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성수광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임시...""죽 왔어요!"낭랑한 어린아이 소리가 대화를 끊었다. 성우주가 조심스럽게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증조할아버지, 아주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 드세요."성수광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 수고했어.""아니에요."성우주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고개를 돌려 심지안의 옷깃을 잡았다."고모, 선생님께서 오셨어요. 저와 함께 내려가 줄 수 있을까요?""연신 씨는?"심지안은 함께 내려가고 싶지 않아 급하게 물었다. "아빠도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엄마도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고모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선생님께 난 엄마가 없다고 말하면 돼요."성우주는 작은 머리를 숙이면서 심지안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도 함께 내렸다.심지안은 가슴이 아파왔다. 게다가 성수광이 방금 이 아이는 임시연과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일 수 있다고 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파왔다.성수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랫동안 증손자를 기다려왔다. 눈앞에 있는 아이는 그의 기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격도 나쁜 손주 놈을 닮지 않은 듯했다.너무 아쉬웠다...심지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가정 방문은 얼마나 걸려?"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이 아이에 대해 저항력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도 반감을 느끼지 않았다.할아버지도 깨어나셨으니 언제든지 다시 물어볼 수 있었지만 가정 방문은 1년에 한 번밖에 없었다. 임시연에게 죄가 있었지만, 자신이 간접적으로 임시연의 신세를 망쳤다고 생각했다. "반 시간 정도예요. 길어서 한 시간이면 될 거예요."성우주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재빨리 말했다."고모 시간 많이 뺏지 않을 거예요.""알겠어. 다음엔 안돼."아래층, 직업복을 입은 한 여자가 공책과 펜을 들고 성연신의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 기록하고 있었다.성우주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여자에게 소개했다."선생님, 제 엄마예요. 늦어서 죄송합니다."여자는 심지안에게 손을 내밀며 친절하게 말했다."안녕하
성연신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말이에요?"심지안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남자아이를 보고는 성연신에게 하려던 말을 멈췄다."직접 할아버지께 물어보면 알게 될 거예요."그의 미간이 더욱 찌그러졌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위층으로 올라갔다.성우주도 따라가려 했지만 심지안이 그를 막아섰다."오레오와 원이도 여기 있어? 나 강아지 보러 가고 싶은데."성우주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고모가 오레오를 알아요?""그럼, 내가 한동안 돌봐줬는데. 내가 이 집에 너보다 더 오래 있었어."말을 꺼낸 심지안은 이내 잘못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왜 성연신을 닮아가지?'성우주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녀를 데리고 강아지를 보러 갔다.층계를 내려갈 때, 성우주는 계속 심지안과 말하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심지안은 재빨리 그를 잡았다."조심해. 너무 빨리 가지 마. 그러다가 발목이라도 삐면 어떻게 하려고?"성우주는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은 것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고모 손은 엄청 따뜻하네.'그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임시연은 그에게 친밀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포옹은 고사하고 손을 잡는 것도 성연신 앞에서만 보여주기식으로 잡았다. 성연신이 없을 땐 그녀는 성우주를 쓰레기처럼 밀어버렸다.성우주는 고개를 들고 심지안의 부드러운 얼굴을 쳐다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가가 촉촉해졌다.'고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사랑을 받았겠지.'오레오와 원이는 중형견에 속했다. 올해 여덟 살이 되었다. 강아지 나이로 치면 고령이었다.다행히 성씨 가문은 돈이 많다 보니 두 마리 강아지를 아주 잘 키우고 있었다. 강아지들이 정력이 왕성하지 않은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그들은 심지안을 보고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안이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들은 익숙한 냄새를 맡고 복슬복슬한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낑낑거리는 모습이 마치 왜 자신들을 보러 오지 않았냐고 하는 것 같
심지안은 입술을 치켜올리고 활짝 웃었다."성 대표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그래요?"성연신이 차갑게 웃었다."그럼, 여기서 전화 받아요. 안에는 도우미들이 숙소가 있어요. 뒤에는 정원이 있고요. 이 층 방으로 올라가서 받으려면 전화가 끊길 거예요."성연신이 이렇게 말하자 심지안도 계속 고집부리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지안 씨, 지금 진유진 씨와 함께 있어요?"고청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심지안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철창을 만졌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지도 가슴이 뛰지도 않았다."네. 지금 호텔에 있어요. 오후에 돌아갈게요.""알았어요. 할아버지께서 방금 우리더러 저녁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셔서 알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생각나서 전화해서 알려주는 거예요.""네. 무조건 가야죠. 오늘 프랑스 고급 요리사가 있다는데 빠질 수 없죠. 해산물을 안 먹은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성연신은 심지안과 고청민의 대화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쌀쌀맞게 대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나른한 말투와 애교 석인 말투였다.그가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었겠는가."네. 기다릴게요."말을 마친 고청민이 전화를 끊었다.심지안은 핸드폰을 거두고 옆에 있는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성연신도 쫓아가지 않았다. 그는 변요석에게 연락했다.성연신은 변요석에게 임시연과 그의 아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다. 변요석도 그에게 놀라운 비밀을 말해줬다.심지안은 성수광을 찾아갔다가 그가 이미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의사가 작은 소리로 당부했다."무슨 일이 있다면 내일 다시 얘기하세요. 환자가 막 깨어나서 지난 일들을 너무 많이 회상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가짐입니다."심지안은 조금 실망했지만 이해했다.이런 상황이 되자 그녀도 계속 성씨 집안의 대저택에 남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택시를 불러 성씨
운전기사는 싸우는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차에서 싸우지 말아요! 일 생기면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요!”심지안은 김슬비의 두 팔을 꺾어 제압해 버리고 말했다.“문 잠그면 되잖아요.”기사는 그 말을 듣고 급하게 문을 잠갔다. 최소한 잠시 동안은 위험하지 않을 거다. 막혔던 길도 금방 풀릴 것이다.두 비서는 있는 힘껏 차를 두드렸지만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저 자기 연예인이 심지안에게 뺨을 맞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내 얼굴! 얼굴은 때리지 마!”엄청난 고통에 김슬비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무서워서 울기까지 했다.연예인에게 제일 중요한 게 얼굴이란걸 누가 모르겠는가. 일 년에 얼굴에 들이는 돈만 해도 몇천만이었다. 역시 악독한 여자라서 그런지, 상대방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심지안은 손을 잠깐 멈췄다.“나는 고작 네 뺨을 때리는 거고. 너는 나 죽이려고 했잖아.”“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언제 너 죽이려고 했어?”“며칠 전에. 네가 빨간색 차로 나 스토킹했잖아. 만약에 내가 빨리 피하지 않았으면 너한테 치여 죽었겠지.”김슬비는 어리둥절했다.“내가 안 그랬어.”심지안은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예전에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이거 네 차 아니야?”“내 차 맞긴 한데...”퉁퉁 부은 얼굴로 어리둥정한 표정을 짓는 김슬비를 보자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웃고 싶었다.“그렇지만 나는 그날 드라마 촬영 중이었다고. 운전한 적이 없단 말이야.”“누굴 속이려는 거야. 임시연이 널 대신해서 사과까지 다 했어.”그녀는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이해를 못 하고 있다가 전후 사정을 눈치채고는 분노에 휩싸였다.그녀는 그제야 임시연이 진작 그 차를 빌려 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임시연이 그녀를 사칭해서 심지안을 스토킹하고 들키니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었다.그것도 모르고 임시연의 편에 서서 같이 심지안을 손봐주려고 했다니,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그날은 나 아니야. 임시연이 나처럼 꾸민 거라고.
거대한 트라우마가 심지안을 덮쳐왔다. 그녀는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서 고개를 들어 고청민을 보았다.그 얼굴은 여전히 청순하고 수려한 게 무해해 보였다. 아마 둘 사이가 너무 가까워져서 심지안은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핸드폰에 고정했다.다행인 건 인터넷상의 사진들이 대부분 흐릿한 데다가 그녀는 쭉 차 안에만 있으면서 내리지도 않아서 대부분이 김슬비가 찍힌 사진들이었다.심지안은 몰래 한숨을 내쉬고 고청민이 이상한 점을 못 느끼게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내일 장현진 씨가 찍은 쇼츠가 올라온다던데, 그때 반응 좋으면 초대해서 라이브 방송 해도 좋을 것 같아요.”“라이브 방송은 좀 아닌 것 같아요.”고청민이 말했다.“왜요?”“라이브 방송 회사에 더 적당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별로예요.”심지안은 “오.” 한마디 하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고청민에게도 그만의 판단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성동철은 그 둘을 지켜보다가 무표정하게 헛기침했다.“밥 먹을 때 일 얘기 하지 마라.”“알겠어요. 할아버지.”심지안은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고는 무언가 생각이 나서 물었다.“할아버지, 박만호라는 사람 아세요?”“박만호?”성동철은 흐릿하게 그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다.“아마 어느 왕실에 심복이라서 세움 주얼리 경매에도 몇 번 참가했을 거다.”“그랬군요.”“무슨 일이야?”심지안이 고청민을 보자 고청민이 말해도 된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엄마랑 박만호라는 사람이 서로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관계도 아닌 것 같고요. 아버지 말로는 엄마가 그 사람 빼고는 다른 남자랑 만나본 적 없다는데요.”성동철은 나이가 지긋하긴 해도 머리만큼은 여전히 빠르게 돌았다. 그래서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통쾌하게 몇 번 웃었다.“너 혹시 무슨 오해라도 한 거 아니니? 박만호 그 사람은 몸에 문제가 좀 있어.”“네? 몸에 문
티비 속 화면을 노려보던 성연신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빠르게 성수광의 소리에 생각이 끊겼다.“그럴 리가 없어. 내가 임시연이 다른 남자랑 얽히고 있다는 걸 똑똑히 들었다니까.”성연신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임시연의 교활함에 놀라움을 느끼긴 했지만, 이 쪽으로 더 놀랄 것도 없었다.“우주만 제 아이면 됩니다.”성수광은 마음에 들었다. 어찌 보면 좋은 일인 게 그 남자애가 척 봐도 똘똘한 게 성씨 집안 핏줄인 것도 좋았다.“너 몇 년 동안 비밀 조직이랑 충돌 생긴 거 있니?”“거의 없어요.”그는 멈칫하고 떠보듯이 물었다.“너희 엄마...”성연신은 손끝으로 매화꽃을 만지면서 그윽하게 말했다.“실마리는 있어요.”성수광은 깜짝 놀라 안간힘을 쓰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읊조렸다.“정말 살아있었네.”게다가 송석훈을 벗어난 데다가 송씨 집안에서 도망쳐 나왔으니 얼마나 대단한 생명력이란 말인가... 성연신은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고 수년간 마음에 품어온 한을 억누르며 말했다.“네. 엄마는 살아계세요. 하지만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제 기억이랑은 완전히 달라졌어요.”평범한 얼굴이 그녀의 원래 아우라를 덮어버렸다.그녀는 예전에 굉장히 예뻤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보고, 결혼한 뒤에는 돈 때문에 머리 아파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체면도 내려놓고 이름도 바꾸고 웃는 얼굴로 영업을 뛰며 입에 풀칠하고 있었다.빛나던 인생이 모두 망가졌다.이런 고통은 그녀가 겪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성수광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당연히 그 고통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성연신이 아니였으면 그녀가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내지도 못했을 것이다.“언제 너희 엄마를 모셔 올거니?”성연신은 고개를 저었다.“송석훈이 무조건 제 주변에 첩자 심어뒀을 거예요. 지금은 기회를 찾고 있어요.”송석훈이 남하영에 대한 병적인 점유욕이 선을 넘었다. 만약에 발각되면 그녀는 또 2차 상해를 입게 될것이었다.그가 송석훈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임시연은 회색 패딩에 하얀색 긴 부츠를 신은 채 마스크를 끼고 예쁜 눈망울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 신비로움이 그녀를 더 알아보고 싶게 만들었다.변석환은 마음이 아파서 말했다.“속눈썹에 서리 꼈어요. 다음부터는 많이 입어요. 따뜻하게.”“싫어요. 쭉 차 안에만 있고, 게다가 패딩 입어서 그렇게 춥지도 않아요.”“그래요. 그럼 다음부터는 안까지 운전해서 들어갈게요. 적게 걷게.”임시연은 눈이 붉어져서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변석환은 당황해서 급하게 티슈를 찾았다.“무슨 일이에요. 내가 뭐 잘 못 말했어요?”그녀는 목이 멨다.“나한테 이렇게 잘해준 게 석환 씨가 처음이라...”변석환은 잠깐 당황했지만 이윽고 임시연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며 얘기했다.“시연 씨. 난 시연 씨한테 쭉 잘할 거예요.”“진짜요?”“그럼요. 난 내가 한 말은 지켜요.”임시연은 수줍게 웃고는 가볍게 그에게 팔짱을 꼈다.“먼저 밥부터 먹어요.”“그래요.”변석환이 웃으면서 대답했고 종업원이 그들을 심지안 옆 테이블로 안내했다.임시연은 처음에는 심지안을 못 보고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심지안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안녕~”임시연은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 부드럽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나 미행한 거예요?”“그럴 리가요. 누구처럼 한가한 게 아니라서.”“거짓말! 분명히 일부러 한 거죠!”“마음대로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다 당신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임시연은 얼굴이 구겨지고 손에서 식은땀이나 마음 한구석이 찔리고 무서웠다.김슬비가 어제 그녀에게 전화 쳐 밑도 끝도 없이 한참을 욕했었다.임시연은 한참 뒤에야 심지안이 한 짓이라는 걸 알았다.“시연 씨. 이분은?”변석환은 사실 인터넷에서 임시연에 관한 찌라시를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정색하고 화도 내지 않으면서 대인배 같은 면모를 보였다.기회를 찾아서 대화에 끼어든 건 단순히 임시연을 보호하고 싶어서였다.심지안은 더 밝게
성연신은 태연자약하게 말했다.“들어와요. 제가 뭐 잡아먹기라도 해요?”심지안은 경계를 풀지 않고 문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밥해달라면서요. 여기서 뭘 할 수 있는데요?”“왜 안 돼요?”그녀는 귀찮았다.“여기 카페예요.”성연신이 뒤쪽에 있는 커튼을 거두자, 복고풍의 조리대가 눈에 안겨 왔다. 야채나 고기, 있을 건 다 있었다.“...이런거 쓸 줄은 몰라요.”“안의 구조는 다 현대식이야.”변요석은 해명을 하다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멈칫했다.“오늘 너를 부른 건 밥해달라고 부른 게 아니야. 그건 성연신 씨의 농담이야.”심지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밥 안 해도 되는 거면 갈게요. 다음번에는 용건이 있으면 똑바로 말해요. 두 분이랑 차 마시면서 풍경이나 구경할 시간도, 의무도 없으니까.”하룻저녁에 두 탕이나 뛰는 건 힘든 일이었다. 편하게 동료들이랑 회식이나 하는 게 더 재밌지 않겠는가?“용건이 있어요.”성연신은 따뜻한 차를 한 잔 따라서 빈 자리에 놨다. 골격이 분명한 손가락을 뻗은 성연신은 마치 조각품처럼 눈앞의 의자를 가리켰다.“앉아요. 관심 가는 일일 테니까.”다른 사람에게는 호기심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심지안 눈에는 그냥 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고 말했다.“그런 전 이만.”말을 마친 심지안은 태연하게 떠나면서 룸에 문도 닫아줬다.성연신은 얼굴을 찌푸리고 그녀를 따라나섰다.“저랑 돌아가요.”“싫어요. 관심 없다고 말했을 텐데요. 귀먹었어요?”“친아빠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아요?”심지안은 얼굴을 찡그렸다.“이미 알고 있으니까 말할 필요 없어요.”성연신은 도도하게 그녀를 바라봤다.“박만호가 아니에요.”“그럼, 누군데요.”“아까 카페에서 본 그 남자요.”...변요석은 태어날 때부터 귀한 사람이었고 일찍이 많은 일을 겪어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심지안과 마주 앉자, 어딘가 어색했다.“그러니까... 몇 년 전에 발생한 사고였어. 내가 다른 사람의 함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