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안에는 서수연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서주혁은 플로리아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제대로 쉬지 못해 머리가 지끈거렸다.명희정이 급히 말했다. “넌 먼저 돌아가. 내가 여기서 수연이를 돌볼게.”서주혁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떠났다. 서수연은 끝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넌 내 친오빠도 아니야. 어떻게 가족에게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어? 엉엉, 나 이제 너랑 인연 끊을 거야. 더 이상 서씨 집안에 있고 싶지 않아. 서씨 집안 사람으로는 살고 싶지 않아.”명희정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서수연의 손목을 잡았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수연아, 무슨 말을 해도 좋지만 오빠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안 돼.”서주혁은 일찍이 서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눌러왔고, 이 몇 년간 혼자서 얼마나 많은 일을 감당해 왔는지 모른다.명희정은 자신과 남편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주혁이 서창환의 중시를 받았기에 그들 가족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만약 서주혁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서씨 가문에서 분명히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서수연의 좋은 날들은 전부 오빠가 서씨 가문에서 쟁취한 것들이다.서수연은 어깨를 들썩이며 작은 소리로 훌쩍였다. 그러자 명희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음에는 오빠한테 잘 얘기해. 주혁이의 부담은 누구보다도 클 테니까.”이미 병원을 나온 서주혁은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인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오늘 날씨는 좋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뼛속까지 시렸다.그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성혜인의 말이 떠올랐다.‘...주혁 씨, 하지만 장하리도 항상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에요...’담배를 다 피운 후 그는 담배꽁초를 옆 쓰레기통에 던졌다.그는 이 말이 마음에 걸렸다.예전 장하리를 괴롭히던 때를 떠올리면 그녀는 아프더라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절대 복수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하리에 대한 첫인상이 너무 나빴다. 서
자존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보잘것없는 자존심일지도 모른다.그 생각을 하며 장하리는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괴고 두 손을 모아 이마로 가져갔다. 장하리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서주혁은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짜증 나는 감정이 다시금 밀려왔다. 서주혁은 원래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장하리의 앞에서는 항상 인내심을 잃었다.왜 울고 있는 걸까?울 만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는 그녀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서주혁의 마음은 확실히 차가웠다. 그는 담배를 피우려 했지만 자신이 있는 곳을 떠올리자 천천히 담배를 다시 내려놓았다.장하리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두 손을 꽉 쥐며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장하리는 자신이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이틀 동안 그녀는 안에서 수없이 맞았다. 아프기는 했지만 그 아픔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그러나 서주혁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상처가 마치 한 순간에 모두 찢기는 듯했고 통증은 몇 배로 커졌다. 그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그 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장하리는 그저 무감각하게 그의 뒤를 따랐고 그가 다양한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바깥의 푸른 하늘을 보게 되었다.그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손가락의 상처는 이미 곪아 있었지만 그녀는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서주혁은 곧바로 차를 운전하지 않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은 후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회사 회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차를 몰고 회사에 도착한 후 차에서 내린 서주혁 조수석에 있는 장하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장하리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그와 함께 내리지 않았다.서주혁은 회
장하리는 포기하고 일어나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옷을 벗자 온몸이 사람들에게 맞아서 생긴 멍으로 가득했다. 입꼬리도 마찬가지였다. 거울 속의 여인은 너무 말라서 눈이 더욱 커 보였다.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서주혁은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 장하리는 그의 의도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따뜻한 오트밀 한 그릇을 먹고 나서야 조금의 힘이 돌아왔다.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인터폰을 확인해보니 아파트 관리실 직원이었다.“장하리 씨.” 관리인이 문밖에서 외쳤다. 장하리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관리인의 손에는 작은 강아지가 들려 있었다.“장하리 씨, 이 강아지를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했어요. 지난번 누군가가 이 강아지를 연못에 버렸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구해냈어요. 주변에 다 물어봤지만 지금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방금 누군가가 이 강아지가 장하리 씨의 강아지일 수도 있다고 해서 데려왔어요. 관리실에 두고 있었는데 너무 심하게 짖거든요. 장하리 씨 강아지가 맞는지 확인해 주세요.”장하리는 자리에 얼어붙어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회색 강아지를 관리인의 손에서 받았다. 아리는 몸을 움츠린 채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장하리는 입술을 떨며 문을 닫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고서야 서주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 그녀는 급히 말했다. “주혁 씨, 아리를 봐...”말 끝을 흐린 장하리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아리의 등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지난번 온시아는 아리를 아래로 끌고 내려갔을 때 더럽다고 생각해 연못에 던져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온시아도 아리가 구해졌다는 사실은 몰랐다.서주혁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 장하리는 그를 부를 때 눈빛이 반짝거렸다. 요즘 그녀의 눈빛은 늘 탁해 보였다. 이렇게 빛난 적이 없었다. 서주혁은 그녀의 빛나는 눈길에 가슴이 찔린 듯 아팠다. 담배가 타들어가면서 재가 바닥에 떨어졌다.장하리는 자신이 너무 감정에 휩싸였음을 알았다. 그녀는 처
서주혁은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그 반짝이는 눈빛 때문에 갑작스러운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그 충동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심지어 지금도 그의 몸은 여전히 흥분된 상태였다. 서주혁은 또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했지만 담뱃갑이 이미 비어 있었다. 요즘 담배를 정말 많이 피웠다.그는 등을 의자에 기대며 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었다. 그렇게 해야만 숨을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그는 다시 액셀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갔다.한밤중, 장하리는 고열에 시달렸다. 그녀는 약을 찾아 두 알 먹고 침대에 누운 후 아리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간신히 손을 뻗어 침대 가장자리에서 낑낑거리는 아리를 달랬다. 의식이 약간 흐릿했고, 머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침대에는 여전히 서주혁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마치 그가 아직 떠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장하리는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그가 남긴 기운에 몸을 기댔다. 고열로 몸은 계속 뜨겁게 달아올랐다.장하리는 서주혁이 그녀를 데려다준 사진이 곧바로 서수연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을 몰랐다. 서수연은 오후에 명희정의 설득으로 병실에 얌전히 머물러 있었다. 이번 사건은 서수연이 자작극을 꾸민 것이었고, 그녀는 장하리 가족을 모두 없애고 싶어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을 보며 서수연은 분노에 휩싸여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그래서 오빠가 그 여자 집에 몇 시간이나 있었다는 거야?”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지도 못한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수연은 손에 든 사진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온몸을 떨며 주먹을 꽉 쥐었고, 그로 인해 손바닥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었다. 더는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오빠가 이미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계속 나쁜 짓을 하면 오빠는 더 이상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서수연은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장하리가 다시 오빠를 유혹해
장하리는 서주혁이 보낸 차량 번호를 보고 난 뒤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몰라서 단 한 글자만 보냈다. [네.]그가 자신의 고통을 끝낼 건지, 아니면 전처럼 계속 괴롭힐 건지 확실히 알려주기를 바랐다. 장하리는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카드를 바라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한편, 서주혁은 물을 들고 들아와 명희정이 전화를 끊는 모습을 보았다. 서주혁은 휴대폰을 가져와서 대충 확인해 봤다. 정말로 할아버지에게 전화한 기록이 있었다.서수연은 그의 휴대폰을 사용해 20초도 채 되지 않아 문자를 보내고 기록을 삭제했다. 서주혁은 여동생이 이미 미쳐버린 상태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명희정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쉬었다. “주혁아, 오늘 밤에도 야근이니?” “네.” “걱정시켜서 미안하구나. 난 괜찮아.” 말을 마친 명희정은 서수연을 바라보았다. “수연아, 이제 그만 돌아가. 몸 잘 챙기고 오늘 같은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 “엄마, 죄송해요.” 지금 서수연은 매우 얌전해 보였고, 정말 반성하는 듯했다. 이 모습을 보며 서주혁도 안도했다.“오빠, 그럼 나 먼저 갈게요.” 서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수연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집을 나설 때 서수연은 일부러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썼다. 그리고 곧바로 장하리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차 안은 불이 꺼져 있어서 매우 어두웠다. 이 차는 서주혁이 예전에도 몰았던 서씨 집안의 차로 서수연이 방금 장하리에게 보낸 차량 번호와 같았다. 서수연이 막 차를 세우자 장하리가 패딩을 입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서수연은 핸들을 꽉 잡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오늘 밤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장하리는 뒤로 가서 뒷좌석 문을 열려고 했다. 그녀는 이미 자동차 번호판을 확인했고 서주혁이 전에 몰았던 차 번호판이었다. 뒷좌석 문이 잠겨 있어서 장하리는 부득이하게 조수석으로 갔다. 문
“결혼해 줄게.”얼마나 듣기 좋은 한 마디인가.하지만 이 말을 한 곳이 차디찬 경찰서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자유를 대가로 하지 않았다면 장하리는 기쁨에 겨워 울었을지도 모르겠다.교통사고로 다른 사람을 치어 죽인 사람이 어떻게 감옥살이를 1년 만 할 수 있을까?하지만 서주혁이 1년이라고 했으니 그 말인즉슨 돈으로 눌러 감형을 받겠다는 말이었다.고작 1년이다. 1년만 희생하면 서주혁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장하리는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의 몸이 더 차가웠기 때문에 장하리는 벽의 냉기조차 느끼지 못했다.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서주혁의 한마디에 다시 삼켰다.“나랑 결혼하고 싶던 거 아니었어?”다 알고 있었구나. 모든 걸 기억하고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다 모른 척 무시했던 것이었구나.장하리는 확실히 서주혁을 좋아했다.하지만 서주혁은 장하리와 다른 사람이었다.장하리의 세상에는 따뜻함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 온기를 얻으려고 하곤 했다. 어머니가 잘해주지 않고 오히려 욕설을 퍼부어도 필사적으로 어머니를 만족시키고 사랑받으려고 했다.이런 그녀의 심리는 일종의 병이라 느껴질 정도로 강박적이었다.가족은 그녀에게 기대지 못하는 썩은 벽일 뿐이었다. 하지만 장하리는 이 벽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늘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왔다.그러나 서주혁은 달랐다. 약육강식이 세계에서 자라온 그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에게 기대는 걸 싫어했다. 그에게 감정 같은 건 필요 없었다.그는 가난하고 열악한 가정에서 자라온 여자아이의 열등감을 깨닫지 못했고 심지어 장하리가 우스워 보이기까지 했다.만약 그가 썩은 벽에 기댔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그는 분명 총을 꺼내어 몇 방 쏘았을 것이다.이렇게 그는 장하리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장하리는 미움받는 것에 익숙했고 감정적으로 독립하는 법을 몰랐다.열다섯 살에 방우찬을 만나 그에게 기대면서 의붓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견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다른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을
가슴이 벅차올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서주혁이 듣기 싫어한다는 걸 알기에 묵묵히 참아냈다.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그를 향해 웃어 보이려 했지만, 웃어지지 않았다.“주혁 씨...”그녀는 여전히 묻고 싶었다. 단 1초라도 자신이 마음에 든 적은 없었는지.하지만 서주혁은 이미 돌아선 뒤였다. 그는 서주연에게로 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장하리는 경찰들 곁에 서서 차가운 수갑이 채워져 있는 자기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말보다 행동이 장하리를 더 아프게 했다.경찰서를 나온 서주혁은 서수연의 손을 잡고 자동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비행기 표를 끊었으니 당장 출발해. 다신 돌아오지 말고.”서수연은 자신이 한 일이 서주혁의 한계를 벗어났음을 잘 알고 있었다.그의 이 잘난 오빠는 다른 사람에게 모락당하는 것을 제일 참지 못했다.하지만 서수연은 만족스러웠다. 어쨌든 결국 장하리는 감방에 들어갔고 장하리의 어머니와 그 역겨운 아버지는 여전히 함께 고통받고 있으니까.서수연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알겠어요. 오빠.”서주혁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기사더러 운전하라고 했다.장하리가 너무 빠르게 감방에 들어갔기 때문에 SM 쪽에서 소식을 들은 것은 사고가 일어난 지 3일 뒤였다.한서진이 아무리 장하리에게 연락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고 안달이 난 한서진이 실종 신고를 할 뻔했을 때 경찰 쪽에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처음에 한서진은 자신이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 장하리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했다는 소식. 심지어 일부러란다.장하리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는 바로 운전하여 경찰서로 향했다.하지만 경찰서에서 면회하지 못하게 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성혜인은 서주혁과 온시환이 떠난 이후로 줄곧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매일 밤 꿈에서 반승제를 만났고 정신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하여 장하리에게 생긴 일을 전해 들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두통을 느꼈다.
10분을 더 기다렸으나 장하리는 나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성혜인은 자리를 떠났다.차에 다시 올라타자 차의 온기가 화를 조금 가라앉히게 했다.성혜인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한서진을 불러냈다.하지만 한서진 역시 장하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알지 못했고 그저 서수연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대표님, 그런데 저는 장하리가 사고를 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그날 밤 목격자 몇 명을 찾았는데 운전자가 고의로 사람을 3번이나 깔아뭉갰다고 해요.”장하리가 어떤 어떻게 이런 잔인한 수단으로 사람을 죽일 수가 있을까?성혜인의 낯빛이 흐려졌다. 장하리가 누군가 때문에 죄를 뒤집어썼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하지만 누가 장하리를 이렇게 기꺼이 감방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지?“대표님,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전에 업계 내에 돌아다니던 녹음본이 있는데, 하리 씨와 서수연의 녹음본입니다. 그런데 녹음본을 들어보면 서수연이 하리 씨 의붓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녹음본으로 인해 서수연은 크게 망신을 당했고 하리 씨도 서씨 가문 사람들이 데려갔기 때문에 이후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서씨 가문에서 무언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면 저는 단서를 찾아낼 수 없으니까요.”성혜인은 바로 서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없는 번호라는 음성만 들렸다. 서씨 가문에서 의도적으로 외부와 서시연의 연계를 차단하는 것이 분명했다. 분명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성혜인이 입술을 짓씹으며 곁에 있는 설우현을 바라보았다.“오빠, 저 서주혁 씨한테 갈 거니까 데려다주세요.”설우현도 아무리 어리석어도 이 일이 서주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지금 장하리가 신경 쓰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를 잃었고 그렇다면 그녀가 신경 쓰는 한 사람은 서주혁뿐이었다.만약 그녀가 정말 다른 사람을 위해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면 심지어 서수연같이 난폭한 사람 때문에 죄를 뒤집어쓴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
연승혁은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했지만, 공지민이 소파로 이끌어 앉고 나서야 그나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공지민의 휴대전화는 이미 연승혁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는 전부 온시환에게서 걸려 온 것이였다.연승혁은 휴대전화를 다시 공지민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이 번호에 전화 걸어 최근 한 달 동안은 연씨 가문에서 할머님을 보살펴야 한다고 해.”공지민은 부재중으로 적힌 온시환이라는 이름을 보고 물었다.“이건 누구예요?”“네 친구야. 네가 어떻게 된 건지 걱정되어 연락이 온 같으니 내 말대로 문자 한 통 보내줘.”“알겠어요.”공지민은 머리를 끄덕이며 연승혁이 말한 대로 메세지를 작성하여 발송했다.하지만 회답은 바로 오지 않았고 몇분이 지나서야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걱정되니까 전화 좀 받아.”연승혁은 바로 휴대전화를 뺏어가 대충 한 줄로 답장을 보냈다.“걱정하지 말아요.”답장을 받은 온시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공지민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온시환이 바다에 보낸 사람은 지금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고 오늘 밤 연승혁은 그쪽에서 명령을 받을 것이다.연승혁의 꼬리는 이미 잡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도 증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증인은 연승혁에 의해 불 속에 버려진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지금은 행방불명이고 이 사람만 찾으면 연승혁을 감옥에 보낼 수 있었다.지금 공지민은 혼자 움직이고 있는 듯 하였으나 그녀의 계획을 들은 적 없는 온시환은 매우 불안했다.온시환은 자신이 막지 않으면 공지민은 죽을 길밖에 없고 그녀 역시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럼 난? 단 일 분이라도 날 생각한 적 있었나?’온시환은 공지민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 항상 잘해주고 있는 자신을 거절할 방법이 없어서 함께 지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소파에 드러누운 온시환은 문자로 공지민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지만, 연승혁한테 들킬까 봐 섣
연승혁은 온시환에게 술을 건네며 말했다.“결혼도 했으니 이제 좀 안심하지 그래? 누나는 연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 태도도 한결 누그러졌잖아. 할머니를 돌보러 간다는데 뭐가 그렇게 걱정돼? 설마 누가 누나를 괴롭히기라도 할까 봐?”온시환은 술잔을 비우고 몸을 뒤로 기대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물었다.“그래서 원아정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원래 해외로 보낼 계획이었는데,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도망쳤어. 지금까지도 행방을 못 찾고 있어.”온시환은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네 사람들 진짜 무능하네?”이 일은 연승혁 자신도 잘못 처리한 게 분명했기에 그는 드물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온시환은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이곳에 공지민이 없으니 흥미를 잃은 듯 지루해졌다.연승혁 역시 마음이 이곳을 떠나 있었다. 그는 이상우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집에 공지민이 있는데...’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어딘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술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단지 그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또다시 선을 넘는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이 게임은 분명 자신이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기분은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생소했다.그는 다시 한 잔의 술을 들이켜고는 옆에 앉은 온시환을 흘깃 바라보았다.솔직히 말해, 온시환의 외모는 인정할 만했다. 여자 친구도 여럿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공지민도 그에게 그런 눈빛을 보냈던 적이 있지 않을까?그녀가 두 다리로 이 남자의 허리를 감싸안은 적은 없었을까?그런 생각만으로도 속이 답답해지고 묘한 불쾌감이 밀려왔다.연승혁은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집으며 말없이 나갈 준비를 했다.이상우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연승혁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이상우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조금 떨어져서 걸어가며 말했다.“나
공지민의 눈빛은 너무 맑았다. 연승혁은 이런 순수함이 싫었다. 그는 예전부터 너무 깨끗한 것을 보면 망가뜨리고 싶어졌다.마치 과거 드라마 속 공지민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과도 같았다.지금은 상황이 그의 손아귀에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공지민은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그 모습은 그날 폐공장에서 보여주었던 농염한 태도와는 전혀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다.“오빠, 저녁은 뭐 먹어요?”“네가 먹고 싶은 걸로. 내가 요리사에게 시킬게.”연승혁은 시선을 피하며 어둑한 눈빛을 감추고 소파로 가 앉았다. 공지민은 그의 꽁무니를 따라가 곁에 앉았다.“아무거나요.”그녀는 어느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예전에 오빠를 좋아했던 건 오빠 얼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공지민은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턱선을 따라 손끝으로 훑더니, 손가락 끝이 그의 목젖을 스치듯 지나갔다.그 순간, 연승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무엇인가 가볍고도 날카로운 것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혔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끝 온기가 은근히 탐이 났다.요리사가 저녁을 가져올 때까지도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지민은 연승혁에게 같이 앉아 식사를 하자고 했지만 연승혁은 갑자기 나갈 일이 있다며 혼자서 먹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차에 앉은 연승혁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그때 친구로부터 술자리에 오라는 연락이 와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마침 그 자리에는 이상우도 나와 있었다.이상우는 여전히 금테 안경을 쓴 채 그를 보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연승혁은 평온한 얼굴로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원아정이 사라졌다는데, 그거 진짜야?”연승혁은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응, 진짜야
공지민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이내 진심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런 거였군요.”그녀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얼굴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혼란과 미묘한 행복감이 섞여 있었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를 골려주려던 참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바지를 벗긴 걸 생각하면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그날 폐공장에서 그녀가 ‘오빠’라고 불렀던 그 농염한 목소리는 마치 주문처럼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두 다리를 꼬아 올리며 보였던 그 요염한 눈빛은 숲속의 교활한 여우처럼 그를 현혹시켰다. 하지만 지금의 공지민은 순수하고 멍한 토끼처럼 덫에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처음에는 그저 장난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심장이 조금씩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이상우는 커튼을 닫고 손목시계를 흘깃 보더니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같이 밥이나 한번 먹자. 연락해.”이상우와는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친구였기에 그 정도의 약속은 자연스러웠다.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지민의 볼을 꼬집었다.그녀의 피부는 매끄럽고 부드러웠으며 도톰한 볼은 꼬집을 때마다 화난 햄스터를 연상케 했다.방 안에 둘만 남았을 때 공지민은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연승혁은 살짝 힘을 주며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귀여워서. 다시 한번 오빠라고 불러볼래?”그날 폐공장에서 불렀던 것처럼 농염하고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이다.공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평소에 제가 그렇게 불렀어요?”연승혁은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그래.”“정말 오글거리네요.”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오빠.”공지민의 목소리는 지난번처럼 농염하고 유혹적이지 않았지만 왠지 이번에는 지켜주고 싶어지는 느낌이 들었다.연승혁은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트는 걸 느꼈다. 손을 내리고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도 가슴이 이상하게 뛰었다.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