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연은 오늘 보광에서 일어난 일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S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사람에게 얘기해 주었다.S는 이렇게 대답했다. 「잘했어요.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곧 김민수와 연락을 끊어요.」「김민수가 쉽게 헤어지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게다가 태아 유전자 검사까지 해야 하는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괜찮아요. 4개월이 지나면 제가 도와줄게요. 그리고 김민수, 이 사람은 필요가 없으니 사람을 시켜서 처리해 버려요.」임시연의 그가 말하는 처리가 어떤 뜻인지 알기에 두려워졌다.선진 그룹에서.심지안은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몸이 바쁘면 머리가 딴생각하지 않으니까. 진유진이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얘기했지만 거절해 버렸다.그래서 진유진은 아예 식당에서 심지안이 가장 좋아하는 게를 사 들고 선진 그룹으로 왔다.“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쉴 때는 쉬어야지. 얼굴 봐, 반쪽이 됐네.”심지안은 미간을 꾹 눌렀다.“너도 어제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해 보이는데?”“그럼 너는 왜 안 자는 건데? 성연신, 그 쓰레기 생각하느라? 아무리 좋은 화장품도 잘 자는 것보다 못해. 우리 회사에 그 마녀 상사 있지? 40대도 안 되는데 피부가 60대...”“연신 씨랑 임시연이 곧 결혼할 것 같아. 우린 이미 끝났어. 그러니까 연신 씨 얘기 더는 하지 마.”심지안은 진유진의 말을 끊으며 사실을 서술했다.어제 거기서 멈춘 발걸음이 바로 증거다.성연신은 이미 선택을 마친 것이다. 진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절친이 담담한 표정 아래에 깊은 억울함과 상처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미안해, 지안아. 미안해... 내가 그때 바에서 진현수 씨를 제대로 알려줬더라면... 사람을 잘못 봤을 일도 없을 텐데...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그녀의 진심은 항상 진심을 바꿔오지 못했다.그 사실이 너무도 비참했다.“다 지나간 일이야. 아마도 내가 나쁜 남자만 끌어당기는 힘이 있나 봐. 정 안되면 나중에 부자가 되어서 젊은 애들이나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가락 하나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높이로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여기엔 왜 온 겁니까?”아침을 사고 돌아온 정욱은 진유진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요 며칠 진유진은 계속 문자메시지를 미친 듯이 보내왔다. 그래서 정욱은 어쩐지 진유진과 관계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진유진은 검은 봉지를 뒤로 숨기고 웃으며 얘기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정욱이 반신반의하며 문을 여는 순간, 진유진이 빠르게 그를 밀치고 검은 봉지의 내용물을 성연신에게로 던졌다.반응이 빠른 성연신은 옆의 신문으로 막았다.봉지의 내용물은 거의 다 막았지만 그래도 소량이 그의 정장에 튀었다. 두리안, 취두부, 이름 모를 마늘과 회색의 액체까지 섞여 있었다.차 안은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 찼고 숨만 쉬어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성연신의 이마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 피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염라대왕 같은 무서운 표정만이 남았다.정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큰 소리로 외쳤다.“죽으려고 작정했어요?!”이건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니고 욕을 하는 것도 아니다.진유진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로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다. 성 대표님은 극도의 결벽증 때문에 진유진을 죽이라고 할 수도 있다.솜털이 쭈뼛 선 진유진은 두려워하지 않고 성연신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내가 배상을 못해서 그렇지. 돈만 있었으면 차에 페인트를 부었을 거야! 당신같이 더러운 짐승처럼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다니는 사람은 이런 취급을 당해봐야 해! 돈만 있으면 다야? 돈만 있으면 남의 마음을 갖고 놀아도 되는 거냐고! 결혼했으면서 불륜을 저지르는 너 같은 놈은 벼락 맞아야 해! 그래도 그런 쓰레기는 아닌 줄 알았는데! 그리고 정욱! 당신은 매일 구기자차나 우려줘! 젊은 나이에 벌써 힘을 못 쓰면 안 되잖아!”“닥치세요!”정욱은 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으윽!”진유진은 계속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틀어막혀 호흡도 어려웠다.정욱은 중
“어머님. 제가 현수 씨랑 가장 좋은 피부과에 가봤는데 흉터는 앞으로 조금씩 옅어질 거래요. 혼사는...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심지안이 예의 있게 얘기했다.“흉터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늦어요. 이미 30세인데 더 기다릴 수는 없어요.”“확실히 흉터가 다 나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죠.”그녀는 완곡하게 얘기했다.“하지만 감정이라는 게 급해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진현수의 어머니는 느긋하게 물었다.“왜요? 내 아들이 마음에 안 들어요?”“어머님, 그런 뜻이 아니라, 저는 그저 저희 둘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나도 그쪽이 내 아들에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우리 집은 집안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집이 아니라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내 아들이랑 잘 살면 돼요.”심지안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얘기하려고 했다.하지만 그때 진현수가 마침 왔다.“어머니, 여기서 뭐 해요?”진현수의 말투는 조금은 위협적이었다. 그는 급하게 온 모양인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내 아들이 여자 때문에 얼굴에 상처까지 생겼는데, 와 봐야지, 안 그래?”진현수의 어머니는 참지 않았다.“너도 마침 잘 왔어. 너희 둘의 혼사를 진행할 예정이니 어느 날로 할지 생각해 봐. 난 가서 호텔도 정해야 하고 청첩장도 보내야 해.”“어머니, 무슨 소리예요. 저랑 지안 씨는 아직 그 정도 사이가 아니에요.”진현수는 어색하게 심지안을 보다가 어머니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지안 씨, 저 먼저 어머니부터 보내고 다시 와서 얘기할게요.”심지안은 몰래 숨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들을 사무실 밖까지 보내준 다음, 진정이 된 심지안은 그제야 진유진이 건 전화가 생각났다.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진현수의 어머니가 걸어들어와서 빨리 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돌아가려는 데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발신인은 임시연이었다. 「지안 씨, 저 이제 돌아왔
심지안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물었다.“내가 누구랑 결혼하든 연신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대답해요.”성연신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얼굴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 듯 굳어있었는데 표정은 차갑고 각박했다.“자기 일이나 잘 처리해요. 곧 아빠가 될 사람이 저한테 손을 대면 안 되지 않아요?”그녀의 하얀 턱에 붉은 자국이 났다. 심지안은 아파서 미간을 확 찌푸렸다. 사실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성연신은 처음부터 그녀를 속인 적도 없고 감춘 적도 없다. 하지만 그의 자식이 아니라면 임시연을 책임질 필요도 없었다.“이 일이 조금 이상해서요. 4개월 후에 유전자 검사를 할 예정입니다.”증거가 없으니 그도 확정을 내릴 수 없었다.“그래서요? 내가 기다려야 하나요? 왜요?”심지안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그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나가주실래요?”성연신은 차가운 그녀의 눈빛을 보고 가슴 한쪽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오랫동안 그녀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예전의 그녀는 환하고, 발랄하고, 뻔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이런 걸까. 아니, 아니다. 그녀의 웃음, 따스함은 모두 그의 것이 아니었다.처음부터 그에게 시집올 생각이 없던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것이 아닌 진현수의 것이다.성연신은 자신이 이 일을 잊어버린 채 그녀에게 그날 밤의 사고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 우스웠다. 백번 양보해서 그날 밤이 심지안이었다고 해도 뭐 어떠한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성연신은 순식간에 냉정해졌다. 질투심과 분노가 한데 섞여 얼음물처럼 그의 머리를 식혀주었다. 차가운 조각 같은 얼굴은 매정하게, 전보다 더욱 차갑고 어두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 같았다. 그는 천천히 심지안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심이 엿보였다.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하고 있었다.성연신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자기를 보게 했다. 두 눈이 마주치고 성연신이 차갑게
그의 힘은 너무 셌기에 심지안은 아파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발로 그를 차며 반항했다.성연신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발목을 잡고 그녀를 순식간에 제압했다.그리고 그녀의 목에 생긴 붉은 잇자국을 보더니 통쾌하게 웃었다.“이런 선물, 좋아해요?”“나쁜 자식...”심지안은 이런 수치를 당해내지 못하고 계속 반항했다.이때 진유진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리고 정욱도 동시에 들어왔다.두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진유진은 분노에 차서 성연신을 밀어냈다. 마치 어미 새가 아기새를 지키듯, 심지안을 몸 뒤에 숨겨주었다.성연신은 너무 질척대지 않고 차갑게 심지안을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떠났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욱은 또 급히 따라갔다.두 사람이 간 후 진유진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반창고를 가지고 심지안의 상처에 붙여주었다.“개도 아니고, 이렇게 씹는 걸 좋아한대.”심지안은 손으로 목을 가린 후 시선을 내리깔았다.“앞으로 연신 씨 얘기는 하지 말자.”...건물 아래, 정욱은 차량을 바꿨다.성연신은 뒷좌석에 앉은 채 몸을 뒤에 기대고 차가운 시선으로 차창을 통해 수상한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선진 그룹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고 있었다.심연아는 재벌 2세처럼 입고 다닐 때는 언제고, 지금은 얼굴도 새까매진 채 수상쩍게 행동하고 있었다. 마치 버려져서 불쌍한 사람 같았는데 눈에는 독기를 품고 있었다.“운전해.”성연신은 눈을 감았다.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진현수에게 시집갈 것이니 이런 일은 진현수더러 처리하라고 해야지.“하지만 성 대표님... 심연아 씨 손에 든 액체가 염산인 것 같은데요?”성연신은 놀라서 눈을 확 떠서 다시 심연아를 쳐다보았다. 겨우 식힌 화가 또다시 치솟는 기분이었다.“이리로 오라고 해.” 정욱은 목을 빼 들더니 차에서 내려 사람을 데리러 갔다.심연아는 강제로 차에 타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남자를 만나자 눈에 놀라움과 공포가 가득했다.“성, 성연신... 뭐 하려
성연신은 짜증 나는 표정으로 그녀를 차버렸다. 그리고 아예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정욱더러 혼자 경찰서에 가게했다....저녁쯤에 심지안은 공사장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의외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심지안은 빨리 달려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봤다가 화가 나서 돌아버릴 뻔했다. “조금 상식만 있어도 안개가 낀 날에 타워 크레인을 쓰지 않아요.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고요. 이것도 몰라요?”가볍게는 접촉 사고가 날 수도 있었고 심하면 타워 크레인 기사님의 생명이 위험한 일이었다.“안개가 처음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점점 짙어져서요.”공사장의 책임자가 겨우 변명했다. “모든 일은 안전이 제일입니다.”“우리도 알아요. 하지만 조빈 씨가 빨리 완성하라고 하셔서.”심지안이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조빈이요?”“네, 바로 조 대표님이요.”“내가 가서 시간을 조율해 볼 테니 정상적인 진도로 진행하면 됩니다.”조빈은 이 프로젝트의 투자자였다. 심전웅은 익숙한 사람이겠지만 심지안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그녀는 조빈의 연락처를 받고 연락했다. 조빈은 바로 오겠다고 그녀한테 공사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던 중, 진현수가 전화를 걸어왔다.“지안 씨, 어디예요?”“밖에서 일처리하고 있어요.”“공사장에 또 일이 생겼어요?”심지안은 조금 머리가 아팠다.“네.”“제가 갈게요.”“괜찮아요. 혼자 처리할 수 있어요.”“당연히 지안 씨 능력을 믿죠. 저는 그저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진현수의 말투는 꽤 부드러웠다. “어떻게 우리 어머니한테 얘기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요. 우리 사이가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이랑 다르잖아요. 알다시피 남자들은 여자만큼 세심하지 못하거든요. 이런 일도 거절할 건 아니죠?”심지안이 바로 해명했다.“거절이라뇨. 하지만 제 집안 상황도 알다시피 전 웃어른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적어서...”“괜찮아요. 그럼 이따가 봐요.”조빈은 엄청 일찍 도착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울음소리에 깬 것이었다.심지안은 병실에 누워서 흐릿한 시선으로 목 놓아 울고 있는 진현수의 어머니를 발견했다.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어머님, 현수 씨는요?”진현수의 어머니는 깨어난 심지안을 보며 소리쳤다.“내 아들은 너를 지키려고 하다가 죽을 뻔했어! 아직도 수술실에서 나오지 못했다고!”심지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해 몽롱한 의식 속에서 물었다.“저희는 다 안전벨트를 했는데...”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다친 정도가 이리도 큰 차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진현수 어머님의 말로는 그들과 부딪힌 차가 휘발유를 운송하는 차라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심지안이 조수석에 갇혀서 진현수는 두 다리를 다친 상황에서도 그녀를 조수석에서 구해냈다.그래서 다리의 출혈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남은 평생 다리를 쓰지 못할지도 몰랐다.심지안은 그대로 굳어 고통스럽게 자책하고 있었다.이튿날 아침 여섯 시.마취가 풀린 진현수가 깨어났다.심지안은 가벼운 뇌진탕과 찰과상을 빼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나서서 진현수를 돌봐주었다.“지안 씨, 지안 씨도 다쳤으면서 제 걱정은 하지 말아요. 의사가 있으니 지안 씨도 알아서 쉬기만 하면 돼요.”심지안은 고개를 저었다.“전 괜찮아요.”진현수의 어머니는 옆에서 차갑게 코웃음 쳤다.“이 정도 각오는 해야죠. 내 아들은 그쪽을 위해서 이렇게 된 거예요. 내 아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남은 생은 그쪽이 책임져야 해요!”눈을 깜빡인 심지안은 이번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어머니, 그만 해요.”진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심지안에게 얘기했다.“지안 씨, 나가서 아침을 사줄래요? 그 김에 바람도 쐬고요.”만두와 죽을 산 심지안은 돌아오는 길에 고청민의 전화를 받았다. 소년 같은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았다. 마치 시원한 바람처럼 귓가에 울렸다.“지안 씨, 시간 괜찮아요?”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엠베서더 일에 관한 건가요?”
고청민은 핸드폰을 꺼내 심지안의 병실을 사진 찍어 성연신에게 보냈다.「지안 씨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병원에 오실 건가요?」평범한 한 장의 사진인 듯했지만 사진 속에는 진현수의 얼굴이 반쪽 담겨 있었다. 희미하게 보였지만 워낙 익숙한 사람이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청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벽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지금 바로 진현수의 진면모를 밝히는 것보다 그는 진현수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정략결혼보다 심지안과의 결혼 약속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문자를 확인한 성연신은 사진 속 진현수의 모습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바보 같은 여자, 왜 자꾸 다치는 거야? 진현수와 같이 사고를 당했다는 건 두 사람이 같이 있었다는 거잖아! 고청민 이놈도 참 웃기는 놈이네. 나와 진현수가 서로 싸우면 중간에서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어린놈이 꿍꿍이가 많군.’“국화꽃 하얀색으로 한 다발 사서 진현수한테 보내.”그 말에 정욱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하얀색 국화꽃은 장례식에서나 쓰이는 꽃 아닌가? 죽으라고 저주하는 거야 뭐야?’이런 일을 하는 게 내키지 않았던 그는 다른 직원에게 이 일을 맡겼다. 한편, 성연신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채 명품 펜을 들고 서류에 사인하고 있었다. 얇은 서류 종이가 날카로운 펜 끝에 의해 찢어지자 성연신은 서류를 구겨 휴지통에 버리면서 차갑게 말했다.“다시 프린트해 와, 어디서 이딴 불량품을 사 온 거야?”‘불량품이 아니라 대표님께서 하도 힘을 많이 쓰셔서 그런 거잖아요...’정욱은 어이가 없었지만 공손하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고 문을 나서려다가 그는 잠깐 멈춰 섰다. “대표님, 백호 아저씨께서 전화하셨어요. 오늘 어르신께서 퇴원하시니 대표님더러 병원에 오시라고요.”그의 말에 성연신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알았어.”사실은 임시연에 대해 의심이 든 성수광이 그한테 확인할 것이 있어 그를 병원으로 부른 것이었다. ...한편, 고청민은 성연신이 답장하지 않자 핸드폰을 거두고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