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루안은 이번에 조롱을 당한 것과 같았다. 이는 진루안에게 있어서 크나큰 치욕이었다.진루안이 룸을 떠나는 순간, 표정이 이미 극도로 일그러졌다. ‘원래는 뚱보 아저씨 가족 때문에, 고 부원장의 딸이 장교로 군부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려고 생각했어.’‘그러나 지금 보니 이미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겠어. 고진양의 배후에 손대평이라는 이 큰 깃발이 있으니, 내가 손을 쓸 필요가 없어.’‘장교 한 명을 군부에 배치하는 것은, 손대평에게 어려운 일도 아닐 거야. 그의 증조부가 바로 건국 당시의 대원수 중의 한 명이니, 군부 안에 많은 연줄이 있겠지.’진루안이 먼저 청류호텔을 나섰고, 마영삼 일행이 그 뒤를 이었다. 그들은 진루안의 걸음걸이가 이렇게 빠른 것을 보고, 지금 그가 극도로 분노했다는 것을 알았다.그들 역시 이렇게 일을 처리한 고진양에게 엄청나게 분노했다. 그는 직접 동강시에 와서 진루안을 초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진루안이 왔을 때 손대평이 있었는데, 특히 진루안과 손대평 사이에는 이미 증오와 원한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만났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고진양은 그의 딸이 군부에 들어가는 걸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손대평을 선택했다.이렇게 되자 진루안에게는 정말 난감함만 남았다.“좋아, 정말 좋아.”진루안은 안색이 아주 일그러진 채 롤스로이스 스웹테일에 올랐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고진양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는데, 그가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자신이 소인이 되더라도 할 수 없다.휴대전화를 꺼낸 진루안은 군부 사령부의 김한주 사령관의 핸드폰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고진양의 이 일에 대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자신이 이 일을 처리하게 부탁하지 않았으니, 진루안 자신은 이 일을 성사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손대평이든 손씨 가문의 다른 사람이든 모두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지금은 새로운 시대의 용국
[내가 말하지만, 군부의 비행기와 군함은 너에게 줄 수 없어. 너희 임페리얼은 이미 군 사령부 하나를 꾸릴 만큼 좋은 물건들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잖아. 다시 감히 나에게 물건을 요구해도, 나는 승낙하지 않을 거야.]이렇게 말한 김한주는 즉시 경계하기 시작했다.이번에 누가 사정을 하든 그는 절대 마지노선을 잘 지켜야 했다. ‘절대 진루안에게 그렇게 많은 좋은 물건들을 주어서는 안 돼. 그것은 모두 선진적인 장비야. 어떤 장비는 군부조차 아주 적게 보유하고 있는데, 임페리얼에는 모두 갖추어져 있기도 해.’“하하, 아저씨, 괜히 의심하고 고민하지 마세요. 저는 무기를 달라는 게 아니예요. 제가 오늘 전화한 건 단지 도움을 청할 일이 있어서예요.”진루안은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김한주의 마음속에는 내가 그렇게 안 좋은 걸까?’그 뒤에 진루안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고진양의 일을 바로 김한주에게 알려주었고, 손씨 가문과 손대평에 대해서도 말했다.“아저씨가 좀 도와주세요. 고진양의 딸이 군부에 들어가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마시고, 특히 손씨 집안과의 관계를 통해 들어오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말아주세요.”이렇게 말한 진루안의 안색은 아주 굳어져 있었고, 말투에는 예리한 살기가 느껴졌다.이 말을 들은 김한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너 자신이 그녀를 돕는 건 괜찮고, 다른 사람이 그녀를 도와주면 안 된다? 진루안, 너 언제부터 이렇게 억지를 부리게 된 거야?]“허허, 아저씨, 이 세상에 정말 공평과 도리가 있나요? 모두 실력 위주일 뿐이예요.”“아저씨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군부의 총사령관을 하셨으니, 일찌감치 이 비결을 알고 계셨지요?” 진루안은 미소를 지으면서 김한주에게 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김한주는 전화기를 든 채 잠시 침묵했다. 고개를 가로젓던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로 말했다.[됐어, 이 일은 내가 지켜볼게, 또 다른 일이 있어? 일이 없으면 끊을게.]“네,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꺼져, 이 자식아!]“하하.
“그런데, 방금, 방금 누구한테 전화하셨어요?” 간담이 서늘해진 마영삼은 스웹테일의 차창에 엎드린 채 조심스럽게 진루안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황지우와 나석기도 모두 놀라서 표정이 좀 정상이 아니었다. 모두 진루안이 도대체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그들이 아는 그 김한주인지에 관심을 가졌다.마영삼이 누구에게 전화했는지 궁금해하자, 진루안은 마영삼에게 웃으며 말했다.“바로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예요. 군부의 원수인 김한주예요.”“정말, 정말 그분입니까?” 진루안의 대답을 들은 마영삼은 완전히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진루안이 그 분에게 전화를 할 정도로 대단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원래 이미 오체투지할 정도로 진루안에게 탄복했고, 진루안을 극히 어려워했다. 그런데, 지금 진루안의 더 큰 인맥 파워를 보자,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무서워졌다.이런 사람을 상대로 작은 동강시의 지하세력의 보스에 불과한 그가, 이런 사람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의 지위에서는, 진루안이 건성 정사당의 그 보스들과 아는 사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를 대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더욱 무서운 일면을 알게 되자, 그는 완전히 두려워진 것이다.진루안은 이들이 모두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왜요? 많이 놀랐어요? 내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너무 사실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진루안은 흥미롭게 그들에게 물었다. 마영삼과 황지우, 나석기는 정말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예. 좀 사실 같지가 않습니다. 결국 김한주가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으니, 지금 루안 도련님도 높은 지위에 있겠지요.”마영삼은 쓴웃음을 지으며 진루안을 향해 대답했다. 그의 마음속은 놀라운 변화가 생겼고, 진루안을 더욱 공손하게 대했다.“차홍양을 아십니까?” 진루안은 마영삼에게 계속 물었다.마영삼은 차홍양이라는 이름을
이 점을 깨달은 마영삼과 두 부하는 평온한 마음을 되찾았다.“우리도 가자.”두 사람에게 말한 마영삼은 그의 벤틀리 뒷자리에 앉았다. 나석기가 조수석에 앉았고, 황지우가 운전하는 차는 곧 야경 속으로 사라졌다.진루안과 세 사람이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영삼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면, 이 고 부원장과 손대평의 대화는, 고진양이 잘못된 결정을 했고 잘못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결정이 좀 경솔한 거 아니야?”3호 룸의 소파에 앉아 있던 손대평은,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고진양에게 물었다.고진양은 단호하고 확고한 표정으로 손대평을 향해 말했다.“손 선생님,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진루안에 비하면, 당신이야말로 가장 대단한 사람입니다.”“그래? 그렇게 생각해?” 손대평은 고진양이 이렇게 그에게 아부하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손대평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매우 기뻤지만, 진루안에 비하면 확실히 차이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진루안이 감히 차홍양과 같은 인물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와 거의 차이가 없는, 이런 지위의 대신인 차홍양이 결국 진루안에게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차홍양을 죽인 후에도, 진루안은 뜻밖에 어떤 엄격한 징벌도 받지 않았다. 이는 손대평으로 하여금 진루안이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이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는 반드시 다른 신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홍양을 죽일 수도 없고, 아무런 일도 없을 수가 없었다.“네, 손 선생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고진양은 확고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조금의 망설임과 후회의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그는 지금 이미 손대평이라는 이 큰 나무를 선택했으니 절대 딴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손대평에게 무시당하고 진루안에게 조롱을 당할 수도 있다.마음속으로 생각하던 손대평은, 고진양이 자신을 이렇게 믿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은 그래도 상쾌했지만, 여전히 무거운 얼굴로 고진양을 향해 말했다.“보아하니 너는 나를 정
“그래, 내가 지금 도와줄게.” 손대평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고진양의 웃는 소리에 아주 만족했다. 그리고 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바로 용국 군부 사령부의 3급 장군인 자신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벨이 한참 울린 후에 마침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는 졸음이 배어 있었는데 잠을 자고 있다가 깬 것이 분명했다.[대평아, 이렇게 늦었는데 나한테 전화까지 하고, 무슨 일이야?] 남자는 나른한 목소리로 손대평에게 물었다.손대평은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친구야 미안해. 나에게 한 가지 일이 있는데, 네가 나를 도와줘야겠어.”[말해봐, 무슨 일이야.] 남자는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투에서는 약간의 짜증이 느껴졌다. 이 짜증이 손대평 자신을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잠을 자는데 깨웠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손대평도 그렇게 많이 상관하지 않고, 상대방이 처리할 수 있도록 바로 고진양의 딸 고소리의 이 일을 말했다.손대평이 말을 마치자 상대편의 남자는 갑자기 침묵하더니, 심지어 30초가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는 손대평을 다소 의아하게 만들었다. 만약 맞은편에서 숨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전화가 끊긴 줄 알았을 것이다.“친구야, 왜 그래?” 손대평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맞은편 남자는 망설이다가 그제서야 대답했다.[대평아, 요즘 관리가 아주 타이트해서 이 일은 할 수가 없어. 너…… 다른 사람을 찾아봐.]“여보세요, 친구야…….”뚜뚜!손대평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상대편에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난처해진 손대평은 바로 고진양을 보고 말했다.“방금 자다가 전화를 받아서 아마 흐리멍덩한 모양이야. 내가 다른 사람을 찾아 볼게.”“조급해하지 마, 조급해하지 마.”손대평은 조급해하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이 좀 조급해졌다.고진양은 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계속 한쪽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손대평은 계속 야전부대의 장군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대평이 걸었던 거의 모든 전화는 몇 번이나 전화가 끊겼는지 몰랐다. 그가 부탁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이것은 손대평의 낯빛을 시커멓게 만들었고, 표정은 이미 극도로 일그러졌다. 그는 도대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만약 한 사람이 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있어.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할 수 없단 말이야?’‘아니야, 이 안에는 틀림없이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 가장 친한 친구와 형제들, 심지어 집안의 어른들도 나를 도울 수 없을 거야.’이렇게 생각한 손대평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가르침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지금은 밤 10시가 넘었는데, 이때도 할아버지가 주무셨는지 안 주무셨는지 모르겠어. 만약 안 주무셨다면, 내가 경솔하게 방해를 했으니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어.’‘그러나 지금 이미 체면을 구겼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어. 만약 고진양 앞에서 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더 많이 체면을 구기게 될 거야.’어쩔 수 없이 손대평은 간이 콩알만해진 채,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손대평의 할아버지 손하림은 바로 현재 손씨 가문의 가주다. 손씨 가문은 용국 정사당의 재상 자리를 차지한 가문 중의 하나다. 게다가 손하림의 재상 서열은 아주 높아서, 강조한과 이씨 가문의 가주인 이천상에 비해 약간 높다.손대평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매우 불안했다.전화벨이 오랫동안 울렸고 손대평이 포기하려고 할 때쯤, 손하림이 전화를 받았다. 다만 말투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대평아, 이렇게 늦게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하고, 무슨 일이야?]말투가 아주 냉담했고 기세도 아주 엄해서 손대평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지만 부득불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방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손하림에게 알려주었다.그리고 손대평은 불안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이때 할아버지가 그에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웠다.그러나 어쩔 수 없었
손하림은 셋째 손자의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진루안 그 녀석, 독하구나.][대평아, 이 일은 네가 포기해라. 네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너는 지위가 부족해서, 군부에서 무슨 발언권을 가질 수 없어.][그 고진양에게, 이 일은 우리 손씨 가문에서 할 수 없다고 말해라. 진루안이 그의 딸의 좋은 일을 망쳤으니 진루안을 찾아가라고 해.]손하림은 크게 웃은 후, 무거운 어조로 손대평에게 말했다. 그후에도 손대평에게 불필요한 제시를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손대평은 앞서 그의 전화를 끊은 모든 친구들을 욕할 수 있었지만, 감히 자신의 할아버지를 욕할 수는 없었다.지금 손대평이 아직도 모르겠는가? 이 일이 이렇게 괴이한 것은, 틀림없이 진루안이 손을 댄 것이다.그러나 그는 이 진루안이 뜻밖에도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군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좀 믿기 어려웠다. ‘이렇게 많은 장군과 장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단 말이야?’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고진양을 위해 일을 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 진루안이 뜻밖에도 김한주를 찾아 이 일을 도와달라고 했을 가능성이었다.‘이것도 너무 무서워.’손대평은 이전에는 진루안의 대단함을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 진루안이 무섭다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했다.어쩐지 차씨 가문에서 그렇게 큰 손해를 보고도, 감히 입을 열지 못 하고 묵묵히 삼킬 수밖에 없었고, 복수에 대한 언급은 더더욱 감히 하지 못했다.손대평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뒤, 얼굴이 극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진양을 바라보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부원장, 이 일은 내가 할 수 없겠어. 손씨 가문도 할 수가 없어.”“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가득했다.그는 손대평에 대해 이미 극히 강렬한 불만과 분노를 갖고 있었는데, 다만 철저하게 폭발시키지 못했을 뿐이다.분명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 손대평에 의해 교란된 후 완전히 처리할 수 없
고진양은 이를 깨물면서 진루안의 이름을 오랫동안 매섭게 외쳤다.그러나 고진양이 지금 아무리 분노해도 이런 분노를 발산하기 어려웠다. 특히 진루안을 대할 때, 그는 전혀 발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일은 원래 그가 먼저 잘못했기 때문에, 진루안이 그에게 보복한 걸 탓할 수도 없었다.다만 그는 비록 이러한 이치를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분노했다. 이러한 분노를 마음속에 억누르고 나중에 기회를 찾아 발산하거나, 진루안을 상대할 기회를 찾아서 일격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이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손대평이든 고진양이든, 또는 진루안이든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손대평은 그날 밤에 경도로 돌아갔고, 고진양도 건성의 경주로 돌아갔다.별장에 돌아간 진루안은, 서경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바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이튿날 아침 진루안이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을 때, 이미 일찍 일어난 서경아가 바삐 일하면서 아침식사와 따뜻한 우유를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오늘의 서경아는 유난히 젊고 아름답게 차려입었다. 서경아는 처음으로 진루안 앞에서 이렇게 분홍색 운동복을 입었고, 머리는 세워서 간단하게 접었다.이것이 바로 서경아의 옷차림이다. 오늘은 서화 그룹의 직원들이 관광을 하기 때문에, 서경아의 옷차림도 당연히 이전과 달랐다.“깼어요? 빨리 아침 먹어요. 다 먹으면 바로 갈 거예요.” 서경아는 진루안이 깨어난 것을 보고 웃으면서, 식탁에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먼저 따뜻한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아침을 먹었다.서경아가 만든 아침식사는 비교적 간단했다. 달걀 외에 작은 조각케이크와 흰 쌀죽도 있었다.“어젯밤에 언제 돌아왔어요? 나는 전혀 몰랐어요.” 서경아는 우유를 다 마시고, 미소를 지으면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녀는 본래 진루안이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난 후에야 진루안이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도 진루안을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