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가 회의 시간이 되었다고 언질 주자 서주혁은 휴대폰을 옆에 두고 물었다.“고위 임원들도 다 왔어?”“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래.”서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자동차 본사에서 대표님께 모델에 대해서 요구는 없는지 묻고 싶답니다. 진 사장님이 전에 아마 장하리 씨와 계약하기로 약속한 것...”서주혁이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세면대 앞에서 장하리가 희롱당할 뻔하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는 열감을 느끼고 넥타이를 아래로 잡아당겼다.“진도준 퇴사하지 않았나?”비서는 서주혁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표정으로부터 읽어낼 것이 있을까 했으나, 그의 표정은 터무니없이 평온했다.지점장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는 아마 오래전부터 업계 내의 소문을 듣고 서주혁이 장하리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떠보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서주혁이 장하리를 마음에 두었다면 당연히 장하리 회사의 연예인에게 광고 모델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는 서주혁의 환심을 사는 셈이 될 테니까.그러나 서주혁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고 잘 정리된 정장은 더 인간성 없게 보였다.“절차대로 해.”겸사겸사 장하리가 정신도 좀 차릴 수 있게 말이다. 전에 그에게 사용했던 수법을 다른 사람에게 또 쓰려고 하다니. 매번 운이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네. 지점장에게 얼른 연락하겠습니다.”비서는 역시 서주혁은 장하리에게 마음이 없다고 판단했다.이만한 작은 혜택조차도 주기 싫어하니 말이다....장하리는 오늘도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했다. 오늘 그녀는 종일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했다.위장약 두 알을 더 먹고 죽을 먹은 후에야 그 넘실거리는 느낌이 점차 가라앉았다.이때 한서진이 문을 두드렸다.“시상식 절차는 거의 결정되었어요. 해은 씨가 내일 돌아올 테니 하리 씨는 오늘 밤 일찍 퇴근하셔도 돼요. 자꾸 일 때문에 본인을 닦달하지 마세요. 성 대표님께서 특별히 저에게 연락해서 하리 씨 뭐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어요.”장하리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은 걸 보면
서주혁은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그리고 비서에게 전화의 위치를 추적하라고 명령했다.그 결과 휴대전화 신호는 10km 떨어진 곳으로 나타났다.그는 부하에게 연락해 서수연을 찾아보라 명령했다.집에 돌아오니 부하들이 마침 전화를 걸어와 보고했다.“대표님, 수연 씨 휴대전화는 길가에 떨어져 있었고 수연 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일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서주혁은 그제야 사람들에게 서주혁의 행방을 전면적으로 찾으라 명령했다.30분 후, CCTV 영상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서수연은 쇼핑몰에서 장하리를 만났고, 장하리와 한바탕 싸운 뒤 노임향의 뺨을 두 대 때렸다.CCTV 영상으로 봤을 때 장하리는 먼저 자리를 떴고 서수연은 노임향과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또 다른 CCTV 영상에선 노임향이 서수연을 기절시켜 차에 밀어 넣고 있었다.이 장면을 확인하는 순간 서주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주혁이 싸늘하게 부하에게 물었다.“사람은 찾았어?”“아직입니다. 여자 집에 가봤는데 텅텅 비어있었어요. 그리고 서수연 아가씨 핸드폰에 전화를 여러 번 시도한 흔적이 있는 데 아마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화를 건 상대가 장하리 씨였고 하리 씨는 받지 않았어요.”서주혁의 얼굴이 더 차가워졌다. 구조요청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서수연이 싫어서 그녀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인가?“찾아.”전에 노임향이 독을 넣으라고 지시한 사람이 장하리라고 단언했으나, 원씨 가문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일이 흐지부지되었었다.그런데 지금 노임향이 서수연을 납치해 갔으니 장하리가 범죄에 참여한 건지 의심이 되었다.서주혁은 휴대전화 속의 연락처를 바라보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만 들리는 것이었다.설마 차단당한 건가?잔뜩 흐려진 얼굴로 그가 옆에 있는 두 경호원을 바라보았다.“지금 당장 장하리 데려와.”고개를 끄덕인 경호원은 즉시 차를 몰고 떠났다.한편, 방금 샤워를 마친 장하리는 여전히 위에 통
장하리가 입술을 짓씹었다.“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안 믿을 거잖아요.”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장하리가 어떻게 말하든 서주혁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장하리와 노임향의 관계를 확실히 알고 있다 해도, 온시아에 대한 일은 밝혀진 바가 없으니까.온시아가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사람을 시켜 독을 먹이는 것도 그다지 똑똑한 행동은 아니었다.사실 서주혁은 이미 마음속으로 장하리가 관여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장하리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할 것이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어야 할 거야.”차갑게 말 한마디를 내뱉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네 어머니한테 전화해.”지금 서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노임향을 찾고 있었고, 노임향은 조만간 붙잡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 동안 서수연이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것이다.서수연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기에 고생 따위 모르고 컸다.장하리는 고개를 숙이고 노임향의 차단을 풀었다.막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서주혁이 곁에서 명령했다.“이쪽으로 와서 내 앞에서 전화해. 스피커 켜고.”장하리가 서주혁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서주혁에게는 일종의 아우라가 있었는데 반승제 같이 자만심 강한 귀공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서주혁은 침착하고 차갑고 딱딱했다.그가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자 은빛 손목시계가 드러났다.노임향과 전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전화 건너편에서 노임향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네가 처리하라고 한 여자애 내가 데려갔으니 걱정하지 말렴. 앞으론 널 방해하지 못해.”이 말에 장하리가 흠칫 놀라며 전화를 응시했다.그녀의 어머니는 멍청하고 어리석지만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기지를 발휘하여 항상 적절하게 장하리의 일을 망쳤다.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는 장하리가 전화한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이미 서씨 가문의 미움을 산 마당에 그녀와 남편도 모두 탈출했으니, 이참에 장하리를 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만 있다면 일석삼조 아니겠는가?지난번 독극물 사건으로 누명을 씌우
서수연은 이렇게 거대한 절망감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예전에 성혜인 때문에 놀랐을 때도 단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절망이었다.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모두 장하리 탓이다. 장하리 때문에 이런 역겨운 사람에게 강간당한 것이다.자동차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서수연은 멍하니 차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에 올라탄 역겨운 남자의 행위는 계속되었고 서수연은 울고 싶었지만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오는 길 내내 울었더니 이제 눈물이 말라버렸다.같은 시각, 장하리는 끊긴 전화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서주혁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표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화가 많이 났겠지.그녀가 천천히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자 서주혁이 대뜸 입을 열었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나?”그는 줄곧 강압적이었으며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그의 말에 장하리가 발걸음을 멈추었고, 서주혁은 라이터를 켰다.그리고 뒤이어 풍겨오는 담배 연기.“수연이 돌아오기 전까지 여기서 기다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넥타이와 정장을 챙기고는 밖에 있는 사람들을 들어오도록 했다.한쪽 계단 입구로 가서 성가신 표정을 지으며 명령했다.“방 하나 치워서 들여보내. 그리고 하루 내로 수연이 찾아서 데려와.”“네. 대표님.”곧 장하리는 한 방에 끌려가 갇히게 되었다.서주혁의 방은 2층이고, 그녀가 갇히게 된 방은 1층에 있었다. 게다가 딱 봐도 가정부의 방이었다.방은 대략 50평쯤 되었고 별도로 욕실이 준비되어 있었다.그러나 이곳의 가정부 방마저 장하리가 이전에 지냈던 대부분의 방보다 훨씬 좋았다.장하리는 침대에 앉아 벽에 기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서수연에게 아무 일 없기를 빌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서주혁은 모든 것을 장하리의 탓으로 돌릴 것이 뻔했다.그가 노임향의 딸임을 탓할 것이고.서수연의 구조 요청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탓할 것이다.머릿속이 복잡해진 장하리는 침대에 눕지 않고 벽에 기대
서주혁이 홧김에 옆 식탁을 발로 차버렸다. 테이블 위의 모든 물건이 마구 흔들렸다.“지금 어디에 있는데?”“돌아오는 길에 이미 병원을 예약해 놓았습니다”서주혁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때 곁에 있던 하인이 다가왔다.“대표님, 하리 씨에게 아침밥 올려다 드릴까요?”서주혁이 차가운 얼굴로 하인을 응시했다. 입가에는 냉소가 지어졌다.“고추 한 접시 올려보내. 매울수록 좋아.”하인은 어리둥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서주혁은 옆에 놓아뒀던 코트를 들고 바로 집을 나섰다.그리고 하인은 얼른 볶은 고추 한 접시를 장하리에게 가져다주었다.장하리는 밤새 잠을 못 잔 상태였으며 지금까지도 서수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문득 매운 향이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방문이 열리더니 하인이 고추 한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하리씨, 아침 드세요.”접시에는 온통 고추뿐이었고 쌀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주혁 씨는요?”하인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우선 아침 드세요. 대표님의 행방을 우리 하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말을 마친 하인은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다.테이블 위에는 빨간 고추만 놓여 있었는데 냄새부터가 자극적이었다.그녀는 연거푸 기침을 했다.아침밥의 상태로부터 서주혁이 많이 화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장하리는 고추에 손을 대지 않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점심 12시, 서수연은 제시간에 제원에 도착하여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전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분노를 표출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서수연은 돌아오는 길 내내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의사가 진찰할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다.의사는 성병 예방을 위한 주사와 약을 처방 해 주었고, 성병 교육을 위한 사진을 본 수연은 역겨워서 토할 것 같았다.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서수연이 병실로
서주혁의 별장.장하리는 좁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다. 도망치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높이였다.하지만 장하리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바깥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서주혁이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장하리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있었다.서주혁이 휴대전화를 가져갔기 때문에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는 상태였다.장하리는 턱을 팔에 기댄 채 창가에 앉아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이때쯤 배에서 자꾸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별장에 들어온 날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위병이 계속 도졌다.게다가 이틀 동안 빈속이었으니 오죽할까. 세 번이나 구역질을 했지만, 토해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인이 너무 박하게 굴지 않았다는 것이다.하인은 매일 장하리에게 물을 가져다주었고 장하리는 물 두 주전자로 이틀을 버텼다.배고픔으로 인하여 어지러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위병이 터져서 위가 따끔거렸다.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장하리는 침대 앞에 엎드린 채 어깨를 들썩였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억울한 일들을 겪었다. 하여 더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어 왔음에도 외로움과 서러움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결국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졌다.밖에서 자동차 타이어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곧이어 서주혁이 별장으로 들어왔다.장하리는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침대 곁에 기대어 앉았다.별장에 들어선 서주혁이 옷을 하인에게 건네자 하인이 물었다.“대표님, 하리 씨에겐 언제 음식을 가져다줄까요?”서주혁이 며칠 동안 줄곧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인들도 감히 마음대로 음식을 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없었다.코트를 건네던 그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그제야 서주혁은 장하리가 아직 별장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그는 현재 장하리의 일가족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생각만 해도 저도 모르게 혐오감이 조성되었다.하인이 그를 방 입구까지 안내했다.문을 여니 침대에 기대어
의사가 급히 와서 위를 세척하고 약을 처방했다. 수액을 투여한 후 따뜻한 죽 한 그릇을 준비하라고 일렀다.“서 대표님, 환자분의 위병이 꽤 심각합니다. 앞으로 몇 달간은 매운 음식은 피하시고 한 달 동안은 죽만 드셔야 합니다. 육류와 자극적인 음식은 꼭 삼가셔야 해요.”서주혁은 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장하리의 가냘픈 손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목이 언제 이렇게 가늘어졌는지 손등의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알겠습니다.”서주혁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사가 떠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 명희정의 전화였다.“그 가족 어디 있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놈들을 모두 감방에 처넣어버릴 거야!”평소 딸 서수연을 애지중지하던 명희정은 서수연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장하리의 가족을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었다. 명희정은 하루 동안 서수연을 돌보았다. 서수연이 시끄럽게 굴진 않았지만,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자신이 망가졌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명희정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주혁아, 그 두 사람 지금 어디 있어? 경찰서에 넘기지 마. 내가 그 사람들에게 직접 생지옥을 경험시켜 줄 거야.”“제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요.”명희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이를 악물었다.“장하리는? 수연이가 그 여자가 시킨 거라고 말했어.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어?”지난번 온씨 집안 사건에도 장하리가 연루되었는데, 이번에도 또 나타나다니. 명희정은 절대로 이 여자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서주혁의 시선은 옆으로 향했다.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장하리는 여전히 혼미한 상태였다. 서수연이 당한 일을 떠올리며 그는 장하리를 조심스럽게 밀어냈다.“어머니, 이 일은 제가 잘 조사해 볼게요.”“조사할 필요가 뭐가 있어? 수연이가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었다잖아! 장하리를 나에게 넘기든지 아니면 수연이에게 넘겨.”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희정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서수연은 여전히 욕설을 퍼부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장하리는 서주혁에게 끌려가며 팔이 끊어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는 것도 버거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하지만 서주혁은 그녀를 배려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복도 끝에 있는 침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장하리를 침대 위로 던졌다.장하리는 충격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기침을 토해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가련한 모습을 더했다.서주혁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방금 수연이가 당해도 싸다고 했어?”장하리는 머리가 멍해졌다. 고통이 온몸에 퍼지며 억울함이 그녀를 잠식하여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이 남매를 참을 수 없었다.“그래요. 그럴만하니까요.”서주혁은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장하리, 내가 널 너무 얕봤나 보네. 그러니까 이번 사건에 네가 정말 연루된 거야?”뭐라고 대답하든 그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나? 어차피 그녀를 의심할 테니까.장하리가 침묵하자 서주혁은 이를 인정한 것으로 여겼다.“그래. 장하리, 그럴 줄 알았어. 그런 여자가 낳은 자식이 좋은 사람일 리가 없지. 네가 수연이가 당해도 싸다고 했으니, 너도 그 맛을 봐야 하지 않겠어?”장하리는 침대 위에서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자꾸만 흘러내렸다.서주혁은 반쯤 타버린 담배를 손에 들고 문밖을 향해 말했다. “다 들어와.”문밖에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이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대표님.”서주혁은 침대 위의 장하리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소 말랐지만 그 모습조차도 아름다워 보였다.“맘껏 즐겨.”장하리는 환청이라도 들은 듯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앉은 그녀는 서주혁이 이어서 하는 말을 들었다.“제대로 만족시켜 줘.”“주혁 씨!”그의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장하리는 입술을 떨며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