희연에게 강압적으로 관계를 요구했다고 생각했는데 민도준 말이 맞았을 줄이야.’전화를 끊은 뒤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와 동시에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권희연은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그때 일이 있고 난 뒤 명성도 많이 높아져 전설처럼 불러지고 있다.그로 인해 그녀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는 가문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권미란은 그녀의 혼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민도준에게 접근하게 하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설마, 권미란이 오래전부터 권희연과 민도준을 엮으려 했나?’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대담한 생각에 몇 년 전 강민우가 권희연에게 약을 쓴 일도 의심스러웠다.권씨 가문은 명문가 말단에 속해 있지만 그래도 명문가라 불릴 수 있는 집안이었기에 재산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그런데 강민우의 돈과 선물을 많이 받아먹고도 모른 척해 상대를 자극했으니 더욱 이상했다. 그들이 일부러 강민우를 자극해 이 모든 일을 꾸몄다면 모를까.‘그 일로 인해 권희연의 깨끗한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더욱 각인됐고 권씨 집안 여자의 위신도 함께 올라갔으니……’권하윤은 입꼬리를 씩 올렸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보이지 않았다. ‘권씨 가문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럽고 무서운 가문이었네.’권하윤은 차 안에서 잠시 동안 앉아 있다가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그리고 그 시각,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곳에서 가슴까지 깊게 파인 V넥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누군가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차에 실렸다.그녀는 버둥거리며 앞에서 멀
이승우는 눈을 곱게 접으며 권하윤을 바라봤다.“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물어보면 내가 뭐부터 대답해야 해?”그의 목소리는 아직 회복하지 않아 조금씩 갈라졌지만 권하윤의 귀에는 그 누구의 목소리보다도 듣기 좋았다.그녀는 이승우를 향해 웃고 싶었다. 애써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물이 흘러내렸다.“울고 싶으면 울어. 오빠 앞에서 참을 필요 없어.”너무 오랫동안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이승우의 한 마디 말이 권하윤의 마음의 벽을 무너트렸다. 권하윤은 마치 감정이 터지기라도 한 듯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이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옥시미터를 낀 손으로 권하윤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한참 뒤 진정을 한 권하윤은 눈물을 닦으며 밖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승우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일부러 한껏 가벼운 말투로, 권씨 가문이 자신을 괴롭힌 사실은 빼놓은 채 기쁜 듯 입을 열었다.“이제 경성에 왔으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어. 오빠도 깨어났겠다 앞으로 우리 가족 점점 행복해질 거야.”애써 미소 짓는 권하윤을 꿰뚫어 본 이승우는 아무 말도 없이 미소 지었다.이 요양원의 사람은 그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감시하고 있다는 걸 그는 눈치챘다. 게다가 동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는 자기가 깨어나면 동생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야 왔다는 건 자유조차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아는체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어 동생의 귀밑머리를 넘겨주었다.“많이 야위었네.”“오빠도 그러면서.”오빠의 관심 어린 말에 권하윤은 코끝이 찡해났다. 하지만 약간 비음이 섞인 목소리는 마치 애교 부리는 것 같았다.“그래, 오빠 많이 못생겨졌지? 우리 윤이 오빠 이제 싫어하는 거 아니야?”참으로 공교롭게도 어릴 적 가족이 그녀를 부르던 애칭도 윤이였다.아마 그녀가 권하윤이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권하윤은 이승우가 일부러 장난치는 걸 눈치채고는 입을 삐죽거렸다.“못생겨도 좋아. 오
권하윤을 바라보는 이승우의 표정은 조금 차가웠다.“너 아버지를 믿어?”“믿어. 아버지는 한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분이셔. 그런 일을 할 분이 절대 아니야.”확고한 대답에 이승우의 표정은 조금 부드러워졌다.“그거면 됐어. 아버지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면 됐어.”“그게 무슨 말이야? 그거면 됐다니? 오빠, 그때 아빠 곁에 있은 사람이 오빠니까 알 거 아니야. 아빠는 대체 왜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는데? 그리고 공은채. 공씨 가문에서 그 여자의 죽음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가 대체…….”“윤아.”권하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승우의 짤막한 부름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엄숙함이 묻어 있었다.“더 이상 묻지 마. 다 지난 일이야.”“지난 일? 아빠처럼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음악가가 하루아침에 손가락 받으며 누명을 쓴 채 투신했는데, 그렇게 몸이 산산이 부서진 채 돌아가셨는데 나더러 어떻게 그냥 지나가라고!”눈시울이 붉어진 권하윤을 보자 이승우는 끝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동생이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었다.“윤아, 그러지 마. 오빠가 이렇게 빌게.”그 한 마디에 권하윤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기라도 하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래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공씨 가문 때문에 살길을 찾아 죽은 척 위장까지 했으면서, 그러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거면서 진실을 안다 한들 내가 뭘 할 수 있어?’갑자기 몰려오는 무력감에 목이 메어왔다.“알았어.”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나지막하게 한 마디 꺼냈다.“휴식 잘해. 며칠 뒤에 다시 찾아올게.”그런 권하윤을 보면서 이승우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병실을 나가는 순간 권하윤은 올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정신을 가다듬은 뒤 곧바로 떠나는 대신 요양원 의사를 찾아가 이승우의 상태에 대해 물어봤다.사실 어머니와 여동생도 보러 가고 싶었지만 요양원 사람들이 계속 다그치는 바람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미련이 남은 듯 고개를 돌
“하.”전화 건너편에서 곧바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변명 하나는 빨리 찾네.”그리고 권하윤에게 더 이상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곧바로 주소 하나를 불렀다.“20분 주지.”“20분 내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권하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다.그 시각, 전화 건너편.“도준 형, 혹시 화났어?”한민혁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민도준은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며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져버렸다.“내가 화났으면 네가 거기 서있는 게 아니라 누워있었어.”“하하하…… 형도 참, 무슨 그런 말로 사람을 놀라게 해. 나 겁 많은거 알면서.”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협박에 한민혁은 헛웃음을 지었다.하지만 여전히 가타부타 말이 없는 도민준의 반응에 한민혁은 그의 표정을 슬쩍 살펴봤다.“형 하윤 씨 의심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왜 또 만나려는 건데? 그것도 여기로 불러내기까지 하고 말이야.”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알고 싶어?”“알고 싶긴 하지…….”약간 자신 없는 말투였다.“안는 맛이 꽤 좋거든.”“…….”“권하윤은 권희연과 달라. 그 여자는 권씨 가문에서 보낸 사람 아니야.”“어.”대답은 했지만 한민혁은 믿기지 않았다. ‘도준 형 성욕에 뇌가 절었나? 머리가 어떻게 됐나?’한민혁이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그때. 민도준은 마치 그의 생각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표정을 읽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동림 지역 땅을 입찰하려 한다는 소문은 냈지?”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한민혁은 멍해 있더니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민도준이 왜 갑자기 이 일을 입에 담는지 알 수 없지만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형이 입찰한다는 소문 슬쩍 흘렸더니 요즘 내 핸드폰에 아주 불이 날 지경이야. 전화가 아주 쉴 새 없이 와.”“그 땅 아주 큰 고기 덩어리거든. 너도 챙겨 둬.”싱긋 웃는 민도준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리만치 오싹하게 느껴져 대답을 하고 있지 않던 그때, 민도준의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