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하는 사이에 하인들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 심지안을 방으로 밀어 넣어 그녀는 반항할 새도 없었다.이번에 그녀는 고청민의 방에 갇히게 되었다.심지안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앞의 하인들을 바라봤다.그들은 마치 세뇌된 것처럼 고청민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랐는데 오히려 그의 뜻을 거역하는 심지안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지안 씨, 내가 5년 전에 지안 씨를 구해냈으니 지금 지안 씨를 다시 가둘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하겠죠?”고청민이 그의 옆에 앉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덤덤한 말투로 가장 오싹한 말을 내뱉고 있는 그는 여전히 훈훈한 모범생과도 같은 겉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심지안은 전에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헛구역질이 났고 곧이어 그의 손을 툭 쳐내며 말했다.“이제야 연기를 하지 않네요.”‘연기’라는 말에 고청민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내가 지안 씨에게 베푼 호의가 모두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지안 씨, 정말 말을 너무 섭섭하게 하네요.”심지안이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게 내 아이를 죽이는 거예요?”그 말을 들은 고청민은 흠칫했고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그는 애써 덤덤한 척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아이는 사고사로 죽은 거잖아요. 홍지윤 씨가 진실을 말해줬다고 하지 않았어요?”“그건 홍지윤 씨가 당신에게 협박을 당했으니까요.”고청민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한결 무거워진 분위기에 그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모두 알고 있었어요?”심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분명 그를 증오하고 멀리하고 싶은 눈빛이었다.고청민이 주먹을 꽉 쥐고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깊은 눈망울로 말했다.“나는 지안 씨를 위해서 한 일이에요. 그 아이를 남기면 지안 씨에게는 짐밖에 더 되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으로
변혜영이 그 뒤를 따르며 투덜댔다.“엘리베이터라도 하나 만들지, 피곤해 죽겠네요.”고청민이 하인에게 눈짓을 하자 하인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리면서 몸으로 문 앞을 막았다.“죄송합니다. 아가씨가 편찮으셔서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옆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어디가 불편하다는 거죠? 마침 의사도 데리고 왔는데.”성연신이 손뼉을 치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고청민이 웃는 듯 마는 듯하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려고 했다.“우리 성씨 가문을 책임지는 의료진이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안 씨 이제 겨우 잠들었어요. 여기 서 있지 말고 내려가죠. 이미 마실 게 준비되어 있습니다.”“뭐 마실 시간은 없고요. 심지안에게 물어볼 일이 있으니까 한 번 깨워봐요.”변혜영은 고개를 숙여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임시연 씨가 임신한 거 가짜예요.”변혜영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정말이에요? 사실이 맞나요?”“네, 물어볼 거 또 있어요?”“없어요. 하지만 그 증거가 뭐죠?”“증거는 없어요. 사람 찾아 더 알아보라고 하세요. 이미 임신한 왕실의 하인들을 조사해 봐요. 임시연을 도운 사람이 그중에 있을지 누가 알아요.”변혜영이 그 말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왕실에는 임신한 하인이 몇 명 있는 건 사실이었다.‘뭐야? 감히 왕실을 배신해?’“알겠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변혜영은 목적을 달성했으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현장에는 성연신과 고청민 두 남자만 남게 되었다.두 사람이 한참 눈을 마주치더니 고청민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성연신 씨, 내 집에 계속 머물 생각인가요?”“지안 씨가 깰 때까지 기다릴게요.”성연신이 단호하게 말했다.조금 더 기다리더라도 심지안이 안전한지 확인해야 했다.“정말 일편단심이네요. 하지만 무슨 소용 있겠어요? 지안 씨는 이제 곧 내 아내가 될 텐데.”고청민이 웃으면서 성연신을 도발했다.“난 그럼 들어가서 지안 씨랑 조금 더 잘 테니까 성연신
고청민은 그런 성연신의 감정 변화를 모두 눈에 담고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갔다.오후 5시.심지안이 있는 방 안에서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성연신은 몇 번이나 들어가서 심지안에게 자기를 용서하지 않아도 되니 고청민도 용서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그는 감정을 추스르고 마지막 결심을 한 듯 성큼성큼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그녀가 고청민의 솔직한 고백에 온전히 넘어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성연신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방 안에서 심지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당연히 청민 씨 제일 사랑하죠. 성연신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요. 우리 곧 결혼하는데 그 사람 얘기는 그만해요, 네?”“네, 약속할게요.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밖에 있어요... 지안 씨 오래 기다렸는데 가서 한번 안 만나볼래요?”고청민이 머뭇머뭇하면서도 동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아니에요. 안 만나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이제 과거와는 완전히 작별하고 싶어요. 그 결혼 생활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어요. 만약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성연신을 만나지 않았을 거예요.”“알겠어요. 그럼 내가 나가서 말할게요.”슬리퍼를 신는 바스락 소리와 함께 고청민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하지만 성연신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입꼬리가 점점 올라간 그는 손에 쥔 녹음 펜을 만지작거렸다.전문가를 찾아 만든 심지안과 닮은 목소리는 진실도가 매우 높았는데 거의 심지안의 목소리와 다름없었다.게다가 그녀의 말이 감정적으로 들렸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심지안 본인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고청민이 고개를 돌리고는 진정제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심지안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웃음은 서서히 사라졌다.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곁에 둘 것이다. 그리고 이걸 막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서재에 심리 관련 서적들은 모두 내 침실로 옮겨줘요.”“네, 알겠습니다.”고청민이 시계를 살펴봤다.심지안이 깨어나려면 몇 시간은
여자애는 사장의 분부대로 성연신의 옆에 앉았다.그녀는 흥분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겁도 났다.눈앞의 사람은 제도 비즈니스계의 일인자인 성연신이다. 만약 그의 눈에만 들 수 있다면 앞으로 그녀는 팔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이다.그와 결혼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달마다 용돈 받으며 그를 즐겁게 해주는 파트너라도 충분히 만족할만했다.“대표님, 제가 한 잔 드릴게요.”여자애가 몸을 돌리고는 성연신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성연신이 고개를 들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여자애는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해 긴장을 조금 늦췄다.“대표님, 저는 유연이라고 합니다. 저를 연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성연신이 천천히 입을 열더니 덤덤하게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꺼져.”유연은 얼굴이 굳어져 잔뜩 겁을 먹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제가 잘못했나요? 말씀해 주시면 바로 고치겠습니다.”“그 얼굴로 그런 징그러운 말을 한 것이 잘못이야.”성연신은 눈이 벌게진 채로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넌 그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모욕하고 있어.”심지안은 절대 잘 보이려고 이런 아양을 떠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팅커벨처럼 장난기가 넘친 그녀는 절대 이렇게 속물로 보일 리가 없었다.유연은 겁을 먹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잔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고 와인이 성연신의 바짓가랑이에 튀었다.“죄,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잘생긴 성연신의 얼굴에는 미간이 구겨졌다. 곧이어 그의 눈에는 살기가 어렸다.“혼자 꺼질래? 아니면 내가 널 직접 내보낼까?”유연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제가 알아서 꺼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사장님이 분명 팔자를 고칠 좋은 기회라고 했는데. 좋은 기회는 개뿔!’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그 광경을 보고는 잔뜩 겁을 먹고 허리를 곧게 펴며 긴장을 늦
“네 말이 맞아.”성연신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선이 굵은 그의 얼굴에는 자책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때 내가 기분이 많이 별로여서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나 봐. 조금 더 침착하게 상황에 임했어야 하는데.”심지안은 워낙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고청민의 솔직한 고백만으로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설사 성연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명 홍지윤을 찾아가서 분명하게 물어봤을 것이다.“응? 정말 이상한 점이 있어?”장학수가 번쩍 정신을 차리더니 흥미를 보였다.“나 자문비 100억만 줘, 그럼 내가 제대로 분석해 줄게.”이진우도 씩 웃으며 말했다.“친구니까 난 80억만 받을게. 나도 학수 못지않게 잘 분석할 수 있어.”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모두 IQ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다만 어떤 사람은 그 지능을 사건 수사하는 데 사용했고, 어떤 사람은 그 지능을 여자 꼬시는 데 썼을 뿐이다.성연신이 두 사람을 흘겨봤는데 차가운 눈빛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장난으로 한 말인데 이렇게 정색할 필요가 있나?그들은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심지안과 고청민의 상황은 워낙 특수했다. 심지안은 성씨 가문의 핏줄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에 돌아왔고, 고청민은 성씨 가문의 사람들과 혈연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적 토대가 두터웠다.그래서 성동철이 과연 누구의 편을 들지 아무도 100% 확신할 수 없다.“해결책을 찾아야지.”성연신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해결책을 정리하고는 허리를 곧게 폈다.성연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엄숙한 그의 얼굴이 그가 얼마나 긴박한 마음인 걸 보여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해.”이진우가 장난기의 표정을 거두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당분간은 필요 없어.”그는 휴대폰을 꺼내 안철수에게 연락했다.“주소 하나 줄 테니까 민채린 씨 찾아가서 어젯밤 고청민과 지안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알
성연신이 어금니를 깨물고는 후회가 몰려와 주먹을 꽉 쥐었다.민채린의 말을 들은 그는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는데 고청민은 분명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을 봤을 것이다. 물론 먼저 손을 댄 건 심지안이 아니라 성연신이었는데 말이다.서로 마음속에 불만을 쌓아두고 있었던 고청민과 심지안 두 사람은 그 일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이르렀을 것이다.“끼익.”문이 열리고 정욱이 숨을 헐떡이며 진유진과 같이 룸을 들어섰다.“대표님, 못 들어가게 저희를 막아버리던데요?”“고청민은 보이지 않았어요. 가정부는 두 사람 모두 잠들었다고 말했고, 내일 아침 또 출장을 가야 하니 저보고 다음 날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진유진은 다급한 마음에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안절부절못했다.“지안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많이 심각한가요? 성씨 가문에 있으니까 안전하지 않을까요?”성연신이 눈짓을 보내자 안철수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민채린의 옷을 당기면서 그녀를 달래듯이 웃으며 말했다.“가요, 채린 씨 다시 즐길 수 있게 내가 다시 클럽으로 데려다줄게요.”“곧 날이 밝는데요. 클럽도 문 닫아요. 바보 아니에요?”성연신은 민채린이 그들의 대화 내용을 계속 듣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아챈 민채린도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느긋하게 하품하며 말했다.“됐어요. 나 호텔까지 차로 데려다줘요. 여기 워낙 구석진 곳이라서 택시 잡기도 힘들어요.”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질투하면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데 이런 흔하디흔한 스토리에 민채린은 당연히 흥미가 없었다.그리고 민채린은 이 일을 더 고청민에게 알리기도 귀찮았다. 고청민은 겉으로 온순하고 착해 보여도 사실 누구보다 상대를 의심하고 주의 깊게 보고 있을 것이니 걱정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민채린이 떠난 후 진유진이 조급한 마음으로 성연신을 재촉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얼른 말해봐요.”성연신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안 씨가 아마도 고청민에 의해 구속된 것 같아요.”“그럴 리가요..
성씨 가문에서.고청민은 침실 안에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튼을 꽁꽁 쳤다.그는 심지안과 같은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손발이 묶인 채 온몸이 나른해져 힘을 전혀 쓸 수 없었던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빨리 나 놔줘요!”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낮에 그녀는 고청민과 말다툼하다가 허리가 찌릿 아프더니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아무래도 어느 가정부에 의해 진정제 주사를 맞은 듯하다.할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그녀는 반드시 이 모든 일을 까밝혀 위험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놔주면 또 도망갈 거잖아요.”고청민이 덤덤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말했다.“지안 씨가 워낙 말을 듣지 않아서.”“그럼 계속 날 묶고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무슨 핑계를 댈지 궁금하네요.”심지안은 겉으로 화낸 척했지만 사실은 고청민이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 옆에 있는 협탁을 힐끔 바라봤다.그녀는 고청민의 방에 거의 들어온 적이 없었지만 서랍 속에 가위 하나가 들어있었던 건 기억이 났다.이따가 고청민이 떠나면 그녀는 최선을 다해 그 가위로 밧줄을 자르려고 했다.“할아버지는 기껏해야 저를 혼내시겠죠. 하지만 파혼하려는 사람은 지안 씨예요, 그러면 할아버지께 혼날 사람도 당연히 지안 씨겠죠.”고청민은 겨우 분노를 참으며 말했는데 갑자기 뭔가를 생각한 듯 사악한 눈빛을 보였다. 곧이어 그의 얼굴에 담긴 분노가 사라졌고 대신 따뜻한 미소가 드리워졌다.“하지만... 지안 씨는 곧 성연신을 잊어버릴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미간을 구기면서 몸을 움츠렸다. 여자의 촉으로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것을 직감한 것이다.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고청민을 빤히 쳐다보며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마치 잔뜩 성이 난 고양이처럼 털까지 쭈뼛쭈뼛 선 것 같았다.하지만 고청민은 그저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허리를 굽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낯선 남자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심지안은 저항하기 위해
심리연구소에서.고청민은 심지안을 진료실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엄교진의 여학생인 도윤지가 고청민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선배님, 오랜만이에요.”그녀는 고청민보다 한 학년 어린 후배였다. 학교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가 심리학을 전공한다는 얘기를 듣고 도윤지도 똑같이 심리학을 지원했다.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녀는 끝내 심리학과에 합격했다.하지만 아쉽게도... 고청민은 학교에 오래 있지 않고 곧 출국했다.그리고 그의 소식이 다시 들려왔는데 심지안과 결혼한다고 했다.고청민이 살짝 고래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줬다.“교수님은?”“옆방에 있어요, 제가 교수님 불러올게요.”도윤지는 침대 위에 누운 사람을 바라봤는데 그녀는 마스크를 쓴 채 꽁꽁 싸매고 있었다.“이분이 선배님이 데려오신 환자분인가요?”“응.”“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도윤지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진료실을 나섰다.5분 후, 엄교진이 걸어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5, 60대로 보이는 그는 실눈을 뜬 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너 이 녀석, 드디어 시간이 나서 나 보러 온 거야?”“죄송합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요. 교수님, 이건 제 결혼식의 청첩장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꼭 와주시길 바랍니다.”“그럼, 가야지.”엄교진이 자리에 앉으면서 침대 위에 누운 심지안을 바라봤다.“이분이 네가 말한 환자분이야? 옛날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괴로워한다던 그분?”“네, 맞습니다.”엄교진은 도윤지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넌 먼저 나가봐.”환자를 보기 전에는 조용하고 프라이빗한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도윤지가 고청민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선 후 문까지 꼭 닫았다.“이리로 오라고 하셔. 그만 누워 계시고.”“너무 감정이 격해져 의사 선생님께서 진정제를 놓아줬어요.”엄교진이 흠칫하더니 심지안에게 다가가고는 그녀가 쓰던 마스크를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엄교진은 깜짝 놀랐다.“이분, 네 약혼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