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아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리고 겨우 미소를 유지하며 얘기했다.“지안아, 아무리 질투가 나도 그렇게 남을 비하하면...”“이건 비하도 아까운 수준인데.”옆의 동료가 심지안의 옷을 살짝 당기며 말했다.“지안 씨, 범수 씨 안티에요...?”심지안은 차갑게 웃으며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안티를 하기에도 시간이 아까울 정도예요.”“...”“...”“...”“엔터 회사 이사장이라며. 왜 이런 저급한 사람이랑 사귀어? 적어도 대상을 받은 사람이랑 사귀어야 하지 않겠어?”심연아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듣다 보니 맞는 말 같았다.범수는 연예계에서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심연아의 위치로는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욕을 먹고도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심연아는 역겨움이 밀려왔다.심지안은 심연아가 입을 열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동료를 데리고 떠났다. 이로써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심연아는 화가 나 발만 동동 구르며 범수를 노려보았다. 범수는 그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어떻게 얘기할 지 몰라서...”“쓸데없는 사람같으니라고...”범수는 시선을 내리깔고 감히 입을 열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래서 심연아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때 성연신은 마침 주 대표와 비즈니스에 관해 회의를 열고 와 사무실로 가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심연아는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 또 인파 속에 숨어있는 파파라치를 보고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때리던 모습을 떠올리니 조금 무서워졌다. 저번에 심연아와 함께 왔던 연예인은 뼈가 부러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공장소이니 성연신 같은 사람들은 회사 이미지를 우선시할 것이다. 성연신이 심지안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도 직원을 감싸줄 것인지 궁금했다. 생각을 마친 심연아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가 그대로 성연신에게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 성 대표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키가 큰 성연신은 한 손을
“당신!”심연아는 들키던 구석을 찔려 오히려 화를 냈다. “이 회사에서는 직원을 이렇게 교육하는 겁니까?!”성연신은 이제 눈길도 주지 않았다. 홀에서 촬영하던 사람들을 힐긋 쳐다본 그가 물었다.“이게 뭐야.”정욱은 입을 성연신의 귀에 가까이 대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대여비를 받았으니 계약을 파기하면 세 배의 위약금을 물어야...”성연신은 덤덤하게 물었다.“위약금을 낼 돈이 없는 건가?”“알겠습니다, 성 대표님.”명령을 한 성연신은 주 대표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정욱은 경호팀을 불러와 사람들을 쫓아냈다.감독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우리는 장소 대여비를 분명 냈습니다! 이건 계약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정욱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우리 회사에서 계약서에 따라 위약금을 돌려드릴 겁니다.”“하지만 저희는 아직 촬영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배우와 스태프 다 힘들게 일하는데 다들 배려 좀 해주세요, 안 되겠습니까?”정욱은 정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얘기했다. “저도 배려하고 싶지만 우리 성 대표님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요.”얼굴이 파랗게 질린 감독은 바로 고개를 돌려 범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는 심연아를 보았다. 화가 난 그는 바로 남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예계에 오랫동안 있은 감독은 겨우 이곳까지 올라온 심연아보다 지위가 높고 인맥도 많았다.감독의 전화를 받은 남진영은 마침 고청민과 함께 있었다.고청민은 그에게 전화를 받으라고 손짓했다. 남진영은 감독이 걸어온 전화를 보고 일과 관련된 전화인 줄 알고 바로 스피커를 켰다.감독은 꽤 담담한 말투로 꾸밈없이 사건의 경과를 한번 얘기했다. 하지만 그 속에 불만이 꾹꾹 담겨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남 대표님, 오늘 촬영때문에 얼마나 많은 스태프가 모였는데요. 저 혼자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돈은 둘째치고 당장 장소를 바꿔야 하는 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각에 적당한 장소를 찾을 수도 없으니 난감할 따름입니다.”남진영과 감독은 여러 번
남진영은 말문이 막혔다.“그러니까 내가 연아를 잘 교육시키고 다시 만남을 주선해라고?”확실히 두 어르신을 걱정시키면 안 됐다. “아저씨가 고생해 주셔야죠.”고청민은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뻗어 구겨진 흰 와의셔츠의 흔적을 없애고 떠나려고 했다.사무실 입구까지 걸어간 고청민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남진영을 바라보았다.“금관성으로 오는 길에 유진 아주머니랑 조금 닮은 여자를 봤어요.”남진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길에도 닮은 사람이 수두룩해.”“그러네요.”잠시 멈칫한 그가 또 말을 이어갔다. “결혼은 잠시 없던 일로 하죠. 전 이제 스무 살이고 심연아는 저보다 세 살 많은 데다 남자친구까지 있는 것 같은데.”남진영은 범수를 생각하니 또 머리가 아팠다.“그래, 그래. 네가 성씨 어르신과 잘 얘기하면 된다.”남진영도 그저 해본 소리일 뿐이었다. 진심으로 그들을 붙여줄 생각은 없었다.고청민은 온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고집이 세고 줏대가 있는 편이었다. 고청민을 떠나보낸 남진영이 그저 무의식 간에 휴대폰을 보았다. 그러자 심연아가 범수를 찼다는 내용의 기사가 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심연아는 정말 엄마인 성유진을 하나도 닮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하지만 남진영은 갑자기 감독이 말한 심연아의 이복 자매를 떠올렸다. 이 아이를 만나러 가봐야 했다. 성유진의 자식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생각이었다....7월의 금관성은 비가 많이 올 때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심지안은 카페에 앉아 조용히 범수를 기다리고 있었다.5분 후,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얼굴을 꽁꽁 가린 범수가 걸어들어왔다. 자리에 앉은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어요.”3일 전, 심연아가 그와 헤어졌다고 얘기한 후, 이상하게도 범수의 인기가 많아졌다. 나쁘지 않은 배역의 드라마들이 들어와 계속 바삐 돌아 채다가 이제야 시간을 낸 것이었다.“괜찮아요. 우리의
정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의 차 판을 심지안에게 건네주었다.“국화차 두 잔을 우렸습니다. 피로회복도 되고 두통도 완화할 수 있습니다.”고개를 작게 끄덕인 심지안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손을 들어 노크했다.“들어와.”성연신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가 있는 이상, 무서울 건 없다.문을 열고 들어간 심지안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성연신을 보았다. 하늘색 넥타이를 한 그는 훨씬 젊어 보였다. 그는 심지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남진영은 심지안을 쳐다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주시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닮았어... 진짜 닮았어...”두 사람은 외모가 반 정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몸에서 흐르는 기품이 거의 똑 닮았다. 성유진이 돌아갔을 때 지금의 심지안보다 몇 살만 더 많았을 것이다. 남진영의 마음속에서, 성유진은 항상 젊고 예쁜 모습이었다. 딱 지금 눈앞의 여자처럼 젊은 에너지가 넘쳐나는 모습 말이다.“아저씨, 제 얼굴에 뭐라도 있나요...”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진영을 본 심지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 무섭기도 했고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다.실례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남진영은 시선을 돌리고 마른기침을 했다.“죄송합니다. 돌아간 친구가 생각나서.”심지안은 부드러운 그의 태도를 보고 남진영이 아직 본인이 심지안인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성 대표님, 오늘 내가 온 목적은 심지안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계속 직원을 감싸면서 못 만나게 한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알려 드리고 싶네요. 앞으로 심지안이 계속 연아를 괴롭힌다면 그때는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남진영은 화제를 돌려 준비해 온 말을 마쳤다. 이건 마치 아이들 싸움이 부모님 싸움으로 번지는 것 같았다.“...”‘아저씨가 찾는 사람, 바로 눈앞에 있는데요.”눈도 안 좋고 마음씨도 안 좋은 사람인가. 항상 심연아가 먼저 시비를 거는 것인데 누가 누구를 괴롭히
성연신은 심지안을 꽉 끌어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찾아보면 알 거 아니에요.”“알겠어요... 근데 이건 좀 풀어 주면 안 돼요? 숨 막혀요.”숨이 막혔던 심지안은 버둥거리며 말했다.“그냥은 싫어요. 벗어나고 싶으면 뽀뽀해 줘요.”심지안은 성연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더니 짧게 뽀뽀했다. 그러고는 해탈한 표정으로 머리를 돌렸다.“이제 됐죠?”성연신은 촉촉해진 입술의 감촉을 느끼며 깊은 눈으로 심지안을 바라보다 머리를 숙여 다시 한번 입술을 겹쳤다. 얼마 후 심지안이 발그레한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사무실에서 뭐 하는 거예요...”“그게 문제였던 거예요? 그러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계속 해요.”성연신은 뜨거운 눈빛으로 심지안을 바라봤다. 도무지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심지안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을 피하기에 급했다.“우리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급하게 굴어요.”“그렇다고 사귀는 마당에 참고 있을 건 없잖아요?”“흥,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열정이네요.”“그러니까 지금 기회를 주는 거잖아요. 소중하게 여기고 지난번처럼 섹시한 잠옷 치마를 꺼내 입어야죠.”심지안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애써 당당한 척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그 얘기는 금지에요!”성연신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기분 좋은 듯 피식 웃었다.“아무튼 저녁을 기대하고 있을게요.”심지안은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다. 행동파 앞에서 계속 입을 놀려봤자 손해만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오후, 심지안은 작은 회의를 열어 시장 조사와 더불어 새로운 방안을 연구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동료들을 모으고 있을 때 실종된 지 한참 된 경은이 갑자기 나타났다.경은은 아주 오랫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인사팀 직원 말로는 사직서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본인이 직접 서면으로 제출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직접 제출하지 않으면 그녀가 한 짓을 상업계에 퍼뜨
심지안은 바로 이유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임시연이 만나자고 했던 시간은 퇴근 시간 한 시간 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별로 시간 낭비를 하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빌딩 밖에서 임시연은 우산을 펼친 채 심지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병원에서 바로 나왔는지 스웨터 안에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요.”“본론이나 말해요.”“제가 요즘 치료받으며 오레오를 반려동물 호텔에 맡겼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요. 연신이랑 같이 잠깐 돌봐 주면 안 돼요?”심지안은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다. 오레오를 중정원으로 데려가는 것은 임시연이 성연신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절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찾아가지 않을게요. 그리고 첫 단계 치료가 끝나자마자 바로 데리러 갈게요.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할 생각은 없으니까 제발 부탁해요.”심지안은 임시연의 진지한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거절해야 한다고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직감을 믿기로 했다.“죄송하지만...”이때 임시연이 갑자기 심지안을 뒤로 확 밀쳤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심지안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눈앞에는 광기 서린 표정으로 임시연의 팔뚝에 칼을 꽂은 경은이 보였다.첫 번째 시도가 실패했는데도 경은은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녀는 칼을 뽑아 들고 다시 심지안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히 심지안이 빠릿빠릿한 데다가 회사 경비원이 근처에 있어서 두 번째 시도도 성공하지는 못했다.“이게 너 때문이야! 네가 내 인생을 망쳤다고! 너만 없었으면 나는 진작 기획팀 팀장이 됐어!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 하지만 이제는 보광 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도 나를 채용하지 않으려고 해. 우리 한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
“진짜 우연이에요. 제가 무슨 변태도 아니고.”진현수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제 친구가 이 근처에 살아요. 친구 집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도 할 겸 산책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는 걸 보면 저희가 인연이긴 한가 봐요.”심지안은 말없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쯤에서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이때 길가의 화단에서 새끼 고양이가 뛰어나왔다. 그러자 오레오와 원이가 전부 흥분한 듯 꼬리를 흔들며 따라가려고 했다. 강아지 두 마리의 힘을 이기지 못한 심지안은 몸이 앞으로 확 쏠려 버렸다.“괜찮아요?”진현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행히 그가 잡아 준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도움을 받으며 겨우 중심을 잡은 심지안은 그의 손을 밀어내며 대답했다.“네, 괜찮아요. 덕분에 넘어지지 않았네요.”“별말씀을요.”심지안은 원이와 오레오의 엉덩이를 툭 쳤다. 그러자 오레오는 그녀의 뜻을 알아챈 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귀를 내렸다. 반대로 원이는 그녀가 놀아주려는 줄 알고 계속 제자리를 뱅뱅 돌았다.심지안은 머리를 절레절레 젓더니 머리를 돌리며 진현수에게 말했다.“저는 산책이 끝나서 이만 돌아가 볼게요.”“강아지들은 지안 씨가 키우는 거예요?”“한 마리는 연신 씨 강아지고, 다른 한 마리는 친구 강아지예요.”“중형견 두 마리를 혼자 돌보고 있는 거예요? 집에 도우미는요?”“우리 집에는 도우미가 없어요.”진현수는 잠깐 멈칫하더니 속상하다는 눈빛으로 심지안을 바라보며 말했다.“설마 재판에서 성연신 씨한테 400억 빚진 일 때문에 도우미 일을 대신하고 있는 건 아니죠?”이 말을 들은 심지안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400억 일은 어떻게 알았어요?”“아마 업계에 모르는 변호사가 없을걸요.”“아... 처음에는 400억 때문에 시작한 게 맞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저 연신 씨랑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어요.”“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다 이해해요.”진현수는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더니 심지
심지안은 찔리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뒤늦게 성연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발견하고 콧방귀를 뀌며 투덜거렸다.“네네~ 마음대로 생각해요.”“하하하, 삐졌어요?”말을 마치자마자 성연신은 조금 전 정욱이 전화했던 것이 떠올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남진영 씨와 은옥매 씨는 모르는 사이래요.”“그렇다면 설마 진심으로 심연아가 마음에든 걸까요?”심지안은 입술을 깨물었다.나이를 먹고도 아이가 없어서 입양을 선택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비록 심연아는 똑똑한 편이 아니었지만, 잔머리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어쩌면 남진영은 그녀처럼 계략 있는 아이를 좋아할지도 몰랐다.“비록 이 길은 막혔지만, 제가 또 다른 길을 찾았어요.”“다른 길이요?”심지안은 초롱초롱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연신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시간을 끌려는 듯 느릿느릿 말했다.“오늘 지안 씨가 하는 걸 봐서 알려 줄지 말지 결정할게요.”심지안은 귀까지 빨개진 채로 사레까지 들려서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연신은 태연하게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그렇게까지 놀랄 건 없고요. 낮에 회사에서 얘기 다 끝났잖아요.”“저 샤워하러 갈게요.”심지안은 한참 기침하다가 겨우 이 한마디를 짜내고 욕실을 향해 달려갔다. 기분이 좋았던 성연신은 책 한 권을 꺼내서 대충 펼쳐 보며 기다리기 시작했다.얼마 후 심지안이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성연신의 앞으로 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잠옷 못 찾았어요. 오늘은... 안 입으면 안 돼요?”성연신은 머리를 들었다. 심지안의 우윳빛 피부와 수건에 가려진 몸매가 옅은 바디워시의 향기와 함께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심지안을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귓불에 뽀뽀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행동으로 대신해.”심지안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낯선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성연신에게 반응해 주며 그의 허리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