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들은 바지를 벗고 장하리의 발목을 잡아챘다.서주혁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팠다. 그것은 아주 미세하고 날카로운 통증이었다.내뱉은 담배 연기가 서주혁의 얼굴을 감쌌다. 그는 속눈썹을 내리깔고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희들 나가.”두 명의 경호원은 마치 사면을 받은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정말로 침대 위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그들은 급히 바지를 올리고 서주혁에게 허리를 숙인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마치 뒤에서 귀신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빠르게 걸어갔다.서주혁은 담배를 버리고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장하리의 발목에는 경호원이 남긴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제압할 때 힘을 조절하지 않고 세게 잡았다. 그 결과 그녀의 발목에 다섯 개의 붉은 자국이 남았다.장하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마치 모든 감각이 무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손목이 잡혀 끌어올려지면서 그녀는 앉은 자세가 되었다.입가의 피가 번지면서 장하리의 입술 주변을 물들였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서주혁을 바라보았다.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제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서주혁은 옆에 있는 휴지를 꺼내 장하리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녀는 피하려 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그저 침묵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한 번 닦을 때마다 장하리의 입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나왔다. 서주혁은 그녀의 턱을 잡고 손가락을 그녀의 입안에 넣었다.장하리는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의 손가락이 혀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눈물은 점점 더 흐르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서주혁은 상처를 대충 살펴보았다. 혀가 끊어질 정도로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다.그가 손가락을 빼려는 순간 장하리가 입을 다물고 그의 손가락을 꽉 물었다. 하지만 힘이 바닥나서 고양이가 살짝 깨무는 것 같았다.“놔.”서주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장하리는
다음 순간 장하리가 기침을 하더니 그의 셔츠에 피를 토했다. 서주혁의 얼굴은 즉시 어두워졌고, 장하리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장하리는 옆으로 쓰러지더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의 극심한 통증에 침대 시트를 꽉 움켜잡았다. 마치 곧 기절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서주혁은 자기 셔츠에 묻은 핏자국을 바라봤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수연 아가씨가 계속 울고 있습니다.”그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셔츠를 벗고 옷장 쪽으로 가서 깨끗한 옷을 고르려던 찰나, 장하리가 말했다.“차라리 날 죽여줘요.”그녀에게 계속 붉은 고추를 먹여 위암에 걸리게 할 작정인가? 진정 죽이려 한다면 차라리 독약을 먹이면 그만이지 않은가?“죽고 싶어?”서주혁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손목의 차가운 시계를 정리했다.지금은 밤 9시였다.“밖에 나가서 무릎 꿇고 있어. 수연이 화가 풀리면 돌아가게 해줄게.”여전히 침대 시트를 꽉 그러쥐고 있던 장하리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손에 힘이 풀렸다.장하리를 등지고 서 있던 서주혁이 문가로 걸어가 문을 열려고 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혁 씨.”잠시 발걸음을 멈춘 서주혁은 미간을 구겼다. 마음속에서 짜증이 솟구쳤다.서주혁은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문밖으로 나가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장하리는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눈을 내리깔며 계속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어디가 아픈지 말할 수 없을 만큼 견딜 수 없는 고통만 느껴졌다.서주혁이 계단을 내려가 보니, 서수연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울며불며 난리 치지는 않았지만 옆에 있는 단도를 집어 들어 자기 목을 그을 기세였다.옆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를 제지하려 했지만 서수연은 몇 번이나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건드리지 마!”서주혁은 계단 입구에 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서수연은 온몸이 굳은 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오빠, 저 여자 좋아해요? 저 여자를 우리 집에 데려와 새언니로 만들려는 거예요? 저 여자가 가당키나 해요?
현관문을 나서자 서주혁은 또 담배에 불을 붙였다. 평소에는 이렇게 자주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오늘 밤은 불쾌한 기분이 계속되었다.차에 올라탄 그는 핸들을 잡고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며 조금 전 장하리의 입속에 손가락이 들어갔던 것을 떠올렸다. 그 촉촉하고 뜨거운 감각이 여전히 느껴지는 듯했다.서주혁은 옆에 있는 물티슈를 집어 들고 닦으려 했으나 무언가 생각난 듯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때 온시환의 전화가 걸려 왔다.“약속 취소해. 오늘 밤은 술 마시고 싶지 않아. 승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무슨 일인데?”“설우현한테 전화해 봤더니, 반승제가 실종된 것 같대. 성혜인은 임신 중이잖아. 지금 설씨 가문에서 태교 중이래. 도대체 이 둘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아직도 함께 있지 못하는 거야.”온시환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지만 서주혁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등을 뒤로 기댄 채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시환아, 우리 플로리아로 가볼까?”온시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너 나갈 수 있어? 위에서 너를 엄격히 감시하고 있잖아.”서씨 가문은 윗선과 연결된 일이 많아서 출국할 때마다 철저한 검사가 필요하다.게다가 반승제에게 수배령이 떨어진 사건으로 서주혁은 블랙리스트에 오를 뻔했다.“백겸 삼촌이 승제에게 상을 주었고, 수배령도 취소됐어. 지금은 당당하게 만나도 아무 문제 없어.”최근 온시환은 마침 지루하던 참이었다. “좋아. 언제 출발할 거야?”“잠시 후에 있는 항공편을 알아볼게.”“이렇게 빨리? 주혁아, 너 혹시 누구를 피해 다니는 거야?”온시환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서주혁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아니야. 그냥 머리를 식히러 가는 거야.”온시환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자 허리의 목욕 가운이 흔들렸다.“알았어. 지금 옷 갈아입을게.”이때 뒤에서 여성의 부드러운 손이 그의 허리를 감쌌다.“시환 씨, 떠나는 건가요?”온시환이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던져주자 여성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어린 여자
성혜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의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방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정말로 세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서주혁과 온시환에게 둘러싸여 있는 설우현은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계속 찾고 있어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모른다고요? 설마 승제가 싫어서 동생에게 새 남편이라도 찾아주려는 거 아니에요? 두 사람 전에 싸운 적도 있잖아요. 애초에 속셈이 있었던 거죠?”설우현은 표정이 어두워진 채 분노를 터뜨렸다. “온시환, 당신!”복도에 나와 있는 성혜인을 보자 설우현은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혜인이가 최근에 기분이 좋지 않으니, 이런 자극적인 말은 하지 마세요.”온시환은 두 손을 들며 조용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성혜인은 감정을 가다듬고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일행이 거실로 이동한 후 그녀의 시선은 서주혁에게로 향했다.서주혁은 설기웅과 비슷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지만 설기웅보다 훨씬 더 냉정해 보였다. 그는 여동생 서수연에게조차 거의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설기웅은 설씨 가문의 ‘짝퉁’에게 지극정성을 쏟았었다.“주혁 씨, 장하리는 요즘에 잘 지내고 있나요?”서주혁은 해외에 나와서 무언가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여기 와서도 장하리라는 이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온시환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잘 지내고 있어요. 혜인 씨의 회사가 최근에 엄청나게 잘 나가고 있거든요. 아마 생방송도 못 보셨겠죠? 유해은과 온수빈이 상을 받았고, 송아현도 신인상을 받았어요. 최우수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혜인 씨 회사 소속 사람들이 모두 차지했어요. 요즘 전속 광고 모델 제의도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어요. 하리 씨는 아마 바쁘겠네요.”성혜인은 냉담한 어조로 대답했다.“아, 그렇군요.”온씨 집안이 일전에 성혜인의 미움을 사서 그녀가 직접 온시아를 매장한 일을 떠올린 온시환은 어색하게 웃었다. “곧 엄마가 되시는 분이 왜 이렇게 쩨쩨하게 굴어요? 난 온씨 집안이 한 일을 정말 몰랐어요.
온시환은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어깨를 으쓱했다.“그냥 말 그대로예요. 강민지가 가난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이미 강민지를 철저히 분석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해 강민지의 회사를 빼앗았고, 강민지의 아버지를 감옥에 보냈어요.”온시환의 목울대가 오르내렸다. 콧등의 점이 그를 더욱 감성적으로 보이게 했다.“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에요. 더 열받는 건 신예준은 어릴 때부터 정혼자가 있었다는 거예요. 이름이 조희서라고 했던가? 아무튼 조희서가 뇌종양에 걸렸을 때 신예준은 강민지 앞에서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였고, 강민지는 국제 전문가를 불러 조희서를 돌보게 했어요. 그게 신예준의 약혼자인 줄은 몰랐던 거죠. 이 젊은 부부는 강민지를 철저히 이용해 먹었어요. 이제 와서 신예준이 강민지와 결혼하려고 하다니, 이게 다 복수가 아니면 뭐겠어요?”얼굴이 어두워진 성혜인은 당장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온시환이 그녀를 제지했다.“강민지에게 전화해 봐야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누구도 신예준을 막을 수 없어요. 그 녀석은 꽤 능력이 있거든요. 강민지와 강 회장의 모든 주식을 차지하고, 그것도 60% 넘어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회사를 인수해서 강민지를 돕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게다가 신예준이 법원에 합의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강 회장은 몇 년의 고통을 덜 수 있어요. 강민지는 지금 신예준에게 얽매여 있어요. 신예준이 합의서를 쓰지 않는 한 강민지는 떠날 수 없을 거예요. 당신도 강민지가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알잖아요.”성혜인은 제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그녀는 예전부터 신예준이 의심스러웠지만, 강민지는 신예준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의 재벌 딸 신분까지 숨겼다. 그저 신예준이 위축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결국 강민지는 신예준의 함정에 빠져 버렸다.성혜인은 반드시 제원에 가야 했다. 지금 강민지에게 전화하지 않더라도 제원으로 가는 항공권을 당장 예약해야 했다. 온시환은 그녀가 항공
성혜인의 어깨가 한순간에 처지더니 속이 울렁거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설우현은 급히 요리사를 불렀다.“혜인이 식단을 더 신경 써 주세요. 요즘 소고기를 싫어하니까,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바꾸고 국에는 따뜻한 성질의 식재료를 더 넣어 주세요.”요리사는 즉시 메뉴를 내밀었다. “도련님, 이건 최근에 아가씨께서 먹은 채소와 과일입니다. 모두 현지에서 직송된 것이며 우유도 그렇습니다. 추가할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설우현은 성혜인의 식습관을 되짚어보며 몇 가지 채소를 제외했다. 이때 성혜인이 화장실에서 나와 말했다. “오빠, 너무 신경을 필요 없어요. 방금은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토한 거예요.”성혜인의 상태가 이렇게 나쁜데, 설우현은 그녀가 제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일단 제원에 돌아가지 말고 본가에서 편히 쉬고 있어. 시환 씨에게 국내에서 강민지의 상황을 잘 알아보라고 할게.”말을 마친 설우현이 온시환을 바라보자 온시환은 황급히 손을 들며 다짐했다. “그래요. 내가 반드시 잘 알아볼게요. 이번 일은 내가 말이 많아서 생긴 일이니, 내가 끝까지 책임질게요.”성혜인의 시선이 서주혁에게로 향했다. “장하리는 잘 있죠?”서주혁은 흠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네.”원래 말이 적은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성혜인이 말을 이어갔다.“전에 장하리가 교통사고를 당한 건 온시아가 지시한 일이에요. 이 일은 제가 굳이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 외에도 장하리는 참담할 정도로 많은 억울한 일을 당했어요. 온시아는 장하리의 강아지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그 교통사고로 장하리의 목숨까지 위협했죠. 장하리는 원래 유약한 성격이라 어릴 때부터 어머니한테 노예처럼 부려졌고, 한 번도 따뜻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전에 장하리의 어머니가 회사에 찾아와서 가장 지독한 말로 장하리를 욕하고, 저에게 장하리를 해고하라고 했었죠. 그 여자는 장하리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었던 거예요. 심지어 장하리가 전 남
“수연아, 그만 울어.”“그래요. 지금 울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난 장하리의 새아버지에게 강제로 당했고, 이 일을 장하리가 폭로했죠.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뒷담화를 하고 있을까요. 울어봐야 뭐해요? 차라리 날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왜 구해준 거예요! 그냥 죽어버릴 거야!”서수연은 갑자기 광기에 사로잡혀 침대에서 뛰어내려 창가로 달려갔다. 명희정은 깜짝 놀라 그녀를 붙잡았다. “엄마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이미 걔를 경찰서에 보냈잖아. 걱정하지 마. 엄마가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걔가 몇 년 더 갇혀 있게 할 거야.”명희정이 말을 마치자마자 병실 문이 열리며 서준혁이 들어왔다. 여전히 오빠를 두려워하는 서수연은 놀라서 움찔했다. 그녀의 눈은 원래 부어 있었는데 이제 더 부어 보였다.“오빠, 흑흑... 난 정말 오빠가 그런 여자랑 결혼하는 게 싫어요. 제발 그 여자와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오빠가 그 여자를 만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서수연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눈빛은 어두워졌다.그녀는 미칠 듯한 증오심에 사로잡혔다. 돌아온 이후,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괴물이 잠재해 있으며 언제든지 튀어나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녀는 자살 시도로 장하리를 감옥에 보낸 것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어차피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그녀가 억울한 피해자라고만 생각할 것이다.서수연은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사실 그날 서수연은 일부러 장하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장하리의 얼굴만 보면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장하리를 볼 때마다 장하리의 새아버지가 떠올랐고, 자신이 그 역겨운 남자 아래에서 어떻게 비참하게 굴복했는지가 떠올라 치가 떨렸다.서수연은 분노를 발산할 곳이 필요했고, 장하리가 그 대상이었다.장하리는 건강이 매우 나빠 보였고, 몹시 수척해 보였다.서수연은 소파에 앉아 냉소를 흘리며 도우미들을 내보낸 후 장하리를 바라보았다.
장하리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에 전해지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잔을 꽉 쥐고 있었다.서수연은 그녀의 옆에서 끊임없이 욕을 하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하며 자신이 당했던 일을 이야기했다.장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서수연이 그녀에게 죽으라고 욕했을 때만 반문했다. “정말로 죽으면 돼요?”사실 장하리는 지금 사는 것에 지쳐 있었다. 삶은 늘 어두웠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 만약 이 목숨이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면 그냥 내놓을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서수연은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쉽게 죽을 생각하지 마. 네가 당할 일은 아직 많으니까!”장하리는 서수연이 또 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음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다 명희정이 찾아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뺨을 몇 번이나 때린 후, 비로소 서수연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장하리는 서수연과 노임향이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그녀는 그들이 정말로 비슷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서수연은 장하리의 휴대폰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했다. 사실 대부분은 서수연이 자신이 당한 일을 고백하며 혼자 흥분해서 지껄인 말이었다. 장하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장하리가 서수연을 궁지에 몰아넣어 자백을 강요했다고 생각할 것이다.그 녹음 파일은 장하리의 휴대전화에서 유출되었기에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장하리는 또다시 변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노임향이 그녀에게 누명을 씌웠을 때와 똑같았다.아무도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이렇게까지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한 여자가 자신의 순결을 이용해 계획을 꾸밀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장하리는 몇 번이나 뺨을 맞고 나서야 자신은 이런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의 인생은 노임향과 서수연에 의해 망가질 것이다. 그녀야말로 진짜로 망가진 사람이었다. 망가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누구에게도 동정조차 받지 못했다.경찰서에 끌려갔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