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연은 말없이 눈을 치켜뜨고는 가방을 들고 떠나버렸다.장하리는 평온했지만 오히려 곁에 있는 송아현이 화가 나 견디지 못했다.“언니, 우리 다른 거 골라요.”장하리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나 괜찮은데.”송아현은 그런 장하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가방 다섯 개를 연이어 샀는데 그 값이 무려 3억을 넘었다.“언니, 선물이에요.”“돈 낭비 하지 말지.”“가져가요. 언니가 우릴 위해 컨택하는 모델비는 더 비싼걸요.”장하리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고, 쇼핑백 몇 개를 들고 송아현과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막 쇼핑몰을 나서려 할 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임향을 발견했다.언제 왔는지도 몰랐다.“하리야.”노임향은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장하리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나 눈빛은 탐욕스럽게 쇼핑백을 주시하고 있었다.모두 내로라하는 명품 가게의 쇼핑백이었다. 아마 적어도 몇억은 될 것이었다.딸에게 돈이 많아 보였다. 전에는 몇억 때문에 온 가족이 허덕였는데 이제 그 몇 억은 딸의 가방에 지나지 않았다.노임향은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자기는 곧 이혼을 당하겠는데, 수중에 남은 돈도 없는데 딸은 보란 듯이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장하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밖으로 나가려 했다.이에 노임향이 딸의 손을 덥석 잡았다.“하리야, 엄마가 잘못했어. 너한테 사과하려고 여기서 기다렸어.”장하리는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위 사람들까지 다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움이었다.동시에 장하리는 짜증이 치솟았다. 대체 이 사람은 언제 저를 놓아줄 것인가.“이거 놔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서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수연의 손에는 십여 개의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녀가 노임향을 힐끗 보더니 얼굴에 비웃음 어린 미소를 띠었다.“어머, 남자 없이 못 산다는 그 천박한 장하리 씨 어머니 아니에요?”노임향의 얼굴이 순간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또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리니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매서운 눈이 서
노임향도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조금 무서워졌다. 그녀는 얼른 서수연을 부축해 차에 태웠다.의식이 혼미해졌지만 서수연은 위험을 감지하고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려는 것이었다.최근 서수연이 가장 자주 전화를 건 사람은 장하리였다. 최근 통화의 대부분이 장하리였으므로 공교롭게도 서수연이 건 전화는 장하리에게로 향했다.장하리는 서수연을 차단하지 않았었다. 조금 전 맞닥뜨리고 전화하는 것을 보니 또 욕설을 퍼부으려는 심산인 듯했다.서수연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장하리를 화장실로 데려가 뺨을 때리는 것 외에도,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괴롭히기 좋아했다.게다가 차단하면 안 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차단했다가 들통나면 다음번 만났을 때 더 세게 뺨을 때릴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었다.장하리는 서수연이 괴롭힌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하긴,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서주혁?아니, 서주혁은 자기 여동생이 이런 짓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장하리를 경고하기도 했다. 여동생을 괴롭히지 말라고.벨 소리는 계속 울렸고 장하리는 음소거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의식이 희미해져 갔기에 서수연은 급히 또 전화 몇 통을 걸었다.그러나 매번 장하리에게로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는 것만 의식했다.연달아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받지 않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이상함을 눈치챈 노임향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바로 서수연의 전화를 뺏었다.“이 미친 것. 전화를 걸려고 했어? 하! 하리한테 연락하면 걔가 퍽이나 와주겠다. 걘 네가 죽길 제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야. 멍청한 년아.”노임향이 손을 높이 들어 서수연의 뺨을 거세게 두 대 때렸다. 그리고 그 통증에 서수연은 정신을 차렸다.“날, 날 때려? 우리 오빠가 알게 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네 오빠가 알 때쯤엔 나나
비서가 회의 시간이 되었다고 언질 주자 서주혁은 휴대폰을 옆에 두고 물었다.“고위 임원들도 다 왔어?”“네.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래.”서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자동차 본사에서 대표님께 모델에 대해서 요구는 없는지 묻고 싶답니다. 진 사장님이 전에 아마 장하리 씨와 계약하기로 약속한 것...”서주혁이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세면대 앞에서 장하리가 희롱당할 뻔하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는 열감을 느끼고 넥타이를 아래로 잡아당겼다.“진도준 퇴사하지 않았나?”비서는 서주혁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표정으로부터 읽어낼 것이 있을까 했으나, 그의 표정은 터무니없이 평온했다.지점장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는 아마 오래전부터 업계 내의 소문을 듣고 서주혁이 장하리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떠보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서주혁이 장하리를 마음에 두었다면 당연히 장하리 회사의 연예인에게 광고 모델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는 서주혁의 환심을 사는 셈이 될 테니까.그러나 서주혁의 말투는 매우 차가웠고 잘 정리된 정장은 더 인간성 없게 보였다.“절차대로 해.”겸사겸사 장하리가 정신도 좀 차릴 수 있게 말이다. 전에 그에게 사용했던 수법을 다른 사람에게 또 쓰려고 하다니. 매번 운이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네. 지점장에게 얼른 연락하겠습니다.”비서는 역시 서주혁은 장하리에게 마음이 없다고 판단했다.이만한 작은 혜택조차도 주기 싫어하니 말이다....장하리는 오늘도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했다. 오늘 그녀는 종일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했다.위장약 두 알을 더 먹고 죽을 먹은 후에야 그 넘실거리는 느낌이 점차 가라앉았다.이때 한서진이 문을 두드렸다.“시상식 절차는 거의 결정되었어요. 해은 씨가 내일 돌아올 테니 하리 씨는 오늘 밤 일찍 퇴근하셔도 돼요. 자꾸 일 때문에 본인을 닦달하지 마세요. 성 대표님께서 특별히 저에게 연락해서 하리 씨 뭐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어요.”장하리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은 걸 보면
서주혁은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그리고 비서에게 전화의 위치를 추적하라고 명령했다.그 결과 휴대전화 신호는 10km 떨어진 곳으로 나타났다.그는 부하에게 연락해 서수연을 찾아보라 명령했다.집에 돌아오니 부하들이 마침 전화를 걸어와 보고했다.“대표님, 수연 씨 휴대전화는 길가에 떨어져 있었고 수연 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일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서주혁은 그제야 사람들에게 서주혁의 행방을 전면적으로 찾으라 명령했다.30분 후, CCTV 영상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서수연은 쇼핑몰에서 장하리를 만났고, 장하리와 한바탕 싸운 뒤 노임향의 뺨을 두 대 때렸다.CCTV 영상으로 봤을 때 장하리는 먼저 자리를 떴고 서수연은 노임향과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또 다른 CCTV 영상에선 노임향이 서수연을 기절시켜 차에 밀어 넣고 있었다.이 장면을 확인하는 순간 서주혁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주혁이 싸늘하게 부하에게 물었다.“사람은 찾았어?”“아직입니다. 여자 집에 가봤는데 텅텅 비어있었어요. 그리고 서수연 아가씨 핸드폰에 전화를 여러 번 시도한 흔적이 있는 데 아마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화를 건 상대가 장하리 씨였고 하리 씨는 받지 않았어요.”서주혁의 얼굴이 더 차가워졌다. 구조요청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서수연이 싫어서 그녀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인가?“찾아.”전에 노임향이 독을 넣으라고 지시한 사람이 장하리라고 단언했으나, 원씨 가문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일이 흐지부지되었었다.그런데 지금 노임향이 서수연을 납치해 갔으니 장하리가 범죄에 참여한 건지 의심이 되었다.서주혁은 휴대전화 속의 연락처를 바라보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만 들리는 것이었다.설마 차단당한 건가?잔뜩 흐려진 얼굴로 그가 옆에 있는 두 경호원을 바라보았다.“지금 당장 장하리 데려와.”고개를 끄덕인 경호원은 즉시 차를 몰고 떠났다.한편, 방금 샤워를 마친 장하리는 여전히 위에 통
장하리가 입술을 짓씹었다.“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안 믿을 거잖아요.”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 장하리가 어떻게 말하든 서주혁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장하리와 노임향의 관계를 확실히 알고 있다 해도, 온시아에 대한 일은 밝혀진 바가 없으니까.온시아가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사람을 시켜 독을 먹이는 것도 그다지 똑똑한 행동은 아니었다.사실 서주혁은 이미 마음속으로 장하리가 관여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장하리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할 것이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어야 할 거야.”차갑게 말 한마디를 내뱉고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네 어머니한테 전화해.”지금 서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노임향을 찾고 있었고, 노임향은 조만간 붙잡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간 동안 서수연이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것이다.서수연은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랐기에 고생 따위 모르고 컸다.장하리는 고개를 숙이고 노임향의 차단을 풀었다.막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서주혁이 곁에서 명령했다.“이쪽으로 와서 내 앞에서 전화해. 스피커 켜고.”장하리가 서주혁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서주혁에게는 일종의 아우라가 있었는데 반승제 같이 자만심 강한 귀공자와는 다른 느낌이었다.서주혁은 침착하고 차갑고 딱딱했다.그가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자 은빛 손목시계가 드러났다.노임향과 전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전화 건너편에서 노임향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네가 처리하라고 한 여자애 내가 데려갔으니 걱정하지 말렴. 앞으론 널 방해하지 못해.”이 말에 장하리가 흠칫 놀라며 전화를 응시했다.그녀의 어머니는 멍청하고 어리석지만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기지를 발휘하여 항상 적절하게 장하리의 일을 망쳤다.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그녀는 장하리가 전화한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이미 서씨 가문의 미움을 산 마당에 그녀와 남편도 모두 탈출했으니, 이참에 장하리를 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만 있다면 일석삼조 아니겠는가?지난번 독극물 사건으로 누명을 씌우
서수연은 이렇게 거대한 절망감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예전에 성혜인 때문에 놀랐을 때도 단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절망이었다.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모두 장하리 탓이다. 장하리 때문에 이런 역겨운 사람에게 강간당한 것이다.자동차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서수연은 멍하니 차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에 올라탄 역겨운 남자의 행위는 계속되었고 서수연은 울고 싶었지만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오는 길 내내 울었더니 이제 눈물이 말라버렸다.같은 시각, 장하리는 끊긴 전화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서주혁의 얼굴은 보지 않아도 표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화가 많이 났겠지.그녀가 천천히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하자 서주혁이 대뜸 입을 열었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나?”그는 줄곧 강압적이었으며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그의 말에 장하리가 발걸음을 멈추었고, 서주혁은 라이터를 켰다.그리고 뒤이어 풍겨오는 담배 연기.“수연이 돌아오기 전까지 여기서 기다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넥타이와 정장을 챙기고는 밖에 있는 사람들을 들어오도록 했다.한쪽 계단 입구로 가서 성가신 표정을 지으며 명령했다.“방 하나 치워서 들여보내. 그리고 하루 내로 수연이 찾아서 데려와.”“네. 대표님.”곧 장하리는 한 방에 끌려가 갇히게 되었다.서주혁의 방은 2층이고, 그녀가 갇히게 된 방은 1층에 있었다. 게다가 딱 봐도 가정부의 방이었다.방은 대략 50평쯤 되었고 별도로 욕실이 준비되어 있었다.그러나 이곳의 가정부 방마저 장하리가 이전에 지냈던 대부분의 방보다 훨씬 좋았다.장하리는 침대에 앉아 벽에 기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서수연에게 아무 일 없기를 빌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서주혁은 모든 것을 장하리의 탓으로 돌릴 것이 뻔했다.그가 노임향의 딸임을 탓할 것이고.서수연의 구조 요청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탓할 것이다.머릿속이 복잡해진 장하리는 침대에 눕지 않고 벽에 기대
서주혁이 홧김에 옆 식탁을 발로 차버렸다. 테이블 위의 모든 물건이 마구 흔들렸다.“지금 어디에 있는데?”“돌아오는 길에 이미 병원을 예약해 놓았습니다”서주혁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때 곁에 있던 하인이 다가왔다.“대표님, 하리 씨에게 아침밥 올려다 드릴까요?”서주혁이 차가운 얼굴로 하인을 응시했다. 입가에는 냉소가 지어졌다.“고추 한 접시 올려보내. 매울수록 좋아.”하인은 어리둥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서주혁은 옆에 놓아뒀던 코트를 들고 바로 집을 나섰다.그리고 하인은 얼른 볶은 고추 한 접시를 장하리에게 가져다주었다.장하리는 밤새 잠을 못 잔 상태였으며 지금까지도 서수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문득 매운 향이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방문이 열리더니 하인이 고추 한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하리씨, 아침 드세요.”접시에는 온통 고추뿐이었고 쌀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주혁 씨는요?”하인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우선 아침 드세요. 대표님의 행방을 우리 하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말을 마친 하인은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다.테이블 위에는 빨간 고추만 놓여 있었는데 냄새부터가 자극적이었다.그녀는 연거푸 기침을 했다.아침밥의 상태로부터 서주혁이 많이 화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장하리는 고추에 손을 대지 않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점심 12시, 서수연은 제시간에 제원에 도착하여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전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분노를 표출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서수연은 돌아오는 길 내내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의사가 진찰할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다.의사는 성병 예방을 위한 주사와 약을 처방 해 주었고, 성병 교육을 위한 사진을 본 수연은 역겨워서 토할 것 같았다.결국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서수연이 병실로
서주혁의 별장.장하리는 좁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다. 도망치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높이였다.하지만 장하리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바깥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서주혁이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장하리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있었다.서주혁이 휴대전화를 가져갔기 때문에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는 상태였다.장하리는 턱을 팔에 기댄 채 창가에 앉아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이때쯤 배에서 자꾸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별장에 들어온 날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위병이 계속 도졌다.게다가 이틀 동안 빈속이었으니 오죽할까. 세 번이나 구역질을 했지만, 토해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인이 너무 박하게 굴지 않았다는 것이다.하인은 매일 장하리에게 물을 가져다주었고 장하리는 물 두 주전자로 이틀을 버텼다.배고픔으로 인하여 어지러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위병이 터져서 위가 따끔거렸다.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장하리는 침대 앞에 엎드린 채 어깨를 들썩였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억울한 일들을 겪었다. 하여 더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어 왔음에도 외로움과 서러움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결국 눈시울이 점점 뜨거워졌다.밖에서 자동차 타이어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곧이어 서주혁이 별장으로 들어왔다.장하리는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침대 곁에 기대어 앉았다.별장에 들어선 서주혁이 옷을 하인에게 건네자 하인이 물었다.“대표님, 하리 씨에겐 언제 음식을 가져다줄까요?”서주혁이 며칠 동안 줄곧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인들도 감히 마음대로 음식을 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없었다.코트를 건네던 그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그제야 서주혁은 장하리가 아직 별장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그는 현재 장하리의 일가족을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생각만 해도 저도 모르게 혐오감이 조성되었다.하인이 그를 방 입구까지 안내했다.문을 여니 침대에 기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