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이 맞아.”성연신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선이 굵은 그의 얼굴에는 자책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때 내가 기분이 많이 별로여서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나 봐. 조금 더 침착하게 상황에 임했어야 하는데.”심지안은 워낙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고청민의 솔직한 고백만으로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설사 성연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명 홍지윤을 찾아가서 분명하게 물어봤을 것이다.“응? 정말 이상한 점이 있어?”장학수가 번쩍 정신을 차리더니 흥미를 보였다.“나 자문비 100억만 줘, 그럼 내가 제대로 분석해 줄게.”이진우도 씩 웃으며 말했다.“친구니까 난 80억만 받을게. 나도 학수 못지않게 잘 분석할 수 있어.”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모두 IQ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다만 어떤 사람은 그 지능을 사건 수사하는 데 사용했고, 어떤 사람은 그 지능을 여자 꼬시는 데 썼을 뿐이다.성연신이 두 사람을 흘겨봤는데 차가운 눈빛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장난으로 한 말인데 이렇게 정색할 필요가 있나?그들은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심지안과 고청민의 상황은 워낙 특수했다. 심지안은 성씨 가문의 핏줄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에 돌아왔고, 고청민은 성씨 가문의 사람들과 혈연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적 토대가 두터웠다.그래서 성동철이 과연 누구의 편을 들지 아무도 100% 확신할 수 없다.“해결책을 찾아야지.”성연신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해결책을 정리하고는 허리를 곧게 폈다.성연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엄숙한 그의 얼굴이 그가 얼마나 긴박한 마음인 걸 보여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해.”이진우가 장난기의 표정을 거두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당분간은 필요 없어.”그는 휴대폰을 꺼내 안철수에게 연락했다.“주소 하나 줄 테니까 민채린 씨 찾아가서 어젯밤 고청민과 지안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알
성연신이 어금니를 깨물고는 후회가 몰려와 주먹을 꽉 쥐었다.민채린의 말을 들은 그는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는데 고청민은 분명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을 봤을 것이다. 물론 먼저 손을 댄 건 심지안이 아니라 성연신이었는데 말이다.서로 마음속에 불만을 쌓아두고 있었던 고청민과 심지안 두 사람은 그 일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이르렀을 것이다.“끼익.”문이 열리고 정욱이 숨을 헐떡이며 진유진과 같이 룸을 들어섰다.“대표님, 못 들어가게 저희를 막아버리던데요?”“고청민은 보이지 않았어요. 가정부는 두 사람 모두 잠들었다고 말했고, 내일 아침 또 출장을 가야 하니 저보고 다음 날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진유진은 다급한 마음에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안절부절못했다.“지안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많이 심각한가요? 성씨 가문에 있으니까 안전하지 않을까요?”성연신이 눈짓을 보내자 안철수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민채린의 옷을 당기면서 그녀를 달래듯이 웃으며 말했다.“가요, 채린 씨 다시 즐길 수 있게 내가 다시 클럽으로 데려다줄게요.”“곧 날이 밝는데요. 클럽도 문 닫아요. 바보 아니에요?”성연신은 민채린이 그들의 대화 내용을 계속 듣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아챈 민채린도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느긋하게 하품하며 말했다.“됐어요. 나 호텔까지 차로 데려다줘요. 여기 워낙 구석진 곳이라서 택시 잡기도 힘들어요.”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질투하면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데 이런 흔하디흔한 스토리에 민채린은 당연히 흥미가 없었다.그리고 민채린은 이 일을 더 고청민에게 알리기도 귀찮았다. 고청민은 겉으로 온순하고 착해 보여도 사실 누구보다 상대를 의심하고 주의 깊게 보고 있을 것이니 걱정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민채린이 떠난 후 진유진이 조급한 마음으로 성연신을 재촉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얼른 말해봐요.”성연신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안 씨가 아마도 고청민에 의해 구속된 것 같아요.”“그럴 리가요..
성씨 가문에서.고청민은 침실 안에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튼을 꽁꽁 쳤다.그는 심지안과 같은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손발이 묶인 채 온몸이 나른해져 힘을 전혀 쓸 수 없었던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빨리 나 놔줘요!”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낮에 그녀는 고청민과 말다툼하다가 허리가 찌릿 아프더니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아무래도 어느 가정부에 의해 진정제 주사를 맞은 듯하다.할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그녀는 반드시 이 모든 일을 까밝혀 위험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놔주면 또 도망갈 거잖아요.”고청민이 덤덤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말했다.“지안 씨가 워낙 말을 듣지 않아서.”“그럼 계속 날 묶고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무슨 핑계를 댈지 궁금하네요.”심지안은 겉으로 화낸 척했지만 사실은 고청민이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 옆에 있는 협탁을 힐끔 바라봤다.그녀는 고청민의 방에 거의 들어온 적이 없었지만 서랍 속에 가위 하나가 들어있었던 건 기억이 났다.이따가 고청민이 떠나면 그녀는 최선을 다해 그 가위로 밧줄을 자르려고 했다.“할아버지는 기껏해야 저를 혼내시겠죠. 하지만 파혼하려는 사람은 지안 씨예요, 그러면 할아버지께 혼날 사람도 당연히 지안 씨겠죠.”고청민은 겨우 분노를 참으며 말했는데 갑자기 뭔가를 생각한 듯 사악한 눈빛을 보였다. 곧이어 그의 얼굴에 담긴 분노가 사라졌고 대신 따뜻한 미소가 드리워졌다.“하지만... 지안 씨는 곧 성연신을 잊어버릴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미간을 구기면서 몸을 움츠렸다. 여자의 촉으로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것을 직감한 것이다.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고청민을 빤히 쳐다보며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마치 잔뜩 성이 난 고양이처럼 털까지 쭈뼛쭈뼛 선 것 같았다.하지만 고청민은 그저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허리를 굽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낯선 남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심지안은 저항하기 위해
심리연구소에서.고청민은 심지안을 진료실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엄교진의 여학생인 도윤지가 고청민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선배님, 오랜만이에요.”그녀는 고청민보다 한 학년 어린 후배였다. 학교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가 심리학을 전공한다는 얘기를 듣고 도윤지도 똑같이 심리학을 지원했다.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녀는 끝내 심리학과에 합격했다.하지만 아쉽게도... 고청민은 학교에 오래 있지 않고 곧 출국했다.그리고 그의 소식이 다시 들려왔는데 심지안과 결혼한다고 했다.고청민이 살짝 고래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줬다.“교수님은?”“옆방에 있어요, 제가 교수님 불러올게요.”도윤지는 침대 위에 누운 사람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마스크를 쓴 채 꽁꽁 싸매고 있었다.“이분이 선배님이 데려오신 환자분인가요?”“응.”“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도윤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진료실을 나섰다.5분 후, 엄교진이 걸어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 60대로 보이는 그는 실눈을 뜬 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너 이 녀석, 드디어 시간이 나서 나 보러 온 거야?”“죄송합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요. 교수님, 이건 제 결혼식의 청첩장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꼭 와주시길 바랍니다.”“그럼, 가야지.”엄교진이 자리에 앉으면서 침대 위에 누운 심지안을 바라봤다.“이분이 네가 말한 환자분이야? 옛날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괴로워한다던 그분?”“네, 맞습니다.”엄교진은 도윤지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넌 먼저 나가봐.”환자를 보기 전에는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도윤지가 고청민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선 후 문까지 꼭 닫았다.“이리로 오라고 하셔. 그만 누워 계시고.”“너무 감정이 격해져 의사 선생님께서 진정제를 놓아줬어요.”엄교진이 흠칫하더니 심지안에게 다가가고는 그녀가 쓰던 마스크를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엄교진은 깜짝 놀랐다.“이분, 네 약혼녀 아니
엄교진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요 몇 년 사이에 실연을 겪어 심한 우울증을 앓고 매일 저녁 악몽을 꾸는 젊은 여인들이 많았다. 꽃다운 나이에 정신적으로 시달려 자살을 선택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세상에 사람 목숨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더 있겠는가? 그리고 의사는 원래 환자를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단순한 최면술은 위험이 없지만 최면이 너무 깊게 걸리면 선택적으로 과거를 잊게 하는 리스크가 있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어?”“교수님, 제가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본 적이 있으니까 다 알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민채린에게 최면을 건 후로부터 이는 고청민이 애용하는 수단이 되었다.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시험 삼아 최면을 걸어봤기에 강한 외부의 자극이 없다면 심지안은 아마 남은 평생 성연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성연신을 세상에서 가장 못 된 쓰레기로 기억할 것이다.“좋아, 그럼 시작하지.”엄교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청민에게 회중시계를 하나 건넸다.고청민이 주저하며 물었다.“교수님, 제가 성연신에 대해 조금 자극적으로 말할 겁니다. 다만 저는 지안 씨가 그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말한 것이니 부디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래.”심리학에도 자극 요법이 있었지만 이는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아무래도 청민이도 다른 방법이 더 없었겠지.’고청민은 심지안 앞으로 걸어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깨웠다.진정제의 약효 때문에 심지안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는데도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다.“지안 씨, 이 회중시계를 똑바로 보면서 내 얘기 들어요.”“성연신은 지안 씨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성연신은 지안 씨와 결혼했는데도 임시연과 바람을 피웠어요. 그리고 임신한 지안 씨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죠. 그 때문에 지안 씨는 유산하고 하마터면 화재로 목숨을 잃
성연신의 시선은 고청민을 지나 심지안에게로 떨어졌다.그녀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고 어깨 위에 막 닿은 단발머리는 헝클어진 채 귀 뒤로 넘겨져 있었다.얼굴색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질린 그녀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성연신을 바라봤다.성연신은 제자리에 굳어선 채 심지안을 그윽하게 바라봤는데 그의 안색은 더없이 어두웠다.“몸이 어디 불편한 거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말해요.”성연신의 말에는 걱정이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고청민을 향한 의심도 담겨 있었다. 고청민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지켜주려 했다.심지안이 말만 한다면 그는 리스크를 무릅쓰더라도 그녀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잘생긴 고청민의 얼굴에는 미소가 머금고 있었다.“혹시 대표님 눈 안 좋으세요? 지안 씨가 멀쩡히 대표님 앞에 서 있잖아요.”성연신은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저 걱정하는 눈빛으로 하염없이 심지안을 바라봤다. 심지안이 귀국한 후 그는 사적으로 심지안에게 진심을 드러내면서 예전의 잘못을 반성하곤 했지만 외적으로는 오랜 시간 동안 그녀에게 거리를 뒀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지 않도록 예의와 선을 지켰다.하지만 오늘처럼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그녀에 대한 감정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건 처음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더는 고통을 겪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으니 말이다.고청민은 화내기는커녕 입꼬리를 떠 올렸다. 순수하고 수줍어하는 외모와 달리 그는 여우처럼 노련하고 사악했다.고청민의 미소를 본 성연신은 불길한 예감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그렇다고 이상한 점을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지안 씨, 말해봐요. 저 사람 따라가고 싶어요?”고청민이 고개를 돌리고는 심지안을 바라보며 가볍게 물었다. 언뜻 들으면 별문제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말투에는 조롱이 담겨있었다.심지안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눈앞에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를 바라봤다. 여전
심지안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는 원한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아이는 이미 죽었어요. 그날 밤 수술실에서 이미 죽었죠.”“의심스러운 점이 많아요. 나에게 시간을 주면 뭐든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괜찮아요. 더는 과거에 얽매여 살고 싶지 않아요.”심지안이 그 말을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고청민이 성연신을 보고는 미소를 지은 채 안철수에게 말했다.“대표님께서 많이 속상해하시는 것 같은데 위로해 줘요. 하지만 다음부터 저는 절대 이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저랑 지안 씨는 공개적인 연인 사이니까요.”안철수는 화를 못 이겨 목소리를 높였다.“뭐가 잘났다고 나대는지 모르겠네, 흥.”“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심지안 씨가 정말 고청민을 용서했을까요?”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전에 심지안이 성연신을 싫어하고 미워한 건 맞지만 이렇게 선명한 태도를 보인 건 처음이었다.성연신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들은 똑같은 디자인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는데 언뜻 보면 커플룩을 입은 알콩달콩한 연인 같았다.성연신과 심지안 사이에서는 단 한 번도 풍긴 적이 없는 화목한 분위기였다.성연신이 눈을 질끈 감고는 겨우 분노를 참았다.“저 두 사람을 막아요.”안철수가 두 눈을 반짝이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네. 마음 같아선 주먹을 휘둘러 분을 풀고 싶어.’...조수석에 앉은 심지안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짜증이 몰려왔고 또 가슴이 답답했다.“집사님에게 음식을 차려달라고 했으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예요.”고청민이 운전하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졌다.“네...”심지안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나 어젯밤에 쓰러졌어요? 왜 전혀 기억이 없죠?”“네. 몸이 많아 안 좋았어요. 게다가 요즘 세움에서 맨날 야근하니까 너무 피
“지안 씨, 대답해요.”성연신은 고청민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저 심지안을 빤히 쳐다봤지만 심지안은 그저 멍한 얼굴로 물었다.“홍지윤 씨... 내가 왜 홍지윤 씨를 만나야 해요...”“우리 아이의 행방을 알고 있으니까요.”“하지만 아이는 이미 죽었어요.”“아니에요, 지안 씨가 안 죽었다고 직접 나에게 말했었잖아요. 결론이 나기 전에 함부로 단정짓지 말아요.”심지안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며 반박하려고 했으나 머릿속이 갑자기 뭔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성연신은 그녀의 얼굴에 담긴 고통을 눈치채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왜 그래요? 어디 불편해요?”“머리가 너무 아파요...”심지안은 두 손으로 머리를 끌어안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성연신이 움직이기도 전에 고청민이 재빠르게 창문을 올리며 말했다.“대표님, 우리 일에 대해서는 신경 끄시죠. 지안 씨가 머리 아픈 것도 대표님 때문이잖아요. 지안 씨의 행복을 바란다면 앞으로 더는 찾아오지 마세요.”성연신은 얼굴색이 어두워진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정말 나 때문이라고?’고청민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안철수가 그의 길을 가로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을 빠르게 가로질렀다.다행히 안철수는 반응이 빨랐기에 겨우 피할 수 있었다.그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일찌감치 자취를 감춘 차를 보며 욕설을 퍼부었다.“X발, 겉은 번듯하게 생겨서 운전은 거지처럼 하네.”혼잣말을 마친 그는 성연신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대표님, 어떻게 하죠? 따라가야 하나요?”“아니요. 지안 씨의 안전을 확인했으니 애들 데리고 돌아가서 주무세요.”성연신의 얼굴에는 피로가 담겼고, 또 턱에 수염이 삐쭉삐쭉 자라났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더니 안철수는 한참 말을 망설였다.“대표님도 얼른 돌아가서 쉬세요. 저들만큼 피곤해 보이세요.”“나 신경 쓸 거 없어요.”“그럼 저도 옆에 같이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