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혁은 차가운 얼굴로 그를 상대하지 않은 채 밖으로 향했다.겁에 질려 있던 진도준은 곧장 밖으로 나가는 서주혁을 보고 화색이 되었다.보아하니 그가 들은 소문이 사실인 듯했다. 서주혁은 장하리 같이 몸으로 꾀려 드는 여인은 싫어한다.그러면서 제 앞에서는 순진한 척을 다 하니, 이게 제 지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참 나.서주혁이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 화장실에서 장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비켜요! 문은 왜 잠그는데요? 손대지 마세요!”“순진한 척하기는! 원하는 만큼 돈 준다니까?”화장실 문은 잠겨져 있고 소리는 점차 사라져갔다.순간 이성의 끈을 놓은 서주혁이 갓 불을 붙인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곤 홱 돌아섰다.장하리는 세면대 앞까지 밀려나 외투마저 벗겨진 상태였다.세게 몸부림치는 바람에 이마의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장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소할 거야. 반드시.”“이제 기분 좋아지면 고소할 생각 접게 될 거야. 아가.”진도준은 마침 이상형의 얼굴을 한 장하리가 마음에 들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그가 막 장하리의 바지를 벗기려 할 때, 뒤에 있던 문이 날아와 등에 세게 부딪쳤다. 순간적으로 날아온 압력에 숨이 턱 막혔다.가죽띠가 풀린 채로, 정장 바지가 반쯤 벗겨진 그는 입구에 서 있는 서주혁을 보고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다.“서... 서 대표님.”아까 분명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셨는데? 왜 다시 돌아왔지?두 손으로 세면대를 받치고 힘겹게 선 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다리가 자꾸 나른해졌다.동공은 초점 없이 흐릿했고 그저 진도준이 서 대표를 부르는 소리만이 귓가에 윙윙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느 서 대표란 말인가?장하리는 뇌가 굳은 듯 아무것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얼굴이 빨개진 채 세면대 앞에 서서 기댈 힘조차 없는 장하리의 모습에 서주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망설임 없이 진도준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진도준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
휴대폰 화면을 드래그하던 서주혁의 손가락이 잠시 멈추고, 그의 머릿속에는 아리를 주웠을 때의 광경이 떠 올랐다.그 강아지도 이렇게 사람을 피해 벌벌 떨고 있었다.아리를 생각하니 그의 얼굴빛이 많이 부드러워졌다.한 손을 장하리를 부축할 생각도 없이 호주머니에 넣었으나 서주혁은 그 손으로 장하리의 허리를 감싸 품에 안았다.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전히 연락처를 뒤지고 있었다.오늘 밤 친구와의 사적 모임으로 인한 외출이었으므로 운전기사는 함께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기사를 시켜 장하리를 집에 보내도록 할 생각이었다.전화를 금방 걸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젊은 청년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온시환이었다.온시환은 옆 사람과 웃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활짝 웃고 있었고 이 때문에 코끝의 점이 더 잘 보였다.서주혁은 무의식적으로 트렌치코트로 장하리를 꽁꽁 감쌌다. 그리고 마침 이때 전화가 연결되었다.“하늘 레스토랑에 와주세요. 바래다줘야 할 사람 있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시환이 다가왔다.“어라? 서주혁?”온시환은 서주혁의 품에 안겨있는 여인을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이분은?”품에 안긴 사람이 장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온시환이 놀릴 것이 분명했다.“소개팅 상대.”확실히 최근 서씨 가문에서 그에게 선 자리 일정을 대거 만들긴 했다.온시환은 동정하듯 그의 어깨를 톡톡 쳤다. 보아하니 소개팅 상대가 또 술을 진탕 마시고 유혹하려는 것인 듯했다.“고생하네. 그런데 안 밀어내고 받아주는 걸 보니 희한하네.”다른 사람들이 저를 부르자 온시환은 서주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나는 투자자랑 식사하러 간다. 온시아와의 약혼이 엎질러졌으니, 그분이 마음에 들면 시도해 봐.”서주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온시환이 가까이 다가와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이때 서주혁이 대답했다.“싫어. 맘에 들면 네가 데려가든가.”“됐어. 나도 요새 집안 때문에 피곤해.
“하리야!”반가움과 놀라움에 그는 빠르게 장하리에게로 다가갔다.“왜 여기 이러고 있어? 취했어?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반응은 조금 느렸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방우찬인 것은 알 수 있었다.장하리는 눈살을 찌푸린 채 방우찬을 밀어냈다.그러나 힘이 터무니없이 약했기 때문에 겉으로 좋은 척하는 것으로 보였다.방우찬은 즉시 외투를 벗어 장하리의 어깨에 걸쳐주었다.“코트는? 날도 추운데 왜 이렇게 얇게 입었어.”전에 장하리와 연애했을 때 방우찬은 그녀가 돈 벌 줄만 아는 재미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두 사람이 함께한 7년 동안 장하리가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돈을 벌어 둘만의 집을 사겠다는 것이었다.그때 방우찬은 장하리가 정말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대부분의 여자는 제원 본지의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럼 집이고 차고 모두 생길 테니까. 그러나 장하리는 자신이 번 돈으로 땅값 비싸다는 제원에서 집을 사려고 했다.매번 그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면 장하리는 항상 해장국을 준비했고 언제 어느 때든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령해 왔다.그러나 홍규연과 결혼한 지금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대령 되는 해장국은 없었다. 오히려 늦게 들어오면서 자길 깨운다고 구박했다.그가 양씨 가문에서 자리를 잡게 되자 홍규연은 그를 일일이 감시하기 시작했으며 하루 24시간 동안 25통도 넘는 전화를 해댔다.인제 와서야 방우찬은 장하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다. 전에는 왜 그녀를 재미없다고만 생각했을까.“하리야, 안 추워?”방우찬은 장하리의 손을 잡고 입김을 불었다.“따뜻하게 해줄게. 옆에 바로 호텔이니까 내가 방 잡을게. 안 건드릴 거니까 걱정 말고.”장하리는 똑바로 서서 방우찬을 밀어냈다.“괜찮아. 고마워.”방우찬은 잠시 정색하고는 장하리의 몸에 걸친 옷의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주었다.“왜 낯선 사람 취급 해?”장하리는 그의 행동이 우스웠다. 아니, 정말 웃었다.그런데 짙은 알코올 향에 웃다가 구토감이 올라왔다.방우찬은 장하리의 곁에 서 있다가 업계 내에서
그는 방우찬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저 사람은 장하리의 바람 난 전남친 아니던가?재결합하려는 건가?그는 사 온 생수를 옆에 있던 휴지통에 휙 버리고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차에 타자 운전기사가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바래다줘야 할 분 어디 계신가요?”“됐어. 필요 없어졌어. 돌아가.”기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고분고분 돌아갔다.차에 시동을 건 서주혁은 장하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핸들을 돌려 가속 페달을 밟았다.동시에 마음속으론 냉소했다. 바람피운 남자는 씹다 뱉어진 껌과도 같았다. 그런데 장하리가 그 껌을 다시 가져와 씹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런 사람들은 당해도 싸다.게다가 장하리는 방우찬을 좋아하지 않던가.정말이지 너무 싸구려 감정이다. 지난 한 주에는 서주혁 때문에 슬퍼하더니 이번 주에는 전 남자 친구가 얼굴을 만지도록 둔다.핸들을 쥔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가는 것을 서주혁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또 화장실에서 만난 진도준을 떠올렸다.그는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런 사람은 당장 회사에서 잘라버려야 했다....방우찬을 밀어낸 장하리는 절뚝거리며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걸어 나갔다.방우찬은 마치 껌처럼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장하리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하리야, 그냥 내가 방 잡을게. 걱정되면 너 혼자 호텔 올라가. 난 안 따라갈 테니까”그는 짐짓 자신이 매너 있는 사람인 척 행동하기 시작했다.장하리는 추위에 이가 떨렸지만 방우찬에게 보여주기 싫었다.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고 몸을 굽힌 장하리는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강민지라는 것을 발견했다.“민지 씨?”“하리 씨?”반가움에 차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잠겨 있었다.그녀는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결재하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친구가 술에 취한 것 같아. 데려다주고 싶어.”신예준은 대답 없이 손을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10분밖에 없어. 아빠 보러 가기 싫으면 그렇게 해.”강민지는 큰 굴욕감
앞에 앉은 기사는 가끔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에게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은 매우 흔했다. 심할 때는 칼을 휘두르기도 했으니 말이다.기사는 침을 삼키며 정말이지 조만간이면 이런 분위기에 자기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전에 그는 제이엔 쥬얼리에서 신예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강상원은 두 사람의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고 강민지도 어쩔 수 없이 그를 회사 말단 직원으로 넣어줬을 뿐이다. 그런데 신예준의 업무 능력이 이렇게 출중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어느 정도로 대단했냐 하면,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상사가 파격적으로 승진시켰을 정도였다.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꿈 같았다. 그 정도로 모든 일이 눈 깜빡할 사이에 빠르게 일어났기 때문이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장하리는 잠을 그다지 편히 자지 못했다. 머리가 창유리에 부딪히자 장하리는 얕게 신음을 흘렸다.자동차가 장하리의 집 앞에 멈춰 섰다.송아현은 진작 집으로 보내진 상태였다. 진도준은 그녀에게 호감만 있을 뿐 아직 톱스타에게 손댈 엄두는 내지 못했다.그러나 그녀와 달리 장하리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설령 장하리에게 미움을 사더라도 그녀 대신 욕해줄 팬은 없었다.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두통과 어지러움 때문에 강민지에게 잘 가라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욕실로 달려가 구토하려 했으나 헛구역질만 나올 뿐이었다.고개를 들고 무심코 거울 속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살이 눈에 띄게 빠졌기 때문이었다.샤워하고 싶었지만 알코올 때문에 몸이 나른해져 그대로 침대에 웅크린 채 잠들고 말았다....다음날 잠에서 깨니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웠고 위도 따끔거렸다,그러나 이를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장하리는 간단하게 빵 한 개로 아침을 때우고 회사로 향했다.“서진 씨, 이 자동차 브랜드 모델 온수빈 씨로 정해졌으니까 계약서를 진 사장한테 보내라고 해요.”“모델 아직 안 정한 거 아니었어요?”“어젯밤에 얘기가 끝났어요.”장하리는 창백한 얼굴로 사무용
“하리야, 엄마가 이렇게 부탁할게. 한 번만 얼굴 좀 보자.”노임향이 애걸복걸했고 이따금 방우찬이 곁에서 위로하는 소리가 들렸다.장하리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미 한 번 실수한 것으로 충분하다. 두 번의 실수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전화가 끊기자 노임향은 마음이 조급해졌다.방우찬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서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어머님, 너무 걱정 마세요. 하리는 마음 약한 애니까 제가 몇 마디 더 설득하면 만나러 나와줄 거예요.”노임향이 감격하며 방우찬의 손을 맞잡았다.“고맙다. 그럼 이 일은 너에게 맡기마.”“어머님, 아버님도 집에 계세요?”남편 얘기가 나오자 노임향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그, 그렇지. 나 이제 가야겠다.”방우찬은 원래부터 장하리의 집안일에 대해서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가 지금 노임향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은 그저 장하리와 하룻밤 자기 위해서였다.홍규연과 함께 할수록 장하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그는 반드시 이런 여자를 내연녀로 두어야 했다.집에 돌아온 노임향은 집에 술병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심장이 철렁했다. 노임향의 철없는 남편은 술도 좋아했고 바람도 밥 먹듯이 피웠다.젊었을 때 그는 잔꾀를 부려 때때로 의외의 돈을 벌 때가 있었다.지금은 늙어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뒤처졌지만 바람을 피우는 건 변하지 않고 여전했다. 그는 돈이 조금만 생겨도 밖에서 허세를 부리고 다녔다.그는 노임향이 돌아온 것을 보곤 대뜸 화를 냈다.“장하리랑 약속 잡으라고 했잖아. 전에 나 망신당하는 거 다 봤지? 그년한테 꼭 복수할 거야.”노임향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대답했다.“말했어. 싫다는데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싫다면 강요라도 해야지. 걔가 제일 신경 쓰는 사람이 당신 아니야? 내일까지 장하리 내 앞에 대령하지 못하면 당장 이혼할 거야. 정말 지긋지긋해.”뭐? 이혼?장하리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장하리에 대한 원망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서수연은 말없이 눈을 치켜뜨고는 가방을 들고 떠나버렸다.장하리는 평온했지만 오히려 곁에 있는 송아현이 화가 나 견디지 못했다.“언니, 우리 다른 거 골라요.”장하리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나 괜찮은데.”송아현은 그런 장하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가방 다섯 개를 연이어 샀는데 그 값이 무려 3억을 넘었다.“언니, 선물이에요.”“돈 낭비 하지 말지.”“가져가요. 언니가 우릴 위해 컨택하는 모델비는 더 비싼걸요.”장하리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고, 쇼핑백 몇 개를 들고 송아현과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막 쇼핑몰을 나서려 할 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임향을 발견했다.언제 왔는지도 몰랐다.“하리야.”노임향은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장하리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나 눈빛은 탐욕스럽게 쇼핑백을 주시하고 있었다.모두 내로라하는 명품 가게의 쇼핑백이었다. 아마 적어도 몇억은 될 것이었다.딸에게 돈이 많아 보였다. 전에는 몇억 때문에 온 가족이 허덕였는데 이제 그 몇 억은 딸의 가방에 지나지 않았다.노임향은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자기는 곧 이혼을 당하겠는데, 수중에 남은 돈도 없는데 딸은 보란 듯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장하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에 노임향이 딸의 손을 덥석 잡았다.“하리야, 엄마가 잘못했어. 너한테 사과하려고 여기서 기다렸어.”장하리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위 사람들까지 다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움이었다.동시에 장하리는 짜증이 치솟았다. 대체 이 사람은 언제 저를 놓아줄 것인가.“이거 놔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서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수연의 손에는 십여 개의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녀가 노임향을 힐끗 보더니 얼굴에 비웃음 어린 미소를 띠었다.“어머, 남자 없이 못 산다는 그 천박한 장하리 씨 어머니 아니에요?”노임향의 얼굴이 순간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또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리니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매서운 눈이 서
노임향도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조금 무서워졌다. 그녀는 얼른 서수연을 부축해 차에 태웠다.의식이 혼미해졌지만 서수연은 위험을 감지하고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려는 것이었다.최근 서수연이 가장 자주 전화를 건 사람은 장하리였다. 최근 통화의 대부분이 장하리였으므로 공교롭게도 서수연이 건 전화는 장하리에게로 향했다.장하리는 서수연을 차단하지 않았었다. 조금 전 맞닥뜨리고 전화하는 것을 보니 또 욕설을 퍼부으려는 심산인 듯했다.서수연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장하리를 화장실로 데려가 뺨을 때리는 것 외에도,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괴롭히기 좋아했다.게다가 차단하면 안 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차단했다가 들통나면 다음번 만났을 때 더 세게 뺨을 때릴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었다.장하리는 서수연이 괴롭힌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하긴,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서주혁?아니, 서주혁은 자기 여동생이 이런 짓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장하리를 경고하기도 했다. 여동생을 괴롭히지 말라고.벨 소리는 계속 울렸고 장하리는 음소거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의식이 희미해져 갔기에 서수연은 급히 또 전화 몇 통을 걸었다.그러나 매번 장하리에게로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는 것만 의식했다.연달아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받지 않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이상함을 눈치챈 노임향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바로 서수연의 전화를 뺏었다.“이 미친 것. 전화를 걸려고 했어? 하! 하리한테 연락하면 걔가 퍽이나 와주겠다. 걘 네가 죽길 제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야. 멍청한 년아.”노임향이 손을 높이 들어 서수연의 뺨을 거세게 두 대 때렸다. 그리고 그 통증에 서수연은 정신을 차렸다.“날, 날 때려? 우리 오빠가 알게 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네 오빠가 알 때쯤엔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