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서있던 이용진마저 닭살이 쫙 돋은 채 점점 흥분되기 시작했다.“허허, 강책, 네가 이번에도 기적을 만들 수 있는지 한 번 지켜보지.”이창진은 핸드폰을 꺼내 10분 타이머를 설정한 뒤 정정당당하게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이로써 10분 카운트다운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이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강책과 두루마리 그림 사이에서 오갔고 아무도 아직까지 틀린 글자를 찾아내지 못했다.다들 이렇게 현실적이지 않는 도전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강책은 굴하지 않았다. 그는 특별한 사람으로서 대뇌가 어마어마하게 발달되었기에 그가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대뇌는 계산기처럼 빠르게 돌아갔다.뿐만 아니라 그의 두 눈은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 마냥 두루마리 그림 전체를 머릿속에 넣었고 대뇌에서는 신속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물론 십 분 안에 틀린 글자 하나를 찾는 건 시간 상으로 부족했기에 강책은 모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아주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고 그 방법이 바로 중단 전술이었다.이 중단 전술은 강책이 직접 발명한 전술이다. 그는 평소에 전투나 훈련 과정에서도 이 전술을 자주 사용했다.구체적인 분석 없이 단지 육감으로 느끼는 것이며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곳이라면 그게 바로 틀린 곳일 가능성이 크다.이 전술은 꽤 유용했다. 모든 게 “정상”이라면 육감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않을 것이고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는 건 비정상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잘못된 부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이다.물론 이 전술은 실패할 확률이 크기도 했다. 강책은 평소에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30 퍼센트의 성공률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일단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글자마다 분석하고 틀린 부분을 찾은 게 아니라 두루마리 그림 전체를 눈에 넣어 그 글자들을 하나로 보았다.그는 틀린 글자를 찾는 게 아니라 이상한 낌새를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두루마리 그림 중에 만약 모든 글자가 “卍”
약속한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강책을 쳐다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은 강책이 절대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에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슬퍼했으며 대부분 사람들이 방관자 역할로 의견을 내지 않았다.이창진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강 회장님! 틀린 글자 하나가 어디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강책이 길게 숨을 내뱉었고 자리에서 유유히 일어나 눈을 비비더니 앞에 서있던 이창진을 밀어내고 거대한 두루마리 그림 쪽으로 걸어갔다.몇 걸음 가다가 멈춘 강책은 거대한 그림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그가 가리킨 곳은 두루마리 그림의 왼쪽 구석으로 눈에 띄지도 않고 그냥 스쳐 보내기 쉬운 곳이었다.“유일하게 다른 한 글자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강책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찾았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사람들은 너도나도 핸드폰과 사진기를 꺼내 강책을 찍기 시작했으며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려고 했고 일부 사람들은 안경을 고쳐 쓰며 강책이 가리키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이창진이 고개를 돌려 김호석을 쳐다보았고 겁에 질린 듯한 상대방의 눈빛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강책 저 사람이 설마… 정말…“후…”이창진이 숨을 길게 내뱉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허허, 강 회장님, 잔머리 굴리지 마세요. 아무 곳이나 가리킨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거기 딱 가만히 계세요. 제가 한 번 검사해 볼게요!”이창진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강책은 더욱 잘 보이고 자세히 보이게 하려고 펜으로 그 글자에 표기까지 했으며 이창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강책이 표기한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卐”자가 맞았다! 틀린 글자가 확실했다!이 글자가 바로 그 “배신자”로 절대 틀릴 리가 없었다!강책은 정확하게 10분 안에 불가능한 도전에 성공한 것이다!휘청거리던 이창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현장에는 강책을 향한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기적 과도 같은 장면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강 선생님, 연산의 미래를 위해 이곳에 꼭 남아주십시오!”사람들이 강책을 향한 태도가 180도 변했다. 그를 못 미더워하던 얼굴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아부를 떨며 붙잡기 바빴다.하지만 강책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연산에 꼭 남을 겁니다.”이어서 무대 위에 서있는 장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장 회장님, 오해가 풀렸습니다. 이제 비난은 멈춰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장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무 말없이 코웃음만 치고 자리를 떴다.그는 매우 화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한편, 인파 사이에 섞여 있던 이용진이 욕을 뱉었다.“지랄하네. 장훈, 강책이 이겨서 기분 째질 것 같지? 아닌 척 연기하고 자빠졌네. 너 같은 인간이 제일 꼴 보기 싫어!”그는 강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사리도 있고, 뒤에서는 주지 스님의 존재 덕분에 기적을 만들어냈구나. 그래, 신태열과 소헌도 너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네. 내가 너를 너무 쉽게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부터 각오해야 할 거야.”그리고 그는 자리를 떴다. 강책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이창진을 향해 물었다.“회장의 자리를 다시 내어 드려야 합니까?”이창진은 강책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바닥에서 일어나 몸의 먼지를 털었다.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강책에게 말했다.“회장님은 환생하신 몸입니다. 연산 시를 일으키고, 용맥을 회복시킬 분이 회장 자리에 앉지 못하면 누가 앉겠습니까. 강 회장님, 이런 장난은 하지 마십시오.”그의 태도는 순식간에 돌변했다. 1초 전까지만 해도 강책을 비난했지만 지금은 그에게 존경심을 표했다.줏대 없는 인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강책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도 들으셨을 겁니다. 상인 동맹회의 회장 자리는 여전히 저 강책의 자
회의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이용진 일행은 예상과는 다르게 패배한 채 돌아갔다.이용진은 엄수 집안에 도착하자마자 장훈을 향해 소리쳤다.“용맥이 당신을 연산의 ‘신’으로까지 불리게 해줬는데, 그 작은 일 하나도 처리 못해요?”외부인에게 있어 한없이 높아 보이는 장훈은 이용진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그는 장훈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일말의 자존심조차 지켜 주지 않았다.하지만 장훈은 습관이 된 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오늘 회의만 보셔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강책이 먼저 사리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주지 스님도 그 사람을 도왔습니다. 제 능력 범위를 이미 넘어섰어요. 주지 스님은 연산에서 저와 비슷한 신분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용진씨, 모든 책임을 저한테 떠넘기는 건 부당합니다.”이용진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었다.그는 험악하게 장훈을 바라보았다.“이런 말로 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만약 당신이 강책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일 겁니다. 당장 꺼져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장훈도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용진은 자리에 앉아 차를 따랐다.답답한 마음에 차를 크게 들이켰다.이때, 김호석이 인상을 지은 채 다가왔다.“그런 얼굴로 다가오지 마. 기분도 안 좋은데, 네 그런 표정 보니까 더 기분 나빠.”“방금 전에 신태열 씨께서 전화로 불만을 토로하셨습니다.”이용진이 코웃음을 쳤다.“당연하겠지. 신태열은 강책을 처리하기 위해서 어떠한 대가도 내놓았잖아, 근데 예상했던 결과랑 다르니까 어떻게 기분이 좋겠어?”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김호석에게 말했다.“신태열한테 오늘 일은 작은 사고 때문에 실패했다고 전해.”이용진이 말을 하다가 눈이 번쩍였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무언가를 생각했다.“호석아.”“네, 형님.”“우연 치고는 너무 정확해. ‘미신’으로 강책을 속이려고 했는데, 마침 강책이 사리를 가지고 있었어. 게다가 현장에
장훈이 강책에게 다른 방법으로 신호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장훈이 이상한 행동 같은 거 한 적 없어?”김호석이 고개를 저었다.“없었습니다. 만약 이상한 행동의 조짐이 보였다면 제일 처음으로 보고 드렸을 겁니다. 24시간 동안 곁에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저의 눈을 피해 강책에게 연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아, 장유나와 강책은 여전히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장유나 쪽에서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이용진이 눈을 찌푸렸다.“우리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들한테 이미 확인했어. 나도 장유나를 떠보기도 했지만 전혀 모르는 눈치였어.”그들의 추측대로라면 장훈과 장유나 두 사람 모두 스파이 혐의에서 벗어난다.정말로 우연인 건가.“계속 장훈 감시해.”“알겠습니다. 아니면 장유나도 같이 감시할까요?”이용진이 고개를 저었다.“여자애 한 명을 감시한다고? 게다가 장유나는 장훈의 친딸이야. 그렇게 하면 장훈이 우리한테 복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감시는 하지 말고, 우리 계획이나 행동을 장유나가 알 수 없게 만들어. 그리고 장훈이 장유나 만날 때, 똑바로 감시해.”“네.”한편, 강책과 주지 스님이 자리를 떴다. 이어서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타 자운절로 향했다.차 안.강책이 주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주지 스님, 감사합니다. 오늘 스님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모릅니다.”이용진의 수법은 자칫하면 강책을 함정에 빠뜨릴 뻔했다. 주지 스님은 두 손 모아 공손히 답했다.“아미타불. 오늘 강 선생님을 도운 이유는 나무를 살려 주신 답례를 해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 하늘의 계시가 아니겠습니까.”글쎄, 과연 하늘의 계시 덕분일까.강책이 말했다.“이 모든 건 장 회장님 덕분입니다.”“네?”주지 스님은 강책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장훈 가주는 적의 편이 아니었습니까?”이어서 강책은 자신과 장훈의 사이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염주에 담긴 신호도 간
그들은 식사자리를 끝내고, 작별 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이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다름 아닌 신태열이었다.어린 중이 주지 스님에게 다급하게 뛰어왔다.“주지 스님, 큰일 났습니다. 신태열이라는 사람이 정장을 입은 남자 일행들과 함께 절에 박차고 들어왔습니다! 그 바람에 다른 관광객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주지 스님이 인상을 지은 채로 물었다.“누군가를 때리지는 않았습니까?”어린 중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누군가를 때리지도 않았고, 물건을 향해 발길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빠 보였어요.”아무런 피해가 없다면 경찰을 부를 수 없다. 고작 그들의 등장 때문에 경찰을 불러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주지 스님은 어린 중을 향해 말했다.“그 사람들 어디 있습니까.”이때, 강책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도 같이 가겠습니다.”주지 스님과 강책 일행은 대전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태열이 신상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의 뒤로 보안요원 2명이 서있다.그는 싸우려고 자운절을 찾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신태열 씨, 오랜만입니다.”신태열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고, 스님! 오랜만입니다. 반년만이지요? 제가 너무 바쁜 탓에 주지 스님과의 친분이 얕아진 것 같습니다.”그는 잠시 머뭇거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주지 스님, 듣자하니 스님께 새로운 사부가 생기셨다고요?”주지 스님의 나이와 경력을 생각하면 ‘사부’ 라는 말은 그에게 모욕적이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신태열의 뜻을 알고 있었다.주지 스님이 미소를 짓고 침착함을 보였다.“벌써 그쪽까지 이야기가 돌았군요. 그렇습니다, 오늘 저한테 새로운 사부가 생겼습니다. 신태열 씨도 아시는 분입니다, 강책 선생님입니다.”‘강책’ 이라는 이름에 신태열의 얼굴 근육이 살짝 움직였다. 이때, 강책이 그들에게 다가갔다.“신태열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신태열은 강책을 보기만
가득한 금괴가 부처님을 위한 선물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주지 스님은 그의 행동에 갸우뚱거렸다. 상대방이 돈을 준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태열이 먼저 말을 꺼냈다.“주지 스님, 강책이 자운절에 십억을 기부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 옆에 서게 되시면 더 많은 금액을 기부 받으실 수 있습니다.”신태열은 주지 스님이 돈 때문에 강책을 도왔다고 생각했다.이 세상에 높은 수양을 가진 스님이 어디 있으랴, 그는 강책보다 더 큰 금액으로 주지 스님을 ‘사들일’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는 놓친 게 하나 있었다. 기부 이외에 나무를 고쳐 주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주지 스님은 돈보다는 나무를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해 강책을 도운 것이다.소헌이 떠난 지금, 신태열은 상황 파악을 잘 하지 못했다. 일을 간단하게 생각할 뿐이었다.주지 스님은 허허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신태열 씨가 큰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제가 강 선생님을 도운 건 기부 때문이 아닙니다. 다름 아닌…”“이십억.”주지 스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태열이 값을 올렸다. 마치 경매장을 연상케 했다.주지 스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신태열의 눈에 자신이 속물로 비친다는 느낌이 들었다.“신태열 씨, 적당히 하십시오!”주지 스님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신태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값을 불렀다.“오십억!”“신태열 씨…”“백억!”신태열이 차갑게 말했다.“주지 스님, 백억이 제 최선입니다.”주지 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소 귀에 경 읽기와 다름이 없었다.“신태열 씨, 저는 당신의 돈을 받지 않습니다. 이 금괴도 가져가십시오.”신태열의 안색이 돌변했다. 주먹을 꽉 쥔 모습이 화난 것처럼 보였다.“주지 스님, 후회하시면 안됩니다.”“후회는 하지 않습니다.”“강책의 기부는 받으시고, 제 금괴를 거부하시겠다는 겁니까?”“네, 그렇습니다.”“좋습니다. 주지 스님, 이건 스님
깊은 밤.주지 스님이 침대에 누워 수면을 취하고 있다. 나이와 체력 때문에 금방 잠에 들었다.이때, 젊은 스님 한 명이 주지 스님의 방 안에 들어왔다.그 사람은 주지 스님의 제자, 아현이다. 그들은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면서 주지 스님을 지킨다. 오늘은 아현이 주지 스님을 지키는 날이다.“주지 스님, 차를 가져왔습니다.”아현이 차를 들고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주지 스님은 잠에 들기 전에 항상 차를 마시곤 했다.차는 몸에 있던 나쁜 기운을 없애고, 독을 깨끗하게 씻겨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하지만 그는 차를 마시기도 전에 잠에 들어버리고 말았다. 아현은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차를 올렸다. 그리고 방 안의 불을 껐다.주지 스님의 방 안에는 정상적인 전등 이외에 특별한 ‘전등’이 있다. 촛불이 또 다른 전등의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방 안을 지켜주었다.그리고 아현이 주위를 살피기 시작하더니 촛불 하나를 쓰러뜨렸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커튼에 불이 붙었다.아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스승님, 저를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다 스승님께서 불러온 재앙입니다.”그리고 살포시 문을 닫았다.만약 모든 게 순조롭다면 주지 스님은 오늘 밤 불타는 방안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현장을 조사한다고 해도 아현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결국 주지 스님의 실수로 인한 화재로 일단락될 것이다.아현은 완전범죄를 확신했다. 하지만 암흑 속에서 그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다름 아닌 황금 십이궁의 전갈자리다.암흑의 남자라고 불리는 전갈자리는 항상 중요한 인물을 지키는 임무를 맡는다. 이번에는 주지 스님을 지키기 위해 그가 나섰다.아현의 모든 행동은 전갈자리가 이미 목격한 뒤였다. 정작 아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그가 자리에서 떠나려고 하자 눈 앞이 검게 변하더니 순식간에 자리에 쓰러졌다.곧이어 전갈자리가 아현을 들고 다시 주지 스님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밧줄로 아현을 기둥에 묶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자고 있던 주지 스님을 안고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