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호 아저씨는 대표님의 본부대로 평소 장 의사로부터 약을 처방 받았습니다. 경력이 오래된 한의사님께 보여드렸는데 지안 아가씨께서 드시는 건 그냥 단순한 기혈 조절제라고 하셨습니다. 한번 마셔보고 효과를 지켜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성형찬은 송준한테 속았습니다. 송준이 공수표를 그에게 줬다고 합니다.”그렇게 말한 정욱은 살짝 존경하는 시선으로 성연신을 쳐다보았다.“대표님께서 송씨 가문 사람들이 손을 쓸 줄 알고 미리 금고에 있던 서류를 바꿔치기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성원 그룹이 하루 아침에 망할 수도 있었습니다.”바꿔치기 한 성연신의 수법은 대단했다.성연신은 눈을 뜨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성씨 가문 쪽에서 성형찬을 위해 사정하는 사람이 있었나?”“아니요, 성여광이 한번 오긴 했는데 백호 아저씨한테 쫓겨났다고 합니다.”그는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이번 일을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성여광의 공이 커.”성여광이 투자했던 연구소. 성여광의 머리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운 좋게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다던가.그게 아니면 사기를 당한다던가. 국내에서 칩을 연구하는 곳은 적었기에 손만 쓰면 그 배후를 알 수 있었다.송씨 가문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성씨 가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도 직접 그들의 일에 손을 쓸 정도로 담이 큰 사람은 거의 없다.정욱이 고민하다가 물었다.“그럼 성여광한테 경고를 하지 않으실 겁니까?”“양쪽이 죽이 이렇게 잘 맞는데 내가 말릴 이유가 없지. 내가 성여광에게 투자를 철회하라고 얘기해도 그놈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야.”“하지만 성여광이 함정에 빠진 것을 알게 되면 어르신도 마음 아파하실 것 같은데요.”이미 성형찬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에게 아량을 베푸는 건 자기를 해치는 일이야. 송준의 목적이 단지 성여광, 그놈일 뿐일까?”정욱은 성연신의 조언에 크게 깨달았다.“설마 성여광의 손을 빌려 대표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성연신은 부정하지
정욱은 임시연을 보고 턱에 힘을 꽉 주었다. 그녀의 의도는 너무 뻔해서 이미 읽어낼 수 있었다. 정욱은 어이가 없었다.심지안이 떠나자마자 임시연이 오다니.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 눈만 있으면 읽어낼 수 있었다.“연신이를 만나게 해줘요.”임시연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그 기세는 다소 강압적이었다.“성 대표님은 분주하신 분입니다.”그 말인즉,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임시연은 눈을 약간 치켜뜨고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얘기를 드리러 가지도 않고요?”“성 대표님은 일할 때 방해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정욱도 물러서지 않았다.“내가 왔는데도요?”“심지안 씨만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정욱은 일부러 임시연을 쫓아내기 위해 이렇게 얘기했으나 여기에서 물러날 임시연이 아니었다.임시연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욱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정욱은 바로 손을 뻗어 임시연을 말리려고 했다. 팔이 임시연에게 닿자마자 임시연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정욱을 보며 얘기했다.“전 그저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고작 그 이유로 절 밀어요?!”“???”정욱은 가슴에 손을 얹고 아까 임시연을 밀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 있었다. 임시연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기에 성연신도 듣게 되었다. 사무실 문을 연 성연신은 그저 미간을 찌푸리고 두 사람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 대표님, 임시연 씨가 성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왔습니다. 성 대표님께서 바쁘시다고 알려드렸는데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시니 가볍게 막아 나섰을 뿐입니다.”임시연은 연약한 모습을 보이며 일어서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얘기했다.“맞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내가 실수한 거야.”본인이 실수한 게 맞으면서, 마치 정욱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얘기한다.“...”그래, 여우 짓하는 임시연을 정욱이 어떻게 이기겠는가.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임시연을 쳐다보았다. 정욱을 질책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무슨 일로 왔어.”“사실
성연신의 시선이 임시연을 훑더니 정욱에게 멈춰 섰다.“네 말이 맞아. 그렇게 해.”임시연은 겨우 지켜오던 이미지를 잃기 직전이었다. 겨우 웃음을 짜내며 얘기했다.“장난치지 마. 아기를 속이면 안 돼.”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성연신의 차가운 뒷모습과 사무실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임시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하지만 악독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임시연은 책을 정욱에게 던져주며 얘기했다.“오늘 밤, 수고해 줘요.”정욱은 오히려 놀랐다.“진심입니까?”이렇게까지 연기할 필요가 있나?“당신이 읽는 거라면 전 여기 올 필요가 없죠. 집에 돌아가서 통화로 해요.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으면 돼요.”임시연은 목소리를 깔고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얘기했다.“그러게 왜 자꾸 끼어들어서.”정욱은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손에 쥔 두꺼운 책을 흔들며 물었다.“제가 밤을 새우는 걸 원합니까?”임시연은 스카프를 매고 얘기했다.“그것뿐일까요. 내가 만족할 때까지 읽어야 해요.”말을 마친 그녀가 우아하게 떠났다.정욱은 유아용 책을 한편으로 밀어버렸다. 이런 저급한 수에 말려들 그가 아니었다.정욱이 읽지 않는다고 해서 임시연이 성연신을 찾아와 고자질이라도 하겠는가?만약 고자질을 한다면 정욱은 심지안의 뒤에 숨을 생각이었다.심지안이 정욱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성연신은 무조건 정욱을 벌하지 않을 것이다.정욱이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성연신의 다음 달 일정표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진유진이 물었다.“어디예요? 회사? 집?”“회사요. 무슨 일이죠?”“별일 아니에요. 지안이 대신 검사하는 거죠.”진유진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임시연, 그년이 찾아오지는 않았어요?”“음... 뭐랄까요...”“빨리 말해요!”“왔어요. 이미 갔고요.”“헐, 정말 낯짝이 시멘트보다 두꺼운 여자 같으니라고! 정말 뻔뻔하네요!”진유진이 욕설을 퍼붓고 또 물었다.“성연신 씨는 어떻게 했어요?”심지안이 해외로 가자마자 딱 찾아오
성연신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검은 눈으로 심지안을 쳐다보았다. “솔직한 대답을 원해요?”그 순간, 심지안은 이미 그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심지안은 여전히 고집스러웠다.“네. 솔직하게 대답해 줘요. 연신 씨의 생각을.”“임시연은 지금 몸이 좋지 않아요. 게다가 임신 6개월이 되었으니 애를 지울 수도 없죠. 만약 나의 애면 버릴 수도 없죠. 어릴 때 부모님이 안 계셔서 힘들게 자랐거든요. 그래서 내 아이는 그렇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고독하게 살지 않았으면 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거든요. 지안 씨, 내 뜻 이해해요?”심지안은 살짝 화가 났다.“임시연 씨의 애한테 좋은 아빠가 되면, 나중에 우리의 애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우리가 얘기하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연신 씨!”심지안은 화가 났다.“우리 애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애를 속일 생각이에요?”그 명석한 두뇌로 자기 애를 속일 생각을 하다니.성연신은 이마를 짚었다.“그날이에요? 왜 그렇게 예민해요.”성연신은 예전의 귀엽고 활발한 심지안인 그리웠다. 매일 그의 주변을 맴돌면서 식사를 차려주고 그의 기분을 풀어주던 귀여운 바보 같은 여자 말이다.“그래요, 나 예민해요!”심지안은 화가 나서 통화를 끊어버렸다. 물론 성연신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이었다.하지만 심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다.그 때문인지 심지안은 결국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다가 겨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악몽을 꾸고 말았다. 악몽 속에서, 임시연은 성연신과 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아기까지 있었다. 세 사람은 화목한 한 가족 같았다.그러더니 임시연이 갑자기 눈을 뜨고 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심지안에게 다가와 얘기했다.“그거 봐요, 성연신은 내 것이에요. 성씨 가문의 안주인도 내 자리고. 당신은 그저 남자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한 루저예요. 그러니 이만 꺼져요.”“아니, 난...”잠에 든 성연신을 깨우려고 소리를 지르고
고청민의 시선은 노트북에서 천천히 심지안의 얼굴로 옮겨졌다.정교하게 빚어진 것 같은 이목구비와 투명하게 밝은 피부, 긴 속눈썹이 드리워진 눈. 이 모든 것이 너무 귀여웠다.오늘 심지안은 성숙하게 입었다. 하지만 사이즈가 큰 옷으로 일부러 배를 감추느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시작하죠.”고청민이 몸을 뒤로 젖히더니 얘기했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옆방에서 걸어 나와 심지안을 데리고 옆 방으로 갔다.방안에는 준비해 놓은 초음파 기계를 포함한 수많은 의료 기계가 있었다. 그들은 능수능란하게 심지안의 몸을 검사하고 있었다.“이제 양수를 채취할 수 있어요.”“좋아요.”고청민은 잠시 멈칫했다.“깨난 후에 주사 자국을 발견하지는 않겠죠?”“그럴 일은 없습니다. 우리 A 국에서는 임신 기간의 검사들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마취한 후 쓰는 바늘은 아주 가는 바늘이기에 눈으로 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고청민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을 진행하게 했다.홍지윤이 그의 옆에 서서 얘기했다.“비행기는 준비됐어요? 우리는 양수를 가지고 저녁이 되기 전에 제경으로 돌아가야 해요. 임시연은 오후 다섯 시에 유전자 검사를 하니까 시간을 잘 맞춰야 해요. 일 초라도 어긋나서는 안 돼요.”그렇지 않으면 일이 틀어진다. 이미 임시연의 유전자 검사를 맡은 의사를 매수했지만 진짜는 진짜고, 가짜는 가짜니까.심지안의 양수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린다.“비행기는 위층에 있어요. 지안 씨는 언제 깨어날 수 있죠?”의사가 고개를 돌려 얘기했다.“반 시간이면 됩니다.”고청민은 사무실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환기해 냄새를 없애고 다시 닫았다.반 시간 후, 천천히 눈을 뜬 심지안은 고청민과 눈이 마주쳤다.“깼어요?”심지안은 멋쩍어하며 얘기했다.“죄송해요. 왜 이러지... 저도 모르게 피곤해서 잠이 들었네요.”“괜찮아요. 나도 잠시 눈 붙었어요.”고청민은 테이블 위의 향초를 들어서 보여주며 얘기했다.“숙면에 좋은 거라고 하던데,
성여광은 놀라서 굳어버렸다.“한 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시던 할아버지가 왜...”“신체 기관의 노화가 엄중하대.”“한 달 전에는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막더니. 지금은 얼마 만나지도 못하겠네! 형이 제대로 할아버지를 모시지 않은 거지?! 정말 이기적이야...”성여광의 눈은 분노로 가득했다. 이를 꽉 깨문 성여광은 성연신이 얼굴이 뚫릴 정도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성연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맞고 싶은 게 아니면 그만해.”성여광의 팔에는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다. 성여광은 감정을 알 수 없는 성연신의 표정이 너무도 무서웠다.성연신은 항상 두려워하는 것 없이 뱉은 말을 지키는 사람이었다.마치 그 어떤 일도 그를 쓰러뜨릴 수 없는 것 같았다.이런 사람이야말로 왕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그와 비교하면 성여광은 그저 개미 한 마리였다. 작고 보잘것없었다.영원히 성연신의 발밑에 밟힐 그런 존재 말이다.성여광은 절망에 빠져 떠났다.어떻게든 아버지를 구해내리라 다짐했다.할아버지는 성연신을 가장 좋아하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그와 동시에, 원장과 의사 몇 명이 나왔다.자세히 보니 원장의 이마에 적지 않은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입술도 하얗게 질렸고 굽어있던 등도 꼿꼿하게 핀 상태였다.“성연신 씨, 이건 요청하신 양수입니다.”그 중, 한 의사가 정욱에게 물건을 건넸다.“이렇게 빠르다고요?”그저 15분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네. 양수 채취는 그저 10분 정도면 됩니다. 보고 배우라고 학생들을 불렀는데 이놈들이 지각을 하는 바람에... 실례가 되었습니다.”성연신은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원장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그러게 말입니다... 학생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올 겁니다. 결과가 나오면 알려드리죠.”성연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입술을 뗀 그가 말하려고 할 때, 구석에 숨어있던 장 의사
남자는 원장을 그대로 풀어줄 리가 없었다. 도망치려는 원장을 보고 바로 그의 옷을 잡아 끌어당겨 원장의 입을 막고 비상구로 끌고 갔다. 나이가 많은 원장은 남자의 상대가 되지 못한 채 병원의 꼭대기 층으로 끌려갔다.비명과 함께, 원장은 쿵 하고 바닥에 떨어져 바로 목숨을 잃었다.그날 밤. 기사가 보도되었다.병원장이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투신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장 의사는 그 기사를 보고 두렵기도 하고 죄책감이 몰려오기도 하며 불안하기도 했다.다음으로 죽는 건 설마...지금이라도 성연신에게 털어놓으면 혹시라도 성연신이 그를 지켜줄지도 모른다.아니!그는 죽을 리 없었다. 그는 항상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왔다.3일 후, 심지안이 귀국했다.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자 심지안은 성연신에게 카톡을 남겼다.「도착했어요. 10분 정도 있으면 나갈 거예요.」심지안은 셔틀버스를 타고 나와 짐을 챙긴 후 공항을 나서자마자 성연신을 발견했다.185센티미터의 키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확 띄었다. 차갑기만 하던 이목구비의 성연신이 심지안을 보자마자 따뜻하게 변했다. 주변의 기운도 한껏 누그러진 기분이었다.조각 같은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다.그저 서 있기만 해도 수많은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모두가 그를 돌아보게 만들었다.두 사람은 거의 한 달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했다.성연신은 두 팔을 벌리고 입꼬리를 올리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이리 와요. 안아보게.”심지안은 심각한 얼빠였다. 바로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캐리어를 신현아에게 던져주고 바로 성연신의 품으로 안겨들었다.성연신도 심지안을 꽉 껴안으로 매혹적인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나 보고 싶었어요?”심지안은 작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맑은 눈으로 대답했다.“당연하죠. 연신 씨는요? 제 생각했어요?”“아니요.”성연신은 심지안을 놀린다고 거짓말을 했다.그 말을 들은 심지안의 하얀 얼굴에는 주름이 갔다. 그녀는 성연신의 허
성씨 가문의 정원.고연희는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아름답게 메이크업한 채 성동철 앞에 단정히 앉아있었다. 가끔 얘기도 하며 선을 지켰다.성동철은 그런 고연희에게 꽤 만족하는 눈치였다.고씨 가문과 성씨 가문의 혼인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두 사람 다 나이가 비슷하고 또래 중에서는 어울리는 편이니.잠시 고연희보다 더 나은 신붓감을 찾지 못했다.“어르신, 도련님이 돌아오셨습니다.”집사가 성동철 귓가에 대고 얘기했다.“들어오라고 해.”고청민은 눈앞의 사람들을 보고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얘기했다.“실례합니다. 금방 공항에서 돌아와서 조금 늦었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괜찮아요.”고연희의 아버지가 허허 웃으면서 소개했다.“우리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여기는 우리 딸인 고연희라고 해요.”“안녕하세요.”고연희는 예의를 갖추고 고청민과 인사를 했다. 그리고 대담하게 고청민을 훑어보았다.깔끔하게 생긴 게 확실히 그런 날라리 같은 남자들과는 달랐다. 고청민도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연희를 데리고 포도원에 가서 산책이나 하고 와. 어른들이 하는 말은 듣기 싫을 테니 알아서 놀다 와.”성동철은 두 사람에게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어 주며 얘기했다.고청민은 거절하지 않고 성동철의 말대로 고연희를 데리고 뒷마당으로 갔다.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포도원에서는 포도의 향기가 물씬 풍겼고 구석에는 작은 바구니까지 있어 포도를 딸 수도 있었다.고청민은 고연희를 흘깃 보고 담담하게 물었다.“연희 씨는 저를 어떻게 생각해요?”“네?”고연희의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겨우 얘기했다.“엄청 저돌적이네요...”부끄러움을 타는 어린 소년 같았는데. “시간 끌지 말고 좋잖아요.”“그것도 맞네요. 하지만 이제 만난 지 몇 분밖에 안 됐는데 판단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아요.”고청민은 웃으며 어색하게 얘기했다.“오해하신 것 같아요. 제 뜻은 우리가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