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런 모습으로 죽어서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면 아마 사랑의 회초리를 다시 보게 되거나 십중팔구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이덕환의 감사 인사에 강하랑도 다소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녀는 줄곧 기억 속 그 맛이 아니라는 이덕환의 말에 오기가 생겨 또 만든 것이지만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입술을 틀어 문 그녀는 진정된 듯한 이덕환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할아버지, 이미 전부 지나간 일이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은 잘살아야죠. 사람은 계속 과거에 머물고 살 수는 없잖아요. 때로는 앞도 봐야죠. 아닌가요? 할아버지께서 어머
주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평가단으로 참석한 연유성이었다.그리고 또 한 사람은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다.바로 두 달 전에 만난 적 있는 지승현이었다.지승우의 형이자 현재 안성 지씨 가문의 후계자였다.다만... 지승현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헐레벌떡 달려온 거야?”강하랑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정수환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 요리 콘테스트 주최 측은 바로 늘솜가였다. 만약 무언가 소란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신경을 써야 했다.강하랑도 따라 자리에서 일
지승현은 강하랑을 향해 보장했다.필요한 말을 마친 강하랑은 더는 주방에 머물지 않았고 정수환을 따라 나갔다.밖은 아수라장이었다.분명 관객석엔 불길이 없었지만 이미 사람들은 멘붕 상태였고 비명으로 가득했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선 여전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가연성 물질은 이미 다 치워둔 상태였기에 불길이 여기저기 번지진 않았다.카메라도 더는 대회 모습을 담지 않았다. 그저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돌리고 있을 뿐이다.흥미로운 요리 콘테스트는 어느새 속보로 보도되고 있었다.관찰력이 좋은 기자들은 정수환이 나온 것을
연유성의 말에 각종 카메라와 마이크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분명 불길이 활활 타올랐지만, 어느새 카메라를 돌렸을 땐 짙은 검은 연기만 남아 있었고 불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타오르고 진압되기까지 족히 20분 정도가 걸렸다.20분 만에 불길이 사라진 것이다.심지어 소방대원도 도착하기 전이다.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이 놀라움을 느끼고 있을 때 강하랑의 부축을 받고 있던 정수환이 앞으로 나섰다.잔뜩 엄숙한 표정을 짓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카메라를 마주 보았다.그는 현장을 둘러보더니 이내
“강하랑, 너 미쳤어?”연유성은 그녀가 화재가 벌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바로 무의식적으로 강하랑을 잡아당겼다.강하랑은 연유성에게 잡힌 팔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심지어 그 손이 역겹기도 했다.그녀는 팔을 빼내려고 버둥거렸지만, 남자의 힘을 뿌리치긴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가 끌고 가는 대로 질질 끌려갔다.“연유성, 이거 놔! 너야말로 미쳤어?!”그녀는 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과 발을 움직이며 연유성을 향해 퍽퍽 찼다. 그가 입은 정장이 얼마나 비싼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여하튼 그녀
병원.지승우가 부리나케 도착했을 때, 연유성은 아직도 응급 수술 중이었다.수술실 앞에는 강하랑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얼굴에 검은 연기의 흔적을 미처 씻어내지 못한 그녀의 몰골은 아주 처량했다.“사랑 씨, 유성이는요? 이번에는 또 어쩌다가 지옥문 두드리러 갔는데요?”강하랑을 발견한 지승우는 숨을 돌릴 새로 없이 헐레벌떡 물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강하랑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침묵에 잠겼다.연유성이 사고를 당한 데는 강하랑의 책임이 컸다. 만약 그녀가 연유성을 말렸다면, 만약 그녀가 직접 정수환을 부축했다면, 지
강하랑은 단씨 가문의 본가로 향하는 길에 눈을 떴다. 본가에 거의 도착했는지 창밖에는 벌써 도심과 다른 시원한 자연 풍경이 펼쳐졌다.잠이 깬 듯 만 듯한 눈빛으로 창밖을 한참 바라본 후에야 그녀는 머리가 재부팅된 것 같음을 느꼈다. 하지만 기억은 병원에 한참 있다가 단원혁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순간에 멈춰 있었다.‘나 어떻게 오빠 차에 탄 거지?’강하랑이 소리 내어 묻기도 전에 그녀가 일어난 것을 발견한 단원혁이 먼저 말했다.“깼어? 앞에 물이랑 간식 있으니까, 배고프면 먼저 꺼내서 먹어.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10분
늘솜가는 이번에 확실히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요리 콘테스트는 몇 개월 전부터 홍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장소 문제로 두 개월 늦게 열리는 해프닝이 있었다.늦춰진 두 개월 동안 정씨 가문에서 얼마나 대단한 것을 준비할지, 사람들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상상하든 결과물은 그 이상이었다.화려하게 만들어진 콘테스트장만 봐도 늘솜가의 수입을 엿볼 수 있었다. 똑같이 요식업으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늘솜가만 재벌 행세를 하는 것이 못마땅한 사람이 무조건 있었을 것이다.원래도 같은 업계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