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가 입술을 짓씹었다.“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안 믿을 거잖아요.”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장하리가 어떻게 말하든 서주혁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장하리와 노임향의 관계를 확실히 알고 있다 해도, 온시아에 대한 일은 밝혀진 바가 없으니까.온시아가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사람을 시켜 독을 먹이는 것도 그다지 똑똑한 행동은 아니었다.사실 서주혁은 이미 마음속으로 장하리가 관여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장하리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할 것이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어야 할 거야.”차갑게 말 한마디를 내뱉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네 어머니한테 전화해.”지금 서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노임향을 찾고 있었고, 노임향은 조만간 붙잡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 동안 서수연이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것이다.서수연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기에 고생 따위 모르고 컸다.장하리는 고개를 숙이고 노임향의 차단을 풀었다.막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서주혁이 곁에서 명령했다.“이쪽으로 와서 내 앞에서 전화해. 스피커 켜고.”장하리가 서주혁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서주혁에게는 일종의 아우라가 있었는데 반승제 같이 자만심 강한 귀공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서주혁은 침착하고 차갑고 딱딱했다.그가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자 은빛 손목시계가 드러났다.노임향과 전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전화 건너편에서 노임향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네가 처리하라고 한 여자애 내가 데려갔으니 걱정하지 말렴. 앞으론 널 방해하지 못해.”이 말에 장하리가 흠칫 놀라며 전화를 응시했다.그녀의 어머니는 멍청하고 어리석지만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기지를 발휘하여 항상 적절하게 장하리의 일을 망쳤다.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는 장하리가 전화한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이미 서씨 가문의 미움을 산 마당에 그녀와 남편도 모두 탈출했으니, 이참에 장하리를 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만 있다면 일석삼조 아니겠는가?지난번 독극물 사건으로 누명을 씌우
서수연은 이렇게 거대한 절망감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예전에 성혜인 때문에 놀랐을 때도 단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절망이었다.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모두 장하리 탓이다. 장하리 때문에 이런 역겨운 사람에게 강간당한 것이다.자동차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서수연은 멍하니 차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에 올라탄 역겨운 남자의 행위는 계속되었고 서수연은 울고 싶었지만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오는 길 내내 울었더니 이제 눈물이 말라버렸다.같은 시각, 장하리는 끊긴 전화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서주혁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표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화가 많이 났겠지.그녀가 천천히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자 서주혁이 대뜸 입을 열었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나?”그는 줄곧 강압적이었으며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그의 말에 장하리가 발걸음을 멈추었고, 서주혁은 라이터를 켰다.그리고 뒤이어 풍겨오는 담배 연기.“수연이 돌아오기 전까지 여기서 기다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넥타이와 정장을 챙기고는 밖에 있는 사람들을 들어오도록 했다.한쪽 계단 입구로 가서 성가신 표정을 지으며 명령했다.“방 하나 치워서 들여보내. 그리고 하루 내로 수연이 찾아서 데려와.”“네. 대표님.”곧 장하리는 한 방에 끌려가 갇히게 되었다.서주혁의 방은 2층이고, 그녀가 갇히게 된 방은 1층에 있었다. 게다가 딱 봐도 가정부의 방이었다.방은 대략 50평쯤 되었고 별도로 욕실이 준비되어 있었다.그러나 이곳의 가정부 방마저 장하리가 이전에 지냈던 대부분의 방보다 훨씬 좋았다.장하리는 침대에 앉아 벽에 기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서수연에게 아무 일 없기를 빌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서주혁은 모든 것을 장하리의 탓으로 돌릴 것이 뻔했다.그가 노임향의 딸임을 탓할 것이고.서수연의 구조 요청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탓할 것이다.머릿속이 복잡해진 장하리는 침대에 눕지 않고 벽에 기대
서주혁이 홧김에 옆 식탁을 발로 차버렸다. 테이블 위의 모든 물건이 마구 흔들렸다.“지금 어디에 있는데?”“돌아오는 길에 이미 병원을 예약해 놓았습니다”서주혁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때 곁에 있던 하인이 다가왔다.“대표님, 하리 씨에게 아침밥 올려다 드릴까요?”서주혁이 차가운 얼굴로 하인을 응시했다. 입가에는 냉소가 지어졌다.“고추 한 접시 올려보내. 매울수록 좋아.”하인은 어리둥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서주혁은 옆에 놓아뒀던 코트를 들고 바로 집을 나섰다.그리고 하인은 얼른 볶은 고추 한 접시를 장하리에게 가져다주었다.장하리는 밤새 잠을 못 잔 상태였으며 지금까지도 서수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문득 매운 향이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방문이 열리더니 하인이 고추 한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하리씨, 아침 드세요.”접시에는 온통 고추뿐이었고 쌀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주혁 씨는요?”하인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우선 아침 드세요. 대표님의 행방을 우리 하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말을 마친 하인은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다.테이블 위에는 빨간 고추만 놓여 있었는데 냄새부터가 자극적이었다.그녀는 연거푸 기침을 했다.아침밥의 상태로부터 서주혁이 많이 화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장하리는 고추에 손을 대지 않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점심 12시, 서수연은 제시간에 제원에 도착하여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전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분노를 표출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서수연은 돌아오는 길 내내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의사가 진찰할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다.의사는 성병 예방을 위한 주사와 약을 처방 해 주었고, 성병 교육을 위한 사진을 본 수연은 역겨워서 토할 것 같았다.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서수연이 병실로
서주혁의 별장.장하리는 좁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다. 도망치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높이였다.하지만 장하리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바깥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서주혁이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장하리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있었다.서주혁이 휴대전화를 가져갔기 때문에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는 상태였다.장하리는 턱을 팔에 기댄 채 창가에 앉아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이때쯤 배에서 자꾸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별장에 들어온 날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위병이 계속 도졌다.게다가 이틀 동안 빈속이었으니 오죽할까. 세 번이나 구역질을 했지만, 토해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인이 너무 박하게 굴지 않았다는 것이다.하인은 매일 장하리에게 물을 가져다주었고 장하리는 물 두 주전자로 이틀을 버텼다.배고픔으로 인하여 어지러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위병이 터져서 위가 따끔거렸다.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장하리는 침대 앞에 엎드린 채 어깨를 들썩였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억울한 일들을 겪었다. 하여 더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어 왔음에도 외로움과 서러움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결국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졌다.밖에서 자동차 타이어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곧이어 서주혁이 별장으로 들어왔다.장하리는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침대 곁에 기대어 앉았다.별장에 들어선 서주혁이 옷을 하인에게 건네자 하인이 물었다.“대표님, 하리 씨에겐 언제 음식을 가져다줄까요?”서주혁이 며칠 동안 줄곧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인들도 감히 마음대로 음식을 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없었다.코트를 건네던 그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그제야 서주혁은 장하리가 아직 별장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그는 현재 장하리의 일가족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생각만 해도 저도 모르게 혐오감이 조성되었다.하인이 그를 방 입구까지 안내했다.문을 여니 침대에 기대어
의사가 급히 와서 위를 세척하고 약을 처방했다. 수액을 투여한 후 따뜻한 죽 한 그릇을 준비하라고 일렀다.“서 대표님, 환자분의 위병이 꽤 심각합니다. 앞으로 몇 달간은 매운 음식은 피하시고 한 달 동안은 죽만 드셔야 합니다. 육류와 자극적인 음식은 꼭 삼가셔야 해요.”서주혁은 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장하리의 가냘픈 손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목이 언제 이렇게 가늘어졌는지 손등의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알겠습니다.”서주혁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사가 떠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 명희정의 전화였다.“그 가족 어디 있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놈들을 모두 감방에 처넣어버릴 거야!”평소 딸 서수연을 애지중지하던 명희정은 서수연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장하리의 가족을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었다. 명희정은 하루 동안 서수연을 돌보았다. 서수연이 시끄럽게 굴진 않았지만,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자신이 망가졌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명희정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주혁아, 그 두 사람 지금 어디 있어? 경찰서에 넘기지 마. 내가 그 사람들에게 직접 생지옥을 경험시켜 줄 거야.”“제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요.”명희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이를 악물었다.“장하리는? 수연이가 그 여자가 시킨 거라고 말했어.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어?”지난번 온씨 집안 사건에도 장하리가 연루되었는데, 이번에도 또 나타나다니. 명희정은 절대로 이 여자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서주혁의 시선은 옆으로 향했다.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장하리는 여전히 혼미한 상태였다. 서수연이 당한 일을 떠올리며 그는 장하리를 조심스럽게 밀어냈다.“어머니, 이 일은 제가 잘 조사해 볼게요.”“조사할 필요가 뭐가 있어? 수연이가 그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었다잖아! 장하리를 나에게 넘기든지 아니면 수연이에게 넘겨.”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희정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서수연은 여전히 욕설을 퍼부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장하리는 서주혁에게 끌려가며 팔이 끊어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는 것도 버거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하지만 서주혁은 그녀를 배려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복도 끝에 있는 침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장하리를 침대 위로 던졌다.장하리는 충격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기침을 토해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가련한 모습을 더했다.서주혁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방금 수연이가 당해도 싸다고 했어?”장하리는 머리가 멍해졌다. 고통이 온몸에 퍼지며 억울함이 그녀를 잠식하여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이 남매를 참을 수 없었다.“그래요. 그럴만하니까요.”서주혁은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장하리, 내가 널 너무 얕봤나 보네. 그러니까 이번 사건에 네가 정말 연루된 거야?”뭐라고 대답하든 그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나? 어차피 그녀를 의심할 테니까.장하리가 침묵하자 서주혁은 이를 인정한 것으로 여겼다.“그래. 장하리, 그럴 줄 알았어. 그런 여자가 낳은 자식이 좋은 사람일 리가 없지. 네가 수연이가 당해도 싸다고 했으니, 너도 그 맛을 봐야 하지 않겠어?”장하리는 침대 위에서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자꾸만 흘러내렸다.서주혁은 반쯤 타버린 담배를 손에 들고 문밖을 향해 말했다. “다 들어와.”문밖에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이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대표님.”서주혁은 침대 위의 장하리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소 말랐지만 그 모습조차도 아름다워 보였다.“맘껏 즐겨.”장하리는 환청이라도 들은 듯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앉은 그녀는 서주혁이 이어서 하는 말을 들었다.“제대로 만족시켜 줘.”“주혁 씨!”그의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장하리는 입술을 떨며
경호원들은 바지를 벗고 장하리의 발목을 잡아챘다.서주혁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팠다. 그것은 아주 미세하고 날카로운 통증이었다.내뱉은 담배 연기가 서주혁의 얼굴을 감쌌다. 그는 속눈썹을 내리깔고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희들 나가.”두 명의 경호원은 마치 사면을 받은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 정말로 침대 위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그들은 급히 바지를 올리고 서주혁에게 허리를 숙인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마치 뒤에서 귀신이라도 쫓아오는 것처럼 빠르게 걸어갔다.서주혁은 담배를 버리고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장하리의 발목에는 경호원이 남긴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제압할 때 힘을 조절하지 않고 세게 잡았다. 그 결과 그녀의 발목에 다섯 개의 붉은 자국이 남았다.장하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마치 모든 감각이 무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손목이 잡혀 끌어올려지면서 그녀는 앉은 자세가 되었다.입가의 피가 번지면서 장하리의 입술 주변을 물들였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서주혁을 바라보았다.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이제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서주혁은 옆에 있는 휴지를 꺼내 장하리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녀는 피하려 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그저 침묵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한 번 닦을 때마다 장하리의 입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나왔다. 서주혁은 그녀의 턱을 잡고 손가락을 그녀의 입안에 넣었다.장하리는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의 손가락이 혀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눈물은 점점 더 흐르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서주혁은 상처를 대충 살펴보았다. 혀가 끊어질 정도로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다.그가 손가락을 빼려는 순간 장하리가 입을 다물고 그의 손가락을 꽉 물었다. 하지만 힘이 바닥나서 고양이가 살짝 깨무는 것 같았다.“놔.”서주혁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장하리는
다음 순간 장하리가 기침을 하더니 그의 셔츠에 피를 토했다. 서주혁의 얼굴은 즉시 어두워졌고, 장하리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장하리는 옆으로 쓰러지더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의 극심한 통증에 침대 시트를 꽉 움켜잡았다. 마치 곧 기절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서주혁은 자기 셔츠에 묻은 핏자국을 바라봤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수연 아가씨가 계속 울고 있습니다.”그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셔츠를 벗고 옷장 쪽으로 가서 깨끗한 옷을 고르려던 찰나, 장하리가 말했다.“차라리 날 죽여줘요.”그녀에게 계속 붉은 고추를 먹여 위암에 걸리게 할 작정인가? 진정 죽이려 한다면 차라리 독약을 먹이면 그만이지 않은가?“죽고 싶어?”서주혁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손목의 차가운 시계를 정리했다.지금은 밤 9시였다.“밖에 나가서 무릎 꿇고 있어. 수연이 화가 풀리면 돌아가게 해줄게.”여전히 침대 시트를 꽉 그러쥐고 있던 장하리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손에 힘이 풀렸다.장하리를 등지고 서 있던 서주혁이 문가로 걸어가 문을 열려고 할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혁 씨.”잠시 발걸음을 멈춘 서주혁은 미간을 구겼다. 마음속에서 짜증이 솟구쳤다.서주혁은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문밖으로 나가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장하리는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눈을 내리깔며 계속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어디가 아픈지 말할 수 없을 만큼 견딜 수 없는 고통만 느껴졌다.서주혁이 계단을 내려가 보니, 서수연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울며불며 난리 치지는 않았지만 옆에 있는 단도를 집어 들어 자기 목을 그을 기세였다.옆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를 제지하려 했지만 서수연은 몇 번이나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건드리지 마!”서주혁은 계단 입구에 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서수연은 온몸이 굳은 채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오빠, 저 여자 좋아해요? 저 여자를 우리 집에 데려와 새언니로 만들려는 거예요? 저 여자가 가당키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