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방우찬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저 사람은 장하리의 바람 난 전남친 아니던가?재결합하려는 건가?그는 사 온 생수를 옆에 있던 휴지통에 휙 버리고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밖으로 걸어 나갔다.차에 타자 운전기사가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바래다줘야 할 분 어디 계신가요?”“됐어. 필요 없어졌어. 돌아가.”기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고분고분 돌아갔다.차에 시동을 건 서주혁은 장하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핸들을 돌려 가속 페달을 밟았다.동시에 마음속으론 냉소했다. 바람피운 남자는 씹다 뱉어진 껌과도 같았다. 그런데 장하리가 그 껌을 다시 가져와 씹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런 사람들은 당해도 싸다.게다가 장하리는 방우찬을 좋아하지 않던가.정말이지 너무 싸구려 감정이다. 지난 한 주에는 서주혁 때문에 슬퍼하더니 이번 주에는 전 남자 친구가 얼굴을 만지도록 둔다.핸들을 쥔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가는 것을 서주혁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또 화장실에서 만난 진도준을 떠올렸다.그는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런 사람은 당장 회사에서 잘라버려야 했다....방우찬을 밀어낸 장하리는 절뚝거리며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걸어 나갔다.방우찬은 마치 껌처럼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장하리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하리야, 그냥 내가 방 잡을게. 걱정되면 너 혼자 호텔 올라가. 난 안 따라갈 테니까”그는 짐짓 자신이 매너 있는 사람인 척 행동하기 시작했다.장하리는 추위에 이가 떨렸지만 방우찬에게 보여주기 싫었다.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고 몸을 굽힌 장하리는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강민지라는 것을 발견했다.“민지 씨?”“하리 씨?”반가움에 차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잠겨 있었다.그녀는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결재하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친구가 술에 취한 것 같아. 데려다주고 싶어.”신예준은 대답 없이 손을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10분밖에 없어. 아빠 보러 가기 싫으면 그렇게 해.”강민지는 큰 굴욕감
앞에 앉은 기사는 가끔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에게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은 매우 흔했다. 심할 때는 칼을 휘두르기도 했으니 말이다.기사는 침을 삼키며 정말이지 조만간이면 이런 분위기에 자기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전에 그는 제이엔 쥬얼리에서 신예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강상원은 두 사람의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고 강민지도 어쩔 수 없이 그를 회사 말단 직원으로 넣어줬을 뿐이다. 그런데 신예준의 업무 능력이 이렇게 출중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어느 정도로 대단했냐 하면,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상사가 파격적으로 승진시켰을 정도였다.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꿈 같았다. 그 정도로 모든 일이 눈 깜빡할 사이에 빠르게 일어났기 때문이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장하리는 잠을 그다지 편히 자지 못했다. 머리가 창유리에 부딪히자 장하리는 얕게 신음을 흘렸다.자동차가 장하리의 집 앞에 멈춰 섰다.송아현은 진작 집으로 보내진 상태였다. 진도준은 그녀에게 호감만 있을 뿐 아직 톱스타에게 손댈 엄두는 내지 못했다.그러나 그녀와 달리 장하리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설령 장하리에게 미움을 사더라도 그녀 대신 욕해줄 팬은 없었다.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두통과 어지러움 때문에 강민지에게 잘 가라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욕실로 달려가 구토하려 했으나 헛구역질만 나올 뿐이었다.고개를 들고 무심코 거울 속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살이 눈에 띄게 빠졌기 때문이었다.샤워하고 싶었지만 알코올 때문에 몸이 나른해져 그대로 침대에 웅크린 채 잠들고 말았다....다음날 잠에서 깨니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웠고 위도 따끔거렸다,그러나 이를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장하리는 간단하게 빵 한 개로 아침을 때우고 회사로 향했다.“서진 씨, 이 자동차 브랜드 모델 온수빈 씨로 정해졌으니까 계약서를 진 사장한테 보내라고 해요.”“모델 아직 안 정한 거 아니었어요?”“어젯밤에 얘기가 끝났어요.”장하리는 창백한 얼굴로 사무용
“하리야, 엄마가 이렇게 부탁할게. 한 번만 얼굴 좀 보자.”노임향이 애걸복걸했고 이따금 방우찬이 곁에서 위로하는 소리가 들렸다.장하리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미 한 번 실수한 것으로 충분하다. 두 번의 실수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전화가 끊기자 노임향은 마음이 조급해졌다.방우찬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서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어머님, 너무 걱정 마세요. 하리는 마음 약한 애니까 제가 몇 마디 더 설득하면 만나러 나와줄 거예요.”노임향이 감격하며 방우찬의 손을 맞잡았다.“고맙다. 그럼 이 일은 너에게 맡기마.”“어머님, 아버님도 집에 계세요?”남편 얘기가 나오자 노임향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그, 그렇지. 나 이제 가야겠다.”방우찬은 원래부터 장하리의 집안일에 대해서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가 지금 노임향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은 그저 장하리와 하룻밤 자기 위해서였다.홍규연과 함께 할수록 장하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그는 반드시 이런 여자를 내연녀로 두어야 했다.집에 돌아온 노임향은 집에 술병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심장이 철렁했다. 노임향의 철없는 남편은 술도 좋아했고 바람도 밥 먹듯이 피웠다.젊었을 때 그는 잔꾀를 부려 때때로 의외의 돈을 벌 때가 있었다.지금은 늙어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뒤처졌지만 바람을 피우는 건 변하지 않고 여전했다. 그는 돈이 조금만 생겨도 밖에서 허세를 부리고 다녔다.그는 노임향이 돌아온 것을 보곤 대뜸 화를 냈다.“장하리랑 약속 잡으라고 했잖아. 전에 나 망신당하는 거 다 봤지? 그년한테 꼭 복수할 거야.”노임향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대답했다.“말했어. 싫다는데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싫다면 강요라도 해야지. 걔가 제일 신경 쓰는 사람이 당신 아니야? 내일까지 장하리 내 앞에 대령하지 못하면 당장 이혼할 거야. 정말 지긋지긋해.”뭐? 이혼?장하리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장하리에 대한 원망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서수연은 말없이 눈을 치켜뜨고는 가방을 들고 떠나버렸다.장하리는 평온했지만 오히려 곁에 있는 송아현이 화가 나 견디지 못했다.“언니, 우리 다른 거 골라요.”장하리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나 괜찮은데.”송아현은 그런 장하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가방 다섯 개를 연이어 샀는데 그 값이 무려 3억을 넘었다.“언니, 선물이에요.”“돈 낭비 하지 말지.”“가져가요. 언니가 우릴 위해 컨택하는 모델비는 더 비싼걸요.”장하리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고, 쇼핑백 몇 개를 들고 송아현과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막 쇼핑몰을 나서려 할 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임향을 발견했다.언제 왔는지도 몰랐다.“하리야.”노임향은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장하리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나 눈빛은 탐욕스럽게 쇼핑백을 주시하고 있었다.모두 내로라하는 명품 가게의 쇼핑백이었다. 아마 적어도 몇억은 될 것이었다.딸에게 돈이 많아 보였다. 전에는 몇억 때문에 온 가족이 허덕였는데 이제 그 몇 억은 딸의 가방에 지나지 않았다.노임향은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자기는 곧 이혼을 당하겠는데, 수중에 남은 돈도 없는데 딸은 보란 듯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장하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에 노임향이 딸의 손을 덥석 잡았다.“하리야, 엄마가 잘못했어. 너한테 사과하려고 여기서 기다렸어.”장하리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위 사람들까지 다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움이었다.동시에 장하리는 짜증이 치솟았다. 대체 이 사람은 언제 저를 놓아줄 것인가.“이거 놔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서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수연의 손에는 십여 개의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녀가 노임향을 힐끗 보더니 얼굴에 비웃음 어린 미소를 띠었다.“어머, 남자 없이 못 산다는 그 천박한 장하리 씨 어머니 아니에요?”노임향의 얼굴이 순간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또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리니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매서운 눈이 서
노임향도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조금 무서워졌다. 그녀는 얼른 서수연을 부축해 차에 태웠다.의식이 혼미해졌지만 서수연은 위험을 감지하고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려는 것이었다.최근 서수연이 가장 자주 전화를 건 사람은 장하리였다. 최근 통화의 대부분이 장하리였으므로 공교롭게도 서수연이 건 전화는 장하리에게로 향했다.장하리는 서수연을 차단하지 않았었다. 조금 전 맞닥뜨리고 전화하는 것을 보니 또 욕설을 퍼부으려는 심산인 듯했다.서수연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장하리를 화장실로 데려가 뺨을 때리는 것 외에도,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괴롭히기 좋아했다.게다가 차단하면 안 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차단했다가 들통나면 다음번 만났을 때 더 세게 뺨을 때릴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었다.장하리는 서수연이 괴롭힌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하긴,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서주혁?아니, 서주혁은 자기 여동생이 이런 짓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장하리를 경고하기도 했다. 여동생을 괴롭히지 말라고.벨 소리는 계속 울렸고 장하리는 음소거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의식이 희미해져 갔기에 서수연은 급히 또 전화 몇 통을 걸었다.그러나 매번 장하리에게로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는 것만 의식했다.연달아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받지 않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이상함을 눈치챈 노임향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바로 서수연의 전화를 뺏었다.“이 미친 것. 전화를 걸려고 했어? 하! 하리한테 연락하면 걔가 퍽이나 와주겠다. 걘 네가 죽길 제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야. 멍청한 년아.”노임향이 손을 높이 들어 서수연의 뺨을 거세게 두 대 때렸다. 그리고 그 통증에 서수연은 정신을 차렸다.“날, 날 때려? 우리 오빠가 알게 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네 오빠가 알 때쯤엔 나나
비서가 회의 시간이 되었다고 언질 주자 서주혁은 휴대폰을 옆에 두고 물었다.“고위 임원들도 다 왔어?”“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래.”서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자동차 본사에서 대표님께 모델에 대해서 요구는 없는지 묻고 싶답니다. 진 사장님이 전에 아마 장하리 씨와 계약하기로 약속한 것...”서주혁이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세면대 앞에서 장하리가 희롱당할 뻔하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는 열감을 느끼고 넥타이를 아래로 잡아당겼다.“진도준 퇴사하지 않았나?”비서는 서주혁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표정으로부터 읽어낼 것이 있을까 했으나, 그의 표정은 터무니없이 평온했다.지점장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는 아마 오래전부터 업계 내의 소문을 듣고 서주혁이 장하리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떠보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서주혁이 장하리를 마음에 두었다면 당연히 장하리 회사의 연예인에게 광고 모델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는 서주혁의 환심을 사는 셈이 될 테니까.그러나 서주혁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고 잘 정리된 정장은 더 인간성 없게 보였다.“절차대로 해.”겸사겸사 장하리가 정신도 좀 차릴 수 있게 말이다. 전에 그에게 사용했던 수법을 다른 사람에게 또 쓰려고 하다니. 매번 운이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네. 지점장에게 얼른 연락하겠습니다.”비서는 역시 서주혁은 장하리에게 마음이 없다고 판단했다.이만한 작은 혜택조차도 주기 싫어하니 말이다....장하리는 오늘도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했다. 오늘 그녀는 종일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했다.위장약 두 알을 더 먹고 죽을 먹은 후에야 그 넘실거리는 느낌이 점차 가라앉았다.이때 한서진이 문을 두드렸다.“시상식 절차는 거의 결정되었어요. 해은 씨가 내일 돌아올 테니 하리 씨는 오늘 밤 일찍 퇴근하셔도 돼요. 자꾸 일 때문에 본인을 닦달하지 마세요. 성 대표님께서 특별히 저에게 연락해서 하리 씨 뭐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어요.”장하리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은 걸 보면
서주혁은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그리고 비서에게 전화의 위치를 추적하라고 명령했다.그 결과 휴대전화 신호는 10km 떨어진 곳으로 나타났다.그는 부하에게 연락해 서수연을 찾아보라 명령했다.집에 돌아오니 부하들이 마침 전화를 걸어와 보고했다.“대표님, 수연 씨 휴대전화는 길가에 떨어져 있었고 수연 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일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서주혁은 그제야 사람들에게 서주혁의 행방을 전면적으로 찾으라 명령했다.30분 후, CCTV 영상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서수연은 쇼핑몰에서 장하리를 만났고, 장하리와 한바탕 싸운 뒤 노임향의 뺨을 두 대 때렸다.CCTV 영상으로 봤을 때 장하리는 먼저 자리를 떴고 서수연은 노임향과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또 다른 CCTV 영상에선 노임향이 서수연을 기절시켜 차에 밀어 넣고 있었다.이 장면을 확인하는 순간 서주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주혁이 싸늘하게 부하에게 물었다.“사람은 찾았어?”“아직입니다. 여자 집에 가봤는데 텅텅 비어있었어요. 그리고 서수연 아가씨 핸드폰에 전화를 여러 번 시도한 흔적이 있는 데 아마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화를 건 상대가 장하리 씨였고 하리 씨는 받지 않았어요.”서주혁의 얼굴이 더 차가워졌다. 구조요청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서수연이 싫어서 그녀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인가?“찾아.”전에 노임향이 독을 넣으라고 지시한 사람이 장하리라고 단언했으나, 원씨 가문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일이 흐지부지되었었다.그런데 지금 노임향이 서수연을 납치해 갔으니 장하리가 범죄에 참여한 건지 의심이 되었다.서주혁은 휴대전화 속의 연락처를 바라보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만 들리는 것이었다.설마 차단당한 건가?잔뜩 흐려진 얼굴로 그가 옆에 있는 두 경호원을 바라보았다.“지금 당장 장하리 데려와.”고개를 끄덕인 경호원은 즉시 차를 몰고 떠났다.한편, 방금 샤워를 마친 장하리는 여전히 위에 통
장하리가 입술을 짓씹었다.“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안 믿을 거잖아요.”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장하리가 어떻게 말하든 서주혁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장하리와 노임향의 관계를 확실히 알고 있다 해도, 온시아에 대한 일은 밝혀진 바가 없으니까.온시아가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사람을 시켜 독을 먹이는 것도 그다지 똑똑한 행동은 아니었다.사실 서주혁은 이미 마음속으로 장하리가 관여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장하리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할 것이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어야 할 거야.”차갑게 말 한마디를 내뱉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네 어머니한테 전화해.”지금 서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노임향을 찾고 있었고, 노임향은 조만간 붙잡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 동안 서수연이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것이다.서수연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기에 고생 따위 모르고 컸다.장하리는 고개를 숙이고 노임향의 차단을 풀었다.막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서주혁이 곁에서 명령했다.“이쪽으로 와서 내 앞에서 전화해. 스피커 켜고.”장하리가 서주혁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서주혁에게는 일종의 아우라가 있었는데 반승제 같이 자만심 강한 귀공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서주혁은 침착하고 차갑고 딱딱했다.그가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자 은빛 손목시계가 드러났다.노임향과 전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전화 건너편에서 노임향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네가 처리하라고 한 여자애 내가 데려갔으니 걱정하지 말렴. 앞으론 널 방해하지 못해.”이 말에 장하리가 흠칫 놀라며 전화를 응시했다.그녀의 어머니는 멍청하고 어리석지만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기지를 발휘하여 항상 적절하게 장하리의 일을 망쳤다.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는 장하리가 전화한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이미 서씨 가문의 미움을 산 마당에 그녀와 남편도 모두 탈출했으니, 이참에 장하리를 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만 있다면 일석삼조 아니겠는가?지난번 독극물 사건으로 누명을 씌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