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부자연스럽게 머리를 갸웃거렸다.“조심해요. 정 안 되면 우리 도망쳐요.”남진영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이내 건장한 경호원 열댓 명을 불렀다. 그들은 호시탐탐 성연신을 노려보며 계속 접근했다. 성연신은 힘줄이 돋아난 주먹을 꽉 쥐고는 어깨에 힘을 주었다. 마치 사냥을 하는 야수처럼, 언제라도 적의 목을 물어버릴 기세였다. 남진영은 명령을 내렸다.“본때를 보여줘.”말이 끝나자 한 경호원이 이미 성연신에게로 돌진했다.퍽.성연신은 정확한 자세로 그를 차서 날려버렸다.경호원은 화장실 문에 부딪혔는데 문은 용수철처럼 다시 튕겨 나오며 큰 소리를 내었다.남진영은 물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 복도 전체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심연아가 화내며 말했다.“쓸데없는 놈, 멍하니 서서 뭐 해. 빨리 처리하라고.”곧, 또 누군가가 달려들었다.한 명, 두 명, 세 명.마음이 조급해진 심지안은 순간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년을 보고는 크게 소리 질렀다.“청민 씨, 저희 좀 살려주세요!”고청민은 소리가 나는 쪽을 보고는 이내 부드럽던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두말하지 않고 사람들을 불러 소동을 중단시켰다.“아저씨, 여기서 뭐 하세요?”고청민은 남진영을 보고 따지듯이 물었다.남진영은 그를 한쪽 구석에 몰아붙이고는 화를 냈다.“성연신이 심지안이 연아를 괴롭히도록 놔두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어?”“회사가 부도날 뻔한 게 누가 한 일인지 벌써 잊으셨나요?”“여긴 금관성도 아니고 퍼뜨릴 사람도 없어. 그냥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 돼. 난 그냥 성연신을 좀 가르치려 든 건데 무슨 문제 있어?”그는 목소리를 깔며 눈시울을 붉혔다.“연아가 성연신에게 지하 술집으로 끌려가서 괴롭힘당한 건 알고 있지? 연아가 불쌍하지도 않아?”고청민은 한쪽에 있는 심지안을 바라보았다.그는 심연아보다 그녀가 더 가여웠다.그에게 있어 심연아는 미워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 “말해. 연아 대신 화풀이 하고 싶지 않아?”남진연이 한 번 더 물었다.고청
고청민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순진한 얼굴로 답했다.“나쁘진 않습니다.”성연신은 혀를 내둘렀다. 그의 차가운 시선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연회가 시작된 후에도 심연아와 남진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심지안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이런 일로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말이다. 남진영과 성동철의 성씨 가문의 관계 또한 각별하니 더 중시해야 되는게 아닌가?성동철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주요하게는 또 성연신에게 성수광의 병세에 대해 물어보았다.“아이고, 다 늙어서 이래. 자식들이 이 늙은이들 걱정하는 게 마음이 쓰여. 나도 성수광처럼 청민이한테 모든걸 맡기고 있다고.”성연신은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저희 두 회사에서 협력하고 있으니까 안심하세요.”이대로 흘러간다면, 성동철의 성씨 가문 산업은 모두 고청민이 이어받을 것이었다.그는 나이가 어린 데다가 아직 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했다. 어려서부터 사업을 접했지만 믿을만한 사람이 옆에서 도와주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편했다.성씨 가문이 그에게 호의를 베푸니 그 역시도 승낙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성동철은 자신이 듣고 싶던 대답을 듣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심지안은 반대편에서 부동산 회사 사장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대방은 그녀의 담력과 독특한 견해를 높이 평가하고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심지안은 우연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 이야기를 꺼냈고 부동산 주인이 말했다.“공사장 사고는 대부분 자금이 부족하거나 안전 장비들이 불량품이라서 생기는 거예요. 사람 불러서 조사하게 하세요. 누군가 몰래 공금을 가로채고 있을 수 있습니다.”특히 이런 위험성이 높은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물론 일부 사람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우쭐거리며 귀찮아서 안전띠를 잘 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심지안은 이 점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멍해졌다.“알겠습니다.”아홉 시.연회가 끝난
심지안은 중정원에 와서 자각적으로 알아서 손님이 신는 일회용 슬리퍼를 신고 주방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성연신은 시선을 내려 옷장 안의 흰색 캐릭터 슬리퍼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슬리퍼는 왜 안 신어요?”주방에서 바삐 식사를 준비하는 심지안은 그의 말을 신경 쓸 새도 없이 대충 대답했다.“신기 싫어서요. 갈 때 제가 버릴게요.”“왜 버려요?”성연신은 답을 알면서 고집스럽게 물었다.“내가 여기 사는 것도 아닌데, 버리지 않으면 갖다 팔까요?”심지안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성연신은 표정이 구겨졌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면서 문을 쾅 닫았다.30분 후, 그는 나와서 주방에서 만든 요리가 다 된 것을 보고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심지안은 의문스럽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할아버지께 드리는 게 아니에요?”“백호 아저씨가 말하길 이미 주무셨대요. 그래서 안 드신대요.”“?”심지안이 미간을 찌푸렸다.“날 갖고 논 거예요?”성연신이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다.“무슨 소리예요?”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착한 여자는 나쁜 남자와 싸우지 않는다. 속으로 그를 저주했다. 그렇게 먹다가 확 뚱뚱보나 되라고! 그녀가 신발을 갈아신고 떠나려는데 이진우가 마침 들어와 두 사람은 그대로 마주치게 되었다.이진우는 여성스럽게 생긴 면이 있었는데 조금 비열해 보이는 인상이 있었다. 그는 심지안을 보고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녀를 데리고 거실로 갔다.“뭐해요, 놔줘요!”“출장 나왔다가 급하게 들린 거라서 시간이 없어요. 일단 결과부터 말하자면 임시연이 임신한 건 사실이에요.”이진우는 성남 병원의 캡처 화면을 가지고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하지만 중요한 건 임시연이 사람을 찾아 진료 기록을 지웠다는 겁니다. 매우 수상해요. 첫째, 왜 진료 기록을 지우냐. 둘째, 성연신이 알아보기 전에 기록을 지웠다는 건, 임시연이 성연신의 상황까지 알고 있다는 겁니다. 홍교은 빼고, 누가 이 일에 관해 말한 적이 있나요?”이진우는 멍을
기대하는 그녀의 눈빛을 본 성연신은 시선을 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4개월이 지난 후에 태아 유전자 검사부터 해.”기뻐하던 임시연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찬 물일 끼얹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순간 높아졌다.“그게 무슨 뜻이야?”성연신은 담담한 표정으로 차갑게 대답했다.“내가 확실하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그녀의 호흡이 턱하고 막혔다. 그럴 일은 없다. 성연신이 알 리가 없었다.그녀의 계획은 완벽했으니 그는 그저 의심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증거가 아직 없으니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임시연은 성연신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성연신은 그것을 보고 바로 피해버렸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묻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물어도 돼.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어려워하지 않아도 돼.”그 말을 들은 성연신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비웃는 것 같았는데 매우 차가운 목소리였다.그래, 이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냈는데 그녀의 화려한 과거도 몰랐으니. “그래, 내가 물을게.”“어, 얘기해.”“우리가 잔 그날 밤에 마침 임신한 거야?”“응,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아가가 이 세상에 왔으니까 이것도 인연이 아니겠어? 임시연은 담담한 척하며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왜? 못 믿겠으면 네 말대로 임신 4개월 후에 유전자 검사를 할게.”성연신은 잉크처럼 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아까까지 치밀던 화가 순식간에 내려갔다. 그가 다시 눈을 떠 임시연을 봤을 때, 개미보다 못한 것을 보듯 그녀를 쳐다보았다.옛정과 그녀의 몸 상태를 생각해서라도 그녀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솔직히 얘기하지 않았다.그러니 성연신은 그녀에게 맞춰 이 게임을 계속해 줄 생각이었다.그녀는 성남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진료 기록을 지울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그녀를 도와줬기 때문이다. 성연신은 그녀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태아 유전자 검
임시연은 오늘 보광에서 일어난 일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S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사람에게 얘기해 주었다.S는 이렇게 대답했다. 「잘했어요.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곧 김민수와 연락을 끊어요.」「김민수가 쉽게 헤어지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게다가 태아 유전자 검사까지 해야 하는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괜찮아요. 4개월이 지나면 제가 도와줄게요. 그리고 김민수, 이 사람은 필요가 없으니 사람을 시켜서 처리해 버려요.」임시연의 그가 말하는 처리가 어떤 뜻인지 알기에 두려워졌다.선진 그룹에서.심지안은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몸이 바쁘면 머리가 딴생각하지 않으니까. 진유진이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얘기했지만 거절해 버렸다.그래서 진유진은 아예 식당에서 심지안이 가장 좋아하는 게를 사 들고 선진 그룹으로 왔다.“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쉴 때는 쉬어야지. 얼굴 봐, 반쪽이 됐네.”심지안은 미간을 꾹 눌렀다.“너도 어제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해 보이는데?”“그럼 너는 왜 안 자는 건데? 성연신, 그 쓰레기 생각하느라? 아무리 좋은 화장품도 잘 자는 것보다 못해. 우리 회사에 그 마녀 상사 있지? 40대도 안 되는데 피부가 60대...”“연신 씨랑 임시연이 곧 결혼할 것 같아. 우린 이미 끝났어. 그러니까 연신 씨 얘기 더는 하지 마.”심지안은 진유진의 말을 끊으며 사실을 서술했다.어제 거기서 멈춘 발걸음이 바로 증거다.성연신은 이미 선택을 마친 것이다. 진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절친이 담담한 표정 아래에 깊은 억울함과 상처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미안해, 지안아. 미안해... 내가 그때 바에서 진현수 씨를 제대로 알려줬더라면... 사람을 잘못 봤을 일도 없을 텐데...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그녀의 진심은 항상 진심을 바꿔오지 못했다.그 사실이 너무도 비참했다.“다 지나간 일이야. 아마도 내가 나쁜 남자만 끌어당기는 힘이 있나 봐. 정 안되면 나중에 부자가 되어서 젊은 애들이나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가락 하나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높이로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여기엔 왜 온 겁니까?”아침을 사고 돌아온 정욱은 진유진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요 며칠 진유진은 계속 문자메시지를 미친 듯이 보내왔다. 그래서 정욱은 어쩐지 진유진과 관계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진유진은 검은 봉지를 뒤로 숨기고 웃으며 얘기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정욱이 반신반의하며 문을 여는 순간, 진유진이 빠르게 그를 밀치고 검은 봉지의 내용물을 성연신에게로 던졌다.반응이 빠른 성연신은 옆의 신문으로 막았다.봉지의 내용물은 거의 다 막았지만 그래도 소량이 그의 정장에 튀었다. 두리안, 취두부, 이름 모를 마늘과 회색의 액체까지 섞여 있었다.차 안은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 찼고 숨만 쉬어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성연신의 이마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염라대왕 같은 무서운 표정만이 남았다.정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 소리로 외쳤다.“죽으려고 작정했어요?!”이건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니고 욕을 하는 것도 아니다.진유진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로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다. 성 대표님은 극도의 결벽증 때문에 진유진을 죽이라고 할 수도 있다.솜털이 쭈뼛 선 진유진은 두려워하지 않고 성연신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내가 배상을 못해서 그렇지. 돈만 있었으면 차에 페인트를 부었을 거야! 당신같이 더러운 짐승처럼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다니는 사람은 이런 취급을 당해봐야 해! 돈만 있으면 다야? 돈만 있으면 남의 마음을 갖고 놀아도 되는 거냐고! 결혼했으면서 불륜을 저지르는 너 같은 놈은 벼락 맞아야 해! 그래도 그런 쓰레기는 아닌 줄 알았는데! 그리고 정욱! 당신은 매일 구기자차나 우려줘! 젊은 나이에 벌써 힘을 못 쓰면 안 되잖아!”“닥치세요!”정욱은 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으윽!”진유진은 계속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틀어막혀 호흡도 어려웠다.정욱은 중
“어머님. 제가 현수 씨랑 가장 좋은 피부과에 가봤는데 흉터는 앞으로 조금씩 옅어질 거래요. 혼사는...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심지안이 예의 있게 얘기했다.“흉터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늦어요. 이미 30세인데 더 기다릴 수는 없어요.”“확실히 흉터가 다 나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죠.”그녀는 완곡하게 얘기했다.“하지만 감정이라는 게 급해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진현수의 어머니는 느긋하게 물었다.“왜요? 내 아들이 마음에 안 들어요?”“어머님, 그런 뜻이 아니라, 저는 그저 저희 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나도 그쪽이 내 아들에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우리 집은 집안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집이 아니라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내 아들이랑 잘 살면 돼요.”심지안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얘기하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진현수가 마침 왔다.“어머니, 여기서 뭐 해요?”진현수의 말투는 조금은 위협적이었다. 그는 급하게 온 모양인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내 아들이 여자 때문에 얼굴에 상처까지 생겼는데, 와 봐야지, 안 그래?”진현수의 어머니는 참지 않았다.“너도 마침 잘 왔어. 너희 둘의 혼사를 진행할 예정이니 어느 날로 할지 생각해 봐. 난 가서 호텔도 정해야 하고 청첩장도 보내야 해.”“어머니, 무슨 소리예요. 저랑 지안 씨는 아직 그 정도 사이가 아니에요.”진현수는 어색하게 심지안을 보다가 어머니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지안 씨, 저 먼저 어머니부터 보내고 다시 와서 얘기할게요.”심지안은 몰래 숨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들을 사무실 밖까지 보내준 다음, 진정이 된 심지안은 그제야 진유진이 건 전화가 생각났다.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진현수의 어머니가 걸어들어와서 빨리 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돌아가려는 데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발신인은 임시연이었다. 「지안 씨, 저 이제 돌아왔
심지안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물었다.“내가 누구랑 결혼하든 연신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대답해요.”성연신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얼굴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 듯 굳어있었는데 표정은 차갑고 각박했다.“자기 일이나 잘 처리해요. 곧 아빠가 될 사람이 저한테 손을 대면 안 되지 않아요?”그녀의 하얀 턱에 붉은 자국이 났다. 심지안은 아파서 미간을 확 찌푸렸다. 사실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성연신은 처음부터 그녀를 속인 적도 없고 감춘 적도 없다. 하지만 그의 자식이 아니라면 임시연을 책임질 필요도 없었다.“이 일이 조금 이상해서요. 4개월 후에 유전자 검사를 할 예정입니다.”증거가 없으니 그도 확정을 내릴 수 없었다.“그래서요? 내가 기다려야 하나요? 왜요?”심지안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그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나가주실래요?”성연신은 차가운 그녀의 눈빛을 보고 가슴 한쪽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오랫동안 그녀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예전의 그녀는 환하고, 발랄하고, 뻔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이런 걸까. 아니, 아니다. 그녀의 웃음, 따스함은 모두 그의 것이 아니었다.처음부터 그에게 시집올 생각이 없던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것이 아닌 진현수의 것이다.성연신은 자신이 이 일을 잊어버린 채 그녀에게 그날 밤의 사고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 우스웠다. 백번 양보해서 그날 밤이 심지안이었다고 해도 뭐 어떠한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성연신은 순식간에 냉정해졌다. 질투심과 분노가 한데 섞여 얼음물처럼 그의 머리를 식혀주었다. 차가운 조각 같은 얼굴은 매정하게, 전보다 더욱 차갑고 어두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 같았다. 그는 천천히 심지안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심이 엿보였다.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하고 있었다.성연신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자기를 보게 했다. 두 눈이 마주치고 성연신이 차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