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신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더는 감출 수가 없게 되자 그는 헛기침해 댔다."말도 안 되는 소리. 난 단지 너의 위를 걱정하고 있는 것뿐이야."성우주는 결국은 어린아이였다. 그는 아버지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심지안에게 말했다."알겠어요. 난 그만 먹을게요. 고모 잘 자요. 전 이만 자러 갈게요."심지안은 몸을 뒤에 기댄 채 말했다."잘자. 할아버지께서 깨어나시면 알려줄게.""네."성우주는 짧은 다리를 뻗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거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심지안은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성연신을 흘겨보고는 천천히 성수광이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성연신도 움직이지 않고 차갑게 눈을 내리깔고 핸드폰을 봤다.심지안이 방 안에 들어간 지 몇 초 지나자 성연신은 천천히 머리를 들고 절반 남아있는 토마토 달걀 국수를 쳐다봤다.이와 동시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그는 머뭇거리다가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익숙한 맛이었다.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그가 오랫동안 바라던 거였다.수없이 많은 야근을 하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인 중정원으로 돌아온 성연신은 예전 생활로 돌아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차가운 방에서 자신에게 밥을 해주는 것을 좋아하던 그 소녀는 여전히 남아있었다.성연신은 빠른 속도로 면을 먹었지만, 그의 행동에는 우아함이 배어 있었다.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그는 국수를 다 먹었다.그는 손수건을 들고 입을 닦고 있을 때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심지안이 팔짱을 끼고 웃을락 말락 하며 말했다."연신 씨가 남은 밥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요. 희한한 일이네요."성연신은 눈을 파르르 떨며 입에 발린 거짓말을 했다."난 그냥 음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쯧쯧, 네 믿어 줄게요."심지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내가 해주는 밥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잖아요. 내가 안 해주는 것도 아니고."그는 그윽한 눈으로 그녀
심지안은 고개를 들어 성연신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그를 훑어봤다.임시연도 능력이 있었다. 나타나지 않은 며칠 동안 다른 사람을 유혹하다니. 기자의 반응을 보아하니 변씨 성을 가진 이 사람은 부자가 아니면 높은 사람으로 추정됐다.말을 들은 성연신은 눈살을 찌푸렸다."나도 보게 핸드폰 좀 가져와 봐요."심지안은 웃으며 대범하게 그에게 폰을 건네줬다.성연신은 동영상 속에 있는 남자를 보며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그 모습을 본 심지안은 그가 질투하는 줄 알고 웃을락 말락 하며 말했다."불쾌해요?""지금 지안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데 분명히 말할게요. 난 임시연이 누구와 함께 있든 상관없어요.""네네네. 상관없겠죠."그는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맞장구를 치는 척했다.상연신은 이를 악물고 핸드폰 속 남자를 가리키며 말을 아끼던 습관을 버리고 말했다."이 사람은 황실의 왕자, 변석환이에요. 몇 년이 지나면 왕위 경쟁을 해야 해요. 이 사람 아버지와 나는 친구예요. 우린 업무상 밀접한 왕래가 있어요."심지안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복잡한 인물 관계를 파악하고는 갑자기 배를 잡고 웃었다.두 사람이 다시 만난 뒤 심지안이 성연신 앞에서 이렇게 진실하게 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아주 예쁘게 생겼다. 표준적인 미인 얼굴형에 동그란 살구형 눈, 그리고 오뚝한 콧날. 특히 환하게 웃을 때는 온 대지가 환해지는 것 같았다.심지안은 성연신의 눈에 비친 부드러움을 눈치채지 못하고 충분히 웃은 뒤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났다."얼마나 좋아요? 앞으로 임시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잖아요."물론 결점도 있었다. 임시연과 변석환이 이렇게 빨리 대중들 앞에 나타났다면 둘은 분명히 접촉했을 것이다. 성연신에게 복수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었다."지안 씨는 내가 잘되는 게 그렇게도 싫어요?""그럴 리가요. 그런 거 아니에요."심지안이 정색하며 거짓말을 했다.성연신은 그녀와 계속 논쟁하지 않고 메뉴를 써 내려갔다."내일 적어놓은 메뉴대로 요리를
의사는 일련의 검사를 거친 뒤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할아버지께서 확실히 곧 깨어날 것 같습니다. 깨어난 후에 최대한 환자를 흥분시키지 말고, 그를 자극하여 대뇌에 2차 상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성연신은 옆에 있는 심지안을 바라봤다. 그녀가 속으로 얼마나 급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를 해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심지안은 바로 그의 눈빛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안심해요. 진실을 알고 싶지만 급해하지 않을게요. 저도 연신 씨만큼 할아버지의 몸 상태를 걱정하고 있어요."의사가 나간 지 반 시간쯤 지나자 성수광이 천천히 눈을 떴다.게슴츠레했던 눈동자가 빛에 익숙해진 뒤 점점 또렷해졌다.성연신이 한발 다가왔다."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성수광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혼수상태에 빠져있어 그런지 눈빛이 흐리멍덩했다.심지안은 초조해하며 옆에 있던 의사를 다시 불러왔다.의사는 검사를 마치고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신체 기능이 단번에 회복되지 않은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했다."성연신 씨는 돌아가서 쉬세요. 여기에는 제가 있을게요."의사는 성연신이 직접 찾은 사람이기에 안심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 남아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네."말을 마친 그는 심지안을 쳐다봤다."지안 씨도 돌아가서 자야죠."심지안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지만, 성연신이 그녀의 손을 잡고 강제로 데리고 나갔다."남녀가 유별한데 성연신 씨, 자중해주세요. 나에게는 약혼자가 있어요."심지안은 기회를 보다가 성연신의 손을 힘껏 뿌리치며 엄숙하게 경고했다.성연신은 '약혼자'라는 말을 듣고 눈동자가 서늘해졌다."그래요? 여기 아무도 없어서 볼 사람도 없어요.""아무도 못 본다고 해도 이러면 안 돼요.""네, 알겠어요. 고청민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 얼른 가서 자요.""..."성연신의 말을 들은 심지안은 뭔가 남들 보기 부끄러운 짓을 한 기분이 들었다.심지안은 성우주의 옆방에 묵게
성수광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옆에 있는 잘생긴 남자아이를 보며 결국에는 성우주 앞에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우주야, 주방에 가서 죽을 만들어 달라고 해.""네!"성우주는 금방 깨어난 할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좋았다. 그는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도우미들을 찾았다.심지안은 그제야 성수광이 일부러 옆에 있는 사람들을 다 내보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할아버지, 문 닫을까요?""닫아."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할아버지, 말씀하세요."뒤죽박죽 한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성수광은 미세하게 머리가 아파왔다. 그는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심지안이 깎은 단발머리와 창백해진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아파왔다."요 몇 년 동안 혼자 힘들었겠구나."심지안이 웃었다."아니에요. 외국에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지금은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있어서 기뻐요.""그럼 머리는 왜 잘랐어?"그녀는 멈칫하다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불에 타서 너무 못생겨서 아예 짧게 잘랐어요. 제 얼굴이 무슨 헤어스타일을 해도 다 잘 받거든요."성수광은 화재가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그녀를 억울하게 만든 자기 손자가 정말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장사할 땐 그렇게 똑똑하던 놈이 연애하면 둔탱이가 되는 건가?'"할아버지?"심지안은 아무 말도 없는 성수광을 불렀다.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복잡하다는 듯 말했다."지안아, 사실 손주 놈과 임시연은 아무 관계가 아니야. 성우주도 그들 애가 아니야."심지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이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할아버지 마음을 전 알아요. 하지만 나와 연신 씨는 이미 끝났어요. 몇 년이 지나갔어요. 제게도 새로운 삶이 생겼어요...""위로하는 거 아니야. 널 속여 성씨 가문에 들일 생각도 아니고. 성우주는 임시연과 다른 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야. 내 손주 놈이 술주정하던 그날 있었던 일은 음모라고 생각해."손주 놈
이 질문에 성수광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임시...""죽 왔어요!"낭랑한 어린아이 소리가 대화를 끊었다. 성우주가 조심스럽게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증조할아버지, 아주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 드세요."성수광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 수고했어.""아니에요."성우주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고개를 돌려 심지안의 옷깃을 잡았다."고모, 선생님께서 오셨어요. 저와 함께 내려가 줄 수 있을까요?""연신 씨는?"심지안은 함께 내려가고 싶지 않아 급하게 물었다. "아빠도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엄마도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고모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선생님께 난 엄마가 없다고 말하면 돼요."성우주는 작은 머리를 숙이면서 심지안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도 함께 내렸다.심지안은 가슴이 아파왔다. 게다가 성수광이 방금 이 아이는 임시연과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 수 있다고 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파왔다.성수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랫동안 증손자를 기다려왔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그의 기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격도 나쁜 손주 놈을 닮지 않은 듯했다.너무 아쉬웠다...심지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가정 방문은 얼마나 걸려?"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이 아이에 대해 저항력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도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할아버지도 깨어나셨으니 언제든지 다시 물어볼 수 있었지만 가정 방문은 1년에 한 번밖에 없었다. 임시연에게 죄가 있었지만, 자신이 간접적으로 임시연의 신세를 망쳤다고 생각했다. "반 시간 정도예요. 길어서 한 시간이면 될 거예요."성우주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재빨리 말했다."고모 시간 많이 뺏지 않을 거예요.""알겠어. 다음엔 안돼."아래층, 직업복을 입은 한 여자가 공책과 펜을 들고 성연신의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 기록하고 있었다.성우주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여자에게 소개했다."선생님, 제 엄마예요. 늦어서 죄송합니다."여자는 심지안에게 손을 내밀며 친절하게 말했다."안녕하
성연신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이에요?"심지안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남자아이를 보고는 성연신에게 하려던 말을 멈췄다."직접 할아버지께 물어보면 알게 될 거예요."그의 미간이 더욱 찌그러졌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위층으로 올라갔다.성우주도 따라가려 했지만 심지안이 그를 막아섰다."오레오와 원이도 여기 있어? 나 강아지 보러 가고 싶은데."성우주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고모가 오레오를 알아요?""그럼, 내가 한동안 돌봐줬는데. 내가 이 집에 너보다 더 오래 있었어."말을 꺼낸 심지안은 이내 잘못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왜 성연신을 닮아가지?'성우주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녀를 데리고 강아지를 보러 갔다.층계를 내려갈 때, 성우주는 계속 심지안과 말하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심지안은 재빨리 그를 잡았다."조심해. 너무 빨리 가지 마. 그러다가 발목이라도 삐면 어떻게 하려고?"성우주는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은 것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고모 손은 엄청 따뜻하네.'그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임시연은 그에게 친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포옹은 고사하고 손을 잡는 것도 성연신 앞에서만 보여주기식으로 잡았다. 성연신이 없을 땐 그녀는 성우주를 쓰레기처럼 밀어버렸다.성우주는 고개를 들고 심지안의 부드러운 얼굴을 쳐다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가가 촉촉해졌다.'고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사랑을 받았겠지.'오레오와 원이는 중형견에 속했다. 올해 여덟 살이 되었다. 강아지 나이로 치면 고령이었다.다행히 성씨 가문은 돈이 많다 보니 두 마리 강아지를 아주 잘 키우고 있었다. 강아지들이 정력이 왕성하지 않은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그들은 심지안을 보고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안이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들은 익숙한 냄새를 맡고 복슬복슬한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낑낑거리는 모습이 마치 왜 자신들을 보러 오지 않았냐고 하는 것 같
심지안은 입술을 치켜올리고 활짝 웃었다."성 대표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그래요?"성연신이 차갑게 웃었다."그럼, 여기서 전화 받아요. 안에는 도우미들이 숙소가 있어요. 뒤에는 정원이 있고요. 이 층 방으로 올라가서 받으려면 전화가 끊길 거예요."성연신이 이렇게 말하자 심지안도 계속 고집부리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지안 씨, 지금 진유진 씨와 함께 있어요?"고청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심지안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철창을 만졌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지도 가슴이 뛰지도 않았다."네. 지금 호텔에 있어요. 오후에 돌아갈게요.""알았어요. 할아버지께서 방금 우리더러 저녁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셔서 알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생각나서 전화해서 알려주는 거예요.""네. 무조건 가야죠. 오늘 프랑스 고급 요리사가 있다는데 빠질 수 없죠. 해산물을 안 먹은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성연신은 심지안과 고청민의 대화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쌀쌀맞게 대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나른한 말투와 애교 석인 말투였다.그가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었겠는가."네. 기다릴게요."말을 마친 고청민이 전화를 끊었다.심지안은 핸드폰을 거두고 옆에 있는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성연신도 쫓아가지 않았다. 그는 변요석에게 연락했다.성연신은 변요석에게 임시연과 그의 아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다. 변요석도 그에게 놀라운 비밀을 말해줬다.심지안은 성수광을 찾아갔다가 그가 이미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의사가 작은 소리로 당부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내일 다시 얘기하세요. 환자가 막 깨어나서 지난 일들을 너무 많이 회상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가짐입니다."심지안은 조금 실망했지만 이해했다.이런 상황이 되자 그녀도 계속 성씨 집안의 대저택에 남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택시를 불러 성씨
운전기사는 싸우는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차에서 싸우지 말아요! 일 생기면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요!”심지안은 김슬비의 두 팔을 꺾어 제압해 버리고 말했다.“문 잠그면 되잖아요.”기사는 그 말을 듣고 급하게 문을 잠갔다. 최소한 잠시 동안은 위험하지 않을 거다. 막혔던 길도 금방 풀릴 것이다.두 비서는 있는 힘껏 차를 두드렸지만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저 자기 연예인이 심지안에게 뺨을 맞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내 얼굴! 얼굴은 때리지 마!”엄청난 고통에 김슬비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무서워서 울기까지 했다.연예인에게 제일 중요한 게 얼굴이란걸 누가 모르겠는가. 일 년에 얼굴에 들이는 돈만 해도 몇천만이었다. 역시 악독한 여자라서 그런지, 상대방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심지안은 손을 잠깐 멈췄다.“나는 고작 네 뺨을 때리는 거고. 너는 나 죽이려고 했잖아.”“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언제 너 죽이려고 했어?”“며칠 전에. 네가 빨간색 차로 나 스토킹했잖아. 만약에 내가 빨리 피하지 않았으면 너한테 치여 죽었겠지.”김슬비는 어리둥절했다.“내가 안 그랬어.”심지안은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예전에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이거 네 차 아니야?”“내 차 맞긴 한데...”퉁퉁 부은 얼굴로 어리둥정한 표정을 짓는 김슬비를 보자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웃고 싶었다.“그렇지만 나는 그날 드라마 촬영 중이었다고. 운전한 적이 없단 말이야.”“누굴 속이려는 거야. 임시연이 널 대신해서 사과까지 다 했어.”그녀는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이해를 못 하고 있다가 전후 사정을 눈치채고는 분노에 휩싸였다.그녀는 그제야 임시연이 진작 그 차를 빌려 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임시연이 그녀를 사칭해서 심지안을 스토킹하고 들키니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었다.그것도 모르고 임시연의 편에 서서 같이 심지안을 손봐주려고 했다니,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그날은 나 아니야. 임시연이 나처럼 꾸민 거라고.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