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심지안은 고청민의 이런 행동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그가 금융 쪽 사람들과 많이 접촉해야 한다는 어르신의 당부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진구의 뒤를 따라 두 사람은 회의실로 들어왔다. 룸 안, 원형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많아 앉아있었고 심지안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성연신도 있었고 임시연도 있었다. 임시연은 자신이 성연신의 파트너인 것처럼 그의 옆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심지안은 두 발이 묶인 듯 움직일 수가 없었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목적에 달성했다고 생각하던 여진구가 일부러 말을 건넸다.“성 대표님, 심지안 씨 오셨습니다.”“청민 도련님, 편하게 앉으시죠.”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앉았다.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성연신은 얼굴이 어두워졌다.“이쪽으로 와요.”심지안은 그의 옆자리가 비어있는 걸 발견하였다.‘내가 가서 앉으면 임시연과 같이 그의 옆에 앉아있는 거잖아. 자기가 뭐 왕이야? 이 여자 저 여자 다 안고 있게?’반항심이 생긴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고청민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그 모습에 성연신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든 그의 싸늘한 기운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내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 계속하죠. 계속 얘기해요.”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썼다. 토론 내내 성연신은 크게 말이 없었고 가끔 일침을 가했다. 그 사이 여진구는 고급 차 한 주전자를 가져왔고 임시연은 자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차를 따라줬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에 꽤 익숙한 듯했다. 이 자리에 데리고 온 여자 파트너는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그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심지안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됐든 그녀는 하인처럼 이 남자들을 모실 생각이 없었으니까. 물론 그들에게 부탁할 일이 생긴다면
“진정해요. 할 얘기 있으면 우리 집에 가서 해요.”성연신은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진구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성 대표님, 임시연 씨가 방금 쳐들어온 건달에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많이 놀란 것 같은데 대표님께서 한번 가보시죠.”“당신도 같이 가요.”심지안과 고청민이 함께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성연신은 심지안을 끌고갔다. ‘어린놈이 꿍꿍이는 많아서.’임시연이 또 무슨 일을 벌이는지 궁금했던 심지안은 고청민과 인사를 나누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휴게실.임시연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옷이 다 찢어져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성연신을 발견한 그녀는 대성통곡하며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연신아, 아까 어떤 건달이 하마터면 내 옷을 다 찢어버릴 뻔했어. 우리 아이를 해칠까 봐 무서웠어...”성연신은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녀는 그의 소매를 꽉 잡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던 그는 양복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뒤에 서 있던 심지안은 임시연의 작은 움직임을 보지 못한 탓에 성연신이 주동적으로 외투를 덮어준 거라고 오해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을 이리 보게 될 줄 심지안은 상상도 못 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는 뒤에서 종업원이 들어온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였다. 갑자기 차가운 물이 몸에 쏟아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여보니 배 위가 흠뻑 젖어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옷 갈아입으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종업원은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사과했다. 성연신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잠깐만 기다려요. 나랑 같이 가요.”“아니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그곳에 있는 것이 답답했던 심지안은 바로 거절했다. 옷도 젖은 상태라 아이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빨리 옷을 갈아입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성연신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 괴로우면 의사 불러줄게. 난 지안 씨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소년에게로 쏠렸다. 고청민은 맑은 눈빛을 한 채 전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성연신은 이를 악물었다.‘이 어린놈이 또 시치미를 떼고 있군.’그는 고청민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방금 본 거 다 말해봐요.”고청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당신을 도와줄 거라고 그리 확신해요?”그 말에 성연신은 하찮은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웃었다.“거짓말하면 어른들한테 혼날 거예요. 꼬마 청년.”“내가 어린 게 아니라 그쪽이 나이가 많은 거라고요.”고청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풋풋한 그의 얼굴에 남의 여자를 엿보는 밉살스러움이 가득했다. “세 살 차이는 천생연분이라고 하던데 마침 지안 씨가 나보다 딱 세 살 많더라고요.”성연신은 그의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꿈이 있는 건 좋은 일이지.”“그래요. 자신감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죠.”“청민 씨, 말해봐요. 당신이 본 게 뭔지.”심지안은 그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임시연 또한 긴장한 표정을 지은 채 고청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행여라도 고청민이 허튼소리를 할까 봐 그녀는 두려웠다. 고청민은 심지안을 쳐다보며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그 모습에 심지안은 심호흡을 하며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괜찮아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요.”사실이 어떻든 그녀는 이미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말해요, 당신이 본 게 무엇인지.”차갑게 말하는 성연신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고청민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성 대표님과 임시연 씨는 계속 앉아있었고 선 넘은 행동을 한 적도 없었어요. 다만 지안 씨가 돌아오기 1분 전, 임시연 씨가 갑자기 성 대표님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그리고 그녀의 옷이... 벗겨졌죠.”성연신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상처를 봐달라고 했어요. 다만 임시연의 옷이
“연신아, 이게 다 내 탓이야. 빨리 심지안 씨한테 가봐. 나 신경 쓰지 말고.”임시연은 착한 여자인 척했다. 한편, 성연신의 안색은 극히 어두워졌다.“구급차 불렀으니까 금방 올 거야. 그럼 난 먼저 갈게.”“알았어. 조심히 가.”멀어져가는 성연신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임시연의 초췌한 얼굴이 점점 음흉하게 변해갔다. 이번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두 사람 사이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감정을 소모한다면 날이 갈수록 쌓여서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은 끝없는 싸움에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아무리 견고한 사랑이라도 그때가 되면 깨끗이 사라지게 될 거다. 임시연은 천천히 성연신의 외투를 챙겨입고는 메이크업과 헤어를 정리하고는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자리를 뜨려던 그녀는 고청민이 아직까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그 순간, 임시연은 김슬비가 세움의 광고 모델 자리를 탐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만약 내가 그걸 따낸다면... 심지안이 현재 모델인 건 맞지만, 명품 브랜드의 모델이 어디 한두 명인가?’그 생각을 한 임시연은 고청민에게 다가가 당당하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임시연이에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그 소리에 고개를 든 고청민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임시연은 전혀 어색한 기색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 고청민은 또래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똑똑한 사람처럼 보였다. 성연신 같은 능구렁이만 아니라면 그녀는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러웠죠. 세움 주얼리의 디자인과 컨셉이 정말 훌륭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칭찬을 들었을 때 기본적으로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청민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네. 물론 친구가 될 기회가 있다면 더 좋고요.”임시연은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모습은 가식적인 여
심지안은 십여 분 동안 귀를 쫑긋 세우고 밖의 상황을 살폈다. 성연신이 돌아간 것인지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함께 지낸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 사람은 나한테 전혀 인내심이 없구나.’심지안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 누워 그동안 성연신과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고 화날 때도 있었고 감동받은 적도 있었다...어머니를 일찍 여읜 그녀는 심씨 가문에서 하루가 멀다 하게 괴롭힘을 당했었다.그 당시 강우석은 가끔 그녀에게 간식과 예쁜 옷을 챙겨주곤 했었다. 그런 그의 다정함에 그녀는 기뻤고 그래서 이번 생에는 그 사람과 꼭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강우석은 바람을 피웠고 이제 그녀에게 잘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진유진뿐이었다. 그 후, 성연신이 점점 그녀의 삶으로 들어왔다. 까칠하고 무서운 사람이지만 그는 가끔 그녀에게 잘해줬다. 그녀에게 일자리도 주고 그녀의 편도 들어주고 그녀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그녀를 도와주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심연아는 아직도 날뛰고 있었을 것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진짜 이유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사람도 바로 성연신이었다.깊은 고민에 빠진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갑자기,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란 심지안은 온몸을 떨었고 그녀는 성연신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누구 없어요? 가구 배달 왔는데요.”“가구 산 적 없거든요. 잘못 오신 거 아니에요?”“심지안 씨 아니에요?”“맞아요...”“그럼 맞아요. 여기로 배송되는 거 맞아요.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가구가 많아요. 복도에 두면 길을 막고 있어서요.”심지안은 경계심이 가득 찬 얼굴로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으로 다가가 밖의 상황을 살폈다. 문밖에는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고 그의 뒤에는 가죽 소파, TV, 의자 등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주문
심지안은 꽃을 건네받지 않고 입을 삐죽거렸다.“꽃은 왜 줘요?”“여자들은 다 꽃 좋아하지 않나?”성연신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꽃가루에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꽃을 좋아해요?”“알았어요. 당신이 싫다면 다시는 사지 않을게요.”‘말을 들어야 할 때는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때는 또 정말 말을 잘 듣네.’“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봐요. 다 말해줄 테니까.”성연신은 의자를 가져 와 앉았다. 까칠한 모습을 잠시 내려놓은 그는 꽤 태도가 좋았다.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궁금한 거 없어요.”고청민이 이미 다 말했으니까. 다만 그녀가 화가 난 건 임시연에 대한 성연신의 태도였다. 성연신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여자들이란 참 알 수가 없는 존재군. 포럼에서 그렇게 몰아붙이던 사람이 왜 집에 와서는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 뭐 싸우는 것도 장소 가려서 하나?’성연신은 지금 자신이 많이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어떤 여자에게도 이렇게 인내심이 있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심지안이 처음이었다.“가구는 왜 산 거예요?”갑자기 말을 돌리는 그녀의 물음에 성연신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당신이 불쌍해 보여서요.”...“왜요? 편하게 지내라고 산 건데. 그것도 잘못이에요?”그는 화가 치밀어 올라 차갑게 대꾸했다. “이 집은 전세예요. 이런 것 살 필요 없다고요.”“이진우한테 집 명의 넘기라고 하면 돼요.”고작 집 한 채일 뿐, 사면 그만이었다. 심지안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부자들은 참 제멋대로야.’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성연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날 밤 사고를 제외하고 다시 임시연이랑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날 믿어요. 내가 다 처리할게요. 무슨 일이든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그의 말에 납득이라도 한 듯 심지안은 귀를 살짝 움직였다. 성연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툭하면 성
전화를 받은 홍지윤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귀찮게 입을 열었다. “3개월에 유전자 검사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배를 열지 않는 한. 왜 이리 당황해하는 거예요?”홍지윤의 호통에 임시연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3개월이면 아직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어. 최소한 4개월은 되어야 해. 게다가 지금 내 몸 상태로는 유전자 검사 못 해.’임시연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됐어요. 큰일 아니면 전화하지 말아요.”보스가 맡긴 일 때문에 그녀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나 오늘은 물건을 모두 들여보낼 수 있어 임무를 거의 완수할 것 같았다. 임시연은 전화를 끊고 병원으로 향했다.이 개인 병원은 성씨 가문에서 투자한 병원이었고 병원에는 전문적으로 성수광을 위해 복무하는 층이 따로 있었다. 그녀는 간호사를 따라 산부인과로 갔고 그곳에는 백연도 와있었다. “아주머니...”백연은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왔어요.”“네... 아주머니. 할아버지께서 어쩐 일로 절 부르신 거예요? 아직은 유전자 검사를 할 때가 아닌데요.”“아버님께서 연세가 드시니 생각이 많으신 것 같아요.”백연은 그녀의 배를 빤히 쳐다보았다.“곧 4개월 되죠? 아이가 이제는 코도 자라고 눈도 자랐겠네요. 이따가 초음파 검사하면 나도 보여줘요.”옆에 있던 의사가 이내 입을 열었다.“지금 바로 초음파 검사 할 수 있습니다.”개인 병원은 5시 반이면 퇴근한다. 지금은 환자가 없는 상태라 모든 의사가 성씨 가문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었다. “그래요. 그럼 가봐요.”성수광은 위층에서 재검사하고 있어서 아직 내려오지 않은 상태였다. 임시연은 백연이 자신에게 악의가 없음을 느끼고 그녀의 말에 따라 초음파 검사를 하는 침대에 누웠다. 이내 기계 화면에 윤곽이 흐릿한 갓난아기의 모습이 나타났다. 백연은 가까이 와서 화면을 쳐다보았다.“아이고, 귀여워라. 연신이랑 하루빨리 결혼식을 올려야겠어요. 조금만 더 배가 부르면 결혼식 못 해요.”임시연은
흠칫하던 임시연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할아버지께서 절 그리 못 믿으신다면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유전자 검사 결과 이 아이가 정말 성씨 가문의 핏줄이라도 하더라도 할아버지께서는 그 결과가 가짜라고 하시겠죠.”“나쁜 일은 언젠간 들키게 돼 있어. 네가 찔리는 것이 없다면 왜 이리 펄쩍 날뛰는 것이냐?”“제가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른다면 절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실 건가요?”성수광은 수염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글쎄, 그런 잘 모르겠다.”유전자 검사가 끝난 뒤에 아이가 태어나면 다시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한다. 임시연이 유전자 검사에 손을 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옆에 있던 백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아버님, 이건 연신이 일이에요. 뭐 하러 시연 씨를 난처하게 하세요?”“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네, 제가 참견한 일은 아니죠. 하지만 아버님께서도 그저 시연 씨에게 겁주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양수 검수는 하지도 못하잖아요.”백연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시연 씨가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전 시연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오랫동안 손주 바라셨잖아요. 이제 드디어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 아니에요?”그제야 한시름 놓인 임시연은 눈빛을 반짝였다. ‘노인네가 일부러 나한테 겁을 준 거구나.’자신의 계획이 뒤틀어지자 성수광은 벌컥 화를 냈다.“당장 꺼져!”성수광이 왜 화가 났는지 모르는 백연은 그의 호통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 아주머니한테 화내지 마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현재 백연은 유일하게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임시연은 백연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부터 네가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 병원에 있거라. 절대 여길 벗어나서는 안 된다.”성수광은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사람 없느냐? 와서 임시연의 핸드폰과 신분증을 빼앗거라!”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두 명의 경호원이 나타나서 그녀의 가방을 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