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요. 연신 씨가 안 도와주셔도 돼요. 그리고 전 중정원에서 인제 그만 나올 생각이거든요.”성연신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져버리고 싶었다.손끝이 물건에 닿은 순간, 그는 다시 손을 확 치워버렸다.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자신이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조차 느끼고 있었다.그는 자신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다.결국, 그는 한마디만 하고 바로 집으로 올라갔다.“안 됩니다. 할아버지께선 불시에 집으로 오시는 걸 좋아하시니 당신은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 합니다.”심지안이 차에서 내려 집으로 왔을 땐 성수광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바로 자신의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벽 하나 사이를 두고 바로 옆방은 성연신의 방이었다.성연신은 짜증스러운 마음에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다.「여자들은 왜 계속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따져 묻는 거냐.」손남영이 먼저 답장했다.「헤헤헤, 그건 형을 사랑하기 때문이죠.」장학수가 이어서 답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너도 똑같이 해.」「소용없어.」손남영이 바로 문자를 해왔다.「헐, 대박! 지안 씨 담대하네요! 형도 이젠 위기감 느끼시겠네요.」장학수가 답장했다.「위기감뿐이겠냐. 난 오늘 직접 보기까지 했지.」메시지 하나가 순간 1초 만에 삭제되었다.「??? 왜 삭제했어! 나도 궁금하단 말이야!」「궁금해? 형이라고 불러봐. 그럼 너한테만 보여줄게.」「꺼져! 내가 듣기론 여자가 그러는 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하던데. 연신 형이 다른 이성과 거리를 두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지안 씨가 형이 그 여자랑 아직도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 못 해서 그런 의심을 하는 거일 거예요. 형이 다른 여자들 앞에서 지안 씨를 챙기고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면 지안 씨도 분명 형을 끔찍하게 사랑하게 될 거예
“네? 그 제안을 왜 저한테 하는 거예요? 전 연예인이 아닌데요.”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직설적으로 물었다.많은 유명 브랜드 회사에선 유명 연예인을 엠버서더로 고용했다. 또는 인기가 많은 인플루언서를 찾아가는 일이 과반수였고 일반인을 찾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지안 씨의 이미지가 저희 세움이 찾는 이미지와 아주 잘 맞거든요.”고청민이 나긋하고 다정하게 설명했다.“지난번 전시회 촬영팀이 현장 사진을 많이 찍었거든요. 그중에 지안 씨가 찍힌 사진도 있었는데, 저희 디자이너가 지안 씨 사진을 보고 엄청 놀라워하셨거든요. 얼른 지안 씨를 찍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갑자기 쏟아지는 칭찬에 심지안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지금 엄청 유명한 신다온 디자이너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신다온은 패션 업계에서 거물급 인물이었다. 사람이 다소 괴팍하고 보는 안목이 확고해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모델은 거의 없었다.패션 업계에서 이런 말까지 떠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신다온의 눈에 들면, 그건 하늘이 기회를 내려준 것이랑 마찬가지라고.“네, 맞아요. 오디션에 통과하시면 바로 계약하게 될 거예요. 계약 기간은 3년, 총 400억을 받게 될 거고 매년 주얼리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물로 받게 될 거예요.”심지안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오디션은 시도해 볼 수는 있지만 전 일반인이라 그렇게 많은 광고비가 필요 없어요.”솔직한 그녀의 반응에 고청민이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지안 씨, 자신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신다온 디자이너님의 안목은 믿으셔야죠. 안 그래요?”생각에 잠긴 듯한 심지안이 답했다.“그건 그렇겠네요.”이미 이번 달에 연속 세 번이나 휴가를 신청했기에 오디션 시간을 금요일 저녁으로 맞출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청민이 바로 그녀의 카톡에 친구 신청을 보내왔다.심지안은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오디션에 통과하게 된다면 그녀가 성연신에게 빌린 돈을 한꺼번에 전부 갚을 수 있었다!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업무량
“그거라면 당연하지. 너에게 회사 지분 10%를 주마.”“그걸로는 모자라요. 20%를 주세요.”심전웅의 안색이 굳어졌다.“20%는 너무 많다.”“어차피 나중에 저한테 다 주실 거잖아요. 괜히 심연아가 회사를 넘보고 있으면 안 되죠.”그녀는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상한 건, 20년 넘게 속고 살았던 심전웅은 심지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다.은옥매는 절대 쉽게 포기하고 물러날 사람은 아니었다. 나중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할 것이었다.“그렇긴 하구나. 다만 이미 일부분의 지분이 그 여자의 명의로 되어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심지안의 두 눈이 순간 반짝였다.“그래요. 그러면 전 일단 보광 그룹을 다니고 있을게요. 여기에 제 인맥이 많으니까 나중에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아 참, 아빠가 비록 은옥매 아주머니랑 이혼을 하셨지만 그래도 심연아와 부녀 사이를 단절한다는 소송을 제기하시는 걸 추천해요. 그래야 나중에 심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지 못하 거든요.”“그래, 알았다. 내가 내일 당장 소송을 제기하마. 절대 한 푼이라도 넘겨주지 않을 거다!”심전웅은 이미 은옥매를 뼛속까지 증오하고 있었다. 여하간에 은옥매는 불륜을 저지르고 그를 20여 년 동안 속였으니까.심전웅은 심지안을 다시 심씨 가문으로 데려갈 심산이었지만 심지안은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자신을 박대하지 않은 심지안의 태도에 심전웅은 별생각 없이 가버렸다.이미 버스가 끊겨버린 이 시간, 심지안은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생각했다. 순간, 뒤에서 자동차 불빛이 그녀를 향해 비추고 있었고 그녀의 주위가 환해졌다.성연신이 차에 기대 비스듬히 서 있었다. 이미 퇴근한 줄 알았던 성연신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드넓은 어깨에 깔끔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슈트 핏, 그의 모습은 마치 톱 모델 같았고 아주 품격이 있어 보였다.“그렇게 번거롭게 지분을 자신의 명의로 바꿀 필요 없어요.”심지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녀는 성연신이
임시연의 안색엔 큰 변화가 없었다. 연한 화장을 하고 온 그녀의 볼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고 젓가락을 든 오른손은 살짝 창백해져 있었다.손남영이 분위기를 띄우며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세상에, 그 딱딱하던 철벽에 꽃이 폈나 봐요. 그 연신 형이 지금 음식을 지안 씨에게 다 집어주는 걸 보니.”심지안은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식사를 마치고 성연신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임시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어제 산책을 하다 우연히 강아지를 잃어버린 곳에서 펫 간식을 발견했어. 아마 누군가가 일부러 그곳에 간식을 흘려놓은 것 같아. 오레오랑 원이는 지안 씨 말대로 누군가가 훔쳐 가려고 했던 거야.”심지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옆에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이내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오늘 이렇게 나랑 임시연 씨까지 불러놓고 설마 그 일만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임시연의 손이 살짝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잔뜩 죄책감이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아... 그럼 우리가 지안 씨를 오해하고 있었네.”“그래.”“미안해요, 지안 씨. 그땐 너무 급해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어요. 제가 연신이 대신 사과할게요.”임시연이 심지안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심지안은 뒤끝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직하게 답했다.“괜찮아요. 오해가 풀렸으면 됐어요.”손남영이 술 대신 차를 임시연의 잔에 따라주면서 말했다.“앞으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저한테 말하면 돼요. 우린 모두 친구잖아요. 강아지를 돌봐준다든지 모든 부탁해도 돼요. 연신 형도 이미 결혼했고 할아버지께서도 계속 손주 타령을 하시니 우리도 두 사람에게 둘만의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어요?”임시연은 그에게 시선을 확 돌리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그러니까 남영 씨 말은 제가 연신이를 방해했다는 건가요?”‘내가 연신이랑 먼저 만나는 동안 심지안은 애초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는데, 왜 심지안이 연신
심지안은 감히 화를 낼 수도, 때릴 수도, 욕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그를 이기지 못할 것이 뻔했으니까.그녀는 성연신을 노려보면서 전혀 위협감이 없는 어투로 말했다.“한 번만 더 때려봐요! 그땐 저도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운전석에 앉아 있던 정욱이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버렸다. 그는 성연신과 심지안의 대화 방식이 참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드디어 그들은 중정원에 도착하게 되었다. 정욱은 바로 차에서 내려 떠나버렸다. 그러나 성연신은 내리지 않았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심지안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다 그제야 문제점을 의식하게 되었다.“오늘 임시연 씨를 부른 게 설마 강아지 도둑에 대한 일만 알려주려고 했던 거예요?”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오해하고 있었으니까 오해를 풀어줘야죠.”원이와 오레오 실종 사건에 대해 그는 절대 허술하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주변 CCTV를 모아 일일이 확인하면서 심지안의 말과 일치하는지 확인해보았다.그는 눈에 보이는 증거를 믿는 사람이었다. 강아지 두 마리였기에 그는 당연히 업무를 논의하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그의 말에 심지안은 다소 억울한 어투로 말했다.“쳇,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는 내가 아닌 임시연 씨 말을 믿고 있었다는 거잖아요.”“그런 거 아니에요.”“아니긴요!”성연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이를 부득 갈았다.“다음번에는 안 그럴 거예요.”“그러니까 결국 임시연 씨를 먼저 믿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신 거네요!!!”“정말로 그렇게 물고 늘어질 생각이에요?”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심지안의 엉덩이로 향했고 조금 전의 손의 감촉을 다시 회억하는 듯했다.방금 그녀의 엉덩이를 내리친 타격감은 아주 좋았다.심지안은 화들짝 놀라며 바로 엉덩이를 감쌌다. 그러고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장난인 거 아시죠?”성연신은 그제야 만족한 듯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샤워를 마친 심지안은 방으로 돌아가 잘 준비를 하
“넌 진작 그 주식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잖아! 연기 하지 마!”“그럼 넌, 여기 온 목적이 주식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심연아는 턱을 높게 치켜들고 비웃음 치며 말했다.“난 이까짓 돈에 전혀 관심 없어! 너같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애나 이런 걸 좋아하겠지!”심지안은 입꼬리 작게 끌어올리고 심연아가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심연아는 심지안이 말을 하지 않자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얘기했다. “난 심전웅이랑 연을 끊을 거야! 괜히 나중에 내가 잘됐을 때 다시 날 찾아오면 어떡해!”심전웅이 없어도 그녀에게는 양아버지 격인 남진영이 있었다. 남진영은 심전웅보다 더 권력이 센 사람이었다. 곧 그녀를 데리고 제경으로 가서 발전할 것이다. 금관성을 떠나기 전에 그녀는 이 몹쓸 년을 처리하고 싶었다.“이미 법적으로는 아무런 사이 아니잖아?”“그걸로는 모자라. 계약서를 써야 해.”그녀는 손에 든 서류를 흔들며 오만하게 웃고는 위로 올라갔다. 심지안은 심연아의 뒷모습을 보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도대체 심연아의 무슨 모습을 보고 남진영이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인지.설마 심연아를 후계자로 키우려는 것은 아니겠지?심지안은 회사에서 나오기도 전에 위층에서 들려오는 심전웅의 화난 목소리를 들었다. 생각해 보니 역시 웃겼다. 한 집안사람들이 다 이기적이니, 서로 화낼 것이 뭐가 있다고. ...보광으로 돌아온 심지안은 또 성연신에게 커피를 타 주러 가는 김윤아를 만났다. 그녀가 휴가를 보내고 온 후로부터, 김윤아는 매일 이렇게 행동했다. 커피 한잔을 들고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 처음 한, 두 번은 심지안도 믿을 뻔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여러 번 반복되자 성연신이 김윤아에게 마음이 있거나, 아니면 김윤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심지안은 눈을 깜빡이며 테이블에서 기획안 하나를 집어 들고 김윤아를 보며 얘기했다.“같이 갈래요? 마침 성 대표님께 바칠 기획안이 있어서요.”김윤아는 하마터면 손 안의 커피를 그대로
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렸다.“커피를 버려요? 성 대표님께 커피를 전달해 드린다면서요?”정욱은 의문스럽다는 듯 대답했다.“성 대표님은 이미 오랫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만?”그는 요즘 계속 국화차를 마시고 있었다. 심지안과 싸워서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심지안과 화해해서 또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하지만 김윤아 씨 말로는 매일 성 대표님께 커피를 가져다드리면 성 대표님이 받았다고 하던데요?”“아닙니다. 딱 한 번 커피를 드리러 왔는데 제가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커피를 들고 화장실에 와서 버리더라고요.”그러자 심지안은 모든 일의 자초지종을 알 것 같았다. 김윤아의 얼굴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더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어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김윤아는 성연신이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성연신은 자연스럽게 심지안의 허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한두 번 해본 행동이 아니었다. 손에 쥔 커피잔이 뭉개질 정도로 손에 힘을 꽉 준 김윤아가 이를 꽉 깨물었다. 역시 심지안과 성 대표는 스폰관계였다!김윤아는 바로 그 여자의 전화번호를 눌러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본인보다 잘난 것을 싫어한다. ...심지안은 곰곰이 생각했다. 설마 성연신은 애초에 김윤아라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녀는 바로 물었다. “혹시 우리 기획팀에 새로 온 김윤아라고 기억해요?”성연신은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글쎄요.”심지안은 그제야 깨달았다. 역시나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김윤아는 왜 그렇게 했던 것일까. 그저 심지안을 화나게 하기 위해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요?”“김윤아 씨가 우리 사이를 알고 있는 것 같아요.”성연신은 소파에 앉아 두 다리를 테이블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창밖의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췄는데 마치 조물주가 열심히 깎아낸 조각상의 얼굴 같았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게 뭐 어때서요. 마침 바라던
“헉...”장미정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숨 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하늘에 맹세하건대, 그저 찌라시가 재밌었을 뿐이지 심지안에 대한 악의는 전혀 없었다. 스폰 받는다는 일은 깨끗하지 못한 것이지만 성연신의 스폰을 받는다는 건 오히려 즐거울 일이다! “크흠... 팀장님, 미안해요. 한 번만 용서해 줘요. 전 집에 애도 있고 도박꾼 남편도 있어서... 그저 장난 삼아 한 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신경이 쓰이는데요.”장미정은 바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제발요... 제가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요... 그저 지나가는 개가 짖었다 생각해 주세요.”그러자 심지안이 되물었다.“다른 사람이 미정 씨를 그렇게 얘기하면 그저 지나가는 개가 짖었다고 생각할 건가요?”그녀가 주눅이 든 채 대답했다.“아니요...”“그럼 제 질문에 대답해 주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게요.”“뭐든지 물어보세요!”“성 대표님이 제 허리를 감쌌다는 건 어디서 들은 얘기예요?”장미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김윤아 씨요!”김윤아는 어차피 신입이니. 화살이 그녀에게로 돌아갔다.표정이 살짝 변한 김윤아가 불쌍한 척 말했다.“왜요? 제가 본 게 맞는데요. 사실을 말한 것 뿐인데 설마 성 대표님을 등에 업었다고 절 위협하는 건 아니죠?”심지안은 가볍게 웃으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맞는데요? 난 원래 그런 사람이라. 한 번만 더 떠벌리고 다니면 성 대표님한테 얘기해서 해고하라고 할 겁니다.”놀란 김윤아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심지안이 이렇게 인정할 줄 몰랐던 그녀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당신의 그런 태도가 우리 금융업계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팀장님은 수치심도 없어요?”“윤아 씨는요? 수치심, 있어요?”미소를 유지하던 심지안이 정색하며 차갑게 물었다.“왜 자꾸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드려요?”“제가 뭘 건드렸다고요?! 팀장님은 그저 머리부터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