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연구소에서.고청민은 심지안을 진료실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엄교진의 여학생인 도윤지가 고청민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선배님, 오랜만이에요.”그녀는 고청민보다 한 학년 어린 후배였다. 학교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가 심리학을 전공한다는 얘기를 듣고 도윤지도 똑같이 심리학을 지원했다.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녀는 끝내 심리학과에 합격했다.하지만 아쉽게도... 고청민은 학교에 오래 있지 않고 곧 출국했다.그리고 그의 소식이 다시 들려왔는데 심지안과 결혼한다고 했다.고청민이 살짝 고래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줬다.“교수님은?”“옆방에 있어요, 제가 교수님 불러올게요.”도윤지는 침대 위에 누운 사람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마스크를 쓴 채 꽁꽁 싸매고 있었다.“이분이 선배님이 데려오신 환자분인가요?”“응.”“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도윤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진료실을 나섰다.5분 후, 엄교진이 걸어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 60대로 보이는 그는 실눈을 뜬 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너 이 녀석, 드디어 시간이 나서 나 보러 온 거야?”“죄송합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요. 교수님, 이건 제 결혼식의 청첩장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꼭 와주시길 바랍니다.”“그럼, 가야지.”엄교진이 자리에 앉으면서 침대 위에 누운 심지안을 바라봤다.“이분이 네가 말한 환자분이야? 옛날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괴로워한다던 그분?”“네, 맞습니다.”엄교진은 도윤지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넌 먼저 나가봐.”환자를 보기 전에는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도윤지가 고청민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선 후 문까지 꼭 닫았다.“이리로 오라고 하셔. 그만 누워 계시고.”“너무 감정이 격해져 의사 선생님께서 진정제를 놓아줬어요.”엄교진이 흠칫하더니 심지안에게 다가가고는 그녀가 쓰던 마스크를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엄교진은 깜짝 놀랐다.“이분, 네 약혼녀 아니
엄교진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요 몇 년 사이에 실연을 겪어 심한 우울증을 앓고 매일 저녁 악몽을 꾸는 젊은 여인들이 많았다. 꽃다운 나이에 정신적으로 시달려 자살을 선택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세상에 사람 목숨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더 있겠는가? 그리고 의사는 원래 환자를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단순한 최면술은 위험이 없지만 최면이 너무 깊게 걸리면 선택적으로 과거를 잊게 하는 리스크가 있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어?”“교수님, 제가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본 적이 있으니까 다 알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민채린에게 최면을 건 후로부터 이는 고청민이 애용하는 수단이 되었다.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시험 삼아 최면을 걸어봤기에 강한 외부의 자극이 없다면 심지안은 아마 남은 평생 성연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성연신을 세상에서 가장 못 된 쓰레기로 기억할 것이다.“좋아, 그럼 시작하지.”엄교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청민에게 회중시계를 하나 건넸다.고청민이 주저하며 물었다.“교수님, 제가 성연신에 대해 조금 자극적으로 말할 겁니다. 다만 저는 지안 씨가 그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말한 것이니 부디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래.”심리학에도 자극 요법이 있었지만 이는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아무래도 청민이도 다른 방법이 더 없었겠지.’고청민은 심지안 앞으로 걸어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깨웠다.진정제의 약효 때문에 심지안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는데도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다.“지안 씨, 이 회중시계를 똑바로 보면서 내 얘기 들어요.”“성연신은 지안 씨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성연신은 지안 씨와 결혼했는데도 임시연과 바람을 피웠어요. 그리고 임신한 지안 씨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죠. 그 때문에 지안 씨는 유산하고 하마터면 화재로 목숨을 잃
성연신의 시선은 고청민을 지나 심지안에게로 떨어졌다.그녀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고 어깨 위에 막 닿은 단발머리는 헝클어진 채 귀 뒤로 넘겨져 있었다.얼굴색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질린 그녀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성연신을 바라봤다.성연신은 제자리에 굳어선 채 심지안을 그윽하게 바라봤는데 그의 안색은 더없이 어두웠다.“몸이 어디 불편한 거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말해요.”성연신의 말에는 걱정이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고청민을 향한 의심도 담겨 있었다. 고청민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지켜주려 했다.심지안이 말만 한다면 그는 리스크를 무릅쓰더라도 그녀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잘생긴 고청민의 얼굴에는 미소가 머금고 있었다.“혹시 대표님 눈 안 좋으세요? 지안 씨가 멀쩡히 대표님 앞에 서 있잖아요.”성연신은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저 걱정하는 눈빛으로 하염없이 심지안을 바라봤다. 심지안이 귀국한 후 그는 사적으로 심지안에게 진심을 드러내면서 예전의 잘못을 반성하곤 했지만 외적으로는 오랜 시간 동안 그녀에게 거리를 뒀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지 않도록 예의와 선을 지켰다.하지만 오늘처럼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그녀에 대한 감정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건 처음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더는 고통을 겪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으니 말이다.고청민은 화내기는커녕 입꼬리를 떠 올렸다. 순수하고 수줍어하는 외모와 달리 그는 여우처럼 노련하고 사악했다.고청민의 미소를 본 성연신은 불길한 예감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그렇다고 이상한 점을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지안 씨, 말해봐요. 저 사람 따라가고 싶어요?”고청민이 고개를 돌리고는 심지안을 바라보며 가볍게 물었다. 언뜻 들으면 별문제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말투에는 조롱이 담겨있었다.심지안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눈앞에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를 바라봤다. 여전
심지안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는 원한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아이는 이미 죽었어요. 그날 밤 수술실에서 이미 죽었죠.”“의심스러운 점이 많아요. 나에게 시간을 주면 뭐든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괜찮아요. 더는 과거에 얽매여 살고 싶지 않아요.”심지안이 그 말을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고청민이 성연신을 보고는 미소를 지은 채 안철수에게 말했다.“대표님께서 많이 속상해하시는 것 같은데 위로해 줘요. 하지만 다음부터 저는 절대 이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저랑 지안 씨는 공개적인 연인 사이니까요.”안철수는 화를 못 이겨 목소리를 높였다.“뭐가 잘났다고 나대는지 모르겠네, 흥.”“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심지안 씨가 정말 고청민을 용서했을까요?”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전에 심지안이 성연신을 싫어하고 미워한 건 맞지만 이렇게 선명한 태도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성연신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들은 똑같은 디자인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는데 언뜻 보면 커플룩을 입은 알콩달콩한 연인 같았다.성연신과 심지안 사이에서는 단 한 번도 풍긴 적이 없는 화목한 분위기였다.성연신이 눈을 질끈 감고는 겨우 분노를 참았다.“저 두 사람을 막아요.”안철수가 두 눈을 반짝이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네. 마음 같아선 주먹을 휘둘러 분을 풀고 싶어.’...조수석에 앉은 심지안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짜증이 몰려왔고 또 가슴이 답답했다.“집사님에게 음식을 차려달라고 했으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예요.”고청민이 운전하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졌다.“네...”심지안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나 어젯밤에 쓰러졌어요? 왜 전혀 기억이 없죠?”“네. 몸이 많아 안 좋았어요. 게다가 요즘 세움에서 맨날 야근하니까 너무 피
“지안 씨, 대답해요.”성연신은 고청민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저 심지안을 빤히 쳐다봤지만 심지안은 그저 멍한 얼굴로 물었다.“홍지윤 씨... 내가 왜 홍지윤 씨를 만나야 해요...”“우리 아이의 행방을 알고 있으니까요.”“하지만 아이는 이미 죽었어요.”“아니에요, 지안 씨가 안 죽었다고 직접 나에게 말했었잖아요. 결론이 나기 전에 함부로 단정짓지 말아요.”심지안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반박하려고 했으나 머릿속이 갑자기 뭔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성연신은 그녀의 얼굴에 담긴 고통을 눈치채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왜 그래요? 어디 불편해요?”“머리가 너무 아파요...”심지안은 두 손으로 머리를 끌어안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성연신이 움직이기도 전에 고청민이 재빠르게 창문을 올리며 말했다.“대표님, 우리 일에 대해서는 신경 끄시죠. 지안 씨가 머리 아픈 것도 대표님 때문이잖아요. 지안 씨의 행복을 바란다면 앞으로 더는 찾아오지 마세요.”성연신은 얼굴색이 어두워진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정말 나 때문이라고?’고청민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안철수가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을 빠르게 가로질렀다.다행히 안철수는 반응이 빨랐기에 겨우 피할 수 있었다.그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일찌감치 자취를 감춘 차를 보며 욕설을 퍼부었다.“X발, 겉은 번듯하게 생겨서 운전은 거지처럼 하네.”혼잣말을 마친 그는 성연신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대표님, 어떻게 하죠? 따라가야 하나요?”“아니요. 지안 씨의 안전을 확인했으니 애들 데리고 돌아가서 주무세요.”성연신의 얼굴에는 피로가 담겼고, 또 턱에 수염이 삐쭉삐쭉 자라났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더니 안철수는 한참 말을 망설였다.“대표님도 얼른 돌아가서 쉬세요. 저들만큼 피곤해 보이세요.”“나 신경 쓸 거 없어요.”“그럼 저도 옆에 같이 있겠습니다.
사무실 안에서.소장이 직접 성연신에 커피를 건네는 걸 본 엄교진은 얼굴색 한 번 바뀌지 않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대표님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는 알겠으나 환자분의 자료는 함부로 공개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정욱은 이미 예상했기에 여전히 예의를 지키며 말했다.“교수님, 제가 찾아봤는데 심지안 씨가 예약하거나 정보를 등록한 것도 아니더군요. 그래서 교수님 환자라고 할 수도 없으니 편하게 말씀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마음이 내키지 않은 엄교진은 미간을 구겼다.도윤지도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환자 본인의 동의도 없이 조사를 시작했다니, 정말 프라이버시 의식이 취약하군. 수준 떨어져. 반대로 청민 선배님은 얼마나 선을 잘 지키는데. 나라도 청민 선배님을 선택하겠어.’소장이 한심한 얼굴로 엄교진을 바라보더니 그에게 으름장을 놓았다.“자네 정말 답답하군. 말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대표님도 심지안 씨가 걱정되어서 물어본 것이니 그 친구의 몸 상태가 어땠는지만 솔직하게 말해주게.”“심지안 씨의 몸 상태는 안 좋았습니다. 우울증도 앓고 있는 것 같고요.”엄교진이 성연신을 빤히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심지안 씨는 5년 전에 성연신 대표님과의 결혼 생활로 큰 타격을 받고 트라우마가 생겼거든요. 제 학생도 심지안 씨를 치료해 주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성연신은 마음이 씁쓸했다.“정말 지안 씨가 우울증에 걸린 게 확실해요?”엄교진이 흠칫했다. 직접 진단하진 않았지만 심지안의 정신 상태가 엉망이라는 것만은 보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고청민은 그의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였으니 아마 그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네,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다. 정말 심지안 씨를 위해 생각하신다면 대표님도 더는 심지안 씨를 찾아가지 않는 게 좋으실 거예요.”그 말을 듣자 안철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X끼랑 똑같은 말이잖아.’그는 성연신에게 귓속말로 말했다.“대표님, 이 엄교진이라는 교수도 고청민과 같은 편이 아닐까요?
7월의 제경은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37, 8도에 달하여 차 밖은 불볕더위처럼 후텁지근했지만 차 안에는 에어컨 덕분에 20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운전기사가 워낙 운전을 안정적으로 잘하니 집에 있는 거나 다를 바 없이 편안했지만, 불과 한 시간 거리에도 성동철은 운전기사를 몇 번이나 재촉했다. 운전기사는 그런 성동철의 닦달에 마음이 괴로웠고 식은땀까지 뻘뻘 흘렸다.40분 후, 성동철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란히 문 앞에 서서 그를 맞이하는 심지안과 고청민 두 사람을 발견했다.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잔뜩 굳은 성동철의 얼굴은 그제야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는 비싼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걸어갔다.“할아버지, 즐거우셨어요? 카카오 스토리에 올린 풍경 사진을 보니까 저까지 세움에 휴가를 내고 싶더라고요. 시간이 되면 지안 씨랑 같이 여행 가야겠어요.”고청민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성동철에게 인사를 건넸다.“괜찮았어.”성동철은 덤덤한 얼굴로 무심한 듯이 물었다.“너랑 지안이는 준비가 잘 되어가? 결혼식까지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때 가서 나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모든 준비는 마쳤어요. 이제 결혼식 날짜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성동철이 고개를 끄덕인 후 심지안을 바라봤다.“지안이는, 기분이 좀 나아졌어?”심지안이 입술을 오므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네, 많이 괜찮아졌어요.”“그런데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보여?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그게...”심지안이 머뭇거렸다.“왠지 모르게 머리가 아파서요.”“병원에 안 가봤어?”“아니요, 오후 내내 잤어요.”성동철이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온도 체크를 하더니 고청민에게 물었다.“왜 지안이를 데리고 병원에 안 갔어?”고청민이 온화한 얼굴로 대답했다.“네, 아직 안 갔어요. 내일 지안 씨를 데리고 병원에 갈게요.”“나 괜찮아요. 머리 아픈 것만 빼면 다 괜찮아요. 게다가 지금 많이 나아졌는데요, 뭐.”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심지안은 고
“아닙니다, 어르신. 도련님께서 신신당부하셨어요. 집사인 저는 도련님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에요.”하지만 성동철은 속을 뻔히 내다보는 사람이었기에 집사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재무팀에 가서 월급을 받고는 이 집에서 당장 나가.”집사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그는 꿈에도 이렇게 엄중한 결과가 기다릴 거로 생각하지 못해 철썩 무릎을 꿇었다.“어르신, 제가 성씨 가문에서 10년 넘게 열심히 일한 걸 봐서라도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성씨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르고서야. 이보다 더 멍청한 잘못이 어디 있어?”성동철은 인내심을 잃고 손을 내저으면서 빨리 나가라고 했다.집사는 몸을 흠칫 떨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이없는 실수를 한 자신 때문에 후회가 몰려왔다.성동철은 그동안 계속 자애로운 어르신의 이미지를 보였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스스로 A 국의 주얼리 시장을 연 개척 공신일 정도로 능력이나 기개가 대담한 사람이었다.성동철은 바로 고청민을 부른 대신 세움 임원들에게 내일 아침 일찍 이사회를 열 거라는 통보를 내렸다.그는 고청민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거짓말을 한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다. 게다가 성씨 가문의 사람까지 끌어서 그를 속이려고 했으니 이건 저지르면 안 되는 큰 실수였다.‘내가 청민이를 제대로 교육해야겠네. 아니면 앞으로 지안이까지 괴롭히면 어떻게 해?’...성씨 가문의 본가 저택에서.성연신이 스스로를 서재에 가두면서 밥도 먹지 않고,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았다.성우주가 국수를 들고 오고는 애어른처럼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왜 안 드시는 거죠? 어른인데도 전혀 말을 듣지 않네요.”성수광이 휠체어에 앉은 채 콧방귀를 뀌었다.“저놈을 신경 써서 뭐 해. 하루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증조할아버지는 아빠가 걱정 안 되세요?”“걱정이 안 돼. 말 안 하니까 훨씬 좋은데? 적어도 말할 때보다는 사람이 호감이 가네.”성우주는 반듯하게 차려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