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이가 머리를 쳐들고 허세를 부리자 도준은 움직이지 않은 채 차에 기대어 그녀의 치마 밑의 가녀린 종아리를 따라 위로 훑어보았다. 도준이가 마치 흥미진진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시윤은 자기도 모르게 외투로 몸을 감쌌다. 도준은 그제야 담배꽁초를 끄고 웃음을 터뜨렸다.“왜 왔냐고 물은 거야? 당신이 오라고 한 거 아니었어? 당신은 이 밤중에 날 왜 부른 거야?” 멀쩡한 말들은 도준의 입을 거치자 왠지 모르게 매혹적이었다. 시윤은 자신이 잠옷 차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색한 마음에 목소리를 낮췄다.“저도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럼 먼저 돌아가 볼게요.”시윤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다시 한번 물었다.“저 정말 갑니다.”도준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턱을 치켜세웠다.“그래.”시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그게 다야?’시윤은 화가 나기도 했는데 왜 화가 났는지 말할 수 없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이 밤중에 저희 집까지 오셨는데 하실 말씀은 없으신 거예요? 그냥 헛걸음하신 거예요?”“헛걸음 아닌데?”도준은 달빛 아래에 서서 매혹적인 눈빛으로 대답했다.“당신 만났잖아.”도준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은 시윤의 마음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었다. 어두운 불빛마저도 시윤의 붉어진 귀를 덮을 수 없었다.시윤이가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자 도준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물었다.“안 가고 뭐해?”시윤은 설렌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뒤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몇 시간을 들여오셨으니 조금만 더 보여주죠.”도준은 웃으며 한 손을 들었다.“착하네, 그럼 상을 조금만 더 주면 안 돼?”시윤은 자신을 향해 들고 있는 손을 보자 망설이기 시작했다. 이 밤중에 찾으러 왔다는 생각에 악수쯤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시윤은 손을 들어 악수를 하려고 했다. 두 손이 닿은 순간 도준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차 앞에 가두었다.시윤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뭐 하시는 거예요!”두 사람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에 시윤은 도준
두 사람의 그림자는 가로등 아래에서 뒤엉켜 더욱 야릇해 보였다.도준을 막기 위해 입었던 외투는 어느덧 열려 있었고 안의 잠옷은 도준의 손에 의해 흐트러졌다. 도준의 손이 시윤의 허리 아래로 내려가려 하자 시윤은 그를 막았다.“뭐 하시는 거예요!”눈꼬리가 붉어지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어깨끈이 흐트러진 시윤을 보자 도준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뒤 옷을 정리해 주었다.“미안해, 잠시 이성을 놓았나 봐.”사과하는 말은 전혀 시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도준을 탓할 수는 없었다. 시윤조차도 방금 전 상황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시윤은 못난 자신을 한 마디 욕한 뒤 단추를 채우고 도준을 밀어내며 황급히 집안으로 달려들어갔다.도준은 이렇게 시윤의 뒷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갑자기 그는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고 위층을 올려보았다. 2층에서 두 사람을 훔쳐보고 있었던 수아는 재빨리 커튼을 닫았다.수아가 놀란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훔쳐보니까 좋아?]수아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오빠랑 형수님이 다시 잘 만나는 것 같아 너무 좋아서 그래. 두 사람 부디 오랫동안 행복하고 알콩달콩 하게 지내길 응원할게!” 도준은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그래, 참, 너도 얼른 돈을 모아 민지훈과 만나길 응원할게.]이 말을 들은 수아는 입꼬리가 귀까지 걸렸다.“하하, 고마워 오빠.”[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참, 강원 최고의 부자잣 딸이 민지훈과 결혼하기 위해 6,000억을 들였다고 들었는데, 이제라도 포기하고 축의금 낼 준비하는 게 어때?]‘뭐? 6,000억?’수아가 놀라고 있을 때 도준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수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민지훈에게 60초 넘는 음성 메시지를 전송하였는데 연락처는 이미 차단된 상태였다. 수아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그날 저녁, 시윤이가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수아가 방 안으로 달려들어와 통곡했다.“언니,
시윤은 긴장된 마음에 밤새 잠들지 못했다. 겨우 잠에 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려왔다.어젯밤 늦게 잔 탓에 마침 졸렸던 시윤은 몸을 뒤척이며 계속 자려고 했으나 침실 문이 열렸다. 양현숙은 잘 자고 있는 시윤과 이미 깨어나 뒤척거리고 있는 도윤을 보자 화를 내며 이불을 들추었다.“도윤이도 깨어났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아직 자고 있으면 어떡해!”시윤은 너무 졸린 나머지 이불 속으로 움츠리고 횡설수설했다.“너무 졸려서 좀만 더 잘 테니 엄마가 대신 엄마 노릇 좀 해주세요.”양현숙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내가 엄마 노릇은 할 수 있지만 아내 노릇을 대신할 순 없잖아. 민 서방이 왔는데도 안 내려갈 거야?”“도준 씨가 왔다고요?”시윤은 순식간에 정신이 들었다.“왜, 왜 오신 거지? 아니, 왜 이렇게 일찍 오신 거야...”“벌써 아홉 시가 다 되어 가는데 뭐가 일찍이라는 거야. 빨리 내려가 봐.”시윤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저기, 엄마 먼저 좀 내려가 봐요. 잠깐 정리 좀 하고 내려갈게요.”양현숙이 아이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시윤은 급히 세수를 하고 연하게 화장을 했다. 그리고 예쁜 치마를 입자 꾸민 것이 너무 티났기에 흰색 치마로 갈아입고 만족스럽게 내려갔다.시윤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도준이가 도윤의 망가진 로봇을 수리하고 있었다. 도윤은 도준이가 망가진 부분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또 빈틈없이 조립하는 걸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았다. 도윤은 점점 숭배하는 눈빛으로 도준을 쳐다보았다.이 상황을 본 시윤은 그제야 긴장된 마음이 풀렸다.이때 도준은 그녀를 발견하고 눈썹을 찡긋거리며 로봇을 들고 시윤을 향해 흔들었다.“당신 말대로 다시 조립했어.” 도윤은 로봇을 잡으려다가 하마터면 소파에 곤두박질칠 뻔했다. 아무도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자 도윤은 또 아무렇지 않은 듯 똑바로 앉았다.시윤은 내려온 뒤 로봇을 도윤에게 쥐여주며 말했다.“어차피 그쪽 아들이기도 하잖아요.”이때 양현숙이 아침을 먹으라
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시윤의 가슴골을 쳐다보았다.이를 알아차린 시윤은 재빨리 가리며 말했다.“변태!”시윤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이와 물건을 도준에게 맡기며 말했다.“이제 가보셔도 돼요!”도준은 한 손으로는 도윤의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며 눈썹을 찡긋거렸다. 시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내쫓았다.“아들 데리고 빨리 가요! 다신 돌아오지 마세요!”집에서 쫓겨나게 되자 도윤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시윤은 그제야 도준을 내쫓으려는 손을 거두고 도윤의 말랑한 손을 잡고 달랬다.“우리 도윤이한테 한 말이 아니라 아빠한테 한 말이야!” 도윤은 이 대답을 듣고도 계속해서 슬프게 울었다. 시윤이가 안고 달래려 할 때 도윤은 갑자기 도준의 옷깃을 잡고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아빠.”도윤이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하자 시윤은 물론 도준도 조금 놀랐다. 겨우 한 살 남짓한 도윤이는 일상생활에서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을 듣고 간단한 말만 따라 했다.예를 들어, 시윤은 엄마라고 부르고 양현숙은 외할머니라고 부르며 수아는 아라고 불렀다. 도윤이가 이렇게 정확하게 아빠를 부를 수 있었던 것 그만큼 이유가 있었다.도준은 씩 웃으며 시윤에게 물었다.“도윤이 앞에서 내 얘기 많이 했었나 봐?”매일 도윤이 앞에서 도준을 언급했었기에 시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들켜버리게 되자 시윤은 창피한 마음에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이때 도준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어디 가? 아들 필요 없나 봐?”이 말을 들은 도윤은 시윤의 치맛자락을 잡고 입을 삐죽거렸다.“엄마.”시윤은 자신의 어깨를 감싼 손과 치마를 잡고 있는 말랑한 손을 보자 두 사람한테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시윤은 곧 화를 내며 대답했다.“네, 얘기 엄청 많이 했어요. 우리 도윤이가 그쪽 닮아 안 좋은 버릇이라도 생길까 봐 가르쳤거든요!”시윤은 말을 마친 후 크고 작은 두 손을 뿌리치고 도망갔다. 계단 위로 사라지는 시윤
두 사람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지자 시윤은 당황해하며 뒤로 도망치려 했다.“그, 그게... 모자간에 텔레파시가 있거든요!”도준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한 손으로 뒤로 도망치려는 손을 잡은 뒤 다른 한 손으로 시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날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은 당신이잖아. 아들을 핑계로 삼는 게 부끄럽진 않나 봐?”이때 시윤은 도준의 몸에 깔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기에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화를 냈다.“그래요! 그쪽은 저한테 관심조차 없는데 전 바보같이 보고 싶었거든요. 이제 만족해요?”말을 마친 후 시윤은 억울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도준은 여유가 넘쳤지만 그녀는 또다시 깊이 빠져들었다. 시윤이가 먼저 문자를 보내면 도준은 항상 얼버무리며 대답하고 시윤이가 먼저 찾지 않으면 도준은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도준의 이런 태도에 시윤은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시윤이가 눈시울을 붉히자 도준은 눈썹을 찡긋거렸다. 그저 장난치려던 것뿐인데 시윤을 울리고 말았기 때문이다.도준이가 몸을 일으키자 시윤은 재빨리 돌아앉아 눈물을 닦았다. 방 안은 잠시 조용해지더니 갑자기 문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도준은 이미 떠나버렸다.텅 빈 방을 마주한 시윤은 덩달아 마음이 아파 침대에 엎드려 울면서 욕했다.“나쁜 놈, 못 돼 처먹은 놈...”2분 정도 지난 후 고개를 들자 도준이가 휴지 몇 장을 들고 눈물을 닦아주었다.“안 갔어요?”도준은 웃으며 말했다.“내가 설마 우는 사람을 두고 그냥 가버렸겠어?”도준은 손가락으로 시윤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물었다.“말해 봐, 내가 뭘 잘못했는데?”“아무것도 아니에요...”“말 안 한다는 거지? 그럼 다른 방식으로 물어봐야겠네.”도준은 말을 마친 후 시윤의 머리를 붙잡고 침대에 천천히 눕혔다. 당황한 시윤은 재빨리 멈춰세웠다.“말할게요!”시윤은 남자의 손을 밀친 후 화를 내며 말했다.“제가 최근 바쁜 탓에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했었잖아요.” 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윤이가 계속
이 말을 들은 시윤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돌려 도준을 쳐다보았다.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면 눈앞의 사람이 도준인지 의심했을 것이다.도준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시윤은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도준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제하고 있었던 것이다.시윤은 드디어 마음이 평온해졌다. 동시에 자신 때문에 완전히 달라진 도준이가 마음 아프기도 했다. 도준에겐 더 이상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시윤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렇게까지 자제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예전처럼 하셔도 돼요.”도준은 기뻐하는 눈빛을 보이며 물었다.“예전처럼?”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그렇다면 더는 참지 않을 게.”“뭐... 아!”갑자기 침대로 눕혀지자 시윤은 잠시 정신줄을 잡지 못했다. 곧 상의 끈이 끊어지더니 도준은 그녀의 몸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시윤은 도준을 밀어내며 말투를 바꾸었다.“저는...”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도준이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조용히 해야지, 도윤이가 아래층에 있으니 부모로서 조심해야지.”도준의 손은 시윤의 허리를 따라 올라갔다.“정말 부드럽네.”시윤은 이 말에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치마는 허리 위로 올려졌고 도준은 또다시 시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기분 좋게 만들어줄 테니까 긴장 풀어.”시윤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발버둥 친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치마를 벗자 서늘한 기운이 단번에 느껴졌다. 시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이때 도준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시윤의 배를 쳐다보았다. 도윤을 낳은 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줄곧 무너지기 직전에 처해있었다. 정상적인 소통조차 적었던 두 사람은 그 후 서로의 몸은 한 번도 보지 않았다.‘도준 씨는 한 번도 이 흉터를 보지 못했었지.’시윤은 흉터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도준의 반응은 무척 궁금했다. 고개를 들어보자 도준은 왠지 혐오하
시윤은 발끝으로 도준을 한 번 찼다.“도준 씨가 무슨 자격으로 후회한다는 거예요?”도준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점점 위로 어루만졌다.“당연히 후회되죠. 당신 사랑을 도윤이한테 빼앗기게 생겼잖아.”시윤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도윤이는 도준 씨 아들이거든요, 그...”말을 하던 시윤은 갑자기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하지 마세...”도준은 시윤을 몸 아래에 가둔 채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욕망은 눈에 보일 정도로 강했다. 도준은 그녀를 삼키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해도 돼?”이미 지난번과 2년이나 지났기에 시윤도 욕망을 참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시윤은 이성을 되찾고 말했다.“도윤이가 아래층에 있잖아요. 안 돼요... 그리고 아직 화해한 건 아니잖아요...”시윤은 이유를 대며 손가락으로 도준의 가슴을 툭 쳤다. 시윤은 이제 풋풋한 소녀가 아니라 매혹적인 여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에 도준은 자기도 모르게 시윤을 만지던 손에 힘을 주었다.“빨리 내려가 봐요. 도윤이를 혼자 아래층에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시윤의 말을 들은 도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몸을 다시 한번 어루만진 후 침대에서 내려왔다. 시윤은 이불을 안은 채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도준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아래층.도윤은 놀다가 지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도윤은 다시 똑바로 앉으며 엄마를 부르려고 했으나 앞에 서있는 도준을 발견했다.도윤은 방금 전 천사 같은 미소를 숨긴 채 눈썹을 찌푸리며 도준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시윤이가 어디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도준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방해가 되는 도윤을 잠시 살펴보았다.“민수아는 어디 간 거야.”도윤은 눈썹을 더 세게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작은 두 손을 내밀어 위아래로 부채질했다. 멀리 가버렸다는 뜻이다.‘보나 마나 민지훈을 찾으러 간 거겠지.’도준은 한참 동안 도윤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의 흥분된 눈빛을 본
결국 도준은 이 집에서 한동안 지내기로 했다.점심때 이 소식을 들은 양현숙은 매우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너희 부부가 함께 아이를 돌보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야.”시윤은 민망해하며 호칭을 바로잡으려 했다.“아직 재혼하진 않았어요.”양현숙은 시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알아서들 해. 마침 친구가 요 며칠 집으로 초대했는데 민 서방이 있으니 맘 놓고 가볼 수 있겠네.”“엄마, 그건 아니죠.”시윤은 옆에 앉은 도준을 힐끗 쳐다보았다. 양현숙이 떠난 다면 커다란 집에는 정말 두 사람과 도윤이 밖에 없을 것이다.이때 도준은 딱밤을 가볍게 때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침 좀 닦아, 그릇에 떨어지겠네.”시윤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막고서야 도준이가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화가 난 시윤은 테이블 아래에서 도준을 차려고 했으나 도준은 단번에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도준은 한바탕 다리를 어루만진 후에야 손을 놓았다.‘엄마 앞에서도 대놓고 이러는데 엄마가 가면 얼마나 날 괴롭히려 하겠어.’양현숙이 물건을 정리하여 떠난 후 시윤은 바로 규칙을 정하기 시작했다.“지금 집에 우리 두 사람만 남았지만 멋대로 행동하실 수는 없어요.”도준은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등을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나긋하게 시윤을 쳐다보았다.“지금 규칙이라도 정하려는 거야?”이전에 두 사람은 얼떨결에 만나기 시작했기에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서로 이성을 붙잡지 못했다. 지금 다시 시작할 예정이니 시윤은 좀 더 신중하기로 했다.시윤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물었다.“안 돼요?”도준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계속하라고 말했다.“우선, 도윤이를 잘 챙겨주셔야 해요! 제가 없는 틈을 타서 괴롭히는 건 절대 안 됩니다.”도준은 소파에 앉아 옷의 실밥을 잡아당기는 도윤을 힐끗 보며 대답했다.“좋아.”“그리고 제 방에 들어올 땐 반드시 노크하셔야 합니다.”도준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윤은 계속 말했다.“마지막,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