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다녀온 심지안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진세호의 아내와 그 동창은 심지안 앞의 오렌지 주스를 힐끔힐끔 보았다. 심지안은 그냥 감자튀김만 먹으면서 화제를 주동적으로 이끌어갔다.심지안이 남자를 향해 질문을 여러 가지 하자 여자는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추진했다.심지안은 시간을 보다가 일부러 두 개의 차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렸다.여자와 남자가 같이 허리를 숙여 차 열쇠를 찾으려고 할 때, 심지안은 재빨리 자신의 오렌지 주스와 여자의 오렌지 주스를 바꿔치기했다.두 사람은 다 오렌지 주스를 시켰고 다 별로 마시지 않았다.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심지안은 그들의 앞에서 보란 듯이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여자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미안했다.하지만 심지안이 불륜녀라는 것을 생각하자 죄책감 따위는 사라졌다.그러나 20분이 지났지만 심지안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잘 웃고 잘 떠들었으며 약 기운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오히려 여자의 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외투를 벗었지만 타오르는 듯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남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약을 푼 시간이 오래되어서 약 효과가 떨어졌나?“끝났어요?”남자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살짝 차가운 말투였다.심지안이 고개를 돌려보니 성연신이 검은 셔츠를 입은 채 카페 입구에 서 있었다. 팔에는 정장 외투를 들고 있었는데 여유로운 느낌이 온몸에서 흘러내렸다.남자는 성연신을 보고 표정이 확 굳었다. 그리고 여자가 그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연신이 그를 발견하게 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안은 그 두 사람에게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을 향해 손을 저으며 얘기했다.“안녕히 계세요. 절 데려다주실 필요는 없어요. 여사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여사님부터 신경 써주세요.”여자는 이미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저도 모르게 옷을 벗으려고 하며 살을 확 드러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설마 약을 탄 주스를 마신
“엄청 오래 잤어요.”성연신은 심지안 귓가에 속삭였다.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귀를 스치면서 간지럽혔다.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어제 좀 피곤해서 그래요.”심지안은 말 하면서 성연신을 밀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성연신은 무거운 돌덩이처럼 그 자리에서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안 했다. “우리 엄청 오래 안 한 거 알고 있어요?”심지안이 동공이 흔들리더니 불쑥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성연신은 아주 태연해 보였다. 그의 매력적인 얼굴은 하나님이 만든 제일 완벽한 작품과도 같았다. 심지안은 금방 깨어난 그가 검고 깊은 눈빛을 하고 저런 변태적인 말을 내뱉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어젯밤부터 성연신은 계속 참고 있었다.그는 새근새근 깊게 자고 있는 심지안을 건드리지 않았다.심지안의 손바닥처럼 작은 하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누가 당신이랑 하겠다는 것처럼 말해요. 우린 지금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연신 씨가 누구라도 되는 줄 아나 봐요? 지금 무슨 신분으로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내 침대에서 내 품 안에 안겨 자기까지 했는데, 지안 씨가 말해봐요. 우리가 무슨 관계인지.”심지안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그런데 저 아직 화해하자는 제안 받아들이지 않았잖아요. 우린 지금 서로를 시험 보는 거와 마찬가지라고요.”“제가 말하는 일도 시험 과정의 일부분이 아닌가요?”말이 끝나자마자 심지안은 그의 손이 옷 안으로 파고들면서 자신의 허리로부터 점점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심지안은 황급히 성연신을 제지하면서 말했다.“그만 해요. 전 하기 싫어요.”“네?”심지안은 진지하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하기 싫다고요.”성연신의 손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는 심지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녀는 그가 화를 낼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성연신은 그녀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말했다.“어디 아파요?”심지안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몸이 좀 불편해요.”“혹시
고청민은 침울한 눈빛을 숨기고 고개를 돌려 하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지안 씨 보러 왔어요. 캔디 가게에 마스코트 시리즈 캔디에요. 기분컬러라는 캔디인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네요.”심지안은 의문스러운 마음을 품고 예쁘게 포장한 캔디를 받았다.“기분컬러요?”“저 오늘에야 어제 라이브 방송 재방송을 보았어요.”그는 요즘 논문을 쓰느라고 전자제품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어제 논문을 완성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는데 우연히 임시연의 자살 라이브 방송을 보았던 것이다.대부분 여론은 성연신 덕분에 가라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부분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저를 위해서 여기까지 가져온 거예요?”고청민은 의아해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물건 사러 서쪽에 있는 거리에 간 김에 산 거예요.”심지안은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고청민이 착하고 다른 사람을 잘 대해준다고는 하나 한가한 사람도 아닌데 자신을 위해 캔디 가게까지 들어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앗, 여기 금방 이사 와서 모를 수도 있는데 서쪽 거리에 도둑놈들이 많거든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아까 오면서 이미 당했어요.”고청민은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네?”“가지고 다니던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아마도 도둑질 당한 것 같아요.”심지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지갑 안에 혹시 중요한 물건이라도 넣어뒀어요?”“주민등록증 빼고 할아버지랑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는데 그게 저한테 좀 중요하거든요.”심지안은 고청민의 가정 배경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입을 열었다.“내일 서쪽 거리에 야시장을 여는데 어떤 도둑들은 도적질한 물건들을 모아서 야시장에서 중고 거래를 하거든요. 비싼 지갑이라면 아마 야시장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리도 운도 따라주면 사진도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고청민은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렸는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네,
정욱은 신철호를 데리고 심지안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정욱은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신현아를 심지안에게 소개해 줬다.“심지안 씨, 이분은 성 대표님께서 심지안 씨를 보호하기 위해 모신 경호원입니다. 평소에 심지안 씨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보호해 드릴 겁니다.”신현아는 앞으로 한 발 나서서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심지안에게 인사했다.“심지안 씨.”모니터를 보고 있던 심지안의 시선이 신현아를 향했다.신현아는 키가 엄청 컸는데 보기에는 아마 175 좌우가 되는 것 같았다. 귀밑까지 오는 단발머리와 뚜렷한 이목구비, 여자지만 남자 같아 보였다.심지안도 키가 170은 되었는데 신현아 앞에 서니 유독 작아 보였다.“안녕하세요, 하지만... 매일 저의 곁을 따라다니실 건 아니죠? 휴식일 있으세요?”“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지안 씨. 평소에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게 조심하겠습니다.”옆에 서 있던 정욱이 몇 마디 보탰다.“매달 두 날씩 휴식일이 있는데 혹시 휴가를 주고 싶으시다면 심지안 씨 수요에 따라 안배하시면 됩니다.”“네, 알겠어요.”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면서 신현아를 바라보았다.“그럼 성씨 집안으로 갈 때마다 휴가를 줄게요. 아무튼 그곳은 안전해서 괜찮을 것 같아요.”신현아는 심지안과 같은 또래로 보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심지안은 높은 강도의 업무를 맡은 경호원이 한 달에 두 날만 쉴 수 있다는 게 너무 적다고 생각되었다.신현아는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는 다른 사람 곁을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을 시키기도 전에 자신에게 휴가를 줄 생각부터 하는 고용인은 처음이었다.“네... 알겠습니다.”정욱은 신현아가 부러웠다.‘우리 대표님은 언제쯤이면 심지안 씨처럼 사리에 밝아질까?’신현아를 심지안 곁에 두고 정욱은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그는 임시연의 주치의를 찾아 그녀의 상황을 물어보았다.“환자분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지금 보아서는 다음 달에 양수검사를 하기 바쁠 것
보광 중신.백여 층이 되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높은 건물, 성연신의 사무실은 손만 뻗으면 별이라도 딸 것 같은 제일 꼭대기 층에 있었다.임시연은 성연신의 단독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정욱도 그녀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바로 이때 밖에 있던 직원 한 무리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왔는데 아직 닫히지 않은 엘리베이터 문 때문에 마침 그 안에 타고 있는 임시연과 정욱을 보았다.정욱은 그들이 기획팀 직원들이라는 걸 알아보았다.그들은 앞에 멈춰서서는 이상한 눈길로 임시연을 바라보았다.“저 여자가 지안 씨를 내쫓고 자리를 차지한 여자라던데. 대표님 애까지 임신했대.”또 다른 한 직원이 말했다.“대표님이랑 저 여자 오래전부터 같이 있었다던데, 지안 씨가 두 사람 사이에 껴들었다는 소문도 있어.”그들은 성연신의 사적인 일에 관해 별로 알고 있는 건 없었지만, 그들은 심지안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임시연은 머리를 정리하면서 말했다.“아까 사람들 심지안 씨를 아나 봐요?”정욱은 임시연이 알아차린 걸 보고 더는 숨기지 않았다.“네.”“같은 팀 출신인가 봐요?”“네.”“아까 회사 직원들 주려고 온라인으로 커피 주문해 놨어요. 비록 당신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신 것까지 시켰어요.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그녀의 화려한 자태와 턱을 약간 치켜든 모습은 상류 인사와도 같았다. 마치 이미 성씨 집안 미래 안주인 자리에 앉은 듯했다.‘여기에 와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었던 거야?’하지만 확실히 똑똑한 수단이었다.많은 공을 들이지도 않고 회사 전체 직원들 환심을 사면서 자신을 기억하게 만들다니.성연신이 알았다고 해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성연신은 임시연이 찾아온 걸 보고 손에 있던 일을 멈추고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할 일이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최근 시정에서 경매 과정이 없이 그들에게 프로젝트 하나를 맡겼기 때문에 보광 중신은 아주 바쁜 상태였다. 앞으로 1년 후, 보광
“화내지 말고 진정해. 약혼녀가 시청 책임자 딸인데, 나도 당신이 이 약혼식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힘겹게 얻은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버릴 수는 없잖아.”느릿느릿 말하는 임시연은 성연신 앞에서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과는 다르게 여우처럼 아주 유혹하는 자태였다.여진구는 임시연과 함께 있었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뭘 도와주면 되는데?”주변에 오고 가는 보광 중신에 직원이 많았는지라 임시연은 경각심을 놓지 않고 말했다.“조금 있다 다시 연락할게.”...저녁 7시.성연신에 손에 있던 일을 다 끝마치고 차를 몰고 선진 그룹으로 가 심지안을 데리고 원이 있는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회복능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하게 다친 탓에 원이는 애완견 캐비닛 안에서 풀이 죽은 듯이 엎드려 링거를 맞았다.“걷는 데 문제가 없으면 한 달 정도만 더 치료하면 될 것 같습니다.”수의사가 말했다.성연신은 허리를 굽히고 큰 손으로 원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물었다.“언제 퇴원해서 집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요?”“다음 달이요.”심지안은 성연신의 표정을 보고 멈칫하더니 말했다.“이번에 퇴원하고 성씨 집안 본가 저택으로 데려가는 게 어때요? 환경도 좋고 더 자유롭게 뛰놀 수도 있는 데다가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도 없을 거 아니에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조건만 되면 오레오도 같이 데려가요.”그녀는 오레오와 임시연 사이 관계가 너무 좋지 않은 것 같았다.성연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오레오는 임시연 애완견이에요. 데려가려고 해도 임시연 동의를 받아야 해요.”심지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이 도리는 알고 있었다.두 사람은 옥상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양초 두 개, 빨간 장미 한 송이, 맛있는 음식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저녁 바람까지 아주 상쾌하고 편안했다.심지안은 분위기에 도취해 저도 모르게 많이 먹었는지라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하지만 성연신은 별로 먹지 않았다. 그는 나이프와 포
레스토랑에서 떠나니 이미 새벽이었다. 심지안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 났는지 옆의 남자의 옷소매를 잡으며 얘기했다.“그러니까 아까 말한 금융 포럼이 모레라는 거죠?”이미 12시가 지났다. “목요일이요.”그러니까 모레라는 것이다.한남 더힐로 돌아온 심지안을 따라 성연신은 아파트로 올라가 같이 집에 들어섰다. 그는 집에 들어서서 인테리어를 한번 보았다. 가구들도 매우 간단했다.이런 곳에 산다니 조금 불쌍해 보였다.심지안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여기서 잘 거예요?”“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거절해도 돼요?”성연신이 그녀를 보며 손으로 넥타이를 풀어 소파에 던져버렸다.“될 것 같아요?”“자는 건 괜찮은데 저한테 손도 대지 마요.”“왜요?”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감을 드러냈다.“오늘이 그날도 아니잖아요. 얼음물 마시는 것 봤어요.”“그냥 싫어요. 게다가 이런 일은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심지안은 고개를 떨구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감정을 담은 눈을 가렸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삐죽 나왔는데 그 모습이 꽤 가여웠다.어떤 남자라도 그 모습을 봤다면 그녀의 편에 설 것이다. 성연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의견을 굽히고 심지안을 자기 다리에 앉힌 후 심지안의 턱을 잡고 물었다.“정말 싫어서 그래요?”심지안은 억지로 고개를 들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사람은 밤에 감성적으로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지안은 침묵을 지키다가 물었다.“정말 원인을 알고 싶어요?”“네.”“저 임신했어요.”성연신은 눈에 띄게 굳어버렸다.심지안은 긴장 해서 손가락을 만지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성연신이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하고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싫으면 싫은 거지. 이런 핑계를 대요?”성연신은 놀랐다가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심지안이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심지안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심지안은 크게 실망했다. 아마도 둘째 아이가 갖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던 심지안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깔끔하게 돈을 집어넣고는 카운터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돈을 보냈다. 사장은 20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안내음을 듣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돌려주었다. “여기까지 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 그러면 놓칠 뻔했어요.”심지안은 고청민을 쳐다보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내 말 맞죠?”고청민은 옛날 사진을 집어 들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저들이 일부러 바가지를 씌우는 걸 알면서 왜 돈을 준 거예요?”“이 사진이 당신에게 중요한 거잖아요. 당신한테는 값진 보물이니까. 잃어버렸던 걸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니까요. 그 정도의 요구는 들어줄 수 있는 거니까 저들과 굳이 얼굴 붉힐 필요 없잖아요?”심지안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편안했다. 옅은 화장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밝고 아름다웠으며 달빛이 그녀의 몸에 내리비추자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고청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세상의 아름다운 수천만 가지, 각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 또한 천차만별이다.심지안은 비록 그가 본 여자들 중에서 가장 예쁜 여자는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심지안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상한 눈빛을 눈치챈 심지안이 손을 뻗어 그를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왜요? 감동받았어요?”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조금요.”그녀가 그의 아픈 곳을 콕 찔렀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한테 잘해줬다. 그러나 그건 아첨일 뿐 진심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엄마와 함께 찍은 지 오래된 사진이 있어요. 만약 잃어버린다면 너무 슬펐을 거예요. 20만 원이 아니라 100만 원, 200만 원을 주더라도 사 올 거예요. 청민 씨 마음 이해해요.”심지안은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지키고 싶은 뭔가가 있으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기억하고 있는 한 영원할 것이다. 진정으로 사라지는 건 잊혀지고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고청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