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어금니를 깨물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 잘 맞아요. 하지만 이제는 레이스를 안 좋아하거든요. 어쨌든 순면보다는 편하지 않으니까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걸로 사주세요. 아, 아니다. 나이도 있으신데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는 걸로 사면 직원들이 특이한 취향이 있는 걸로 오해하겠어요.”성연신의 얼굴색이 한껏 어두워졌다.‘독설이 갈수록 심해지네.’심지안은 어두워진 그의 얼굴색을 보더니 기분이 좋아져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 듯한 정욱에게도 인사를 건넸다.정욱이 잠깐 멈칫하고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헤헤, 이번에는 화해했겠지?’마침 정욱의 어머니는 요즘 자꾸 옆 동네 여자를 소개해 주겠다며 맞선을 주선했는데 상대와 똑바로 얘기를 하고 서로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내일 휴가를 낼 참이었다.정욱이 차로 돌아가고는 휴가 얘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백미러로 한껏 어두워진 성연신의 얼굴을 발견한 후 곧바로 하려던 얘기를 꿀꺽 삼켜버렸다.“대표님, 지금 회사로 돌아갈까요?”성연신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아니면? 너희 집에 갈래?”“... 네, 알겠습니다.”“내가 많이 늙어 보여?”“아니요, 한창 나이신지라 엄청 매력적으로 보이는데요?”정욱이 거짓말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성연신도 30대였다. 고청민처럼 소년미가 넘치는 건 아니었지만 성숙한 남자의 분위기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했다.구겨진 성연신의 미간을 살짝 펴졌다.하지만 그는 이내 짜증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지금 여자들은 다 젊은 남자들을 좋아하는 거야?”아니면 심지안은 왜 자꾸 나이를 들먹이겠는가?“아니요, 각자 취향이 다르죠. 지안 씨가 농담하신 건 아니에요?”성연신은 입을 삐죽 내밀더니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무조건 농담이어야 해.”그는 젊은이들만큼 청량한 소년미를 뿜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가 흐려지고
심지안은 주먹을 꼭 쥐더니 애써 진정한 척하며 대답했다.“전에도 몇 번 전화 온 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고청민이 시선을 거두고는 핸들을 돌렸다.“부동산 번호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급한 일로 찾은 거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전화해 보는 게 낫지 않아요?”“아니요, 급한 일이 있으면 다시 전화하겠죠.”하지만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심지안의 핸드폰은 다시 울렸다.그 순간,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고청민 앞에서 송석훈의 전화를 받으면 모든 게 탄로 날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거절할 다른 이유가 없었다.진동 소리는 마치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 영혼의 울음소리처럼 끊임없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고청민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천천히 차를 길가에 세웠다.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받아요, 무슨 급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심지안은 더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전화가 스스로 끊어지길 바라며 천천히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핸드폰을 손에 들었는데도 윙윙거리는 진동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화면에는 여전히 똑같은 전화번호가 표시되었다.고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지안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고는 기선제압으로 먼저 차갑게 물었다.“안녕하세요, 누굴 찾으시는 거죠?”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알 수 없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심지안은 등골이 오싹했다.송석훈은 분명 일부러 전화했을 것이다.그는 어둠 속에 숨어 사냥감을 놀리듯 그녀의 이성을 무너뜨리려고 했다.길게 늘어진 고청민의 속눈썹은 약간 처지더니 그는 몸을 심지안에게 기울였다. 그래서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그는 똑똑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비좁은 공간은 어디 도망갈 데라도 없었다.심지안은 심장이 멎는 듯했는데 짧은 순간에도 두뇌를 풀가동했다.바로 그때,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저는 인화 별장의 스티븐인데요, 혹시 집 구하시려는 의향 있으세요?”
파파라치는 그래도 신중했다.“증거 있어요? 증거 없으면 나도 함부로 기사를 쓸 수 없어요.”왕실의 스캔들은 오늘 세움 기자회견보다 훨씬 많은 주의를 이끌 것이다. 폭탄급 뉴스라고도 할 수 있다.비밀 인물은 녹음 펜을 그에게 넘기며 말했다.“이거 들으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예요.”파파라치는 반신반의한 채로 녹음 펜을 틀었다.사실 별 내용이 담겨있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변해영은 말끝마다 계속 사생아를 붙였고, 명확히 심지안이라는 이름까지 언급했다.변해영이 누구인가? 공주 안나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다. 그녀는 절대 근거 없이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파파라치의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곧바로 이 소식을 상부에 전하면서 오늘의 1면을 확보했다.그리고 그는 다른 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이 시작한 후 바로 심지안에게 달려갈 것을 상의했다.어떤 사람은 주저했고, 어떤 사람은 그 의견에 동의했다. 세움의 보안은 워낙 철저했기 때문이다.그들은 오히려 경찰이 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부도덕한 짓은 평소에도 자주 했으니 말이다. 이런 참여한 인원이 많으면 경찰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들은 기껏해야 한바탕 혼나면 그만이었다.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성동철음 정장 차림을 한 채 느릿하지만 힘찬 걸음으로 입장했다.쭈글쭈글한 얼굴에는 자상한 주름이 졌지만 그의 눈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그리고 그는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것은 한 가지 일을 공개 발표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슬하에 자녀가 없다는 건 잘못된 소식입니다. 다만 제 딸이 오래전에 집을 나가 대중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뿐이죠. 이제 제 외손녀가 성인이 됐으니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성동철은 스테이지 뒤에 있던 심지안에게 손을 흔들며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자, 이리 와.”심지안은 드레스를 들어 올리고는 스테이지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가늘고 아름다운 다리라인이 적당히 드러났고 약간의 화장을 한 그녀의
성동철의 안색이 한껏 어두워졌다.“누구에게서 들은 거예요?”“반박하지 않으신 걸 보니 인정하시는 건가요?”“저희가 녹음 파일을 입수했는데요 안나 공주의 따님 목소리를 다들 아시겠죠?”심지안은 곧바로 이상한 낌새를 느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파파라치와 가장 가깝던 고청민의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손을 휙 저었다. 곧바로 경호원들이 모여 심지안과 성동철이 퇴장할 수 있도록 보호했다.하지만 성동철은 단단히 화가 나 오히려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는 카리스마 있는 눈빛으로 녹음 펜을 든 파파라치를 보고는 말했다.“무슨 일이든 신중하게 움직이길 바라요. 성씨 가문의 명성을 더럽히려거든 그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제 발등을 제가 찍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언뜻 파파라치에게 한 말 같았지만 사실 녹음 펜의 주인에게 한 말이었다.심지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는데 도대체 누구의 짓인지 전혀 짐작 가지 않았다.평소였다면 변해영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들 사이에는 합의가 이뤄졌기에 이런 기습공격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결국 파파라치는 이 녹음 파일을 공개했고, 오늘의 기자회견까지 더해져 심지안의 명성은 한순간에 무너졌다.이전에야 가끔 성연신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그것도 겨우 금관성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이제 국내외에서 알려지게 되었다.인터넷 여론은 사흘째 되는 날에도 진정되지 않았다.파파라치들은 성씨 가문의 압박을 받아 기사를 더 쓰진 않았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네티즌들은 심지안을 가만 두지 않았다.심지안의 각종 개인정보가 드러났고, 심지어 학창 시절의 졸업사진까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녔다.“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예쁘게 생겼네. 어릴 때부터 미인이었어.”“그래, 임시연보다 훨씬 낫네. 내가 성연신이었어도 심지안을 선택했겠어.”“굳이 비교할 것까지 있나? 임시연은 피아니스트이고, 심지안은 겨우 사생아일 뿐이잖아. 여기서 이미 게임 끝이 아니야?”“NoNoNo,
성연신의 평범한 말 한마디였지만 재무팀 팀장은 몸을 벌벌 떨면서 하마터면 무릎까지 꿇을 뻔했다.“대표님,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저는 심지안 씨의 이슈를 빌려 마케팅할 생각도 없었어요. 하지만 네티즌들이 먼저 와서 댓글을 남기니 자연스럽게 매출도 오른 것 같습니다.”그는 보광 중신에 오랫동안 일했기에 성연신과 심지안이 한때 부부 사이였던 것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이 무슨 일로 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심지안이 떠난 뒤로 보광 중신에서는 감히 그녀의 이름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은 금기가 되었다.성연신은 고개를 들더니 차가운 눈빛에는 의문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뭐라고요?”재무팀 팀장이 멈칫했다.“대표님, 모르셨어요?”“뭘요?”재무팀 팀장은 핸드폰을 꺼내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게시물을 열고는 말했다.“대표님, 직접 보세요.”성연신이 핸드폰을 건네받고는 심지안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의 사진이 모두 있다는 걸 발견했다. 네티즌들은 심지어 ‘친절하게’ 타임라인까지 정리했다.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면서 심지안에 대한 악플은 무시하고 그저 심지안의 사진에만 집중했다.그의 눈에 어리던 차가운 빛이 사라지더니 대신 옅은 미소가 점점 얼굴에 띠기 시작했다.‘심지안 어릴 때 이렇게 귀여웠어? 얼굴이 지금의 절반이네. 멍해 보이는데 상은 또 이렇게 많이 탄 거야? 중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구나. 어쩐지 피아노를 잘 치더라니.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숨길 수 없는 미모를 자랑했구먼. 생얼이라고 해도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네.’특히 반 친구들 모임에서 생일파티를 한 사진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케이크가 묻었지만 심지안은 여전히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카메라를 향해 ‘v’도 날렸다.사진을 뚫고 나오는 청순한 분위기에 성연신은 저도 모르게 사진 속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학창 시절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내가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보호
성연신은 고청민보다 몇 걸음 앞섰는데 고청민은 바둑실 입구에 가로막혀버렸다.그가 문을 두드리자 집사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도련님, 무슨 일 있으세요?”“내가 들어가면 안 돼요?”“안 됩니다. 어르신께서 특별히 분부하셨습니다.”고청민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을 보이더니 여전히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성연신도 안에 있는데 제가 왜 못 들어가죠?”집사는 위압감을 느껴 코를 쓱 만지며 말했다.“도련님, 저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 어르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분부하셨는지 저도 모릅니다. 걱정하시지 말고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십시오. 어르신도 결국 도련님의 편이시겠지요.”고청민은 평소에 줄곧 온화하고 점잖은 모습을 보였는데 심지안과 관한 일이라면 어떤 발작 버튼이 작동한 것처럼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고청민은 끝내 물러서기로 했다.“그럼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15분 후.성연신과 성동철은 같이 바둑실에서 나왔다.고청민은 성동철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할아버지.”성동철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분위기는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어르신,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성연신이 손을 휘저으며 안철수더러 움직이라고 했다.성동철이 어금니를 깨물고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알겠다며 대답했다.고청민은 안철수가 뒤편에 있는 다락방으로 가는 걸 지켜보더니 흠칫했다.“할아버지.”“그 사람, 데려가라고 해. 우리 집안은 비밀 조직과 얽히면 안 돼.”“안 돼요!”고청민이 바로 말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묻어났다.“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다른 사람이 고생해서 얻은 성과를 단번에 낚아채 가려고 하잖아요.”‘사람을 거의 다 살렸는데 이제 와서 데려가다니, 정말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히네.’성연신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홍지윤 씨는 원래부터 여기에 잠깐 머무르려고 하던 거 아니었어요?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가요?”홀 안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고청민은 그의 말을 새겨들었는지 아닌지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성동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넌 어려서부터 머리가 똑똑했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있었지. 이제 너는 지안이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해, 제자리걸음만 걷지 말고. 그리고 지안이 요구라고 해서 모두 들어줄 필요 없어, 알겠어?”한 사람에게 줄곧 선의를 베풀면 동등한 보상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할아버지, 제가 제자리걸음만 걸으려는 게 아니고요.”“알아. 그래서 지안이를 이끌어달라는 거야. 남자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 넌 성격이 너무 온순해, 모든 걸 지안이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결혼할 텐데 두 사람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쐐. 요즘 일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일 없도록 하고. 회사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세움은 이런 작은 여론으로 몰락할 리가 없어.”한쪽은 외손녀, 다른 한쪽은 어릴 때부터 키운 의손자. 두 사람 모두 성동철이 애지중지한 자식이었으니 그 누구도 꾸짖을 수 없었다.고청민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는데 그의 눈빛에는 이상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알겠습니다.”‘카리스마... 마치 성연시처럼 말이야? 성연신처럼 지안 씨를 가두면 지안 씨도 나를 영원히 잊지 못할까?”성동철은 수심에 잠겨 있어 고청민의 눈빛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비밀 조직의 존재에 대해 성씨 가문에서 꺼리는 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성동철은 이미 나이가 들었고 앞으로의 생활은 젊은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굳이 비밀 조직을 건드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심지안은 계속 성연신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홍지윤을 순조롭게 데려갔다는 성연신의 소식을 받고 심지안은 기쁜 나머지 방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또 아이처럼 신나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그러면 심지안은 곧 아이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다.‘정말 잘됐네.’늦은 저녁까지도 심지안은 흥분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
“팀장님은 돈도 많고 예쁘시고, 다 가지셨네요.”“오늘 파티를 마치면 왕실의 일원으로 되는 거 아니에요?”“서른이 되기도 전에 모든 걸 다 이루시네요. 예쁘시고 실력도 있으시고, 팀장님 너무 부러워요.”“팀장님은 원래 실력이 뛰어나시기도 하고 노력도 많이 하시잖아요.”심지안이 웃으면서 그들과 수다를 떨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사람들이 흩어진 후 방매향은 사무실에 들어오고는 위로를 건넸다.“긴장하지 마요, 오늘 밤 주인공은 지안 씨니까요. 이 기회를 빌려 지안 씨를 업신여긴 사람들에게 제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요.”“긴장하진 않지만 강제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원래 심지안은 왕실과 엮이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이 터져버린 바람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해명해야 했다.만약 그녀가 변요석과의 관계를 인정한다면 아무래도 그녀의 이름이 왕실 족보에 들어갈 것이다.방매향이 웃으면서 말했다.“왕실과 엮이는지 안 엮이는지는 지안 씨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예요.”“그 말은 변요석과의 관계만 인정하고 왕실 족보에는 들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심지안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변요석이 동의하겠어요?”분명 왕실을 디딤돌로 삼는 거나 다름없는데 말이다.“변요석이 어떻게 생각하기에 달렸죠. 지안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을 거니까 한 번 시도해 볼 수는 있잖아요.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 외부에 지안 씨 어머니의 결백도 증명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동시에 지안 씨도 부귀영화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잖아요. 변요석이 친부라는 사실이 드러나고도 권세에 미혹되지 않은 채 여전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여자, 너무 멋있지 않나요?”심지안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말했다.“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이미지를 만들라는 말씀이신 거죠?”“그렇다고 할 수 있죠. 며칠 전의 여론 때문에 지안 씨 이미지는 영향받았을 거예요. 이번 일로 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