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두 사람에게 뒤쫓아오라고 한 탓인지 단오혁과 단유혁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이혁이 형, 하랑이 상태를 좀 확인할게요.”정차한 후 단시혁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그의 본업은 비록 의료 기기 연구원이었지만 대부분 시간을 연구실이 아니면 병원에서 진료를 봐주고 있었기에 이 방면에서 지식이 빠삭했다.강하랑을 뒷좌석에 태울 때부터 단시혁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아무리 열을 내리기 위해 수액을 맞았다고 해도 수액의 부작용으로 이렇게까지 깊이 잠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약속 장소로 오는 길은 울퉁불퉁하였다. 하지만 흔들리는
단이혁의 안색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가 답장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음성 메시지가 왔다. 연바다의 여유로운 목소리에는 싸늘한 냉기가 담겨 있었다.“하랑이는 아직 안 깼죠? 하랑이가 단 대표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익히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하랑이를 다시 데려다준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줄게요. 단 대표의 동생들도 무사히 돌려보낼 수 있어요.”그 말인즉슨 강하랑을 병원에 돌려놓지 않는다면 단오혁과 단유혁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뜻이었다.단이혁은 속에서 불이 활활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내가 어떻게 당신
단시혁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3분 정도요.”단시혁은 시간을 귀신같이 정확하게 맞췄다. 단이혁이 연바다에게서 온 새 문자를 확인하려는 순간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강하랑은 부스스 눈을 떴다.그러자 인상을 쓴 채 딱딱하던 단이혁의 표정은 드디어 풀렸고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강하랑이 눈을 뜬 것을 발견하고 그는 핸드폰을 확인할 새도 없이 곧바로 물었다.“사랑아, 너 괜찮아?”금방 정신을 차린 강하랑은 머리가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눈빛도 초점 없이 막연하기만 했다. 그래도 담담한 한약 냄새 덕분에 조금 정신
“사랑아!”강하랑이 완전히 멀어지기 전에 단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강하랑이 남긴 쪽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차에서 뛰어내렸다.강하랑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단이혁은 단시혁의 곁에 서서 불안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데려다줄게. 너 혼자 보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이번은 지난번이랑 다르잖아.”강하랑과 단이혁은 동시에 지난번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 떠올라 입꼬리를 올렸다. 특히 강하랑은 약간 시름을 놓은 듯한 미소였다.불과 이틀 전에 일어난 일이니, 그녀는 당연히 잊지 않았다. 혹시라도 미련이 생길까 봐 머리 한
단이혁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자신이 자의로 연바다와 같은 방에 가만히 있을 날이 올 줄은 말이다.병실은 말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했다. 어두운 안색의 연바다는 소파에 앉아서 단시혁이 강하랑을 살펴보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단시혁이 몸을 일으킨 다음에야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어때요?”단시혁은 연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그건 약을 사용한 본인이 가장 잘 알 것 같은데요, 연바다 씨.”연바다가 쓴 약은 단순한 수면제였다. 그래서 건강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강하랑은 이튿날 점심이 되어서야 정신 차렸다. 그것도 배가 하도 고파서 말이다. 다행히 이번에 깨어났을 때는 전처럼 몸이 무겁지 않았다. 특히 코끝에서 맴도는 시원한 향기 덕분에 몸과 마음이 다 시원했다.차가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만 아니었어도 그녀는 어젯밤 일어난 일을 망각했을 것이다. 연바다를 발견한 순간 그녀는 배고픔도 잊은 채 베개에 기대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연바다도 당연히 강하랑이 깼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고는 역시나 말없이 원래 하던 일에 집중했다.방 안의 분위기는
연바다의 속셈은 보통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하랑도 생각을 그만두고 가뿐한 몸으로 그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 전복죽 한 입 떠먹었다.조금 식은 전복죽은 먹기 딱 좋았다. 향긋한 맛에 불쾌한 기분도 전부 가시는 느낌이었다. 맛있는 음식보다 사람 마음을 더 잘 달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전복죽에 반한 강하랑은 연바다를 신경 쓸 새도 없었다. 그렇게 배를 절반쯤 채우고 새우를 먹으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집중한 연바다를 바라보며 물었다.“넌 밥 안 먹어?”연바다는 고개를 살짝
강하랑의 앞에 앉은 연바다는 말문이 막혔다. 기억을 잃은 그녀가 어떻게 집을 그리워할 수 있는지 의아했던 것이다.그녀의 기억은 5년 전에 멈춰 있다. 그러니 단씨 집안사람은 얼굴 몇 번 본 적 있는 낯선 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낯선 이는 두 번 만에 그가 한 달 가까이 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심지어 그녀는 번마다 낯선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집이 그립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연바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나쁜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혼자 흐느끼는 그녀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그녀도 서러울 만은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