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은 황급히 물러났다.방민기의 머리는 소원의 무릎에 눌려 소파 위에 15분 동안이나 똑같은 자세로 있다가 드디어 풀려났다.이제 방민기는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었다.그는 원래 술과 놀음에 취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몸이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이렇게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좋은 경호원을 찾아주신 덕분이었다.그는 소파에 축 늘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날 건들지 마, 힘이 없어.”방민기는 목이 부러진 것만 같았고 조금만 움직여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느껴졌으며, 하여 목을 기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미친년이야!’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소원은 칼끝을 방민기 목에서 조금도 떼어내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들어오세요.”방금 나갔던 경호원이 들어와서 커피색 서류봉투를 내밀었다.소원은 말했다.“땅에 던지고 다시 나가세요.”경호원이 머뭇거리며 방민기을 쳐다보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욕을 퍼부었다.“꺼져, 쓸모없는 놈아.”정신이 문제 있는 여자 한 명도 상대하지 못해 그를 여기서 고생시키다니!그는 목숨을 아끼고 싶었고 다시는 이 미치광이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얼른 물건 가지고 꺼져, 제발.’소원이 서류를 꺼내자 익숙한 글자체가 그녀의 반짝이던 아름다운 눈망울을 뿌옇게 흐렸다.짜고 축축한 눈물이 부서진 유리구슬처럼 굴러떨어졌다.그녀는 입을 반쯤 벌리고 소리 없이 말했다.‘아버지...’가슴이 누군가의 발에 짓밟히고 있는 듯 찌릿찌릿 아팠다.다행히 헬멧이 그녀의 슬퍼하는 기색을 가렸기 때문에 방민기에게 지금이 그녀를 공격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소원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침착하라고 자신을 타일렀다.그녀는 서류를 품에 넣은 뒤 지퍼를 잠그고 말했다.“방민기, 나를 안전하게 떠나게 해줘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당신을 죽일 거예요.”방민기는 힘없이 대답했다.“가는 건 되는데, 그전에 네가 약속한 것은 주고 가야지.”“내가 안전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엾기 그지없었고 온갖 비참한 척을 다 해대던 여인은 안색이 급격히 변하더니 깨진 술병을 들고는 그녀의 목을 향해 무작정 찔러왔다.소원은 생각할 겨를 없이 팔을 번쩍 들어 공격을 막았다.유리가 그녀의 팔을 스치며 베자, 순간 피가 흘러내렸다.쥐고 있던 작은 칼도 쨍그랑 하고 땅에 떨어졌다.방민기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땅에서 재빨리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고는 복도 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이놈들아, 모두 이리 와!”여인은 땅에서 천천히 일어나 술병을 높게 쳐들고 칭찬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 애교 섞인 목소리로 종알댔다.“오빠, 어서 저를 칭찬해 줘요. 앞으로 제가 여자 몇 명 더 잡아드릴게요.”소원은 그제야 자신을 모함한 여자가 방금 그녀와 생김새가 흡사한 여자라는 것을 발견하였다.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백한 성형의 흔적은 대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행동인지 알 수 없었고 소원의 마음속에 물음표만 가득 남겨놓았다.방민기는 청아의 엉덩이를 꼬집고 변태처럼 실실 웃으며 말했다.“좋아! 우리 이쁜 청아가 제일 기특하지. 오빠가 나중에 좋은 상을 줄게. 오빠가 크고 맛있는 걸...”두 사람의 대화를 소원은 겨우겨우 알아들었다.청아가 방민기를 도와 나쁜 짓을 한 건 무조건 처음이 아니었다.전에도 비슷한 찌질한 방법을 사용해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는 가여운 여자들을 강박했을 것이다.그래서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것이었다.소원은 상처를 꾹 눌러 어느 정도 지혈시키려고 했고, 눈을 힘주어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방민기를 잡을 작정이었다.그때, 터벅터벅 촉박한 발걸음 소리가 그녀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그녀는 단번에 엘리베이터 문 닫기 버튼을 눌렀다.청아는 상황을 보고 달려와 엘리베이터 문을 안 닫기게 손으로 막고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소원에게 발로 걷어차여 뒤로 튕겨 나갔다.“악!”청아는 벽에 쿵 하고 부딪히며 비명을 질렀다.엘리베이터 문이 점차 닫혔다.방민기는 문밖에서 조급
“악!”이어서 물려있는 손을 높이 쳐들고 소원의 머리를 땅으로 세게 내리쳤다.쿵!소원은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팠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방민기는 손을 빼내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픔에 숨을 할딱였다.경호원 몇 명이 그를 에워싸고 상황을 살폈다.소원은 혼란을 틈타 가죽 재킷의 지퍼를 조이고, 서류를 품에 꼭 안겨 쥔 채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비틀거리며 앞으로 달려갔다.방민기는 경호원 중 한 명을 발로 걷어차며 화를 냈다.“저년 못 도망가게 막아!”그러자 경호원들이 뒤를 바싹 쫓아왔다.소원은 겨우 몇 걸음밖에 못 뛰었는데 한 경호원에게 뒷덜미를 잡혀 다시 끌려갔다.그녀는 더 이상 발버둥 칠 힘이 없었다.이 긴급한 순간에 갑자기 어떤 귀를 찌르는 경적이 저 먼 곳에서부터 이곳을 향해 끊임없이 울리며 다가왔다.이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곧이어 굉음이 울렸고 올블랙의 멋진 모터바이크 한 대가 사람들 중심을 향해 겁 없이 돌진해 왔다.초고와트의 헤드라이트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눈부셨다.눈 부신 빛과 흩날리는 불꽃 속에서 서서히 눈을 뜨니 그 모터바이크는 이미 소원 눈앞에 세워져 있었다.차에 타고 있던 검은 옷차림의 낯선 사람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타.”이 한 글자는 소원에게 익숙하기 그지없었다.소원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대방의 손을 덥석 잡았다.검은 옷의 사람은 팔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올렸고 소원은 가볍게 뛰어 올라탔다.“꽉 껴안아!”검은 옷의 사람이 말했다.눈 깜빡할 사이에 완전히 뒤바뀐 상황을 본 방민기는 큰 소리로 외쳤다.“뭘 가만히 있어?!”정신을 차린 경호원들은 즉시 조금 전 소원을 포위하던 방법으로 원을 만들어 모터바이크를 가두려고 했다.하지만 모터바이크는 두려움이 없었다.그는 오만하게 사람들 앞으로 달려들어 앞머리를 높이 치켜들더니 바로 한 경호원의 머리 위로 가뿐하게 날아가 버렸다.현란한 스킬은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문이 막히게 하였다.그들은 십여 명의 사람
거의 미친 듯이 내달린 모터바이크는 마치 허리케인이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남자의 셔츠에는 바람이 들어가 부풀어 올랐다.그러고 나서 모터바이크는 사람들의 놀라운 눈빛 속에서 날아올랐다.진짜 하늘을 날았다.호수의 이쪽 편에서 반대편으로 날아 넘어 풀밭에 안전하게 착륙한 후 씽 가버렸다.뒤를 쫓던 경호원은 여전히 체념하지 않았다.그들은 10억짜리 목표물이 호수를 날아 넘었으니,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제자리에서 부웅부웅 준비운동을 마친 후, 선두 모터바이크가 앞장서서 시도했다.그러나 모터바이크는 날다가 공중에서 갑자기 추락했으며 하늘을 날던 경호원은 모터바이크와 함께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물보라를 일으킨 호수면은 다시 고요해졌다.모터바이크와 그 위에 타고 있던 사람은 마치 호수에 삼켜버린 것만 같았다.다른 세 대의 모터바이크는 더 이상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들은 심지어 호수에 빠진 사람을 찾기는커녕 바로 방향을 돌려 호수 반대편까지 가는 다른 길을 찾았다.호수의 건너편, 검은색 모터바이크는 지름길에서 빠져나와 큰길로 질주했다.반 시간 정도 더 달리다가 모터바이크는 마침내 장미꽃이 가득 피어오른 담벼락이 있는 양옥 앞에 멈춰 섰다.남자는 한 발로 땅을 밟으면서 말했다.“꽉 안아요.”소원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그녀를 모터바이크에서 업어 내렸다.소원의 몸은 아직 방금 전의 비바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모터바이크에서 업혀 내려오고 나서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소원이가 입을 열려 한 순간, 남자는 그녀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모터바이크에 가로로 앉혔다.소원은 손으로 안장을 받치고 균형을 잡았다.남자는 천천히 그녀의 헬멧을 벗어 손잡이에 걸어놓고는 자기 헬멧을 벗었다.거의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이 소원의 눈앞에 드러났다.“현재야...”소원은 서현재인 줄 알았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여서 저도 모르게 예전의 호칭대로 불렀다.서현재는 입꼬리를 올려 엷은 미소를
소원은 차에서 떨어지면서 세게 부딪혔지만, 그녀가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은 특수 제작된 옷이라 세게 넘어지면 다시 반발하곤 했다.그래서 소원은 넘어진 후, 온몸이 저렸던 것과 팔에 생긴 상처를 제외하고 나면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다.서현재가 말했다.“그래요. 팔이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세요.”소원은 위층으로 올라갔다.이 양옥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침실은 그들이 살기 편하도록 모두 아래층에 있었고 위층의 두 침실은 소원의 부모와 어린 소원이가 썼었다.소원은 자신이 어렸을 때 살았던 방으로 돌아가 보니 감개무량했다.방 안은 잘 꾸며져 있었다. 소원은 옷장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옷장 안에는 예쁜 옷이 가득 걸려 있었고 전부 상표를 뜯지 않은 상태였다.나무문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소원은 고개를 돌려보니 서현재가 한 손을 주머니에 꽂고 길쭉한 몸을 문틀에 기대어 서있었다.소원의 눈빛에서 놀라움을 본 서현재는 잘생긴 얼굴을 확 붉히면서 말했다.“제가 출장 다니면서 누나한테 어울리는 옷을 볼 때마다 사 온 거예요.”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옷장은 바로 이렇게 꽉꽉 채워졌다.소원은 옷들을 살펴보았는데 다 명품 브랜드여서 적게는 몇십만, 몇백만 심지어 몇천만짜리도 있었다.서현재는 명품 브랜드를 입는 습관이 없어서 평소에 입는 슈트나 셔츠는 다 한 개 대중 브랜드였고 가격은 몇만에서 몇십만 원밖에 안 했다.하지만 서현재는 소원에게 사준 이 옷들을 그녀가 입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전혀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계약서를 받아 기분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죽다 살아나 느슨해진 감정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소원은 웃으면서 서현재한테 장난을 쳤다.“현재야, 나 이제 돈 없으면 너의 이 옷만 팔아도 몇 년은 더 살 수 있겠어.”명품 브랜드의 옷은 다 클래식한 스타일이어서 상표를 뜯지 않은 옷은 30% 할인된 가격으로 팔아도 사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했다.서현재는 웃으며 말했다.“그렇게는 안 두죠. 저의 손재주가 남아 있는 한 두 사람은 먹여 살
소원은 바로 몸을 돌려 서현재의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방문이 잠겨 있지 않아 소원은 바로 그의 방문을 열었다.“현재야, 너...”그 뒤의 말은 전혀 이을 수 없었다.서현재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그의 등에는 가로세로로 교차한 채찍 자국 외에 기다란 상처가 하나 있었는데 이 상처는 등에서부터 허리춤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상처가 등에 있는 바람에 서현재는 약을 대수 바를 수밖에 없어서 지금 그 상처에서 또 피가 흘러나왔다.소원은 자신의 눈이 불길에 덴 것처럼 매우 아팠다.서현재는 이 광경을 보고 다급하게 셔츠를 집어 입고는 일어서려고 했다.“앉아 있어.”소원은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는 조금 울컥했다.그녀는 이미 성큼성큼 걸어가 서현재의 어깨를 눌렀다.그러나 그녀는 서현재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힘을 별로 힘을 쓰지 않았다.서현재는 얌전히 앉아서 나지막한 소리로 변명했다.“괜찮아요. 저 하나도 안 아파요. 저도 방금 발견한 거예요...”“현재야, 넌 내가 바보로 보이니?”소원은 되물었다.서현재는 대답하지 않았다.“주차장에서 그을린 거야?”소원은 그제야 당시 경호원들이 모두 손에 기다란 무기를 들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그녀는 처음에 그 무기들이 회초리 같은 것인 줄 알았다.지금 보니 그 무기들은 특수 제작된 칼날이 달린 긴 회초리였던 것 같았다.원래는 경호원이 소원을 쫓을 때 그녀한테 내리칠 회초리였다.그러나 서현재가 제때 나타나서 그녀 대신 그 한 방을 맞았던 것이었다.서현재는 소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저 말했다.“진짜 괜찮아요. 저 맞는 거 잘해요.”소원은 서현재의 셔츠를 들어 올렸는데 그의 등은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지금 보니 육경한의 말이 맞았다.서씨 가문으로 돌아간 서현재는 결코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다.갑자기 건조한 손이 소원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만지지 말아요. 손이 더러워져요.”서현재가 말했다.소원은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자신의
소원은 서현재가 의미 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서현재가 바보같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만약 단지 몸이라면 그녀는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소원은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아무 원망도 후회도 없는 이런 깊은 사랑이 너무 두려웠다.소원은 이런 사랑에서 마치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너무 바보 같았다...소원은 서현재가 정신 차리길 바랐다.소원의 아름다움은 그녀의 공격성에 있어서 분칠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녀의 눈빛에서 그 매력이 흘러나왔다.남자들에게 있어서 특히 서현재처럼 여자를 만난 적이 없는 풋풋한 남자에게 있어서 그녀는 예쁘고 매혹적이었다.이런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다.소원이가 말했다.“너 지금까지 한 것들, 다 그걸 원해서 그런 거 아니야?”서현재의 얼굴은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표정은 예상했던 대로 좋지 않았다.소원은 마음속의 고통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현재야, 난 나를 너에게 줄 수 있어. 근데 넌 나와의 연을 철저하게 끊어야 해.”서현재는 어린애가 아니었다.그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었다.서현재는 어두워진 눈빛으로 소원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갑자기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 좋아요.”서현재가 말했다.소원은 마음속으로 당황했다.‘이건 내가 알던 현재가 아닌데...’상황은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소원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손을 뻗어 서현재의 목을 끌어안고는 억지로 계속해 나갔다.두 사람은 누가 먼저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지 눈치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서현재는 항복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화가 났다.서현재는 소원의 손을 덥석 잡고 그녀를 벽에 기대게 하고는 호르몬이 가득 찬 젊은 몸을 점점 가까이하면서 조금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누나, 내가 할 게...”이 타이밍에 누나라고 부르는 것은 꽤 시시덕거리는 맛이 담겨 있었다.소원은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그녀는 적어도 한 가지
소원은 이렇게 병실로 옮겨졌다.육경한은 병원의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캐주얼한 회색 정장 차림에 안에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손목에는 실버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유난히 젊고 잘생겨 보였다.소종은 손에 든 기밀 서류를 육경한에게 공손히 바치고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찰칵 소리와 함께 문은 잠겨졌다.소원은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서울에서 육경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소원은 땅을 파고 들어가 숨어 지낸다고 해도 모두 그의 손바닥 안이기 때문이었다.육경한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티셔츠는 둘레가 매우 낮아 쇠골이 다 드러나서 섹시하면서도 눈 밑에는 위험한 색욕이 번졌다.“어제저녁에는 어디로 갔어?”소원이가 대답하지 않자, 육경한은 또 한 발짝 가까이하면서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어?”“말 안 하면...”육경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기다란 손가락을 내밀었다.“내가 확인해 보지.”소원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를 피하지 못했다.육경한은 소원의 허리를 움켜쥐고 서 있는 채로...소원은 화를 참지 못했다.“육경한, 이 미친놈아. 비켜!”남자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손을 도로 거두면서 반쯤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네.”그렇지 않으면, 육경한은 아마 참지 못하고 바로 소원과 몇 번 해서 외딴 남자의 냄새를 그녀의 몸에서 없앴을 것이었다.소원은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서 발로 남자의 종아리를 세게 걷어차고는 뒤로 물러서며 격하게 욕했다.“꺼져!”육경한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 사람처럼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소원아, 너 대단하더라.”육경한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귀가 먹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말은 절대 칭찬이 아니라는 걸 알아들을 수 있었다.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육경한의 말을 계속 들었다.“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아쉽지 않아?”소원은 피식 냉소를 지었다.“알면서 뭘 물
컵을 받아 물을 마신 육경한은 이내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컵을 내려놓자 소원이 말했다.“그럼 밥 먹어. 난 갈게.”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원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려 했다.문 앞까지 왔을 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육경한이 침대에서 떨어졌다.키가 188cm인 남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넘어져 있으니 매우 허약해 보였다.소원은 급히 가서 육경한을 부축했다.“일어날 수 있겠어?”소원은 갑자기 허약해진 육경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침대에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바닥에 떨어지냐 말이다.이내 육경한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아파.”이 말을 들은 소원은 순간 육경한이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색을 보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상처 난 등이 촉촉한 것을 보니 아마도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황산에 의한 상처는 피가 아니라 고름이 나오기에 소원은 상처가 터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날 육경한이 망설임 없이 뛰어든 것을 생각하니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힘주지 마. 날 잡아. 조심하고.”소원의 팔에 기댄 육경한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오랜만에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육경한은 심장이 졸깃했다. 소원의 몸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향기가 났다. 그 냄새는 마치 약처럼 아픔을 잊게 했다.육경한을 다시 침대에 눕힌 소원은 침대 높이를 조절해 그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모든 것을 마친 후 소원이 돌아서자 육경한은 그녀가 또 떠날까 봐 급히 말했다.“소원아, 나 배고파.”순간 소원은 조금 전 넘어진 것이 진짜로 고의는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간병인은 어디 갔어?”“간병인 없어. 평소에 황진수가 도와줘.”육경한의 말에 소원이 짜증 내며 한마디 했다.“왜 간병인을 안
연기가 제법인 황진수는 진짜로 배가 아픈 척했고 심지어 자신의 혀를 깨물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이마에 땀까지 흘렸다.순간 멍해진 소원이 한마디 물었다.“왜 그래요? 의사를 부를까요?”황진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요. 화장실 갔다 오면 될 것 같아요. 이것 좀...”그는 손에 들고 있던 죽을 높이 들었다. 혹시라도 소원이 받지 않을까 봐 일부러 그녀의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소원 씨, 이것 좀 부탁드릴게요. 육 대표님에게 전해주세요. 의사가 염증이 생길 수 있으니 지금 차가운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황진수는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사라졌다.죽을 들고 좌우를 둘러보던 소원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육경한이 있는 VIP층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한 소원은 죽을 경호원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육경한 병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사실 조금 전 황진수는 그녀와 육 대표를 만나게 하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철수하라고 했다.소원이 문을 두드리자 방안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소원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고서를 보고 있는 육경한은 소원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황진수인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그냥 거기에 둬.”테이블 위에 놓여진 손도 대지 않은 음식과 손에 든 죽을 번갈아 본 소원은 육경한이 갑자기 죽을 먹고 싶어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이 죽 가게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제 샀던 죽 가게와 이름이 비슷한 것 같았다.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손에 든 죽을 놓은 소원은 육경한이 여전히 그녀를 알아채지 못하자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육경한이 고개를 들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소원?”소원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황 비서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나더러 대신 갖다 주라고 했어.”육경한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나를 보러 온 줄 알았네.”약간 서운함이 담긴 말투에 소원은 이왕 온 김에 몇 마디 안부는 주고받아야
사생아가 많은 방현수는 여자아이인 방민아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었다.그리고 방민기는 이미 판결이 났고 방씨 가문이 아무리 인맥이 넓다고 해도 여론이 너무 떠들썩했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 일 이후, 방현수의 정신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가장 기대하던 두 아이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으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방민아는 아마도 방현수의 비밀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방현수가 돈과 힘을 들여 그녀를 빼내려고 하는 것이다.자신의 추측을 말한 황진수가 한마디 보탰다.“방민아 씨가 역시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방현수의 마음도 바꾸고요.”육경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방민아가 나오면 소원은 그녀의 첫 번째 타겟이 될 것이다. 여자들 사이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욱경한은 잘 알고 있었다.육경한이 황진수에게 말했다.“방씨 가문의 움직임을 주시해 봐. 그리고 방민아가 나오면 반드시 24시간 내내 감시하여 소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황진수가 말했다.“알겠습니다.”육경한이 또 물었다.“진아연 쪽은 어때, 소식이 있어?”진아연이 또 도망쳤다. 지난번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후 몸이 나아지자 간호사가 한눈을 판 사이 몰래 빠져나갔다.아마도 육경한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그래서 육경한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기회를 잡아 도망친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아버지 일도 그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육경한은 그녀에게 확실히 물어봐야 했다.이때 황진수가 말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 출입국 사무소에 다 물어봤지만 아직 다른 데로 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육경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긴장을 놓치면 안 돼. 진아연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야.”황진수가 알겠다고 하자 육경한도 조금 지쳤는지 한마디 했다.“이만 나가 봐.”황진수는 집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를 육경한이 한 입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한마디 말했다.“육 대표님, 입에 맞지 않아서 안
병실 밖에 있던 황진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감정적 가치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이지애는 가스라이팅에 정말 능숙했다.육경한에게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녀가 과연 육경한을 걱정하는 척하며 그런 감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다니...솔직히 말해서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 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황진수가 소리 지르는 이지애를 끌어내어 경호원들에게 넘기자 이지애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육경한의 누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오늘 나를 무례하게 대한 일, 나중에 분명 후회할 때가 있을 거야.”황진수는 냉정하게 말했다.“여사님, 더 이상 자신을 육 대표의 누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저 사촌 누나일 뿐인데 왜 항상 ‘사촌’이라는 말을 잊으시는 건가요? 밖에서 본인을 육 대표의 친누나라고 말하며 사기를 치다 보니 입에 붙어서 못 고치는 건가요?”황진수는 이지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육경한의 누나라는 명목으로 많은 회사 대표들에게서 이익을 취했다. 또 육경한과도 자주 만났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진짜로 육 대표의 누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이지애는 결국 자업자득의 꼴이 되었다.이지애가 분노하며 말했다.“너 같은 놈은 평생 이 꼴로 살 거야. 개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해. 잘 들어, 경한이는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나를 누나로 생각할 거야. 그때면 널 첫 번째로 해고할 테니 두고 봐!”“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황진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정말!”이제 육경한이 그녀의 뒤를 봐주지 않으니 황진수도 당당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지애를 무시하며 바로 경호원들에게 말했다.“데려가세요. 앞으로 육 대표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세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지애는 욕을 하면서 문을 잡고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찾아와 이지애를 보더니 통
하지만 쉽게 인정할 이지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육경한을 비난하며 말했다.“경한아, 우리 모녀를 돕지 않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를 모함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 집에 빚진 게 없어.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를 위해 우리 연주를 희생시키면 안 돼. 너도 어릴 때부터 연주를 봐왔었잖니?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들어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거야?”이지애는 말을 빙빙 돌리며 돈을 빌린 것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시 육경한의 탓을 하는 이지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사실 이 돈은 조사하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그때 개업한 미용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엄마 돈으로 한 거잖아요. 누나,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육경한의 말에 이지애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경한아, 그때 미용원을 연 것은 네 엄마의 뜻이었어. 나는 단지 네 엄마를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도 큰 충격을 받았잖아. 그때 미용원도 파산 직전이었어. 그때는 네가 이 난장판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내가 대신 맡은 거야.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데 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니?”이지애의 임기응변 능력은 진짜로 일반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말에 속았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은 육경한은 이지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사람은 역시 욕심에 눈이 먼 동물이었다.이지애의 현재 모습은 정말 탐욕스러웠다.하지만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지애는 육경한의 도움이 있어야만 육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경한아, 미용원을 돌려받고 싶으면 바로 줄게. 내가 여러 해 동안 운영해 왔지만 사실 다 네 엄마를 대신해서 한 거야
“경한아, 누나가 예전에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잊은 것은 아니지? 그때 너에게 돈을 준 것 때문에 네 형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너는 몰라. 그 자식이 죽을 때까지도 내가 친정에 돈을 준 일을 잊지 않고 있었어...”이지애가 끊임없이 과거의 일들을 들먹였지만 육경한은 그런 그녀가 단지 시끄럽다고 느껴졌다.원래부터 가족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지애가 그때 돈을 준 이유는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육경한이 냉정하게 말했다.“누나, 그동안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요. 그때 나에게 몇십만 원을 준 이유가 우리 엄마에게서 4억원을 빌렸기 때문에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나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차용증을 찾아내 파기했잖아요.”육경한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줄 몰랐던 이지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마음속은 아주 불안했지만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급히 부인하며 말했다.“경한아,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네 엄마의 돈을 빌렸다고 그래? 네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내가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야!”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육경한이 침묵하자 이지애는 육경한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웃으며 말했다.“경한아,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보아하니 일부러 우리 사촌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사람이 말한 것인가 본데 나는 너희 집 돈을 빌리고 안 갚은 적이 없어.”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육경한은 이지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얼마 전, 집안 하인이 청소를 하면서 다이어리를 하나 발견했다. 펼쳐보니 그 안에 육경한의 엄마가 쓴 채무 리스트가 있었고 그중에 이지애가 육씨 가문에서 4억원을 빌린 내역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육경한의 엄마가 겨우 모은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그리고 날짜도 기록되어 있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이지애가 미용원에 투자하여 금방 개
이 말은 육경한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차라리 묻지 말걸... 주석훈은 대체 무슨 친구란 말인가? 단지 몇 번 만난 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새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육경한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한 황진수는 급히 말했다.“병원 간호사에게 물어봤더니 소원 씨가 병문안을 잠깐 왔다가 저녁에 바로 갔대요.”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육경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황진수도 더 이상 이것과 관련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업무 보고를 계속했다. 그런데 보고를 하던 중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육경한의 사촌 누나 이지애가 병문안을 온 것이다.“경한아, 우리 연주 좀 살려줘!”이지애는 육경한과 다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울부짖었다.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지애는 육경한에게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울부짖었다.“경한아, 오늘 아침에 연주를 보러 갔는데 애가 살이 쏙 빠졌어. 얼굴도 초췌해지고 말이야. 안에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몸에는 상처투성이야. 안 그래도 괴롭힘을 당한 애인데 또 그런 곳에 들어갔으니 버틸 수 있겠니...”이지애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딸에 대한 애틋함에서 나온 눈물은 진심인 것 같았다.이번에는 육연주의 잘못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육연주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만 말하며 육경한의 동정을 얻으려고 했다.이 일로 육경한도 다쳤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이지애는 육연주를 욕하기도 했다. 건드려야 할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삼촌을 건드려 병원 신세 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가족에게 폐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 때문에 경찰서까지 끌려갔다.실제 피해자가 육경한이라면 육경한이 합의서를 써주면 육연주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육연주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소원의 진술 때문에 육연주는 고의 상해죄로 기소되었다.이 죄는 아주 무거운 죄로 변호사와 상담 후 최소 감옥에 몇 년은 있어야 하며 길면 5년에서 10년까지도 있을 수 있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전까지 유진은 이 내용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몇 달 더 있다가 유진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소원이 동화책을 내려놓고 물었다.“유진아, 엄마가 임신한 거 누가 말해줬어?”유진이 말했다.“아줌마가 말해줬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를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임신했으니 방해하면 안 된다고 아줌마가 그랬어요.”유진이 또 물었다.“임신했다는 것은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겼다는 거예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긴 거야.”“너무 좋아요.”그녀의 임신을 바로 받아들인 유진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소원은 유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엄마는 3개월이 지난 후 너에게 말하려고 했어. 임신한 지 세 달이 되어야 말할 수 있다는 옛날 어르신들의 풍습이 있거든.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어.”유진이 말했다.“괜찮아요. 엄마, 아기는 분명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예요.”소원이 미소를 지었다.“좋아?”“당연히 좋죠. 항상 같이 놀고 싶은 동생이 필요했는데... 동생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엄마는 너만 행복하면 돼.”소원이 유진을 꼭 안아주자 유진이 말했다.“엄마,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어요. 엄마가 낳은 아기라면 다 좋아요. 나중에 내가 없어도 동생이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나도 안심할 수 있어요.”너무나 순수한 유진의 말에 마음이 아픈 소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유진아, 네가 왜 없어? 너는 항상 건강하게 있을 거야. 엄마 옆에서 이 아기를 지켜줘야지.”유진이 어른스럽게 말했다.“알겠어요. 엄마, 아기를 꼭 잘 돌볼게요.”유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소원은 녀석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옆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유진에게 약을 먹일 수 있지만 서현재의 연구 결과로 보면 그 약이 유진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시도해볼 수밖에 없었다.소원은 유진에게 약을
“네.”주석훈은 전화를 끊고 직원증의 사진을 꺼내 그 위에 있는 예쁜 여자를 깊게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사진을 얼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수정아, 봤지? 하늘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아니면 네가 나를 돕는 거야?”사진 속의 여자를 보는 주석훈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이때 주석훈의 가방 안에 있던 또 다른 전화기가 울렸다.번호를 확인한 주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공포에 질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제트 님, 제발 도와주세요...”주석훈이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상대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저... 외국으로 보내 주세요.”“하하...”주석훈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사악해졌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저... 저는 제트 님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트 님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내가 잡히면 이 비밀을 지킬 수 없을 거예요.”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석훈이 한마디 했다..“많이 똑똑해졌네?”“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제트 님, 돈만 주시면 멀리 외국으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긴 주석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얼마면 되는데?”“5천만 원이요.”전화기 너머로 금액을 말한 여자는 혹시라도 주석훈이 화낼까 봐 설명을 덧붙였다.“적어도 5천만 원은 있어야 외국에서 살 수 있어요.”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틀 동안은 시간이 없어. 모레 밤에 항구에서 보자.”“아니요, 제트 님!”상대방은 경계하며 말했다.“우린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트 님이 돈을 그곳에 두시면 제가 가서 가져갈게요.”주석훈이 코웃음을 친 뒤 말했다.“알았어. 항구에 둘게, 시간은 다시 알려주지.”“지금은 안 될까요...”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매우 급한 듯했다.“나와 흥정할 생각하지 마!”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알겠어요...”전화가 끊