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더는 순수하고 누구에게도 경계심이 없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기가 속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심지안은 정말 이게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만약 민채린이 이렇게 신경 쓸 줄 알았다면 그녀는 진작 솔직하게 털어놨을 것이다.민채린은 설명도 하지 않으려는 그녀를 보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전에 성연신 씨와 어떤 사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청민이는 내 친구예요. 지금 청민이랑 약혼했으니 절대 청민이에게 미안한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아니면 내가 당신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아니...”“됐어요, 난 잘생긴 남자나 보러 가겠어요.”“캠프파이어 보러 갈 거예요? 아니면 집에 갈 거예요?”고청민은 멀어져 가는 민채린의 뒷모습을 보면서 일말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심지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피곤함이 묻어난 목소리로 대답했다.“캠프파이어 보러 가죠.”임시연이 가짜 임신했단 소식을 아직 변혜영에게 알리지 못했으니 말이다.“캠프파이어를 보러 가려는 거예요? 아니면 성연신을 만나려는 거예요?”“저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청민 씨도 쓸데없는 생각 그만 해요.”심지안이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안 씨의 행동 때문에 나는 지안 씨를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되었어요.”고청민은 희고 고운 손가락으로 천천히 심지안의 목을 쓰다듬더니 붉은 자국을 힘껏 문지르기 시작했다. 가냘픈 피부가 순식간에 벗겨져 상처가 났다.“아파요.”심지안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졌다.“아픈 걸 알면서 왜 내 말을 거슬러요? 지안 씨는 항상 내 말을 귓등으로 듣잖아요.”고청민은 웃고 있었지만 눈가가 빨개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한 기분이 들게 했다.심지안이 그의 손등을 ‘탁’ 쳐내고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고청민이 눈을 꼭 감고는 침을 몇 번이나 목구멍에 넘기면서
성연신의 덤덤한 말에 고청민은 화가 났는지 그는 혼신을 다해 다시 성연신에게 공격을 퍼부었다.고청민은 태권도 유단자였기 때문에 계속 숨는 건 전혀 승산이 없어 보였다.성연신은 타이밍을 보고 고청민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두 사람은 곧이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지안은 덜컥 겁이 났다.그래서 고통이 몰려와도 그녀는 절뚝거리며 사람 찾아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기에 심지안은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 걸 수 없었다.고청민과 성연신은 모두 상처를 입었는데 두 사람 모두 그만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심지안은 눈을 질끈 감더니 두 사람이 약간 떨어진 틈을 타 두 팔을 벌리고는 가운데에 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그만 해요!”하지만 성연신은 이미 주먹을 휘두른 상황이었기에 거두기엔 너무 늦었다.그는 겨우 방향을 틀었는데 원래 그녀에게 날아가던 주먹은 옆 정자 기둥을 향했다.그의 뼈와 살이 나무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는데 듣기만 해도 아플 정도였다.심지안은 깜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그의 손을 살펴보려고 했다.“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그녀는 단지 두 사람을 떼놓으려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성연신은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심지안의 관심을 받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간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괜찮아요. 조금만 아플 뿐인데요. 별일 없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주위를 둘러보며 안철수를 찾기 시작했다.“철수 씨는 어디에 있어요? 얼른 병원 가서 붕대를 감아야 할 것 같은데요.”찰과상이면 좋겠지만 뼈를 다치면 큰일이었으니까.‘철수 씨는 어디에 있는 거야? 왜 이런 중요한 때에 나타나지 않고.’성연신은 가까이에 있는 심지안을 바라봤다.그녀의 희고 고운 피부, 오뚝한 코, 그리고 별처럼 빛나는 두 눈에는 그를 향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그런 그녀를 보며 성연신은 비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계속 날 이렇게 봐준다면 몇 번을 다쳐도
가는 길에 고청민은 조수석에 앉은 심지안을 하염없이 바라봤다.다른 건 모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듯 기계적으로 핸들만 돌리며 운전했는데 머릿속에는 온통 성연신을 걱정하는 심지안의 얼굴이 확대된 사진처럼 번쩍거렸다.그의 심장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왜 그는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성연신보다 못한 걸까? 5년 동안이나 그녀에게 향한 마음은 그 어떤 보답도 받을 수 없단 말인가?고청민은 이렇게 마음이 괴로운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노력한 일들은 반드시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전교 1등을 했고, 세움을 열심히 관리했더니 비즈니스가 나날이 발전했고, 또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대학원에 진학했다.그는 심지안에게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루하루 그녀의 옆에 있어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반찬, 디저트를 챙겨주고, 또 그녀와 함께 회사를 관리하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심지안도 그를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하지만 그는 오늘에서야 깨달았다.심지안의 마음은 계속 성연신에게 향해 있었고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마음을 돌린 적이 없었다.‘그럼 나는? 나는 어떤 존재이지?’고청민은 별말 하지 않고 계속 운전했다.깨끗하고 고운 손은 핸들을 잡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허공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여름밤이라 날씨는 춥지 않았고 오히려 온 하늘에 별빛이 쏟아졌다.그가 다시 옆을 돌아보니 조수석은 텅 비어 있었다.심지안은 어느새 벌써 차에서 내렸다.백미러로 비친 그의 얼굴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입가에 핏자국이 말라붙어 딱지가 앉았다.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심지안은 그를 걱정하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고청민이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아이처럼 무고한 표정으로 씁쓸한 웃음을 짔더니 이내 어금니를 깨물고는 눈가가 빨개지며 사지도 부들부들 떨었다.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부드러운 말과 움직임으로는 절대 여자의 마음을 뺏지 못한다, 반드시 단호하게 구는 게 맞았다.
변혜영은 캠프파이어가 진행되고 있는 연회장을 한 바퀴 다 돌았지만 여전히 심지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그녀는 술잔을 송준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나 전화하고 올게.”송준이 그녀의 허리를 확 끌어안고는 씩 웃으며 물었다.“누구에게 전화하는 건데?”“심지안. 같이 임시연 혼내주기로 했는데 왜 갑자기 사라진 거야?”송준이 실눈을 뜨며 대답했다.“찾지 마. 우리 결혼하면 내가 대신 임시연을 혼내줄게.”변혜영이 그를 밀어내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네가 대신 임시연을 혼낸다고? 두 사람이 합심해서 우리 집안 어지럽히지 않은 걸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겠어.”“내가 왜 그러겠어?”송준은 사랑꾼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듯 하늘에 맹세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사악함이 묻어났다.“자기야, 내 건 다 자기 거 아니겠어? 내가 앞으로 비밀 조직을 맡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임시연 혼내도 돼.”비밀 조직의 조직원들은 분업이 확실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았기에 임시연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그도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그래서 그는 임시연을 도울 이유도 없었고. 변혜영이 그녀를 혼내겠다는 데에 더더욱 말릴 필요가 없었다.만약 변혜영이 왕실의 힘으로 그가 비밀 조직을 맡을 수 있게 도와준다면 임시연의 생사는 그와 전혀 상관이 없게 된다.성연신을 유혹하지 못한 건 누굴 탓하겠는가.“됐어. 난 오빠랑 달라.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게 아니라고.”시크한 블랙 아이라인을 그린 변혜영이 씩 웃더니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어.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은 적게 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너 미워하게 하지 마.”송준은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자기야, 말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자기를 향한 내 사랑을 의심한다고?”“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나 전화하러 갈 테니까 얌전히 있어.”변혜영이 차갑게 말을 내뱉었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분
심지안은 어리둥절했다. 방금 잠에서 깨서 그런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어젯밤에 가정부가 건넨 물 한 잔만 마셨는데 왜 이렇게 깊게 잤단 말인가?방에 사람까지 다녀갔는데 그녀가 전혀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그녀는 한참 생각하고서야 결론을 내렸다. 그건 바로 누군가가 그녀의 물잔에 약을 탄 것이다.고청민을 빼고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는가?심지안은 화가 치밀어 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온갖 힘을 다해 방문을 열려고 했다.“문 열어요!”그녀가 손이 빨개지도록 문을 두드려서야 가정부가 겨우 나타나서는 문을 사이 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아가씨, 저에게는 열쇠가 없어서 문을 못 열어드려요.”“고청민 씨를 불러와요!”심지안은 거의 소리를 지르듯 말을 내뱉었다.“아가씨... 도련님은 회사로 가셔서 집에 안 계십니다.”“할아버지는요?”“어르신은 아침 일찍 도련님이 준비해 주신 대로 해외여행을 떠나셔서 안 계십니다...”심지안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겨우 침착함을 유지한 후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한 시간 안에 고청민 씨가 나를 만나러 오지 않으면 나는 이 집을 불태워버릴 거예요. 나 죽는 꼴을 보고 싶으면 오지 말라고 해요”그녀를 방에 가두고 성동철도 따돌렸으니 고청민의 의도는 너무나도 다분했다.‘성연신처럼 나 고독하게 이 작은 방에서 살아가라는 건가? 하지만 난 더 이상 5년 전의 심지안이 아닌걸. 아무도 날 방에 가둘 수 없어.’그 말을 들은 가정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아가씨, 저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도련님은 그저 아가씨가 편히 방에서 쉬시라고 하셨을 뿐이에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게요, 왜 스스로를 괴롭히세요.”가정부는 젊은 시절부터 성씨 가문에 들어왔기에 심지안보다는 당연히 고청민의 말을 더 잘 따랐다.심지안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3층에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것만 봐도 심지안의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가정부는 잔뜩 겁을 먹고 허둥지둥
고청민이 문을 막고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지안 씨, 나 화나게 하지 마요.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거예요.”“내 물잔에 수면제를 넣고 휴대폰을 가져가고 내 방을 잠근 것도 모자라 일부러 할아버지를 해외로 보냈죠? 그렇게 많은 짓을 하고서 도대체 누가 누구를 화나게 했다는 거예요?”“내가 이유 없이 그런 짓을 했겠어요?”고청민이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어젯밤 지안 씨와 성연신이 밖에서 몰래 했던 짓을 내가 꼭 말해야 할까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니면 벌써 그런 상황이 익숙해진 거예요?”심지안과 고청민의 관계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설사 두 사람이 약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연인 사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안은 전 남편과 여러 번 바람을 피우면서 그를 난감하게 했다.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당한 거로 생각해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고 용서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었다.하지만 그런 일이 두 번째, 세 번째로 일어났을 때도 거절하지 못했단 말인가?성연신과 계속 연락을 끊지 않았다는 건 거절하지 못한 게 아니라 거절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얼굴색이 어두워진 심지안은 손톱이 살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네, 나 그런 사람 맞아요. 이제 만족하겠어요?”이런 말로 고청민이 자기를 싫어하고 미워해 결혼하지 않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심지안은 백 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안 좋은 소문이 돌아도 참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일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삽시에 고청민은 가슴이 비수에 꽂힌 듯이 아팠다.웃음이 머금던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이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내가 결혼을 취소했으면 좋겠어요?”심지안은 속셈을 들켜 동공이 흔들렸지만 곧바로 솔직하게 인정했다.“네, 나 결혼하기 싫어요.”“겨우 성연신이 결혼을 파투 내라고 해서?”물음이 아닌 확신에 가득 찬 말투였다.하지만 심지안은 그의 말에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어두운
보광 중신에서.정욱이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변혜영은 씩씩거리며 성연신의 사무실로 쳐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심지안 씨는 어디에 있어요? 내가 긴히 할 얘기가 있어요!”어젯밤부터 심지안은 사라져 버린 듯 어디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전화를 쳐도 받지 않고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었는데 협력하자고 찾아올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녀를 따돌린단 말인가?변혜영은 절대 이런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화끈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특히 어젯밤 임시연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온갖 유난을 떨었으니 그녀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남자들은 그런 그녀의 연주에 홀딱 반했는데 영락없는 세상 물정 모르는 촌놈들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화를 내지 않으려 참아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이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거잖아?’성연신은 서류 더미에서 눈을 떼고 느긋하게 고개를 들었다.“그 사람은 왜 찾는 거예요?”“당연히 급한 일이 있으니까 찾죠. 얼른 불러내요.”“연락처 없어요?”“있는데 전화 안 받으니까 그러죠. 문자도 답장 안 하고. 아니면 내가 왜 당신을 찾아왔겠어요?”성씨 가문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세움 주얼리로 찾아가 봤는데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변요석의 말에 의하면 성연신은 심지안의 전남편으로 그녀를 아직 잊지 못했고, 또 그녀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다.성연신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덤덤하던 그의 얼굴은 별안간 엄숙해졌다.“연락이 안 된다고요?”“네, 당신도 연락이 안 되나요?”‘늦잠 자는 거 아니야? 평소에도 오후에 일어나더니. 그런데 시간이 벌써 세 신데 아직도 안 일어났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그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한참 고민하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큰일났어요.”...성씨 가문 저택에서.연기는 재빨리 창문을 뚫고 나왔다.제일 먼저 상황을 알아챈 건 정원에서 화초를 다듬는 원예사였는데 그는 다급하게 집안으로 달려가 가정부에게 이
그가 말하는 사이에 하인들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 심지안을 방으로 밀어 넣어 그녀는 반항할 새도 없었다.이번에 그녀는 고청민의 방에 갇히게 되었다.심지안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앞의 하인들을 바라봤다.그들은 마치 세뇌된 것처럼 고청민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랐는데 오히려 그의 뜻을 거역하는 심지안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지안 씨, 내가 5년 전에 지안 씨를 구해냈으니 지금 지안 씨를 다시 가둘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하겠죠?”고청민이 그의 옆에 앉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덤덤한 말투로 가장 오싹한 말을 내뱉고 있는 그는 여전히 훈훈한 모범생과도 같은 겉모습을 보이고 있었다.심지안은 전에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헛구역질이 났고 곧이어 그의 손을 툭 쳐내며 말했다.“이제야 연기를 하지 않네요.”‘연기’라는 말에 고청민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내가 지안 씨에게 베푼 호의가 모두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지안 씨, 정말 말을 너무 섭섭하게 하네요.”심지안이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게 내 아이를 죽이는 거예요?”그 말을 들은 고청민은 흠칫했고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봤다.그는 애써 덤덤한 척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아이는 사고사로 죽은 거잖아요. 홍지윤 씨가 진실을 말해줬다고 하지 않았어요?”“그건 홍지윤 씨가 당신에게 협박을 당했으니까요.”고청민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한결 무거워진 분위기에 그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모두 알고 있었어요?”심지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분명 그를 증오하고 멀리하고 싶은 눈빛이었다.고청민이 주먹을 꽉 쥐고는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깊은 눈망울로 말했다.“나는 지안 씨를 위해서 한 일이에요. 그 아이를 남기면 지안 씨에게는 짐밖에 더 되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안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