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청민이 문을 막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지안 씨, 나 화나게 하지 마요.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거예요.”“내 물잔에 수면제를 넣고 휴대폰을 가져가고 내 방을 잠근 것도 모자라 일부러 할아버지를 해외로 보냈죠? 그렇게 많은 짓을 하고서 도대체 누가 누구를 화나게 했다는 거예요?”“내가 이유 없이 그런 짓을 했겠어요?”고청민이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어젯밤 지안 씨와 성연신이 밖에서 몰래 했던 짓을 내가 꼭 말해야 할까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니면 벌써 그런 상황이 익숙해진 거예요?”심지안과 고청민의 관계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설사 두 사람이 약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연인 사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안은 전 남편과 여러 번 바람을 피우면서 그를 난감하게 했다.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당한 거로 생각해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고 용서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었다.하지만 그런 일이 두 번째, 세 번째로 일어났을 때도 거절하지 못했단 말인가?성연신과 계속 연락을 끊지 않았다는 건 거절하지 못한 게 아니라 거절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얼굴색이 어두워진 심지안은 손톱이 살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네, 나 그런 사람 맞아요. 이제 만족하겠어요?”이런 말로 고청민이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해 결혼하지 않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심지안은 백 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안 좋은 소문이 돌아도 참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일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삽시에 고청민은 가슴이 비수에 꽂힌 듯이 아팠다.웃음이 머금던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이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내가 결혼을 취소했으면 좋겠어요?”심지안은 속셈을 들켜 동공이 흔들렸지만 곧바로 솔직하게 인정했다.“네, 나 결혼하기 싫어요.”“겨우 성연신이 결혼을 파투 내라고 해서?”물음이 아닌 확신에 가득 찬 말투였다.하지만 심지안은 그의 말에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어두운
보광 중신에서.정욱이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변혜영은 씩씩거리며 성연신의 사무실로 쳐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심지안 씨는 어디에 있어요? 내가 긴히 할 얘기가 있어요!”어젯밤부터 심지안은 사라져 버린 듯 어디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전화를 쳐도 받지 않고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었는데 협력하자고 찾아올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녀를 따돌린단 말인가?변혜영은 절대 이런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화끈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특히 어젯밤 임시연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온갖 유난을 떨었으니 그녀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남자들은 그런 그녀의 연주에 홀딱 반했는데 영락없는 세상 물정 모르는 촌놈들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화를 내지 않으려 참아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이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거잖아?’성연신은 서류 더미에서 눈을 떼고 느긋하게 고개를 들었다.“그 사람은 왜 찾는 거예요?”“당연히 급한 일이 있으니까 찾죠. 얼른 불러내요.”“연락처 없어요?”“있는데 전화 안 받으니까 그러죠. 문자도 답장 안 하고. 아니면 내가 왜 당신을 찾아왔겠어요?”성씨 가문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세움 주얼리로 찾아가 봤는데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변요석의 말에 의하면 성연신은 심지안의 전남편으로 그녀를 아직 잊지 못했고, 또 그녀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다.성연신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덤덤하던 그의 얼굴은 별안간 엄숙해졌다.“연락이 안 된다고요?”“네, 당신도 연락이 안 되나요?”‘늦잠 자는 거 아니야? 평소에도 오후에 일어나더니. 그런데 시간이 벌써 세 신데 아직도 안 일어났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그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한참 고민하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큰일났어요.”...성씨 가문 저택에서.연기는 재빨리 창문을 뚫고 나왔다.제일 먼저 상황을 알아챈 건 정원에서 화초를 다듬는 원예사였는데 그는 다급하게 집안으로 달려가 가정부에게 이
그가 말하는 사이에 하인들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 심지안을 방으로 밀어 넣어 그녀는 반항할 새도 없었다.이번에 그녀는 고청민의 방에 갇히게 되었다.심지안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앞의 하인들을 바라봤다.그들은 마치 세뇌된 것처럼 고청민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랐는데 오히려 그의 뜻을 거역하는 심지안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지안 씨, 내가 5년 전에 지안 씨를 구해냈으니 지금 지안 씨를 다시 가둘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하겠죠?”고청민이 그의 옆에 앉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덤덤한 말투로 가장 오싹한 말을 내뱉고 있는 그는 여전히 훈훈한 모범생과도 같은 겉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심지안은 전에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헛구역질이 났고 곧이어 그의 손을 툭 쳐내며 말했다.“이제야 연기를 하지 않네요.”‘연기’라는 말에 고청민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내가 지안 씨에게 베푼 호의가 모두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지안 씨, 정말 말을 너무 섭섭하게 하네요.”심지안이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게 내 아이를 죽이는 거예요?”그 말을 들은 고청민은 흠칫했고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그는 애써 덤덤한 척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아이는 사고사로 죽은 거잖아요. 홍지윤 씨가 진실을 말해줬다고 하지 않았어요?”“그건 홍지윤 씨가 당신에게 협박을 당했으니까요.”고청민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한결 무거워진 분위기에 그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모두 알고 있었어요?”심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분명 그를 증오하고 멀리하고 싶은 눈빛이었다.고청민이 주먹을 꽉 쥐고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깊은 눈망울로 말했다.“나는 지안 씨를 위해서 한 일이에요. 그 아이를 남기면 지안 씨에게는 짐밖에 더 되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으로
변혜영이 그 뒤를 따르며 투덜댔다.“엘리베이터라도 하나 만들지, 피곤해 죽겠네요.”고청민이 하인에게 눈짓을 하자 하인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리면서 몸으로 문 앞을 막았다.“죄송합니다. 아가씨가 편찮으셔서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옆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어디가 불편하다는 거죠? 마침 의사도 데리고 왔는데.”성연신이 손뼉을 치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고청민이 웃는 듯 마는 듯하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려고 했다.“우리 성씨 가문을 책임지는 의료진이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지안 씨 이제 겨우 잠들었어요. 여기 서 있지 말고 내려가죠. 이미 마실 게 준비되어 있습니다.”“뭐 마실 시간은 없고요. 심지안에게 물어볼 일이 있으니까 한 번 깨워봐요.”변혜영은 고개를 숙여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임시연 씨가 임신한 거 가짜예요.”변혜영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정말이에요? 사실이 맞나요?”“네, 물어볼 거 또 있어요?”“없어요. 하지만 그 증거가 뭐죠?”“증거는 없어요. 사람 찾아 더 알아보라고 하세요. 이미 임신한 왕실의 하인들을 조사해 봐요. 임시연을 도운 사람이 그중에 있을지 누가 알아요.”변혜영이 그 말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왕실에는 임신한 하인이 몇 명 있는 건 사실이었다.‘뭐야? 감히 왕실을 배신해?’“알겠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변혜영은 목적을 달성했으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현장에는 성연신과 고청민 두 남자만 남게 되었다.두 사람이 한참 눈을 마주치더니 고청민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성연신 씨, 내 집에 계속 머물 생각인가요?”“지안 씨가 깰 때까지 기다릴게요.”성연신이 단호하게 말했다.조금 더 기다리더라도 심지안이 안전한지 확인해야 했다.“정말 일편단심이네요. 하지만 무슨 소용 있겠어요? 지안 씨는 이제 곧 내 아내가 될 텐데.”고청민이 웃으면서 성연신을 도발했다.“난 그럼 들어가서 지안 씨랑 조금 더 잘 테니까 성연신
고청민은 그런 성연신의 감정 변화를 모두 눈에 담고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갔다.오후 5시.심지안이 있는 방 안에서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성연신은 몇 번이나 들어가서 심지안에게 자기를 용서하지 않아도 되니 고청민도 용서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그는 감정을 추스르고 마지막 결심을 한 듯 성큼성큼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그녀가 고청민의 솔직한 고백에 온전히 넘어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성연신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방 안에서 심지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당연히 청민 씨 제일 사랑하죠. 성연신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요. 우리 곧 결혼하는데 그 사람 얘기는 그만해요, 네?”“네, 약속할게요.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밖에 있어요... 지안 씨 오래 기다렸는데 가서 한번 안 만나볼래요?”고청민이 머뭇머뭇하면서도 동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아니에요. 안 만나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이제 과거와는 완전히 작별하고 싶어요. 그 결혼 생활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어요. 만약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성연신을 만나지 않았을 거예요.”“알겠어요. 그럼 내가 나가서 말할게요.”슬리퍼를 신는 바스락 소리와 함께 고청민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하지만 성연신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입꼬리가 점점 올라간 그는 손에 쥔 녹음 펜을 만지작거렸다.전문가를 찾아 만든 심지안과 닮은 목소리는 진실도가 매우 높았는데 거의 심지안의 목소리와 다름없었다.게다가 그녀의 말이 감정적으로 들렸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심지안 본인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고청민이 고개를 돌리고는 진정제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심지안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웃음은 서서히 사라졌다.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곁에 둘 것이다. 그리고 이걸 막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서재에 심리 관련 서적들은 모두 내 침실로 옮겨줘요.”“네, 알겠습니다.”고청민이 시계를 살펴봤다.심지안이 깨어나려면 몇 시간은
여자애는 사장의 분부대로 성연신의 옆에 앉았다.그녀는 흥분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겁도 났다.눈앞의 사람은 제도 비즈니스계의 일인자인 성연신이다. 만약 그의 눈에만 들 수 있다면 앞으로 그녀는 팔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이다.그와 결혼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달마다 용돈 받으며 그를 즐겁게 해주는 파트너라도 충분히 만족할만했다.“대표님, 제가 한 잔 드릴게요.”여자애가 몸을 돌리고는 성연신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성연신이 고개를 들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여자애는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해 긴장을 조금 늦췄다.“대표님, 저는 유연이라고 합니다. 저를 연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성연신이 천천히 입을 열더니 덤덤하게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꺼져.”유연은 얼굴이 굳어져 잔뜩 겁을 먹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제가 잘못했나요? 말씀해 주시면 바로 고치겠습니다.”“그 얼굴로 그런 징그러운 말을 한 것이 잘못이야.”성연신은 눈이 벌게진 채로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넌 그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모욕하고 있어.”심지안은 절대 잘 보이려고 이런 아양을 떠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팅커벨처럼 장난기가 넘친 그녀는 절대 이렇게 속물로 보일 리가 없었다.유연은 겁을 먹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잔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고 와인이 성연신의 바짓가랑이에 튀었다.“죄,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잘생긴 성연신의 얼굴에는 미간이 구겨졌다. 곧이어 그의 눈에는 살기가 어렸다.“혼자 꺼질래? 아니면 내가 널 직접 내보낼까?”유연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제가 알아서 꺼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사장님이 분명 팔자를 고칠 좋은 기회라고 했는데. 좋은 기회는 개뿔!’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자들도 그 광경을 보고는 잔뜩 겁을 먹고 허리를 곧게 펴며 긴장을 늦
“네 말이 맞아.”성연신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선이 굵은 그의 얼굴에는 자책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때 내가 기분이 많이 별로여서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나 봐. 조금 더 침착하게 상황에 임했어야 하는데.”심지안은 워낙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고청민의 솔직한 고백만으로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설사 성연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명 홍지윤을 찾아가서 분명하게 물어봤을 것이다.“응? 정말 이상한 점이 있어?”장학수가 번쩍 정신을 차리더니 흥미를 보였다.“나 자문비 100억만 줘, 그럼 내가 제대로 분석해 줄게.”이진우도 씩 웃으며 말했다.“친구니까 난 80억만 받을게. 나도 학수 못지않게 잘 분석할 수 있어.”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모두 IQ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다만 어떤 사람은 그 지능을 사건 수사하는 데 사용했고, 어떤 사람은 그 지능을 여자 꼬시는 데 썼을 뿐이다.성연신이 두 사람을 흘겨봤는데 차가운 눈빛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장난으로 한 말인데 이렇게 정색할 필요가 있나?그들은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심지안과 고청민의 상황은 워낙 특수했다. 심지안은 성씨 가문의 핏줄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에 돌아왔고, 고청민은 성씨 가문의 사람들과 혈연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적 토대가 두터웠다.그래서 성동철이 과연 누구의 편을 들지 아무도 100% 확신할 수 없다.“해결책을 찾아야지.”성연신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해결책을 정리하고는 허리를 곧게 폈다.성연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엄숙한 그의 얼굴이 그가 얼마나 긴박한 마음인 걸 보여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해.”이진우가 장난기의 표정을 거두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당분간은 필요 없어.”그는 휴대폰을 꺼내 안철수에게 연락했다.“주소 하나 줄 테니까 민채린 씨 찾아가서 어젯밤 고청민과 지안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똑똑히 알
성연신이 어금니를 깨물고는 후회가 몰려와 주먹을 꽉 쥐었다.민채린의 말을 들은 그는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는데 고청민은 분명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을 봤을 것이다. 물론 먼저 손을 댄 건 심지안이 아니라 성연신이었는데 말이다.서로 마음속에 불만을 쌓아두고 있었던 고청민과 심지안 두 사람은 그 일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이르렀을 것이다.“끼익.”문이 열리고 정욱이 숨을 헐떡이며 진유진과 같이 룸을 들어섰다.“대표님, 못 들어가게 저희를 막아버리던데요?”“고청민은 보이지 않았어요. 가정부는 두 사람 모두 잠들었다고 말했고, 내일 아침 또 출장을 가야 하니 저보고 다음 날에 다시 오라고 했어요.”진유진은 다급한 마음에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안절부절못했다.“지안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많이 심각한가요? 성씨 가문에 있으니까 안전하지 않을까요?”성연신이 눈짓을 보내자 안철수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민채린의 옷을 당기면서 그녀를 달래듯이 웃으며 말했다.“가요, 채린 씨 다시 즐길 수 있게 내가 다시 클럽으로 데려다줄게요.”“곧 날이 밝는데요. 클럽도 문 닫아요. 바보 아니에요?”성연신은 민채린이 그들의 대화 내용을 계속 듣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아챈 민채린도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느긋하게 하품하며 말했다.“됐어요. 나 호텔까지 차로 데려다줘요. 여기 워낙 구석진 곳이라서 택시 잡기도 힘들어요.”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서로 질투하면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데 이런 흔하디흔한 스토리에 민채린은 당연히 흥미가 없었다.그리고 민채린은 이 일을 더 고청민에게 알리기도 귀찮았다. 고청민은 겉으로 온순하고 착해 보여도 사실 누구보다 상대를 의심하고 주의 깊게 보고 있을 것이니 걱정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민채린이 떠난 후 진유진이 조급한 마음으로 성연신을 재촉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얼른 말해봐요.”성연신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안 씨가 아마도 고청민에 의해 구속된 것 같아요.”“그럴 리가요..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