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홍채 인식이 필요했다!육경한 본인 외에는 누구도 잠금을 해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그녀는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실망감을 느꼈다.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한 유리장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한 층, 두 층, 세 층, 유리장 안엔 그녀와 밀접히 연관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의 졸업작품, 졸업사진, 전에 육경한에게 손수 짜주었던 목도리, 그에게 밥을 가져다줬던 도시락통...그 외에 또 너무 많았고 어떤 물건들은 심지어 그녀가 줬던 물건인지 멍을 때리고 생각을 해봐야 기억이 조금씩 나는 것들이었다.모든 것들이 온전하게 유리장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게다가 유리장 겉면은 먼지 한 톨도 없이 누군가 쭉 정성껏 닦아온 것처럼 보였다.이런 비밀 공간은 다른 사람이 들어올 리는 없고 그렇다면 모든 것은 육경한 본인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할 뿐이었다.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그들도 이전엔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적이 있었다.육경한도 그녀에게 잘 대해줬던 적은 있었다...그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서 눈부신 사랑을 했었고,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낙엽 아래서 깍지를 끼고 산책도 했으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는 서로 꼭 껴안고 몸을 따뜻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숨 막히는 삶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고, 그는 그녀의 모든 취향과 혐오하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며 매번 정확히 그녀의 지뢰점을 짓밟아 그녀의 한계를 도전했다.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그처럼 머릿속이 온통 원망으로 도배되고 침식되었다.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그녀도 괴물로 되어버렸다.그들은 결국 같은 부류였다...그녀가 동경하고 꿈꿔왔던 평범한 날들은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소원은 상념에 잠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갑자기 문밖에서 발소리와 함께 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소종 씨, 다녀오셨습니까.”“응.”소종의 낮고 침착한 목소리가 울렸다.소원은 당황하여 허둥지둥 숨겨진 방에서 나와 모든 것
소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안 깼다면서 굳이 볼 필요가 있나요? 나 오늘 회사 가야 돼요. 육경한이 약속한 거예요.”소종은 쌀쌀하게 대답했다.“마음대로 하세요.”그는 이 여자가 양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 한두 날 아니었다.그녀를 계속 곁에 두고 있으면 해만 끼칠 거지만 보스가 손을 대지 말라니 그도 어쩔 수 없었다.소원은 뒤돌아서 서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 육경한이 방해 될 줄 알았는데 하늘도 그녀를 돕는듯했다.육경한은 현재 병원에 누워있고 소종도 잠시 몸을 뺄 수는 없으니 모든 것이 완벽했다.소원은 별장을 나왔고 오늘은 오직 기사 한 명만 그녀를 배웅했다.평소의 경호원들은 대부분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네 명은 남아서 별장을 지켰다.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따라오지 않았다.그녀는 밀려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차에 앉아 점점 눈앞에서 벗어나는 별장을 말없이 지켜보았다.백미러 속 그 흰색 ‘감옥’은 점점 멀어져 끝내 보이지 않았다.이곳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소원은 마음을 굳게 먹으며 시선을 거두었다.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는 운전기사에게 당부했다.“오늘은 기다리지 않으셔도 돼요. 이따 육 도련님 만나러 갈 거거든요.”운전기사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소원은 회사로 돌아와 오후까지 안에 있고 난 뒤 홀로 지하 차고로 향했다.그러고는 별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승용차에 들어갔다.잠시 후, 그녀는 검은색의 타이트한 가죽 재킷으로 갈아입고 검은 헬멧을 쓴 채 차 밖으로 나와 곁에 세워진 한 대 검은색 모터바이크에 늠름하게 올라탔다.그녀는 몸을 살짝 숙이고 ‘쌩’하는 바람 소리만 남긴 채 떠났다.모터바이크는 한 고급 회관의 차고에 도착하여 멈추었다.소원은 미리 알아두었던 경로에 따라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굳이 회관에서 방 대표님과 거래하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회관에 사람이 많고 지켜보는 눈도 많기 때문에 방 대표님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공연하게 사람을 잡을
동시에 두 가지 금지 사항을 위반했으니, 그도 감히 방현수더러 처리해 달라고 말을 못 할 것이다.“그만해, 사람 왔어.”방민기는 술에 취해 다리 위의 여자를 밀어냈다.방민기의 어머니는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그는 어머니의 화려한 외모를 물려받아 볼 만한 얼굴이었다.하지만 희미한 불빛 아래 유난히 창백한 얼굴과 눈 밑 선명한 다크서클, 그리고 목덜미 곳곳에 남아있는 연분홍색의 키스 마크들은 그가 긴 시간 동안 여자들과 뒤엉켜있었다는 것을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그가 실눈을 뜨고 힐끗 쳐다보자, 앞에 서 있는 여인은 온통 검은색 차림을 한 채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가 정말로 죽여줬다.특히 이 모터바이크 복장은 그 누구도 더 섹시하게 못 입을 것 같은 정도로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그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뭐야, 완전 미인이잖아!”방민기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소원을 향해 걸어가며 입꼬리를 실룩거렸다.“아가씨, 할 말은 저의 품속에서 하지 않을래요?”역겨운 술과 담배 냄새가 엄습해 왔다.소원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옆으로 재빠르게 피했다.헛것을 잡은 방민기는 한 춤추고 있는 여인을 낚아채어 슬쩍 몸을 만지고는 언짢은 듯 말했다.“하 참, 내가 지금 너랑 말하고 있잖아, 귀먹었어? 안 들려?”“방 대표는 얘기할 시간이 없는가 봐요.”소원은 말을 마치고 머뭇거림 없이 돌아서서 가버렸다.문고리에 손을 올린 순간 방민기가 소리쳤다.“거기 서!”소원은 잠시 움직임이 없다가 뒤돌아 방민기를 쳐다보았다.헬멧이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도 방민기는 뭔가 싸하고 매서운 기운을 느꼈다.그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성질은 꽤 있네, 내가 언제 얘기를 안 한다고 했니?”소원이 말했다.“얘기를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 전부 나가 달라고 하시죠.”방민기는 헤헤 웃으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쁜 아가씨, 나를 독차지하고 싶은가 봐? 그래, 네 말대로 하지.”그는 손짓하며 여자들을 나가게 했다.그의 다리에 앉아
순간, 암문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뛰쳐나왔다.방민기에게는 이전의 부잣집 도련님의 장난기와 방탕함이 보이지 않았고 눈매가 음험하고 사나웠다.딱 봐도 애초부터 그녀를 잡을 준비가 된 것 같았다.하지만 소원은 그의 상상처럼 멍청하지 않았고 이런 것들도 전부 그녀의 예상 속에 있었다.그녀는 쏜살같이 달려들어, 희고 얇은 손목이 깔끔한 곡선을 그리자 예리하고 차가운 빛을 반사하는 작은 칼이 이미 눈 깜빡할 사이에 방민기 목에 닿았다.갑작스러운 변고가 생겼지만, 방민기은 여전히 이 여자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는 두 경호원을 호되게 꾸짖었다.“어서 이 미친년을 처리하지 못해!”두 경호원은 모두 완벽한 훈련을 거쳤고 이 상황을 보자 둘은 서로 눈빛 교환만으로도 분공을 끝냈고, 앞뒤로 달려들어 이 여자를 포획하려고 했다.하지만 소원의 행동은 그들의 예상보다 빨랐고, 칼끝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향해 쿡 찔렀다.그녀의 동작은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피가 ‘푸쉭-’하고 뿜어져 나왔다.방민기는 아픔에 ‘씁’하고 줄곧 숨을 헐떡이며 욕을 내뱉었다.“이런 미친년, 죽고 싶어?!”경호원들은 이 여자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것을 보아내고 움직이려던 행동을 멈추었다.그들의 언제나 방 사장의 생명 안전을 첫 순위에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소원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방민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가만 안 있을 거예요!”“쯧!”방민기는 화가 나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그는 애초에 오늘은 누가 그를 협박하든 무조건 상대방의 손을 잘라내고 혀를 뽑아내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여자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보자 똥 먹는 개는 버릇을 못 고친다고 그는 일단 마음대로 갖고 논 뒤 처리해 버려도 될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그런데 갖고 놀기는커녕, 이 여자의 손에 패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방민기는 화를 내며 말했다.“대체 뭘 원해!”“방 대표님께서 얘기하는 걸 허락하셔서 왔는데요.”소원은 냉담한 표정으로 계속했다.“나는 내가
경호원은 황급히 물러났다.방민기의 머리는 소원의 무릎에 눌려 소파 위에 15분 동안이나 똑같은 자세로 있다가 드디어 풀려났다.이제 방민기는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었다.그는 원래 술과 놀음에 취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몸이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이렇게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좋은 경호원을 찾아주신 덕분이었다.그는 소파에 축 늘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날 건들지 마, 힘이 없어.”방민기는 목이 부러진 것만 같았고 조금만 움직여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으며, 하여 목을 기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미친년이야!’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소원은 칼끝을 방민기 목에서 조금도 떼어내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들어오세요.”방금 나갔던 경호원이 들어와서 커피색 서류봉투를 내밀었다.소원은 말했다.“땅에 던지고 다시 나가세요.”경호원이 머뭇거리며 방민기을 쳐다보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욕을 퍼부었다.“꺼져, 쓸모없는 놈아.”정신이 문제 있는 여자 한 명도 상대하지 못해 그를 여기서 고생시키다니!그는 목숨을 아끼고 싶었고 다시는 이 미치광이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얼른 물건 가지고 꺼져, 제발.’소원이 서류를 꺼내자 익숙한 글자체가 그녀의 반짝이던 아름다운 눈망울을 뿌옇게 흐렸다.짜고 축축한 눈물이 부서진 유리구슬처럼 굴러떨어졌다.그녀는 입을 반쯤 벌리고 소리 없이 말했다.‘아버지...’가슴이 누군가의 발에 짓밟히고 있는 듯 찌릿찌릿 아팠다.다행히 헬멧이 그녀의 슬퍼하는 기색을 가렸기 때문에 방민기에게 지금이 그녀를 공격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소원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침착하라고 자신을 타일렀다.그녀는 서류를 품에 넣은 뒤 지퍼를 잠그고 말했다.“방민기, 나를 안전하게 떠나게 해줘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당신을 죽일 거예요.”방민기는 힘없이 대답했다.“가는 건 되는데, 그전에 네가 약속한 것은 주고 가야지.”“내가 안전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엾기 그지없었고 온갖 비참한 척을 다 해대던 여인은 안색이 급격히 변하더니 깨진 술병을 들고는 그녀의 목을 향해 무작정 찔러왔다.소원은 생각할 겨를 없이 팔을 번쩍 들어 공격을 막았다.유리가 그녀의 팔을 스치며 베자, 순간 피가 흘러내렸다.쥐고 있던 작은 칼도 쨍그랑 하고 땅에 떨어졌다.방민기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땅에서 재빨리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고는 복도 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이놈들아, 모두 이리 와!”여인은 땅에서 천천히 일어나 술병을 높게 쳐들고 칭찬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 애교 섞인 목소리로 종알댔다.“오빠, 어서 저를 칭찬해 줘요. 앞으로 제가 여자 몇 명 더 잡아드릴게요.”소원은 그제야 자신을 모함한 여자가 방금 그녀와 생김새가 흡사한 여자라는 것을 발견하였다.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백한 성형의 흔적은 대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행동인지 알 수 없었고 소원의 마음속에 물음표만 가득 남겨놓았다.방민기는 청아의 엉덩이를 꼬집고 변태처럼 실실 웃으며 말했다.“좋아! 우리 이쁜 청아가 제일 기특하지. 오빠가 나중에 좋은 상을 줄게. 오빠가 크고 맛있는 걸...”두 사람의 대화를 소원은 겨우겨우 알아들었다.청아가 방민기를 도와 나쁜 짓을 한 건 무조건 처음이 아니었다.전에도 비슷한 찌질한 방법을 사용해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는 가여운 여자들을 강박했을 것이다.그래서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것이었다.소원은 상처를 꾹 눌러 어느 정도 지혈시키려고 했고, 눈을 힘주어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방민기를 잡을 작정이었다.그때, 터벅터벅 촉박한 발걸음 소리가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그녀는 단번에 엘리베이터 문 닫기 버튼을 눌렀다.청아는 상황을 보고 달려와 엘리베이터 문을 안 닫기게 손으로 막고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소원에게 발로 걷어차여 뒤로 튕겨 나갔다.“악!”청아는 벽에 쿵 하고 부딪히며 비명을 질렀다.엘리베이터 문이 점차 닫혔다.방민기는 문밖에서 조급
“악!”이어서 물려있는 손을 높이 쳐들고 소원의 머리를 땅으로 세게 내리쳤다.쿵!소원은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팠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방민기는 손을 빼내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픔에 숨을 할딱였다.경호원 몇 명이 그를 에워싸고 상황을 살폈다.소원은 혼란을 틈타 가죽 재킷의 지퍼를 조이고, 서류를 품에 꼭 안겨 쥔 채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비틀거리며 앞으로 달려갔다.방민기는 경호원 중 한 명을 발로 걷어차며 화를 냈다.“저년 못 도망가게 막아!”그러자 경호원들이 뒤를 바싹 쫓아왔다.소원은 겨우 몇 걸음밖에 못 뛰었는데 한 경호원에게 뒷덜미를 잡혀 다시 끌려갔다.그녀는 더 이상 발버둥 칠 힘이 없었다.이 긴급한 순간에 갑자기 어떤 귀를 찌르는 경적이 저 먼 곳에서부터 이곳을 향해 끊임없이 울리며 다가왔다.이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곧이어 굉음이 울렸고 올블랙의 멋진 모터바이크 한 대가 사람들 중심을 향해 겁 없이 돌진해 왔다.초고와트의 헤드라이트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눈부셨다.눈 부신 빛과 흩날리는 불꽃 속에서 서서히 눈을 뜨니 그 모터바이크는 이미 소원 눈앞에 세워져 있었다.차에 타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낯선 사람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타.”이 한 글자는 소원에게 익숙하기 그지없었다.소원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대방의 손을 덥석 잡았다.검은 옷의 사람은 팔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올렸고 소원은 가볍게 뛰어 올라탔다.“꽉 껴안아!”검은 옷의 사람이 말했다.눈 깜빡할 사이에 완전히 뒤바뀐 상황을 본 방민기는 큰 소리로 외쳤다.“뭘 가만히 있어?!”정신을 차린 경호원들은 즉시 조금 전 소원을 포위하던 방법으로 원을 만들어 모터바이크를 가두려고 했다.하지만 모터바이크는 두려움이 없었다.그는 오만하게 사람들 앞으로 달려들어 앞머리를 높이 치켜들더니 바로 한 경호원의 머리 위로 가뿐하게 날아가 버렸다.현란한 스킬은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문이 막히게 하였다.그들은 십여 명의 사람
거의 미친 듯이 내달린 모터바이크는 마치 허리케인이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남자의 셔츠에는 바람이 들어가 부풀어 올랐다.그러고 나서 모터바이크는 사람들의 놀라운 눈빛 속에서 날아올랐다.진짜 하늘을 날았다.호수의 이쪽 편에서 반대편으로 날아 넘어 풀밭에 안전하게 착륙한 후 씽 가버렸다.뒤를 쫓던 경호원은 여전히 체념하지 않았다.그들은 10억짜리 목표물이 호수를 날아 넘었으니,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제자리에서 부웅부웅 준비운동을 마친 후, 선두 모터바이크가 앞장서서 시도했다.그러나 모터바이크는 날다가 공중에서 갑자기 추락했으며 하늘을 날던 경호원은 모터바이크와 함께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물보라를 일으킨 호수면은 다시 고요해졌다.모터바이크와 그 위에 타고 있던 사람은 마치 호수에 삼켜버린 것만 같았다.다른 세 대의 모터바이크는 더 이상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들은 심지어 호수에 빠진 사람을 찾기는커녕 바로 방향을 돌려 호수 반대편까지 가는 다른 길을 찾았다.호수의 건너편, 검은색 모터바이크는 지름길에서 빠져나와 큰길로 질주했다.반 시간 정도 더 달리다가 모터바이크는 마침내 장미꽃이 가득 피어오른 담벼락이 있는 양옥 앞에 멈춰 섰다.남자는 한 발로 땅을 밟으면서 말했다.“꽉 안아요.”소원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그녀를 모터바이크에서 업어 내렸다.소원의 몸은 아직 방금 전의 비바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모터바이크에서 업혀 내려오고 나서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소원이가 입을 열려 한 순간, 남자는 그녀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모터바이크에 가로로 앉혔다.소원은 손으로 안장을 받치고 균형을 잡았다.남자는 천천히 그녀의 헬멧을 벗어 손잡이에 걸어놓고는 자기 헬멧을 벗었다.거의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이 소원의 눈앞에 드러났다.“현재야...”소원은 서현재인 줄 알았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여서 저도 모르게 예전의 호칭대로 불렀다.서현재는 입꼬리를 올려 엷은 미소를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